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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위기 앞에서 치과의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82)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AI로 다들 자리를 걱정하는 것 같아요. 치과계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진 않았지만, 사실 저희도 인력 대체를 계속 고민해 왔잖아요. 보조 인력이 대체 가능하면, 치과의사라고 다를 것도 없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위기라고 해도, 여전히 인간에겐 인간만의 영역이 있잖아요. 치과의사에겐 그런 부분을 강조해서 교육하면 되는 거겠지요? 소통이나 공감 같은 것이 이전보다 더 중요해지는 시대인 것 같아요. <익명>

 

두 달 전에 AI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논의가 충분치 않았던 듯하여 다시 이어가 보고자 합니다. 만약 AI로 치과의사 업무의 상당수를 대체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이런 주장에 대해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반박은 “인간에겐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직관이나 공감과 고유한 특성은 기계가 모방할 수 없으므로, 인간 의료인의 입지는 여전히 견고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다소 불편하게 들리실 수 있겠지만, 저는 이러한 낙관론이 현재로서는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혹여 제가 AI 기술에 심취해 현실을 간과한다고 여기신다면, 제가 이 지면에 ‘의료인문학자’라는 직함을 걸고 있으며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의료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임을 떠올려 주십시오. 저는 누구보다 의료 현장에서 직관(철학)이나 공감(윤리와 소통)의 가치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일선에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제가 학생이었던 시절에도 그러했지만, 지금의 교육 현장 역시 이러한 ‘인간적 가치’를 체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현재 저는 학교에서 예과 2학년부터 본과 4학년에 이르기까지 7개의 학부 과목을 담당하거나 평가를 수행합니다. 하지만, 면담 시간을 제외하고 이 모든 과정을 통틀어 제가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은 6년간 총 88시간에 불과합니다. 인접 과목의 특강을 모두 합쳐야 100시간을 겨우 넘길 듯합니다.


이것이 의료인문학 분야 전체에 할애된 시간입니다. 제가 재직 중인 학교가 여러 치과대학과 비교하여 정규 시수가 절대 적지 않은 편임에도, 임상 과목 하나를 배우는 시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나마 배정된 시간조차, 커뮤니케이션 교육은 표준화 환자(연기자)와의 문진 대본을 숙지하는 데 소모됩니다. 의료윤리는 기초적인 임상 및 연구 윤리 원칙 및 규정을 살피기에도 벅찹니다. 의료와 사회 같은 과목 역시 역사와 정책을 개괄하면 학기가 끝납니다. 이런 물리적 한계 속에서 고도의 직관과 깊이 있는 공감을 가르치라는 것은, 교육자의 역량을 탓하기 이전에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의과대학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 학생은 소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영역”을 훈련받지 못하고 의과, 치과대학을 졸업합니다. 그런 의사들에게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AI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 것 같습니다. 물론, 학생 개개인의 뛰어난 역량과 잠재력을 믿을 수는 있겠지만요.


하지만, 지금 대학 시스템이 그러한 역량을 길러내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다고 저는 감히 단언합니다. 자원도 시간도 투자하지 않으면서 성과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제가 너무 큰 이상을 바라기 때문일까요.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의 치과대학(의과대학 포함)은 AI로 ‘대체 불가능한 의사’를 길러내는 기관으로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교육 과정의 대전환이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인간의 대체 불가능성을 담보로 한 안일한 주장은 공허할 뿐입니다.


이대로라면, 치과 의료인은 점차, 그리고 확실하게 AI로 대체되어 갈 것입니다.


시야를 밖으로 돌려 다른 산업계의 날 선 경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AI로 인한 가파른 지각변동을 겪고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 등지에는 생존을 위한 철칙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바로 ‘AI가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AI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은 이제 기본 소양으로 차별점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이것조차 갖추지 못하면 도태되겠지요. 그들은 기계가 범접할 수 없는 ‘AI 너머’의 영역을 스스로 구축하는 것만이 급격히 위축되는 고용 시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냉혹하게 조언합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선생님들께는 먼 나라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미래를 저는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AI의 파도(미래에 올 파도가 아닌, 지금 당장의 영향입니다)는 안 그래도 좁은 입지를 더욱 협소하게 만들 겁니다. 남은 것은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출혈 경쟁과 상호 비방뿐일지도 모릅니다. 이는 결국 치과 분야 전체의 퇴락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파국을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관성적인 쇠락을 거부하고 생존을 위한 다른 좌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곧 진단의 정확성이나 보철 디자인의 숙련과 같은 기술 차원의 문제에서 인간이 AI를 이기려는 노력이 무의미해진다면, 그토록 자랑하던 우리의 ‘금손’이 알고리듬과 로봇 팔 앞에서 평범함으로 전락한다면, 치과의사는 기계 관리자, 누군가 말하듯 도장 찍는 결재인으로 바뀌겠지요.


역설적이게도 여전히 남는 것은 우리의 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는 직관이나 공감과 같은 추상적이고 고상한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온기, 고통을 겪는 환자가 의지할 내민 손은 AI도, 로봇도, 기술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물성(物性)이 맞습니다. 아쉽게도 한 번도 학교에서 가르치려고 생각하지 못한 실존적 돌봄만이 우리에게 남습니다. 좋은 의사의 정의는 기술도, 지식도, 공감이나 이해도 아닌, 환자의 고통이라는 여정을 함께 하는 안내자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고 우리에게 공동의 대안이 주어지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선 철저히 각자도생일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 전망을 드려야 할 것 같아 저도 슬픕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진료실에서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기계보다 조금 나은 기술자일 뿐입니까, 아니면 환자와 함께하는 치유자입니까. 그 답이 우리의 미래를 정할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