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겨울의 시작에 즈음하여 저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부쩍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말끔한 정장으로 세분의 교수님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중 한 교수님께서 제게 물어 보셨습니다.
“자네는 왜 치과의사가 되려고 하는가?”
순간 멍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학에서 4년이나 공부한 화학이라는 학문을 포기하고 군대도 다녀오고 26살이라는 나이에 새롭게 치과의사를 준비하게 된 이유가 뭐였는지 명확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입시 준비를 시작할 때는 뭔가 여러 가지 이유가 또렷하게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시험이 끝나고 최종 면접만 남으니 그게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정리되지도 않았었고. 그렇게 시간이 잠시 멈춘 듯 멍하다가 딱! 하고 제 입에서 나온 대답.
“저는 깨끗한 돈을 벌고 싶습니다.”
그 순간, 제 대답을 들으신 세분의 교수님들께서는 일제히 이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찬찬히 제 생각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재벌은 아니더라도 제 가족들과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살만큼은 벌고 싶습니다. 물론 치과의사가 아니더라고 돈을 버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직업들, 소위 잘나가고 돈을 잘 버는 직업들을 보면 비리도 많고, 제가 이득을 보면 그 만큼 다른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치과의사는 환자의 아픔을 돌보아주고 건전하게 땀 흘린 만큼 그리고 그 대가로써 제가 목표하는 수준의 돈을 버는 것 같습니다. 비리가 없고 깨끗하고 건강하게 돈을 벌고 싶었고 치과의사는 그런 직업이라고 생각해 치과의사가 되려고 합니다.”
그제서야 교수님들께서는 어느 정도 깨끗한 돈에 대한 제 생각을 이해하신 것 같았습니다. 하긴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 종일 사람들의 입을 들여다보고, 치료하는 일이 그리 깨끗한 일은 아니었기에 세 교수님들께서는 깨끗한 돈이란 말에 의아하셨을 법도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길게 설명 드린 덕분인지 세 교수님들께서는 저를 어느 정도 이해해 주신 것 같았고 당시 가장 원하던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에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처음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치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도전한 것이 벌써 4년이 넘게 흘렀고 지난 1월 17일 저는 사랑하는 동기들과 함께 치과의사 국가고시를 치렀고 동기들과 함께 당당히 합격하여 이제 새내기 치과의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 제 치의학대학원 입학당시 저의 대답이 자꾸 되새김질 되며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제 갓 치과의사를 시작하게 되는 저로서는 치과의사로서 여러 가지 저의 미래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크게 병원을 차려서 승승장구 하는 모습, 학교에 남아 후학을 양성하는 모습, 그리고 치의학을 통한 봉사를 하는 모습 등등 저는 어떤 치과의사가 되고 싶은지 새롭게 고민해 보는 시점이고 그래서 제가 왜 치과의사가 되고 싶었었는지 자꾸만 곱씹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 치과의사 생활을 해 나가든지 간에 제가 치과의사가 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치과의사의 ‘깨끗한 돈’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을 기만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이 시대에 치과계라고 예외는 아닐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달콤한 유혹, 뿌리치지 못할 제안들이 넘쳐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을 하는 이 시점에 저를 포함한 갓 치과의사가 되어가는 저의 동기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치과계를 깨끗하고 정정당당하게 만들어 나가는데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준엽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