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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시론] 6월에 생각하는 똘레랑스

월요시론


구 영
서울치대 치주과 교수

 

6월에 생각하는 똘레랑스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26년 전, 1987년 6월의 서울. 예년보다 늦게 형성된 장마전선은 여전히 한반도 남쪽 해상에 머물러 있고, 거리는 작열하는 태양보다 더 뜨거운 시민들의 함성으로 가득하다. “직선제로 독재타도” “직선제로 호헌철폐”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으로 촉발된 민주화의 열기는 6월 26일, 이른바 6·26 대행진에서 그 절정에 다다른다. 최루탄이 난무할수록 함성은 더 커지고, 시위는 더욱 격렬해진다. 시위과정에서 입은 부상자들의 신음소리가 구호에 뒤섞여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6월의 서울에는 똘레랑스(관용, tolerance)는 없었다.


금요일 서울역 광장의 석양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광장에 남아있던 의료팀을 잡아가는 백골단의 얼굴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호송버스 맨 뒤 칸에 처박힌 나는 생각보다 수갑이 제법 무겁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루에 피우는 담배 개피, 소주는 몇 홉(이런 단위가 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을 하는지? 지난 학기 학점은 얼마인지,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누구인지? 알아서 도대체 어디에 쓰일지도 모를 질문과, 또 다른 난해한 질문에 대하여 모법답안이 나올 때 까지 밤새 소설을 써야했다. 학생신분도 아닌 레지던트의 작품은 더 정밀한 평가과정을 거쳐야 했다. 3일 후 집권당은 국민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이는 이른 바 6·29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한 신문은 6월의 뜨거움을 한국의 ‘민주장전’이라 기록하였다. 


학생회일이나 연극반 활동으로 적지 않게 교수님들을 성가시게 했던 나는 수련의가 되어서 그 결정타를 날린 셈이 되었다. 무단 결근에 연락두절, 진료까지 펑크 낸 나를 교수님들은 쓴 웃음으로 받아주신다. 학교 울타리 밖에서는 없었지만, 학교 안에는 여전히 똘레랑스가 남아 있었다. ‘너도 훗날에 그렇게 해라’라는 무언의 가름침이 그 속에 담겨있었다. 마치 강남 가톨릭 성모병원 의과학연구원 벽면에 새겨진 “가서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라는 루카의 말씀처럼. 그렇게 세월은 흘러 지금은 학교에서 선생노릇을 하면서, 그때 교수님들이 보여주신 똘레랑스를 잊지 않고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똘레랑스란 말의 기원은 깔뱅이 제네바에서 로마 교황청에 종교의 관용을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은 고대 로마제국이 이방민족을 과감히 포용하였던 관용이,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종교간의 다툼과 갈등으로 집단적 불관용(엥똘레랑스)의 혼란으로 바뀌게 되는 시기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단어에 대한 대의나 태도는 우리 안에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하였겠지만,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온 것은 아마도 1995년에 발간된 홍세화의 저서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에서 언급된 것이 계기가 아닐까 한다. 정치적 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파리에서 택시운전을 하던 저자는, 우리사회가 좀 더 상식적인 배려와 용인의 미덕을 보여주는 똘레랑스의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오늘의 치과계에도 세대 간, 직역 간, 전문분야 간의 갈등의 전선이 희미하게, 때론 짙은 색깔로 엄연히 존재한다. 명분이든 밥그릇의 문제이든 하얀 가운과는 좀체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구호들이 들리기도 한다. 그 만큼 삶이 팍팍해진 탓일 것이다. 만약 나와 똑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과만 지내야 한다면, 그런 삶은 얼마나 건조할까? 다른 사람이 있기에 나의 사유가 깊어지고 인식이 넓어진다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 아닐까? 한 발 물러나 호흡을 크게하면 똘레랑스가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어차피 우린 같은 배를 타고 있으니까.


6월에 생각하는 똘레랑스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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