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사립치과대학 강의실. 적막이 흐르는 강의실 뒤편에서 남몰래 낯선 언어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방인’이 있다.
태국에서 온 풋타락 파릿폰 씨. 교정과 석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녀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 들려오는 한국어는 반 이상 놓치기 일쑤지만, 영어로 된 텍스트와 주위 동료들에게 받는 도움으로 어려운 교정학의 궤도를 따라가고 있다.
현재 이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은 20여 명 남짓. 치대 유학생들의 꿈, 그리고 애환을 들어봤다.
# 태국 학생 3년 오지서 진료 의무
“치앙마이대학에서 치의학을 공부하던 중에 한국인 교수님의 연수를 듣게 됐어요. 그때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미국 유학과 한국행을 놓고 고민하다가 술기 위주의 트레이닝이 주인 미국보다 학위가 인정되고, 학문적으로 깊이가 있는 한국에 가자는 결심을 했어요.”
풋타락 씨의 말에 의하면 태국 역시 치과의사는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한국처럼 치과의원의 수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고, 전공과목에 따라 소득의 편차가 심하다.
그녀는 “페이닥터의 경우 국립병원은 평균 5만 바트(약 170만원)에서 개인클리닉은 평균 20만 바트(약 670만원)정도로 편차가 큰 편이죠. 태국 역시 도심 집중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치과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한국처럼 늘어나는 치과에 대한 우려가 있어요”라고 전했다.
특이한 점은 태국 학생들은 치과대학을 졸업하면 의료 사각지대로 가서 3년 간 근무를 해야 한다는 것. 일종의 ‘하방(下方)’인 셈이다. 한국의 공보의 제도처럼 태국의 학생들도 이 기간에 다양한 케이스를 보면서 술식이 크게 는다는 게 그녀의 전언이다.
# “한국 치과 수준 만큼 교수·학생도 친절”
남태평양의 한 섬에서 유학 온 A씨는 한인 2세다(그녀는 학생 신분으로 부담스럽다며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를 허락했다). 사실 한국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섬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이다.
풋타락 씨만큼은 아니지만 그녀도 고향과는 환경이 너무 다른 한국에서 남모를 고충을 많이 겪었다.
A씨는 “치대에서 사용하는 기구들이 아예 달라 실습하는데 크게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현미경 작동법을 몰라서 한참 애를 먹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한국 치대생이 도와줘 실험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죠”라고 회상했다.
그녀의 고향은 남태평양 섬나라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지만, 의료기관과 의료인의 수가 턱없이 부족해 미국, 호주 등에서 오는 의료인 봉사에 많은 부분 의지하고 있다. 구강악안면외과 석사과정에 있는 A씨는 고향으로 돌아가 구강악안면 분야의 권위자가 되는 게 꿈이다.
“한국의 치과 수준이 매우 높아요. 또 교수님들이 늘 따뜻하게 지도해 주시고, 학생들도 친절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재외동포로서 우수한 의료기술과 전문성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 자랑스럽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고향으로 돌아가 악안면 부위에 수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치료해 주고 싶습니다.”
# ‘치과 한류’도 거센 중국 치과계
중국에서 온 황 꾸이위에 씨는 랴오닝의대에서 치과학을 전공한 ‘예비 치과의사’다. 그녀의 부모님은 조선족이라 그녀에게 한국어는 제2의 모국어와 마찬가지다.
교정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녀는 항상 제일 앞자리에 앉아 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교수님들의 강의에 집중한다.
“한국의 앞선 의료시스템과 깊이 있는 교정학을 배우고 싶어서 한국 유학을 결심했어요. 중국 역시 석·박사의 문호가 매우 좁고, 국가고시 합격률이 30%대라 치과의사의 길이 쉽지는 않지만 한국 치의학은 중국에서도 정평이 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박사까지 취득한 후 중국으로 돌아가 훌륭한 교정과 전문의가 되고 싶어요.”
황 씨의 말에 의하면 한국 치과의료의 중국 진출 전망은 ‘장밋빛’이다. 언어의 장벽은 분명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만 술식 자체에 대한 위상이 매우 높기 때문에 중국인들의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한국 치과의사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진료를 보고 있고, 현지에서도 한국 치과의료에 대한 프리미엄이 붙을 정도로 인기가 좋아요. 저도 그분들처럼 훌륭한 치과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윤선영·조영갑 기자 최한울·한우진 학생기자(연세대 치의학전문대학원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