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탄핵, 트럼프 관세 등등 국내외로 요즘 시국이 혼란스럽고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더해져서 우리 같은 일반 국민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정치얘기는 관점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언급하기가 부적절하기도 하고,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때문에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관세의 목적은 “이제 미국에다가 물건을 팔고 싶으면 해외에서 생산해서 수출하지 말고 미국에다가 공장 짓고 직접생산해서 팔아라”는 뜻입니다.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의도이죠.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 내륙지역의 제조업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그로서는 당연한 행보일수 있습니다. 초강대국 미국의 갑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국익을 생각하는 쪽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합니다. 영국, 프랑스, 일본 제국주의 후에 세계의 패권을 거머쥔 미국은 제국주의를 표방하지는 않지만 자타공인 세계최고의 패권국입니다. 브레턴우즈협정, IMF, 세계은행,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UN 등 국제질서를 회복하고 통치하는 발상은 이전에 제국주의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
1993년 4월 24일에 개원하였으니, 올 4월 24일이 만으로 3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같은 안산지역 동문후배들이 저의 사진이 들어있는 케이크와 행운의 열쇠 키 등 깜짝 이벤트를 해줘서 감동의 물결이 아직도 저의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개원 후 첫 환자인 초등학생이 이제는 40대가 넘는 나이가 되었네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향후 얼마나 진료를 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저의 마지막 은퇴하는 그날의 마지막 환자도 상상해 보았습니다. 먼저 저의 젊은 날을 함께한 진료실을 바라보며, 공간과의 이별에 대해 작별의 눈물이 나올 거 같습니다. 아울러 저의 치과의사로써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신 환자분들의 생각에 목이 메일 거 같고,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울컥합니다. 또한 더 이상 일을 안 한다는 시원함보다는, 더 이상 일을 못한다는 아쉬움이 클 거 같습니다. 처음 첫 환자를 진료했을 당시의 초심도 중요하지만 은퇴하는 그날을 상상한다면 지금 현재의 일하는 이 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만남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별도 동시에 생각할 때, 지금의 만남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 듯이 미래의 마지막 그날을 생각한다면 한순간도 허투루 지낼 수 없습니다.
몇주전 휴일 골프 라운딩이 있어 운전하고 가다가,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주문을 하기 위해 키오스크로 갔는데 60대로 보이는 두 분이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하다가 제가 오니까 자리를 비켜주더군요. 두 분들께 먼저 하시라 하니, 저보고 먼저 하라고 해서, 제가 먼저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화면이 된장찌개를 주문하다 중간에 멈춰져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걸 주문하려고 이전 화살표를 누르고 제가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였습니다. 헌데 제가 주문하는 도중에 뒤를 힐끗 보니 아까 주문하려던 두 60대 분들이 제가 주문하는 과정을 마치 열심히 배우려는 학생같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걸 느꼈습니다. 더 이상 설명 안 드려도 어떤 상황인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디지털을 모르면 햄버거 하나 주문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변화는 이제 미래로 진입하기 위해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가 돼버렸습니다. 유명한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변화란 미래가 현재에 침투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변화가 없다면 미래도 없다는 뜻이지요. 지키려는 마음이 강할수록 변화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득권층에 있는 사람들이 변화가 아닌 안주와 안정을 찾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JYP로 유명한 박진영은 사진첩이 없다
1990년에 치과의사가 되었으니, 벌써 30년이 넘었다. 열정이나 의욕은 넘쳤으나 경험이나 기술은 부족했던 새내기 치과의사를 뒤로 하고 이제는 중견을 넘어 원로 치과의사라는 소리를 들을 나이니 세월은 참 유수와 같다. 치과의사란 직업이 필자에게는 천직같이 느껴지고 보람을 갖고 살아왔지만 그동안 말 못할 어려움도 많았었다.(모든 치과의사들이 다 그렇겠지만) 하지만 다른 직업에서도 다들 남모를 어려움이 많은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근에는 공무원이나 연예인이 어린이장래희망 1,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치과의사의 인기선호도는 상위권이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이제는 부와 명예를 보장해 주는 직업은 없다. 어린이에게 인기 있는 연예인이란 직업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즉 이제는 무엇을 하는 시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하는 시대라 생각한다. 70-80년대만 하더라도 치과의사만 되면 어느 정도 부와 명예를 보장해 줬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치과의사의 개원률 대비 폐업률은 60%에 이를 정도로 녹록하지가 않다. 치과의사도 다른 직종과 마찬가지로 약육강식의 무한 경쟁시대에 돌입한지 오래다. 이제는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치과의
