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846번째
아빠의 철없는 ‘경쟁’
고등학교 시절,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와서 하숙을 하던 나에게는 같은 처지의 친구가 있었다. 처지가 비슷하다보니 금방 친해졌고, 무슨 일을 하든 어울려 다니곤 했다. 하지만 둘 사이가 서먹할 때가 있었다. 바로 시험이 끝난 직후다. 시험이 끝나면 서로 결과를 묻고 그 결과에 일희일비하였다. 속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내가 그 친구한테만은 모든 이야기를 하였으니 참 의지가 되는 친구였다. 그런데 시험이라는 경쟁도구가 매긴 성적이라는 결과 때문에 늘 어색해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결국 그런 상황이 너무 싫어서 2학년 진학 시에 난 그 친구를 피해 문과반을 선택하였다. 그 덕일지 모르지만 그 친구와는 여전히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
요즘 세상을 글로벌 경쟁시대라고 한다. 경쟁!!-같은 목적에 대하여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룸. 난 사실 이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경쟁이라는 것이 꼭 약육강식, 적자생존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의의 경쟁이라 해도 언제나 경쟁의 끝에는 순위가 있고 또 그에 따른 결과가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만족하고 행복한 이가 있는 반면, 상처받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도 분명히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우리 사회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바쁘다. 초, 중, 고등학생들이 그나마 시험성적으로 경쟁하는 것은 최소한 내 생각에는 아주 양호한 경쟁이다. 그런데도 그 경쟁관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도 있으니, 참 가슴 아픈 일이다. 대학 하면 캠퍼스의 낭만, 지성의 요람을 떠올리기 쉬운데 요즘 대학생들은 그런 경쟁에서 좀 더 앞서기 위해 자신의 스펙을 쌓기에 바쁘다. 이제 대학은 단지 취직을 위한 도구일 뿐인 듯하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 무한 경쟁이 시작된다. 참 숨 막히는 구조가 아닐 수 없다.
나에겐 잘 생기고 멋진 아들이 둘 있다. 순수하고 예쁘고 천진난만한 녀석들이다. 그런데 막상 이 녀석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이런 경쟁사회에 던져진다는 생각을 하면 좀 안타깝다. 서로 경쟁하면서 점점 어른이 되어가겠지만, 그 과정에서 순수한 모습과 천진한 모습은 점차 잃게 될 것은 뻔한 일이지 않은가? 그때가 행복했던 것은 그런 모습 때문 아닐까?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가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무슨 일이든 또래 아이들보다 잘하길 바랐다. 나도 모르게 어느덧 나에게 익숙해져버린, 경쟁에서 이기는 법(그렇다고 꼭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을 아이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가 반장이 못되었다고 풀이 죽은 모습을 보고, 또 어느 날엔 성적 때문에 시험지를 숨기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이쿠! 나도 모르게 또 다른 나를 만들고 있었구나. 그 후로는 아이들 교육에서 경쟁이란 단어를 좀 멀리 두기로 했다. 아이가 원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행복을 느끼는 일을 주로 하도록 하였다.
사실 지금 이 과정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미래가 걱정돼 조심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세상살이를 ‘경쟁’이 아닌 ‘더불어 함께 사는 모습’으로 옮겨 갈 때 진정 우리 아이들의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까하는 철없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 현실을 모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역시 경쟁이 없던 어린 시절 순수함을 간직하고 싶고, 동경하는 맘을 지울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경쟁사회에 내던져지겠지만, 그 때문에 마음이 병들지 않고, 지금처럼 누군가를 배려해 줄 수 있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렴~ 연우야! 동우야!
차성학
최&고기영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