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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의 문화산책] 자기향상을 위하여

임철중의
문화산책

 

자기향상을 위하여


만원을 10%쯤 초과한 전철 안에서, 묘령의 숙녀가 자리에 앉은 신사의 귀에 속삭인다.  “나, 임신부에요.” 황망하게 좌석의 주인이 바뀌고, 얼마쯤 뜸을 들인 뒤 이번에는 신사가 속삭인다. “정말 날씬하신데, 실례지만 임신 몇 개월째이신가요?”


힐끗 시계를 본 아가씨, “두 시간 반쯤이요.” 뉴요커에게는 꽤 진부한 조크란다.


이번에는 서울 지하철 노약자석 풍경. 삼십대 젊은이가 앞에 선 노인은 아랑곳없이 졸고 앉아있다. 조금 뒤 허리 굽은 할머니가 다가 왔건만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참다못한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젊은이 정말 버릇이 없구먼. 서있는 어른이 눈에 보이지 않나?” 호통이 길어지자 쏟아지는 시선에 얼굴이 달아오른 젊은이가 작심한 듯 허리띠를 풀어헤친다.  배에 20센티쯤 상처가 험상궂다. 벌떡 일어나 노인의 멱살을 잡더니 “대수술 받고 퇴원한 지 이제 사흘이요. 지금 막 후 처치를 받고 오는 길인데, 뭐가 문제요?” 혼쭐이 난 노인은 다음 역에서 도망치듯 내린다.


이렇듯 한 길 사람 속을 알기 어려우니까, 배려란 남의 사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요, 마음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노약자석은 객실의 끝에 세 자리씩 두 줄, 약자에 대한 고마운 배려다. 필자도 지공대사(지하철 공짜 세대, 이 또한 과분한 배려)지만, 노약자석 외에는 얼씬거리지 않는다. 일하는 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얼마 전부터 노약자석 한 줄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빈 코너에 기다란 손잡이와 그림기호를 보니, 휠체어와 유모차와 바퀴 달린 큰 가방을 위하여 한 단계 더 진화한 배려다. 불황이 장기화 하면서 객실 벽에 광고물량이 줄어들자, 전국각지의 특산물과 관광 명소를 곁들여 구성한, 기차여행 상품을 소개하는 자체홍보물로 대신하고 있다. “주말에는 운전대를 놓자”, “KTX를 탈수록 주말이 즐거워요”, “환경을 위한 착한 여행” 등 카피도 완곡하고 고품위다. 민영화나 시설공단의 분리 같은 정책적인 문제는 잘 모르지만, 쉬지 않고 진화하는 코레일의 노력만은 가상해 보인다. 우아한 백조의 자태가 물밑에서 쉬지 않고 움직이는 발놀림 덕분인 것처럼, S 라면이 부동의 세계 1위를 지켜내는 비결 또한 끊임없는 연구로 조금씩 맛에 변화를 주는 덕분이라고 한다.


베블렌(Veblen)효과라는 말이 있다. 물가가 다락같이 올라도 허영 내지 과시형 상품의 매상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자들의 배부른 흥정(?)뿐만 아니라, 배곯아가며 석 달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명품 가방을 사는 처녀들을 포함한다. 분수를 모르는 허황된 심리로 매도할 수만은 없다. 나만의 복지(self well-being)를 성취동기로 삼아, 옳고 그름에 대한 남의 판단에 관계없이, 내 나름의 자기향상에 올인하는 현생인류의 공통된 경향이다. 자아와 개성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이러한 추세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화될 조짐을 보인다. 자기계발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인문학에 대한 갈증을 호소하는 현상이 그 증거다. 우리 자신 또한 예외가 아니요, 의료인도 생활인이다. 소비자의 심리를 읽고 그에 맞춰 진화해야만 상대가 마음을 열고 지갑을 연다. 그래서 환자를 대하는 마음가짐의 재정비를 생각해본다.  첫째, “나의 관심은 당신의 건강입니다 (I care about You).” 의료는 단순한 상행위와 차원이 달라 체온 있는 인간관계, 즉 배려가 기본이라는 인식을 되새김 하는 것이다.


둘째, “당신은 매우 소중한 사람(VIP)입니다.” 자존심을 살려주는 일이다. 비위 맞추기가 아니라, 신나게 기를 살려주라는 (Boost up Ego) 뜻이다. 도처에 스트레스의 부비트랩이 널린 현대사회에서, 우울증은 전 국민이 앓는 마음의 감기요, 고통을 심각하게 증폭시킨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마음자세로 환자가 행복해 진다면 의사 자신도, “나는 (모모 치과처럼) 수익창출에만 올인하지 않는 진정한 의료인이다”라는 마음의 위안까지 덤으로 얻는 윈/ 윈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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