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우연과 필연

스펙트럼

요즘들어 철학이나 심리학과 관련된 책을 찾아서 읽게 됩니다. ‘마흔에 읽는 니체’라는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다가 니체의 철학에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니체의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절대적인 가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스스로 가치를 세우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니체가 말한 것들이 있지만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인 우연과 필연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니체는 사람들이 믿는 두 가지 영역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목적과 의지의 영역,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연의 영역입니다. 목적과 의지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자 계획하고 노력하는 부분이고, 우연은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일, 즉 운입니다. 어렸을 때는 우연의 영역보다는 목적과 의지의 영역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학업적인 부분, 공부해서 시험점수를 올리는 일은 운이란 요소보다는 노력이란 요소가 더 많은 작용을 합니다.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빼거나 웨이트 운동으로 근육을 증가시키는 일도 운보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마흔이 되어서 보니 운이라는 요소의 중요성도 점점 커지는 것이 보입니다. 치과개원을 하고 치과가 잘 운영되는 것에는 노력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개원 후 치과가 잘 노출되는지, 개원하고 고용된 직원들과의 관계가 원만한지 이런 부분들은 운의 요소도 강력하게 작용을 합니다. 집을 사려고 돈을 마련한 시점과 그 당시에 집값이 오르는지 내리는지의 요소도 운이 됩니다. 하고 싶은 사업이나 연구의 주제가 시류에 맞는지도 운입니다. 배우자나 연인을 처음 만나게 되는 그 순간은 우연의 영역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업을 선택하게 된 과정 역시 목적과 의지의 영역인 노력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업가들에게는 특히 운이 좋았다라고 봅니다. 일론 머스크가 페이팔을 엑시트하고 번 돈을 테슬라와 스페이스엑스 창업에 쏟아붓는 과정에서 로켓 발사가 3번이나 실패한 후 마침내 성공을 거둔 그 부분은 노력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노력이 안 중요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라 노력만으로 100%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 마흔이 되어서 깨닫게 됩니다. 게다가 교통사고나 화재, 천재지변과 같은 불운이 닥치면, 그것은 운이 좋은 일을 결정하는 것을 넘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에서 편안함보다는 불안함을 더 자주 느끼고 살아갑니다. 세상은 노력하는 만큼 돌려준다고 교과서에서 얘기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 있는 불확정성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열렬히 사랑했던 루살로메에게 두 번이나 청혼했지만 거절당하고, 건강이 악화하여 삶의 밑바닥까지 갔던 상황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책들을 저술하였고, 이를 통해 진정한 철학자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즉, 닥친 불운을 필연으로 받아들여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것입니다. 스티브잡스도 젊은 시절 애플에서 쫓겨나거나 췌장암에 걸렸던 순간들을 고통스러웠지만 지나고 보니 필요했던 순간이었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을 얻었다라고 스탠포드 졸업식에서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라는 좌절보다는, 그동안의 경험을 기반으로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를 고민하며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이러니하게 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노력만큼 운도 중요하지만, 운은 통제할 수 없고 노력은 통제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노력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소한 우연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기에 모든 순간들을 긍정하며 시도하고 노력하는 것에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마흔에 읽는 니체’라는 책에서는 주사위를 통해서 이를 설명합니다. 주사위를 던지는 것은 시도나 노력이고 원하는 숫자가 나오는 것은 운입니다. 우리는 이전에 나온 주사위의 숫자들을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다시 주사위를 던지며 살아갑니다. 또한 원하는 결과가 잘 나오는 주사위로 바꾸려는 노력도 합니다. 그럼에도 아주 낮은 확률의 불운이 발생하여 좌절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행운으로 잠깐 행복해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노력하고 시도하여 던져온 주사위의 결과의 조합으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사위를 던져 나갈 것입니다. 그 우연들을 필연으로 받아들여 가치 있는 이야기를 만들려 노력한다면 삶에 의미가 더해질 것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