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 차밍걸! 경주마의 마주로서 너와 함께 했던 시절 정말 행복했다. TV와 신문 한 면에 너에 대한 얘기가 크게 실렸을 때 나는 뿌듯했다. 한때 네가 나보다 훨씬 유명했었다. 101전 101패 경주마로서 최고기록을 남긴 채 이제 더이상 너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오호 哀哉라! 슬프도다.
노란 은행잎이 흩날리고 늦가을의 찬 기운이 나를 휩싸고 만추의 스산함과 축축한 천기가 내려앉은 11월 3일(이날은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이 아니더냐). 너는 한 많은 생을 뒤로하고 천상 마구간으로 영원한 여행을 떠났다.
초식동물에게 제일 무서운 산통(배앓이)을 앓게 되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고 해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전화가 궁평목장 유 사장으로부터 왔다. 안락사뿐 다른 방도가 없다니 할 수 없이 허락했다. 하늘이 무너지듯 앞이 캄캄했다.
弔針文 작가 兪씨 부인은 애지중지하던 바늘이 작근둥 부러졌을 때 그 슬픔을 구구절절 달래며 아파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살아 있던 너를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으니 얼마나 처절한 일인가! 경주마로 은퇴 후 새로운 도전의 길로 장애물 비월, 마장 마술, 국가대표말이 되기 위한 꿈을 키우기 위해 훈련 하던 중 이 지경이 되었다니 믿어지지 않는구나. 제2의 삶마저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차밍걸! 너의 삶은 기구했다. 이겨야만 사는 경주마 세계에서 너는 형편 없는 말이었다. 패배자, 루저, 똥말 등 너를 따른 별명은 늘 달갑지 않았다. 나는 그런 소리가 아주 싫었다. 그러나 이들도 나중에는 너를 격려했다. 너는 똥말이 아니다. 돈벌이만 생각하는 경주마의 세계에서 돈 생각만 했다면 너를 당연히 버렸어야 했다. 내가 너를 버리지 못하고 후원했던 것은 너의 선한 눈망울과 꾀부리지 않는 성실함과 강인함 때문이었다. 성적도 못 내는 말을 왜 붙들고 있느냐고 가족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퇴출시키라고 야단이지 않았더냐!
너는 비록 꼴찌를 했지만 너의 성실함과 선한 큰 눈망울은 나를 매혹시켰다. 꼴찌라고 천대받을 수 있지만 나는 너를 격려했고 쳐진 꼴찌 인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너를 보고 용기를 내 제기해 팬클럽까지 만들지 않았더냐!
너는 태어날 때부터 약골이었다. 폐활량도 부족했다. 빚 때문에 제주목장에서 인수 받았는데 오죽했겠느냐. 몸집도 보폭도 폐활량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몸무게도 430kg 정도니 다른 경주마보다 왜소했다. 대개 경주마가 500kg 이상 나간다. 힘이 딸릴 수밖에 없었다.
저체중은 나이가 들어서도 오래 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주마가 관절염이나 관절 이상으로 수명을 다하는데 너는 체중이 덜 나가니 이런 질병에 안 걸리고 계속 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잔병치레가 적고 꾀병 부리지 않는 너를 좋아했다. 경주마가 한번 출전하면 끙끙 앓고 최소 일주일은 쉬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도 벅찬데 너는 한 달에 두 번씩도 출전하지 않았느냐?
101전 101패 마사회사상 최다 출전마 기록이다. ‘당나루’가 갖고 있던 최다 출전(95회)기록을 갱신한 것이다. 물론 기록 갱신을 위해 너를 출전 시킨 것은 아니다. 하다 보니 그리된 것이다. 내가 너를 버리지 못했던 이유 중 또 하나는 너의 눈망울을 볼 때마다 초등학교 친구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눈이 큰 아이였다. 오후반 등굣길 그 집에 들러 함께했던 친구였다. 계모한테 맞아 매일 울면서 학교에 다녔다. 눈물이 그치는 날이 없었다. 공부도 지지리도 못했고 여름이면 웬 왕땀띠는 그렇게 낳는지 눈다래끼도 끼고 살았다. 옴이 유행하던 시절 매번 옴에 걸려 고생하고 학교에서도 꼴찌라고 선생님한테도 구박받았다. 나를 만나면 힘이 난다고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다른 친구들은 그 애와 놀지 말라고 비판했다. 나는 그를 버리지 못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측은함이 나를 감쌌다. 그의 선한 눈망울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 친구의 눈망울을 닮은 차밍걸을 나는 버리지 못했다. 그 친구가 지금 어디 있는지 나는 모른다. 추억 속의 친구일 뿐이다.
평범했기에 위대했던 삶. 1등만 우대받는 세상에서 쳐진 이에게도 삶의 디딤돌이 되어준 너의 삶. 101번 출전하면서 어쩌다 1등이라도 한 번 기대 했으나 그건 멀리 너를 비껴가고 꼴찌마로 생을 마친 너. 그러나 꼴찌에게 희망을 주고 나를 행복하게 했다.
마사회 역사상 은퇴마 은퇴식을 해주는 경우는 없었다. 많은 우승으로 상금을 많이 받았던 말도 은퇴식은 없었다. 너만이 유일하게 은퇴식을 가졌다. 너로 인해 어려움을 이겼다는 많은 팬들이 플랭카드를 들고 격려해 주었다.
거기에 감동해 《위대한 똥말》 동화책도 나오고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101번째의 꼴찌마라는 뮤지컬도 제작되었고, 동아일보 스포츠 기자는 너에게 감동되어 《101번째의 위대한 도전》이라는 소설도 썼다.
차밍걸의 삶은 묵묵히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과 닮았다. 소시민들은 자신처럼 성실하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너를 보고 위안을 삼았다. 일등만이 우대받는 세상에 꼴찌에게도 힘을 주어야 한다. 너와의 인연도 이제 추억으로만 남았다.
변영남 전 협회사 편찬위원장
- 《한겨레문학》 등단
-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원
- 동대문문인회 회원
- 전 치협 공보이사·치의신보 편집인
- 전 대한치과의사협회사 편찬위원장
- 전 대한치과의사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