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발의한 의료기사법 개정안이 치과계 내외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개정안은 의료기사 업무의 전제를 기존 치과의사의 “지도(supervision)하”라는 조항을 “지도 또는 처방, 의뢰(prescription/referral)”로 변경해 의료기사에게 좀 더 독립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겉으로는 간단한 문구 손질처럼 보여도 향후 임상 현장의 지휘와 책임 체계, 나아가 의료전달체계 전반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에 그 영향을 한번 고민해 보았다.
먼저 의료기사 업무의 전제를 “지도”에서 “처방, 의뢰”까지 넓히면 무엇이 달라질까? 법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도”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 관리 감독의 의미를 내포하는 동시에 “지도”하는 자의 책임을 보다 명확히 한다. 전공의가 수련병원에서 교수의 “지도”하에 수술하는 경우 환자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교수가 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에 반해 “처방, 의뢰”는 보다 분업적 의미가 강하고, 혹자는 이러한 경우도 치과의사의 판단에 의한 처방 혹은 의뢰에 한정하여 진료를 수행하는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 의료현장이므로 만에 하나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 안전관리 및 책임의 소재는 모호하거나 느슨해 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처방, 의뢰”만으로 스케일링이 보다 독립적인 상태로 진행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최근 다양한 전신질환을 가진 고령환자의 수가 증가하여 진료 중 여러 예기치 못한 문제가 종종 발생하는데, 만일 스케일링 시 환자 기왕력에 의해 실신, 출혈, 감염 등이 발생하였다면, 어떻게 해결을 할까? 지금처럼 치과 내에서 발생하였다면 보다 빠른 조치가 취해질 수 있을 것임은 자명하다. 애초에 스케일링 약속을 잡고 온 환자의 당일 상태를 보고 치과의사는 생각을 바꾸어 치료를 보류할 수도 있다. 환자에게 발생한 문제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치과의사의 몫이다. 만일 개정된 조치로 “처방, 의뢰”받아 치과의사가 없는 독립센터 등에서 스케일링을 하다가 이런 문제가 생겼다면 적절한 대처는 늦을 수밖에 없고, 추후 그 책임은 처방한 치과의사의 책임인지, 시술을 담당한 치위생사의 책임인지 모호해 질 수밖에 없다. 추후 이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르기 위한 법적분쟁이 야기될 수도 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충분히 발생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그럼 이런 가능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법개정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정치인들의 특성상 이러한 개정에 이익을 얻는 집단의 표를 더 얻기 위한 것(?)이 첫째이유 이겠지만, 언론 보도를 요약하면, 이미 현장에서 그렇게 하고 있어 이를 제도화한다는 것과 의사가 부족하거나, 진료대기가 긴 상황에서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유가 우리 현실에 좀 어색하다고 생각되던 차에 이번 기고를 계기로 필자가 외국의 사례를 조사하면서 보니 영, 미권에서 의료기사의 업무확대에 대한 이유와 지나치게(?) 유사하여 매우 흥미로웠다.
필자가 Chat GPT 5(deep research), perplexity (pro)등으로 주요국가(미국, 영국, 일본)의 상황을 살펴본 결과 실제 몇몇 국가에서 오래전부터 의료기사의 역할을 확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러한 제도를 만든 이유는 전술하였듯이 해당지역사회에 의사가 부족하거나, 이에 따라 진료 대기가 너무 길고, 또 우리와 달리 높은 진료비로 어려움을 겪는 환자에 있어서 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조금은 개선해보고자 한 궁여지책이었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치과의사 수 과잉에, 전 국민이 저렴한 국민건강보험 혜택으로 진료실 문턱이 어느 나라 보다 낮고, 작은 국토면적에 인구가 밀집되어 어디를 둘러보아도 병의원이 넘쳐나니 대기는커녕 병원 쇼핑을 다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의료 접근성 확대” “대기시간 단축” “진료비 경감”이라는 명분은 우리나라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 장애인, 고령자 요양병원 등에 한해서 치과의료 공백을 메꾸기 위한 의료기사의 역할 확대 부분이 제도화 되어 있는데, 이 역시 옛말이고 현재는 치과의사의 과잉으로 낮은 급여에도 요양병원에 취직하려는 치과의사가 많아져 일본 구강외과학회만 보아도 요양병원 취직을 위해 필수교육수료증을 받으려는 일반치과의사(주로 여자 치과의사)들이 한 해 천명 이상에 달하고 있으니, 굳이 의료기사들이 그 자리에 들어가 독립의료를 시행할 필요성이 없어지고 있다. 그리고 부득이한 이유로 이런 제도를 시행한 국가조차 우리나라처럼 하루아침에 법을 바꿔 갑자기 시행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사전안전장치(교육, 경력, 범위, 책임소재, 보험, 연계시스템 등)를 철저히 준비하고, 시범사업을 거쳐 아주 제한된 상황에서만 시행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 편법진료, 안전사고, 의료분쟁 발생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굳이 법개정을 추진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이번 법개정의 주 목적은 국민 구강건강 증진의 고민에서 나온 것이 아닌 의료기사 직군의 독립 진료센터 개소를 위한 선심성 파이나눠주기식 개정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시대는 변하는 것이고, 필자의 제한된 지식으로 이러한 시스템이 절대 잘못된 것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만일 이러한 것이 가능해 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는 우리 치과의료시스템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므로 시행 전 신중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치과위생사와 치과기공사는 치과의사와 함께 국민 구강악안면 부위의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최상의 치과치료를 위해 어느 누구도 빠질 수 없는 운명적 동반자 관계이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지휘자와 연주자, 악기가 있어야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번 의료기사법 개정안이 현장 안전과 임상 책임성, 의료전달시스템의 안정을 담보하지 못한 채 급격히 추진된다면, 우리의 현실상 환자들이 얻는 이익대비, 해외에서도 이미 발생했던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또한 협력과 조화가 어느 직역보다 필수인 치과의료 직군들 간에 새로운 긴장과 갈등을 초래하여 최상의 치과치료를 위한 조화로운 협력체계에 균열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치과의사만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 우려가 아니다. 치과인의 한사람으로서 당연히 함께 고생하는 직군 모두 다 만족스럽길 바라고,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이 더 나아져야 하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반드시 이런 식의 개정만이 그 답은 아닐 것 같다. 우리 모두는 그간 잘 해왔고 따라서 이번 개정도 반드시 더 나아지기 위한 변화이어야만 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중대성에 비해 너무나 준비 없이 시행되는 졸속 개정인 듯 하기에 필자는 이번 개정에 단호히 반대하며 모두 적극 동참하길 바란다. 그리 급할 것도 없는데, 국회도 잠시 숨을 고르고, 모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좀 더 연구하고, 진정 국민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특성이 매사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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