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원가에서 고용원장과 페이닥터간 퇴직금 지급 여부에 대한 분쟁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퇴직금이 없다”는 근로계약을 했어도 사직 후 소송을 걸면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와 관심을 모은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퇴직 시 발생하는 퇴직금 청구권을 근로자가 사전에 포기하는 약정은 강행법규인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8조’에 위반돼 무효라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8민사부(재판장 김연하)는 15년간 근무하다 병원을 그만둔 전 원장 김 모 씨가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며 E의료재단을 상대로 임금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다고 최근 밝혔다.
재판부는 “E의료재단이 원고 김씨에게 2억6000여만 원을 지급하고 소송비용의 95%는 재단, 5%는 김 씨가 각각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김 씨는 해당 의료재단이 운영한 G병원에서 2000년 2월 말부터 일반외과 과장으로 근무했고, 2007년경부터는 원장으로 근무하다가 올해 2월 말 퇴직했다.
재단은 김 씨에게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원천징수한 근로소득세와 주민세, 건강보험료·국민연금보험료·고용보험료 중 가입자부담금 등을 공제하고 급여로 1300만원 상당을 지급했다.
그러나 퇴직금을 받지 못한 김 씨는 ‘재단이 퇴직금 2억7900만원 상당을 지급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재단 측은 “처음 근로계약을 맺을 당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약정했으므로,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하지만 재판부는 의사 김 씨의 손을 들어줬다.
퇴직 시 발생하는 퇴직금 청구권을 근로자가 사전에 포기하는 약정은 강행법규인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8조’에 위반돼 무효이므로, 재단 측 주장이 이유가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의 핵심이다.
재단 측은 “사용자와 근로자가 월급과 함께 퇴직금으로 일정한 돈을 미리 지급하기로 하는 ‘퇴직금 분할 약정’을 맺었으며 이에 따라 퇴직금을 모두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재단이 작성한 김 씨의 급여표에 퇴직금과 관련된 내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양측이 근로계약을 맺었을 때나 퇴직금 중간정산 확인서를 썼을 당시 퇴직금 분할 약정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씨와 재단이 퇴직금 분할 약정을 했다 하더라도, 그 약정은 퇴직 시 발생하는 퇴직금청구권을 근로자가 사전에 포기하는 것이므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시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퇴직금 중간정산에 대한 합의가 실제 이뤄지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개별적이고 명시적인 중간정산 요구가 있고 ▲중간정산 대상 근로기간이 중간정산 요구일 기준 과거 근로기간이어야 하며 ▲중간정산으로 지급되는 퇴직금 액수가 명확하게 제시돼야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 같은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재판부의 견해다.
한편 이번 판결에 앞서서도 소속의사의 제세공과금을 병원이 대납해 주는 대신 퇴직금을 주지 않기로 하는 소위 ‘네트제’로 근로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병원이 임금소송에서 패소한 사례가 있다.
당시 판결을 내린 서울북부지법 역시 의사가 최종적으로 퇴직할 때 발생하는 퇴직금 청구권을 사전에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8조’에 위반돼 무효라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