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개설금지 규정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 자체가 의료법 4조 2항에 위반돼 건보공단의 환수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특히 이번 판결은 ‘1인 1개소법’ 등 의료기관 개설 및 운영에 관련된 의료법의 위헌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송이 최종 판결만을 남겨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울고등법원 제4행정부는 최근 한의사 박 모 원장과 조 모 원장이 건보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판결을 내린 1심을 유지, 항소를 기각했다.
해당 사건은 신용불량자인 한의사 이 모 씨가 아내 이름으로 서울 강동구에 병원 건물을 임차해 한의사 박 모 원장과 조 모 원장의 이름을 빌려 K한방병원을 운영해오다 건보공단이 이 씨에게 이름을 빌려준 원장들을 상대로 3년 치 요양급여비 6억3994만원(박 모 원장 2억 3825만원, 조 모 원장 4억169만원)의 환수처분을 내린 건이다.
건보공단은 환수 처분 근거로 의료법 4조 2항 의료인은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는 조항을 들었다. 의료법 33조 8항의 이중개설 금지 규정인 일명 1인 1개소법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면 의료법 4조 2항 위반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 모 원장은 2011년 11월 1일부터 2013년 6월 13일까지, 조 모 원장은 2013년 6월 14일부터 2014년 12월 2일까지 이 씨와 병원 순이익의 10%를 받기로 공동 약정을 체결해 병원을 운영해 왔지만 “이 씨와 K한방병원을 동업으로 공동 개설, 운영했을 뿐 명의를 대여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두 원장은 또 “건보공단이 적용한 의료법 4조 2항은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 면허로 의료기관을 여러 장소에 개설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설상 명의를 대여했더라도 한방병원 한 곳만 개설, 운영했다”면서 “1개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까지 금지하는 것은 명확성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하므로 의료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이 씨 부인 명의로 임대차보증금 등 병원개설 자금을 전부 부담한데다 두 원장 모두 공동 약정에 따른 이익배분이 아닌 매달 급여를 받은 점, 병원 직원의 채용 및 퇴사 결정, 자금 집행 등 병원의 인사와 재무 관리를 이 씨가 직접 담당한 점 등을 들어 두 원장이 이 씨에게 고용된 후 명의를 대여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고령이나 신용상태가 나쁜 의료인으로부터 명의를 빌려 개설한 후, 영리 목적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 명의로 1개의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경우도 금지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의료법 4조 2항은 의료인이 여러 개의 의료기관을 설립하는 것은 물론 다른 의료인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의료기관 개설·운영에 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 의료인의 의료법상 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방지하고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 1인 1개소법 위반 시 부당이득 징수 처분 적법
건보공단 측은 이번 판결이 1인 1개소법 위헌 소송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건보공단 법무지원실 김준래 변호사는 “이중개설금지 규정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 자체가 의료법 4조 2항 의료법 위반이라고 재판부가 판결, 건보공단의 요양급여비 환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만큼 의미가 있다”면서 “현재 진행 중인 이중개설금지규정 관련 헌법 소송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즉, 이중개설금지 규정인 1인 1개소법을 위반한 경우 부당이득 징수 처분의 적법성을 더욱 쉽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