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5학년 때 자치회장에 뽑혔다(1953). 만 5세 갓 넘어 입학한 탓에 워낙 작고 어려 줄반장도 어려웠지만 회의 진행은 문제없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반만년 역사에 시민사회와 자유와 민주를 ‘겪지도 배우지도 못한 국민’을 깨우치자면, 교육이 먼저임을 꿰뚫어보고 교육입국(敎育立國)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았다. 일제 치하에서 늘어난 문맹률이 어느 정도 줄자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자치(自治) 체험을 제도화한 것이다. 4·19 혁명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고등학생이다. ‘전국 최초로 전교생이 일어선’ 대전고등학교 3·8 데모는 우리 61학번의 쾌거였다. 그러나 4월 26일의 ‘하야(下野) 성명’은 독재자의 구명(求命) 퇴진으로만 단순화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첫째, 제4대 대선은 86세인 노대통령의 유고시 승계문제로서, 초점은 부통령후보에 맞춰져 있었다. 야권 제1후보가 공교롭게도 잇달아 급서(急逝: 신익희 조병옥)하여 이승만 당선은 기정사실이요, 문제는 이기붕 부통령후보의 부정이었다. 둘째, 따라서 3·8 당시 우리 구호는 “학원에 자유를 달라, 학원에서 선거운동을 배격한다, 서울신문 구독 강요하지 말라!”에 그쳤다. “이승만 물러가라!”는 귀교하던 고려대생
남과 북의 국력이 그만그만하던 1970년대 초, 육지에서 뚝 떨어진 서해와 남해의 수많은 낙도(落島)는 간첩선이 노리는 안보 취약지역이었다. 해군에서는 매년 정훈담당 중령을 단장으로 공연팀과 진료팀에 온갖 선물을 싸들고, 주민을 달래는(宣撫) 홍보선을 띄웠는데, 통상 중위를 보내는 유배(流配?) 자리에 필자가 찍혔다. 한 달 동안에 20여개 섬을 순회하는 강행군이었지만, 멀미를 모르는 체질 덕분에 크루즈여행처럼 즐겁고 멋진 추억으로 남았다. 그중에서도 해변이 온통 검은 몽돌로 뒤덮인 소안도의 하룻밤이 기억에 생생하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자리에서 일어나 해변에 나가 누웠다. 좌르륵 쓰르륵 파도에 밀고 쓸리는 자갈의 합창소리에 스르르 두 눈이 감긴다. 당시 대위 1호봉이 만원 남짓인데, 어느 일본회사가 자갈을 4억 원에 사가겠다고 제안했단다. 수만 년 파도에 갈고 닦인 자잔한 조약돌이 그토록 값진 자산이라니... 1995년 8월 치의신보에 실린 칼럼 ‘새로 적는 노트’를 일부 인용한다. “주택 2백만 호 건설은 6공 공약이었다. 건축자재가 동이 나자 저질 수입품을 마구 썼다. 소금기를 씻지 못한 바닷모래(海砂)에 자갈 대신 쇄석(碎石)이 들어갔다. 망치만
정관장에서 목캔디를 사서 나오는데 갑자기 몸이 붕- 뜬다. 철제 보조계단에 발이 채인 것이다. 골절은 안 돼! 하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치면서, 오른손을 모로 짚고 앞으로 굴렀다. 툭툭 털고 일어나니, 등에 멘 배낭 덕분에 뒤통수와 등도 말짱하다. 60여 년 전 몸에 익힌 전방회전낙법(앞구르기) 덕분에, 저절로 낙상(落傷)을 모면한 것이다. 겨울 방학 체육관의 기계체조 훈련은 몹시 추웠는데, 깡통에 숯불을 피워 주전자에 물 데우기 등 온갖 심부름은 모두 신참의 몫이요, 군소리는 고사하고 걸핏하면 기합받는 일이 당연한 일과였다. 부상은 아차 하는 순간이므로 고도의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체조반 군기는 삼엄하다. 공중회전을 배우려면 떨어질 때 충격을 줄이는 낙법부터 시작한다. 그것도 말로는 아무 소용이 없고 수백 수천 번 연습으로 몸이 기억해야 한다. 첫 회전은 공포 그 자체다. 조교의 시범을 지겹도록 살핀 뒤, 도움닫기로 가속하여 몸을 솟구치는 각도와 회전시작 시점과 착지(着地) 동작까지, 정확하게 구령에 맞춰야 한다. 회전 순간은 조교가 팔뚝으로 허리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회전을 도와준다. 그렇다. 신뢰하니까 몸을 맡긴다.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던 손처럼,
