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33조 8항(1인 1개소법) 등 의료기관 개설 및 운영에 대한 의료법이 지난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제기됨에 따라 헌재의 결정에 보건의료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본지에서는 1인 1개소법이 의료정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한편, 위헌결정이 날 경우 발생될 수 있는 각종 문제점 등을 보도하는 기획을 상·하에 걸쳐 마련했다<편집자 주>.
2003년 10월 23일 대법원에서 의미 있는 의료법 관련 판결이 선고됐다. 골자는 ‘동업 형태로 병원을 열어 다른 병원의 경영에만 참여할 경우 의료기관 중복개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치과계를 비롯한 보건의료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기존 의료법에 이미 ‘의료인이 1개의 의료기관만 개설할 수 있다’는 조항이 존재했지만, 대법원 판례로 인해 의료기관의 소유와 운영, 경영을 둘러싸고 올바른 정의를 내리기 힘든 애매모호한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기존 1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운영 또는 경영하던 일부 의료인들은 내심 미소를 지었지만 대다수 의료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법망을 피해 다수의 의료기관을 운영 또는 소유할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 판례라는 데 큰 우려감을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 신종 기업형 네트워크 우후죽순 확장세
2003년 대법원 판례 이후 소규모로 운영되던 네트워크들이 급성장세를 보이며, 확장을 이어나갔다. 특히 치과계에서는 1990년대 태동기를 거친 ○○치과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지점 수를 급속도로 늘려 나가기 시작했다. 2000년도까지 3개 지점에 불과했던 ○○치과는 2007년까지 22개 지점으로 늘어난데 이어 2010년에 34개, 2011년 21개 지점을 오픈하는 등 꾸준히 세를 확장하고 나서더니 결국 120여개의 전국망을 갖춘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의료계에서도 척추전문병원을 중심으로 일부 병원들이 지점 수를 늘려 나가며 확장세를 이어갔다. 반면 치과계를 비롯한 의료계는 이들 네트워크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치과가 급속도로 늘어나자 베일에 쌓여왔던 불법요소들이 봇물 터지듯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인이 전국 120여개 치과의 실소유주라는 진실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120개의 각 지점원장은 명의만 대여해 주는 바지원장으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각종 탈법적인 요소로 지탄의 대상이 됐다.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해 지나친 상업화로 몰고 가는 단초가 됐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개인이 경영지원회사를 설립해 120여개의 치과를 통해 수익을 빼가는 경영형태뿐 아니라 환자 유치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으로 과잉진료를 양산한 것이 드러났다. 또 치과의사가 아닌 진료보조인력이 진단 및 치료계획을 독자적으로 수립하는 등의 불법적인 운영시스템이 공개되면서, 치과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더욱 저하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지점을 개설하고 있는 명의 원장들이 수시로 변경돼, 진료를 받은 환자에 대한 사후 관리가 어려워지고, 소위 교정이나 임플란트만을 전문으로 전담하는 ‘메뚜기 치과의사’들로 인해 책임진료가 어려워지는 등의 문제점 또한 발생하기 시작했다.
또 일부 치과에서는 소규모로 네트워크를 운영하면서 ○○치과의 변형된 시스템을 차용해 치과를 운영하는 사례까지 나오는 등 이른바 ‘짝퉁 치과’까지 활개를 치며 치과계 의료질서를 와해시키기에 이르렀다.
# 판례 부산물=불법 증거 “혐의없음”
상황이 심각해지자 치협에서는 불법 의료기관 대응 TF팀을 운영하고 불법적인 요소를 수집해 사법당국에 지속적으로 고소 및 고발을 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경주했으나, 대부분 ‘증거 불충분’ 또는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나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사법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가장 큰 배경이 된 것이 바로 2003년 판례로서, 불법 의료행위에 대해 당연히 법적인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실례로 치협은 지난 2011년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120개 지점의 실소유주인 ○○○ 대표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으나, 사법부는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그 당시 검찰은 “각 지점은 각각의 의사들이 직접 의원을 개설하고 피의자 ○○○ 운영의 ○○네트워크라는 회사의 컨설팅 계약을 체결한 후 경영관리를 위탁하는 것으로 각 지점의 개설 명의자인 치과의사를 피의자가 고용했다고 볼 수 없고, 피의자 역시 다른 의원에서 직접 진료한다는 증거 역시 없다는 점에서 의료기관 중복 개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후로도 치협은 지속적으로 해당 네트워크에 대한 고발을 진행했지만, 결과는 대동소이했다.
# 국회, 정부, 보건의료 및 시민단체 공감대…강화된 1인 1개소법
치협에서는 끊임없이 사법부에 고발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무혐의에 그친 배경에 2003년도 판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는 한편 더 이상 국민건강에 위해가 되는 상황을 방관할 수 없다는 의지로 구체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된다.
아울러 같은 시기에 치과계의 의지에 힘을 보태 의협 등 보건의료단체는 물론 국회, 정부, 시민단체, 언론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사무장 병원 근절에 대한 공감대도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치협을 필두로 범의료계 6개단체가 지난 2011년 10월 의료법 개정 필요성에 대해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범의료계 6개 단체의 입장’을 발표했으며, 정부도 일부 불법성이 짙은 네트워크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감시하겠다는 등 분명한 선을 그었다. 아울러 시민단체 또한 의료가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폐단을 막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국회에서는 의료법 개정 추진을 통해 2011년 12월 말 강화된 1인 1개소 개정 의료법을 통과시켰다.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의 1인 1개소법은 양승조 의원이 대표발의한 지 74일만에 통과됐다. 재석의원 161명 중 157명의 찬성, 여야를 막론한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법안이었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