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치과계는 리더의 퇴진 문제를 가지고 다시금 소란스러운 상황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정치적 사정(?)은 잘 알지 못하는 관계로 특별히 할 말은 없고, 마침 필자의 학회장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과 맞물려, 리더의 바람직한 퇴진모습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기회가 되고 있다. 이에 이번 기고에서는 이에 관한 필자의 다소 사적인 경험을 포함하는 단상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세월이 무섭도록 빠르다. 필자가 대한구강악안면외과학회 회장으로 취임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덧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 9개월 후면 임기를 마치게 된다. 이러한 세월의 속도를 감안하면 남은 9개월은 너무 금방일 것이기에, 요즘은 새로 일을 벌이기보다는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 학회업무를 잘 마무리 하고 다음 집행부에게 잘 넘겨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아울러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서 맡았던 중책을 과연 잘 수행해 왔는가? 되새겨 보게 된다. 모든 리더들도 이 시점 즈음해선 그럴 듯하다.
크던 작던 한 조직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라면 처음 시작할 때 의욕이 가장 충만하기 마련이고, 필자도 취임사에서 몇 가지 주요 미션을 제시하며 나름 힘차게 시작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학회 법인화를 추진했고, 국제적 학술 교류의 폭을 좀 더 넓혀 보려 했으며, 보다 발전된 미래를 위한 차세대 심포지엄 및 타 분야와의 공동 심포지엄 개최, 개원전문의와의 연대 강화, 대국민 홍보 활성화를 위한 거리캠페인 및 불합리한 보험수가 개선과 전공의 숫자 감축 등 다소 무리해 보일만한 여러 프로젝트들을 동시에 추진해 왔다. 다행이 여러 사람들의 헌신과 도움으로 꽤 많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고, 남은 과제들도 일부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비교적 순항 중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리더가 너무 의욕적으로 속도를 내다보면 일부 구성원들이 변화의 속도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고, 또 가는 방향이 옳다 하여도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조율되지 못할 수도 있다. 심지어 리더의 의견에 적극 동의하지 않거나, 업무 스타일이 리더와 많이 다른 구성원과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 리더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실제 중요한 목표가 성취되었을 때 리더가 기대한 만큼의 환호가 안 나오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리더십은 목표의 정당성과 성취에서 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조직원과 걷는 속도를 맞추는 것도 필요하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워낙 복잡한 존재이기에,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 다양한 구성원을 조율하며 모두를 완벽하게 만족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큰 조직일수록 이는 더욱 난제가 되고, 아무리 잘 해도 어디선가 불만의 목소리는 나오기 마련이며, 심지어 조직의 발전에 반하더라도 리더가 실패하길 바라는 구성원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흔히 리더가 되면 외로워진다고 한다. 특히 리더가 조직에서 많은 일을 추진하고 변화를 모색할 때 구성원의 입장이 다양해지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무거운 책임감에 늘 조금은 과민해져 있고, 또 나중에 어떤 말이 나올지 모르니, 딱히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하소연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 그저 좋은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던 낙천성은 어느덧 사람을 의심하게 되는 성격으로 바뀌어 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왠지 퇴임을 하면 혹시 추진해 놓은 일들이 계속 잘 진행되려는지, 혹시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나 않을는지 쓸데없는(?) 걱정도 하기 시작한다. 이에 일부 리더들은 자리를 좀 더 유지하려고 하거나, 소임을 다하고 물러난 후에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간섭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조직을 걱정하고 아끼는 긍정적 관심일 수 있고, 애정 어린 조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할 경우에는 이유를 불문하고, 후배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조직의 발전을 위한 건강한 순환시스템을 망치는 해악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리더의 기대와는 다르게 후배들의 존경은 커녕 뒤에서는 불만과 비난이 쌓이기 쉽다.
아주 주관적이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리더의 바람직한 퇴장은 리더가 그간의 봉사와 헌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의연한 모습으로 깔끔하게(?) 퇴장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던 퇴장의 순간은 피할 수 없고, 이는 조직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치유와 순환의 필수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의 킨키나투스는 로마를 위기에서 구한 뒤 권좌에 머무르지 않고 조용히 농장으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이 필요한 순간이 끝났음을 알았고, 자신이 떠나는 것이 조직에 대한 또 다른 봉사임을 인식한 사람이었다. 조선의 황희 정승 또한 많은 권세를 뒤로하고, 퇴임 후 지방에 은거하며 이후 정계에 일절 간섭하지 않고 후학과 후배들에게 자유로운 길을 열어주었고, 이는 그가 긴 세월 동안 더 큰 존경을 받는 이유가 되었다. 완장 혹은 권력에 대한 집착은 주로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욕구에 기인하는 것이라는데 이러한 현인들은 자신들 이미지 관리에 있어서 먼 앞날까지 내다본 아주 고수 중의 상고수가 아니었나 싶다. 이 시대 모든 리더들이 항상 조직의 이익을 우선시 하며 이렇게 의연하고 깨끗하게 물러날 자세를 가지고 직무에 임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자연스레 리더를 존경하는 풍토가 정착되면서 조직내 사사로운 잡음도 줄어가고 모두 한마음으로 조직의 발전을 위한 미션에만 집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 같다.
안팎으로 세상이 많이 험하다. 우리 의료계 상황 역시 건보재정 고갈 및 개원가의 과도한 경쟁, 덤핑치과의 난립으로 미증유 혼돈의 상태이다. 누적되어 늘어나는 치과의사의 수에 비해, 나누어야 할 파이의 크기는 나날이 작아지고 있고, 옆 동네 큰 불이 난 의사들 상황까지 고려하면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한국 의료계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이런 어려운 시대에 진정 치과계를 위한 리더의 퇴장 모습은 무엇이 정답일까? 조용히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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