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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 집 세대와 MZ의 연합: K-의료

임철중 칼럼

마당에서 행패 부리는 취객을 막아선 마담에게 취객은 깨진 소주 병을 휘두르고, 피가 분수처럼 솟자 마루에서 술 마시던 젊은이가 제비처럼 날아와 목을 잡는다.


출혈은 거짓말같이 멎고 두 사람은 그 자세대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마담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고, 약간의 쉰 목소리만 남았다. 장소는 종로 2가 뒷골목의 주점 대련 집이요, 취객을 맨몸으로 막은 마담은 주점 주인이며, 파열된 경동맥을 잡아 순식간에 지혈하고 봉합까지 깨끗이 마무리한 청년은 일반외과 레지던트 K.
마담은 K에게 평생 무료 이용권(?)을 주고, 필자도 가끔 들려 착한 대접을 받았다.


K는 바로 교정과 1년 후배의 형이었던 인연이다. 그는 모교에 교수로 남아 한국 최초로 ‘소아외과’라는 분야를 개척하는 값진 업적을 남겼다.


의·치(醫齒)대 본과 수업시간표는 꽉 찬 44시간이다. 중간고사 외에 기별(期別 semester)고사와 시간마다 쪽지시험(quiz)도 있고, 학년제(制)이므로 한 과목만 실패해도 일 년 유급이다. 아르바이트가 어려운 빡센 일정이다. 1967년 인턴 수당은 월 1500원, 가운 세탁비 800원에 구두닦이에게 700원을 주고 나면, 교통비가 없었다.


그해 가을 서울의대 인턴들이 들고일어나서 다음 해부터 수당이 조정되었지만, 여전히 기초생활비 수급 수준이었다. 전문의가 되기 위한 전공의 과정은 일제 유물인 도제교육(apprentice) 개념으로, 배우는 과정인데 무슨 월급 타령이냐는 논리였다.


향토장학금(?)이 없는 수련의는 벅찬 근무에 더하여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국립대 교수 연봉도 지극히 열악하여, 비법적인 소위 야간(非法·夜間)개업을 하되, 대략은 전공의의 면허를 빌리(貸與)는 동시에 그 전공의를 값싸게 고용하는 편법을 썼다.


전공의들의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 관행은 아직도 남아있다.


지난 3월 작고한 일반외과 M교수는 미국에서 외과를 전공하고 돌아와, 1977년까지 서울의대 교수 및 훗날 아산병원 원장으로 봉직하며, 우수한 제자들을 길러낸 보석 같은 분이다. 필자 기억에는 한때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린 S병원을 운영했고, K는 그 병원에서 아르바이트 겸 배우고 있던 것 같다. 바로 그 옆 골목에 대련 집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사고 상황이 설명이 된다. 문제는 고강도의 연장근무가 일상인 전공의가 퇴근 후 다시 부업을 뛰는 어려움이었다. 고도성장의 뒤안길에는 이처럼 역경을 거쳐온 의료업과 의료진이 있었고, 온갖 어려움을 겪어온 나이든 의사들은 힘든 일을 겁내지 않는다. 소위 선진국 의사들보다 몇 배의 환자를 진료해서 낮은 수가의 공백을 메꾸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은근과 끈기의 마지막 세대 아닌가?


그러나 MZ 세대는 다르다. “내가요? 이 걸요? 왜요?”하는 세대가 힘들고 값비싼 의대공부를 이제 막 끝냈는데, 어쩌자고 문화 환경과 위락시설이 척박한 지방으로 내려가며, 어렵고 수입전망도 낮은 필수의학(Vital Medicine)을 전공하여 사서 고생을 하는가? 갑작스러운 정원 2000명 증원에, ‘젊은’ 의사·학생이 더욱 격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접근 방향이 전혀 엉뚱하고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아덴만 영웅 석해균 선장과 이국종 교수는, 드라마 ‘김사부’와 함께 전 국민에 감동을 주었고, 이 교수와 아주대 병원장의 격한 논쟁도 알 사람은 안다. 외상(外傷) 외과는 환자가 많을수록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필수진료(Vital or Essential)과목 대부분이 비슷하다. 그러나 뒤늦게 수가 특히 필수의료수가를 올려주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해답의 일부에 불과하고, 그나마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확실한 신뢰회복을 위하여, 적어도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에 준하는 정부 예산부담이라는, 획기적인 제도적 보장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외면 받는 지방의료 풍토는 1977년 의료보험 시작과 함께 지적된 ‘의료전달체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한민국은 ‘국민개병(皆兵)제’의 나라로서, 두 번의 대량 살상 전쟁을 겪어 현충원도 둘이다. 


미국 VA 병원(Veterans Administration Hospital)을 참고하여, 정부 투자에 군(軍)병원과 보훈병원을 아우르는 ‘지역 진료센터 체인의 완성’을 구상해 보자. 반세기 전부터 거의 모든 주에 166개의 병원을 갖추고 있었다. 현재의 3차 의료기관과 제휴하여, 상급병원 진료에 골목의원의 ‘의뢰’가 필요한 전달체계의 핵심으로 삼아, 진료의 질적 평준화에 기여하며, 수가인상에 따르는 보수향상과 함께 젊은이들이 원하는 성취감, 즉 긍지와 자존감의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국군대전병원장에 취임한 이국종 교수의 파격적인 ‘예비역 진급’은 좋은 선례(先例)다.


앞서 언급한 M교수가 존경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수술’로 기억되는 수술솜씨와 수많은 제자양성뿐만 아니라, 간호·보건·행정·구급차 Paramedic 등 인재의 육성을 위해 사재 20억을 기부, 아산재단이 130억을 보태어 기금을 만든 업적이다.


의사 일인 당 얼마나 많은 ‘훈련된 파트너’ 교육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기초과목 특히 해부학 전공교수도 부족하지만, 해부학에는 두경(頭頸)부와 내장과 사지(頭頸·內臟·四肢) 등 세부전공이 추가로 필요함을 알고도, 의대생 대량증원을 덜컥 추진하는가? 이 문제는 기초의학 모든 과목에 해당된다. 면밀한 내용파악과 신중한 접근 등 막대한 투자를 포함하는 장기적인 계획으로, 지난 세대의 정신적 유산을 순조롭게 MZ 세대에게 접목하는, 대한민국 고유의 K-의료를 준비하자.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