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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報恩: 恩返; 옹까에시)

임철중 칼럼

초등 5학년 때 자치회장에 뽑혔다(1953). 만 5세 갓 넘어 입학한 탓에 워낙 작고 어려 줄반장도 어려웠지만 회의 진행은 문제없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반만년 역사에 시민사회와 자유와 민주를 ‘겪지도 배우지도 못한 국민’을 깨우치자면, 교육이 먼저임을 꿰뚫어보고 교육입국(敎育立國)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았다. 일제 치하에서 늘어난 문맹률이 어느 정도 줄자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자치(自治) 체험을 제도화한 것이다. 4·19 혁명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고등학생이다. ‘전국 최초로 전교생이 일어선’ 대전고등학교 3·8 데모는 우리 61학번의 쾌거였다. 그러나 4월 26일의 ‘하야(下野) 성명’은 독재자의 구명(求命) 퇴진으로만 단순화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첫째, 제4대 대선은 86세인 노대통령의 유고시 승계문제로서, 초점은 부통령후보에 맞춰져 있었다. 야권 제1후보가 공교롭게도 잇달아 급서(急逝: 신익희 조병옥)하여 이승만 당선은 기정사실이요, 문제는 이기붕 부통령후보의 부정이었다.

 

둘째, 따라서 3·8 당시 우리 구호는 “학원에 자유를 달라, 학원에서 선거운동을 배격한다, 서울신문 구독 강요하지 말라!”에 그쳤다. “이승만 물러가라!”는 귀교하던 고려대생들이 정치깡패에게 습격당한 다음 날인 4월 19일 ‘처음으로 등장’하여 경무대 앞 발포로 이어졌다. 셋째, 변명의 여지없이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이승만은 부상 학생들을 방문한 병원에서, “불의를 보고 젊은이들이 봉기했으니 이 나라에는 희망이 있다.”라고 말하고, 다음날 하야를 선언한다. 공항으로 향하는 연도에는 많은 시민이 눈물로 노대통령을 전송하였다.

 

현대 바둑을 오늘만큼 키운 것은 막강한 막부의 후원 하에 4백여 년간 바둑을 도(道)의 경지로 끌어올린 일본의 공이다. 실력·성적과는 별개로, 사제와 서열(師弟 序列)에 따르는 엄격한 예절은 여전히 배울게 많은데, 숙식을 베풀어 가며 뛰어난 후배를 기르는 내 제자(內 弟子)제도가 사라져가는 것은 안타깝다. 기다니(木谷)가 자신이 초청한 천재소년 조훈현을 세고에(瀨越) 九단에게 내 제자로 빼앗겨 통곡한 얘기나, 제자가 군복무 차 귀국하자 외로움을 못 이겨 자결한 스승의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지는데, 조훈현은 이창호를 내 제자로 키운 국내 유일한 경우다.

 

백 년에 한 번쯤 나올 두 천재기사 이야기를 Netflix가 ‘승부’라는 영화로 출시한다는데, 필자는 안 볼 생각이다. 이병헌의 조훈현은 좋지만, 마약 관련 의혹이 아니더라도, 유아인의 이창호는 한 마디로 깬다. 차라리 ‘응답하라 88’에서 ‘택’의 박보검을 썼으면 어땠을까? 중요한 것은 이창호가 5년 만엔가 스승 조훈현을 이겼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일본 바둑계에서 쓰는 말이 ‘옹 까에시(恩返: 報恩)’다. 자신을 먹이고 재우고 가르친 스승을 이겨서 ‘은혜를 갚았다’는 뜻이다. 우리 61학번은 자치가 무엇인가, 자유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가르쳐준 이승만에게, 그 반민주적인 정권의 부정을 응징함으로서 보은을 했고, 이대통령은 이를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평생 훈장으로 간직하고 싶은 호흡이다.

 

김기영 감독이 영화화 한 한운사*의 라디오 드라마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공전의 히트를 했다(1961). 징집당한 조선 청년 아로운(김운하)의 눈을 통하여, 태평양전쟁 막바지 일본군 훈련소와 민족차별의 실상을 고발하였다. 한운사 작가의 글을 인용한다. “이승만 시대는 무슨 의미가 있나? 일인독재의 전형이 아니었나? 나를 감옥에 집어넣은 만행은, 일제의 악랄한 경찰 수법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었다.”

 

군사혁명 이후 작가는 우연히 이 박사 머리를 만지던 김용제 이발사를 만나 많은 얘기를 들었다. 경무대(청와대) 요원은 대통령이 무엇을 묻든, “잘 돼갑니다.”로 대답하라고 교육시켰다. 자유당 시절 ‘인(人)의 장막’을 그림처럼 그려낸 이 말은 그대로 연속극 제목으로, 다시 희대의 유행어로 등극했다. 마지막 60회가 다가오자 동아 김상만 회장이 불러, “한 달만 더 써주시오.” 한다. 작가는 점점 이박사가 큰 그릇임을 알게 됐고, 마지막엔 ‘울며’ 썼다고 한다. “This is Korea!” 대로하면서 미군 장성의 별을 뜯어버리고, “You go home!”을 외쳤던 기백. 국부로서의 자격, 넘치고도 남는다, 머리가 숙여졌다고 글을 맺는다. 끝으로 한마디만 보태고 싶다.

알아야 보인다. 아니, 아는 만큼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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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운사 : 1923~2009 충북 괴산 産

서울대 불문학과 중퇴 : 방송 1세대 작가

어찌하리까?(인생역마차), 빨간 마후라, 남과 북, 눈이 내리는데, 레만 호에 지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