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대형 치과가 돌연 폐업 후 잠적해 사회적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해당 치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이른바 ‘소셜쇼핑’식 저수가 교정 이벤트를 동원해 전국에서 환자를 모아왔으며, 최근에는 일시불 카드 선결제는 물론 현금결제나 계좌이체 등을 적극 유도해 온 것으로 취재결과 확인됐다. 피해자가 최소 수백 명, 최대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환자와 주변 개원가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소재 A치과는 12일 환자들에게 “운영상의 문제로 진료를 중단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전송한 뒤 일방적으로 문을 닫았다. A치과는 ‘5주년 치아교정 이벤트’로 66만원의 수가를 제시하는 등 저수가 관련 페이스북 이벤트로 치과계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었다.
갑작스런 폐업 문자를 받고 해당 치과를 찾은 환자들이 발견한 것은 “치과 내부 사정으로 B치과로 통합 이전됐다. 자세한 진료 사항은 개별 공지할 것”이라는 내용의 A4 용지와 치과 측에서 남겨 둔 일부 교정 유지 장치들 뿐이었다.
관할 보건소에 확인한 결과 폐업 신고 절차는 지난 12일 완료됐다. 보건소 관계자는 “그 동안 행정지도 등 처분을 받은 적이 없다. 보건소에서 환자 진료차트를 보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문제의 치과가 위치한 건물관리인은 “이미 지난주 목요일(8일)에 여자 직원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빠져나갔고, 9일부터는 아예 진료를 안했다”면서 “여기서 6년 정도 근무를 했는데, 원래는 다른 치과명을 쓰다가 몇 년 전에 상호를 바꾸고 A치과로 진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8일 스탭들 나가고 9일부터 진료 중단”
‘A4 용지’에 언급된 B치과 원장은 “A치과의 존재를 지난 6일경에서야 알게 됐다”며 “잘 아는 치과 재료상을 통해서 ‘문제가 생긴 치과가 한 곳 있는데 처리해 줄 수 있느냐’라는 제안을 받고, 협의를 하던 중에 A치과에서 일방적으로 통합 관련 문자를 배포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항변했다.
그는 “해당 치과와 한 번 컨택한 정도고, 협의를 하던 상황이었는데 일방적으로 통보가 돼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이라며 “차트도 인계 받은 것이 전혀 없고, 하루에 약 1000통 가까이 문의 전화가 오는 통에 데스크 업무가 마비됐다”며 연계성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연락이 안 돼 불안한 마음에 A치과를 직접 찾아왔다는 환자 C씨(25세)는 기자와 만나 “아는 언니를 통해 싸게 이벤트를 많이 한다는 사실을 알고 2년 2개월째 진료를 받던 중이었다. 장치비 90만원을 선결제 했고, 기타 비용까지 하면 245만원을 냈는데, 이렇게 문이 닫혀 있는 걸 보니까 당황스럽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C씨는 1년간은 30대 중반의 여자 치과의사에게 진료를 받다가 해당 치과의사가 퇴사하자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치과의사에게 진료를 받았지만 치료에 진전이 없어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특히 지난달에 내원했을 때 스탭이 갑자기 현금이나 계좌이체로 결제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피해자 사례와 일치한다.
#“치과의사, 스탭 등 평소 불만 많아”
아울러 그는 진료를 받는 도중 치과의사나 스탭들의 불만이 매우 많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이번 달 또 이벤트 진행한다고 하네요, 우리 엄청나게 힘들겠네요’이런 식으로 공공연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었을 정도로 치과의사들이나 스탭들이 매우 기계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환자는 많았다. 그는 “올 때마다 최소 30분에서 1시간 이상 대기를 해야 했고, 예약을 변경하려 하면 한 달 뒤에나 가능할 정도로 환자가 늘 꽉 차 있었다”고 말했다.
SNS상에서는 해당 치과에 대해 ‘영혼 없는 페이닥터와 더 영혼 없는 스탭 진료 하는 공장형 치과’, ‘의사가 시시때때로 바뀐다’, ‘돈 얘기할 때 만 표정 밝은 치과’ 등의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환자들은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하는 한편 자체모임을 만들어 공동 대응을 시작했다. 해당 치과 피해자들이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만든 카페 가입자는 16일 오전 현재 2600명을 넘어섰다.
해당 카페의 스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D씨는 “이제 2번 진료를 받았고 교정비용과 충치치료 비용을 합해 350만원을 카드로 선결제한 상태”라며 “서울 뿐 아니라 지방에도 피해자가 많아 결제 영수증 등 증거자료를 모아 민사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른 피해자들의 경우 보상도 보상이지만, 사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병원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강남경찰서 경제범죄과 담당관은 “피해자 분들이 적극적으로 고발을 해 와 12일 사건을 접수, 현재 수사 초기 단계에 있다”면서 “정확한 피해액을 추산하기 힘들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변 개원가 “참담한 심정, 2차 피해 우려”
인근 개원가의 경우 “참담하다”는 반응 일색이다. A치과의 운영 행태를 잘 알고 있던 주변의 한 치과의사는 “그 동안 페이스북을 통해 1000명씩 수차례에 걸쳐 모집한 만큼 환자가 5000명에 이른다는 얘기들이 교정 치과의사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며 “어제부터 이 곳에서 진료를 받았다는 환자들의 문의 전화가 오고 있는데 지방에서 개원하는 치과의사들 역시 같은 전화를 받았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라고 밝혔다.
치과의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이 사건이 ‘뜨거운 감자’다. 한 유저는 “A치과는 사무장 병원이고, 연 매출이 30억에 이르는 치과였다. 올 8월부터 영업하는 사람들이 A치과를 매각하려고 했었다”고 전했다.
대한치과교정학회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도 문제가 많아 학회에서 수차례 제제를 가하려고 했던 치과”라며 “1, 2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회원이 아닐 뿐 더러 접촉을 하려고 해도 전혀 응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회 차원에서는 사실상 명확히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현재 ‘이벤트 치과’를 주의하라는 내용의 대국민 홍보를 진행하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태가 엄중한 만큼 2차, 3차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교정 진료를 주로 하는 치과의사 E 원장은 “해당 치과에서 진료를 받던 환자들을 보면 치료가 제대로 안 돼 있어 재치료할 때 고생했던 경험이 있다”며 “이런 유형의 치과가 여러 곳이 있는데, 그런 곳에서 진료를 받던 환자를 보면 1년 반, 2년 동안 치료를 받았는데 레벨링도 안 돼 있는 등 처음부터 다시 진료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F 원장은 “이번 사건은 치과 진료를 ‘가격’이라는 가치로만 매몰시킨 세태가 낳은 현재진행형 비극”이라며 “가격이 싸다고 해서 환자가 몰리는 상황이라면, 제2, 제3의 A치과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