십층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버스정류장 8개가 곧게 뻗은 알록달록 8차선 도로다. 전국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찍으려 찾아오는 세트 시설 스튜디오 큐브 앞에, 지난 연말 새 그림 하나가 추가되었다. 천체(天體)를 상징하는 동글납작한 트러스 형 돔 구조 안에, ‘어린 왕자’ 별 기둥이 들어앉은 대형 탑이다. 밤이면 지팡이 꼭대기 붉은 별이 트러스에 빼곡한 LED 전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빛의 축제, 루미나리에를 이룬다. 이름하여 ‘영원한 빛 - 우주’, “인류가 지향하는 미래에 대한 꿈과 가치”를 표현했단다. 예산과 노력을 기울여 이러한 상징물을 세울 만큼 대한민국이 성장했구나, GDP $35,000 국민으로서 가슴이 뿌듯하다. 백 미터쯤 지나 신세계백화점과 대덕대교를 잇는 횡단보도를 만난다. 신호가 나서 걷는데 삐익! 좌회전하던 승용차가 코앞에서 급정거한다. 멈칫했다가 마저 건너자 빵 빠앙, 뒤에 선 시내버스가 경적을 울린다. 노인네 지나갔으니 빨리 출발하라고 승용차를 재촉한다. 푸른 신호는 아직 15초나 남았는데... GDP 천 달러가 못 되는 미개한 후진국형 ‘자동차문화’다. 둘 사이 거리가 고작 백 미터다. 숙소 사빌에서 ‘9 to 5’인 오피스텔까지
지난 11월 19일 대한치과교정학회 대전·세종·충청지부 총회 및 학술대회가 대전 유성호텔에서 열렸다. 초청받은 연세대 이기준 교수의 연제는 ‘생물학적 근거에 기반한 역발상 교정치료’ 교정 전문의에게 새로운 시각을 소개하는 시의적절하고 뜻 있는 강의였다. 첫째, 교정학에 인문학(Humane Studies)적인 접근법을 제시하였다. 자연과학계열이 흔히 그러하듯, 관찰결과를 통합 정리하는 귀납(Induction)법보다, 추리와 사색의 연역(Deduction)적 사고를 예로 들었다. 무조건 외우고 따른 고전적인 이론에 의문을 갖는 역발상(逆發想), 구체적으로는 치조골의 direct와 undermining resorption에 대하여 재해석을 시도한다. 기존 이론에 대한 의문의 제기야말로 창조적 발상(Creative Thinking)의 시발점이요, 현대과학의 시대정신(Zeitgeist)이 아닌가? 둘째, 개원의의 공통적인 우려 즉 저 출산과 환자감소, 그리고 전문의 대량배출의 결과인 경제적 어려움에, 나름의 해법을 논하였다. 한류와 치맥에 힘입어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치킨집의 수입이 과연 격감했는가? 다양한 품종과 영업방식의 개발로 win - win이 가능했다며, 30
온 국민을 열광시킨 한국 여자배구의 신화는, 2018 여름 팔렘방 Asian Game에서 시작되었다. 세계적인 레프트 공격수요 환상적인 디그의 여왕 김연경을 정점으로, 순발력과 체공력이 뛰어난 공격수 이재영 언니와, 항상 볼 끝을 살려서 띄워주는 세터 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삼각편대를 이루어,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잔뜩 부풀었던 온 국민의 기대는, 난데없이 터져 나온 쌍둥이의 과거 학교폭력 폭로사건으로 여지없이 깨어지고, 메달의 꿈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여론이 들끓자 연맹은 가장 편리한 탈출구를 선택하여 쌍둥이의 퇴출을 결정한 것이다. 필자가 2021년 3월에 카톡방에 올렸던 글을 소개한다. “학폭 피해자에게 학교는 바로 현세의 지옥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치러야 하는 죄 값은, 단심 제 군중 재판(單審制 群衆裁判)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시효도 지나간 미성년자 시절의 범죄에 대하여, 마땅한 죄 값을 치르고 나서 다시 사회에 기여할 길을 열어주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러나 뜻밖에 일어난 전력(戰力) 차질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표팀은 예상외의 감투 정신을 발휘하면서 도쿄올림픽 4강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
