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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3) 미소 속에 비친 슬픔/하선영원장


보철을 해준다는 소개를 받고
골방의 유닛체어에 누워 치료 받던날
치대생이길 거부하고 싶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나는 손톱근처 살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다. 물어뜯는 것도 여의치 않으면 손톱으로 살을 도려내며 나름대로 깨끗이 정리하려 한다. 굳이 손톱소제를 할 의도였다면 전용 기구를 사용하거나 미용실을 찾는 것이 결과를 더 좋게 하였을 것이다. 이 행위의 원인을 딱히 표현할 길이 없어 애정결핍이라고 말해왔지만 어릴 적부터 아들이 없는 딸부자집의 장녀로 대우를 톡톡히 받고 자란 터라 이 역시 부모님께는 어이없는 이유일 뿐이었다.


처음엔 손톱 살이 아니라 손톱이었다. 초등학교시절, 손톱 깎기가 필요 없을 만큼 손톱을 물어뜯는 일을 반복하던 중 상악 측절치 절단의 에나멜이 약간 떨어져 나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기서 필자의 치아이야기를 좀 한다면, 어느 곳 하나 성한 데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훗날, 테트라싸이클린에 의한 변색에, 무기질부족에 의한 잦은 파절과  crack, 그 뿐인가? Classlll 경향의 하악골, 그로 인한 TMJ의 불편감, crowding, 그로 인한 잇몸질환 등을 알게 되었을 땐 이미 유년시절로부터 비롯된 오랜 고독감이 내 심중에 깊게 뿌리를 내린 후였다.


어릴 때 친구들은 유난히 피부가 희면서 머리카락이 옅은 갈색이고, 잿빛 치아에 달리기를 좋아하던 나를 독소 어린 관심으로 일괄하곤 했었다.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던 친척어른도 나를 볼 때마다 네 치아색이 왜 그러냐고 반복해서 묻던 일도 어린 나에겐 지겨운 경험이자 사기를 꺾는 일이었다. 치아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일이 줄어든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입을 다문 채 모나리자에 버금가는 미소만 짓는 것으로 내 과시욕은 타협을 봐야 했다.


그러한 내가 치과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하던 날 나는 묘한 감정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것이 안도감이었는지 자격지심으로 인한 걱정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치아에 무지했던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봉의 교사월급으로 세 딸의 대학진학까지 감뇌하신 아버지는 내 어린 시절 그가 치과와 담을 쌓은 결과로 생긴 내 어금니의 소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부형 중 싸게 보철을 해준다는 소개를 받고 그와 함께 어느 치과도 아닌 동네로 가서 골방의 유닛 체어에 누워 치료를 받던 날, 차라리 나는 치대생이길 거부하고 싶었다.
개원 후 그 투박한 메탈 브릿지를 벗겨내던 날, 짓눌려있던 내 잇몸과 함께 묘한 슬픔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맛보았다.


세월이 흘러 개원한지 꽤 되었음에도 치과에 내원하는 환자들에게 심미치료나 정상교합에 대해 열변을 토할 때 어느 결엔가 윗입술에 덮여 잘 보이지 않는 상악 전치를 의식하고 있었고, 환자와 교감을 느낄 때도 활짝 웃는 미소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벌이에 대한 걱정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시간이 갈수록 절감해야 했다.


얼마 전 우연히 떠난 가을여행길에 사진전문가들을 만나 아름다운 풍경 속에 내 모습을 담는 행운을 얻은 적이 있었다. 감정을 가득 실은 옆모습 사진에서 쌍꺼풀이 없고, 그다지 크지 않은 눈과 피부에 나타난 세월의 흔적들보다 더 내 눈에 강하게 들어오는 부분은 다름 아닌 어정쩡한 미소였다. 평소 큰 기대 없이 바라보던 거울속의 얼굴이었지만 사진속의 미소는 마치 인생의 작지만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을 잃은 듯 답답해 보였다. 그것은 부모에 대한 원망이나 넉넉하지 못함에 대한 서글픔, 내지는 환자에게 주지 못한 자신감과 애정에 대한 아쉬움만은 아니었다.


그 동안 무언가에 의존하듯 불만을 토로해온 나를 나 자신이 적극적으로 감싸 안기로 한 것이다. 한 방편으로 조만간 교정치료를 받기로 결정했고, 그 사실만으로 나는 들떠 있었다. 그 후엔 어떤 과정을 계획하고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이미 나는 나를 감싸는 것의 첫 발을 디딘 셈이다.
그러나, 아직은 결실을 보기엔 이른 것일까. 이 글을 다 쓰고 난 후 내 손톱 살은 거의 남아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