우주인 1호를 소련 가가린에게 빼앗긴 미국 정부는, 우주개발사업을 항공우주국(NASA)에 집중하고, 차곡차곡 따라잡기 계획을 세운다. 먼저 한 사람 우주에 보내기 작전명(名)은 머큐리, 하늘에 보내는 인류의 전령(傳令)이다. 다음 추진력을 높여 두 사람 보내기는 쌍둥이 좌(座) 제미니.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계획은, 달 궤도를 선회할 모선에 하나와 착륙함에 둘, 세 사람을 태운다. 지구를 도는 태양의 신 아폴로의 수레에는 바퀴가 셋. 스푸트니크에 쇼크를 받아서 달나라만은 반드시 우리가 먼저 가겠다던 케네디의 약속은 지켜진다(1969. 7. 20). 일견 황당한 계획에 붙인 절묘한 이름 짓기(Naming) Mercury-Gemini-Apollo는, 전 세계를 매혹시켰을 뿐 아니라, 미국 국민은 문자 그대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받아들였다(230조). 1995년의 치의신보 칼럼 ‘이름 짓기’를 다시 정리한 글이다. 과학에 문외한인 공무원 제임스 웹(최신 우주망원경 이름)의 추진력에, 칼럼니스트 칼 세이건과 영화감독 론 하워드의 헌신적인 후원에서 보듯, 전 국민이 투자를 지원해준 결과다. 1993년 대전 과학엑스포 당시 갑천 고수부지에서,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과학기술계 은퇴자를 위한 시설 사이언스 빌리지는 영양가를 철저하게 계산하여 윤번제 식사를 제공한다. ‘맛’만 빼면 불평도 불만도 없다. 집 밥 개념이라지만 주방장이 젊으니 결국 퓨전 한식이다. 예를 들어 청국장이라면 숟가락을 꽂아서 슬로모션으로 넘어질 만큼 되직해야 제 맛인데, 그냥 멀건 장국이다. 하기야 고령자를 위한 염도(鹽度) 0.6 언저리의 저염 저당 식에 맛까지 주문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다. 그래서 밥도둑 아삭이를 따로 준비한다. 한국인의 고추 사랑은 유별나다. 남아선호 얘기가 아니라, 짱꼴라(中國人)들이 제아무리 우겨대도 포차이에는 없고 김치에는 있는 것이 고춧가루요, 금메달을 따도 ‘고추장 뒷심’ 덕분이라고 하지 않던가? 캡사이신의 효능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지 오래다. 풋고추는 그 종류도 다양하다. 앙칼지게 매운 청양고추는 쫑쫑 썰어서 양념으로 쓰고, 중간 정도의 꽈리 고추는 조림용이며, 껑충 큰 아삭이는 그냥 된장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키 크면 싱겁다더니 아삭이는 과연 이름만 고추다. 아작 깨물면 아삭 씹히는 식감과 달콤한 감미, 그리고 삼킬 때 가서야 톡 쏘는 뒷맛으로 겨우 이름값을 하는데, 가출한 입맛을 불러오는 데는 그만이다. 문제는
고교 음악 시간에 절대음악을 표제음악보다 상위 개념으로 배웠다. 강의 내용을 떠나 절대와 표제(absolute Vs. program)라는 단어 자체가 마치 순수와 현실(日常)의 대비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작곡가가 어떤 개념에 몰입하지 않은 채 창작한다는 전제에 저항감이 온다. 절대음악도 듣는 사람이 나름의 상념을 머릿속에 그린다는 점에서, 제목 없는 추상화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작곡가의 의도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표제음악의 정수(精髓)로 엘가의 수수께끼,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그리고 슈만의 어린이 정경이 있다. 분명한 대상이 있는 소품 모음곡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퀴즈를 곁들여 즐길 수 있는 기악곡들이다. 금난새 지휘자의 ‘해설이 있는 동물의 사육제’를 3년 사이에 두 번 보았다. 티켓파워를 증명하듯 좌석은 물론 만석. 14곡에 나오는 12 동물(화석과 피날레 제외)을, 곡마다 모티브와 클라이막스를 골라 미리 들려주며 몸 개그로 해설하는 열정은 언제 보아도 즐겁다. 러시아 민족주의 작곡가 5인의 한사람인 무소르그스키(1839-1881)의 ‘전람회의 그림’도 좋다. 절친이자 건축가-화가인 하르트만이 39세로 요절하자, 추모 전시회에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Choral; Ode de Joy) 감상이 연말의 통과의례 1순위라지만, 고전음악 팬 중에는 헨델의 메시아를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한 해에 종지부를 찍는 장중한 마감의 의미가 뚜렷하니까. 아이들이 한창 자라던 90년대에,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그믐날에는 영화 벤허를, 온 가족이 둘러앉아 레저 디스크로 감상하였다. 영화가 끝나고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며 듣던 제야의 종소리를 아이들은 지금도 얘기한다. 당시에는 귀하던 소니 40인치 HD TV에 Bose 901 등 스피커 여섯 개를 연결하여 서라운드로 듣던 추억을... 지금은 얼마나 좋아졌는가? 대형 UHD TV도 예전에 비하면 1/10 값이요, 영화나 동영상을 고화질로 자유롭게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추억 만들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 막히는 학원 스케줄에 가족이 밥 한번 같이 먹기 어려운 ‘교육환경’과 엄청나게 비싼 벌집에 틀어박혀 서로 담을 쌓고 사는 ‘아파트 문화’가 공모하여, 분노조절 장애인과 소시오패스를 양산하고, 이들이 오히려 지도자로서 군림하는 ‘오징어 게임’ 세상을 만들지 않았는가? 인생은 선택
칼럼 ‘송년음악회’에서 ‘Memento mori!’를 화두로 삼았다(2018). 알 수 없는 종말에 한 살 더 다가가는 두려움을 잊자는 망년회(忘年會)가 아니라, 지난 한 해를 되짚어 반성하고 보내는 송년(送年)회로 하자는 이야기였다. 인생의 여정에서 “잊는 것(forget)보다 보내는 의식(bid the year out)”이 더 능동적이고 건강한 통과의례(Rite of Passage)가 아닐까? 2003년 개관한 대전예술의전당 후원회를 만들고 버거운 회장직을 10년간 역임하면서, 베토벤 9번 ‘합창 교향곡’ 연주회 참석이 송년의식 제1호가 되었다. 고금동서를 통하여 성인 성자가 붙은 유일한 악성(樂聖) 베토벤의 예술적인 성취와 음악사에 남긴 업적은 차치하고라도, 인간 의지의 승리에 대한 그의 확신과 열정에 우리는 고개를 숙인다. 관현악곡에 인간의 목소리를 접목하려는 시도는 일찍이 운명 교향곡에서 육성에 가까운 오보에 연주로, 다시 합창환상곡에서는 합창으로 실험했지만, 16년의 숙성기간을 거쳐 드디어 합창 교향곡으로 결실한 것이다. 제1에서 3악장까지 보통 교향곡보다 긴 45분쯤에 더하여, 다소 무질서(?)한 4악장 전주 부를 인내해야 비로소 베이스로 시작하
배구는 미국이 농구 다음으로 발명한(1895) 구기(球技)다. 같은 겨울철 실내경기라도 농구는 몸을 부딪치며 자리다툼 하는 격투기에 가까운데, 배구는 공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 세 번의 터치 이내에 네트 넘어 상대 코트에 넘기는, 비교적 점잖은 양반(?) 스포츠다. 키 2m에 체중 100kg은 넘어야 밀리지 않는 농구는 몸집이 작은 동양인에게 매우 불공평하지만, 신체접촉이 없고 두 시간 이상 계속 뛰어올라 몸통을 탄력 있게 굴신할 지구력을 요구하는 배구라면 승산이 있다. 일본 남녀배구가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이 이를 증명한다. 다른 스포츠처럼 여러 차례 경기규칙을 발전시켜 오늘에 이른 ‘6인제 배구’를 한국에 정착시킨 일등 공로자는, 국제대회 첫 출전에서(1956년 제3회 아시안게임)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한 한국대표팀의 고 선우양국 코치다. 맞다. 치과 재료학의 선구자 바로 그분이다. 서울대 치과대학의 전국 배구대회 우승을 위해 ‘유급’을 자청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최강의 라이트공격수요, 최고의 수비수는 바로 고 지헌택 교수였다. 지 교수님은 훗날 올림픽 선수촌장까지 역임하셨다. 도쿄올림픽 동메달을 놓친 한국여자배구대표팀에 전 국민이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