요즘 신문지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화두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접하고 있을 것이다. 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 포럼에서 클라무스 슈밥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라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선언했다. 생존할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언젠가 TV프로에서 우리 나라에서 대표적인 제조 공업도시 울산의 불이 꺼지고 있다는 울산시장의 말과 같이 2010년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는 제조업의 성장률은 현재의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인도가 없을 때는 cost down전략으로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고 value up전략을 위해서 새로운 동력을 얻어야 한다. 이런 새로운 동력이 최근 회자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 아닐까 한다. 혁명이라고 까지 얘기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무엇일까? 인공지능, 센서, 클라우드, 빅데이터, 알파고, 사물인터넷 등이 언뜻 떠 올릴수 있겠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1차, 2차, 3차 산업혁명같은 기술적인 부문만이 아니라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가 달리면서 음악이나,
가끔 퇴근길이나 출근길에 지인이나 가까운 환자분들 한테 진료에 대한 상담이나 문의전화가 오는 경우가 있다. 특히 여러 부위를 상담했던 지인환자분이 본인의 특정부위의 상태에 대해서 문의할때면 확실하지 않은 경우 섣불리 답변하다가 틀린 답변을 애기 할까 봐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잘 모르는 듯 하면 그래도 지인인데 성의가 없어보이고, 난처한 상황이 아닐수 없다. 그래도 확실한게 아니면, 잘못 답변해서 신뢰를 잃는 것 보다는 차트나 엑스레이를 보고 나중에 전화드린다고 하는게 맞는것 같다. 백번 잘해도 한번 잘못하면 나중에 주워 담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어쩔수 없는 세월의 결과물일까? 아님 끊임없이 쏟아내는 정보의 홍수속에 과부하가 걸려서일까? 아니면 환자에 대한 나의 관심도의 부족 때문일까? 날이 갈수록 건망증도 늘어 가고, 주변에서 비서 한명 두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농담섞인 핀잔을 들을때면 나름대로 통화할 때 녹음을 한다든지, 메모도 하고, 한편으로는 로봇비서도 생각난다. 친구 전화번호도 거의 외우다싶이했던 20대의 총기를 다시는 얻지 못하는 것인가? 굳이 이유를 들자면 디지털의 발달로 인한 암기에 대한 부담이 적어 지면서 굳이 외울 필요가 없는 상황과, 다른
얼마전 폐막된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남자 펜싱 에페부문에서 14-10의 열세를 딪고 15-14의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박상영 선수가 올림픽은 개개인의 축제의 장이라 거기에 걸맞게 즐겼다고 당당하게 인터뷰 하는 모습이라던지 태권도 68kg급 이대훈 선수가 승자인 상대방의 손을 치켜드는 모습이라던지, 과거 금메달리스트들의 인터뷰에서 늘상 들어 왔던 국가와 민족을 위해, 조국, 국민 등의 단어로 비장함까지 느꼈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쿨해질수 있나 신기하기만 하다. 필자도 386세대라 70년대나 80년도에 국가간에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세상에 둘도 없는 애국자로 변신되어 있었다. 어릴적 워낙 스포츠를 광적으로 좋아했던 탓도 있었지만, 당시에 복싱세계타이틀 매치나, 월드컵 아시아 대양주 지역예선이 벌어지는 기간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멘트 하나에도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혹여 승리라도 하는 날에는 이성도 마비되어 흥분상태에서 한동안 빠져 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새롭다. 1894년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창시된 근대 올림픽의 목적은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데 있는 것
필자는 1993년도에 개원한 이후 2003년도에 바로 옆 공터 주차장건물에 빌딩이 들어 서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이전을 하게 되었다. 좀더 넓고 쾌적한 분위기속에 인테리어도 그 당시에는 나름 신경써서 하고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았던 디지털 X-ray시스템을 구비하였다. 환자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체어에 달려있는 모니터에는 TV시청이 가능하도록 하였는데 환자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행여 TV가 안 나오면 빨리 켜 달라고 하는 환자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헌데 요즘은 환자들이 TV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문자 보내느라 무료할 틈이 없다. 과거 복싱 세계타이틀매치나 인기드라마를 보려고 TV가 있는 집에서, 바로 그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서 시청해야 했던게 불과 40~50년전 일이다. 기술문명의 발달과 디지털의 발달로 인하여 한계비용은 점점 줄어 들게 되면서 과거에는 큰 회사나 구비해야할 정도의 기능의 컴퓨터가 현재에는 모든 사람들의 손바닥 하나에 이 세상과 소통하게 할수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괴물이 탄생했다. 이로인해 개인들의 다양성이 증대되었고 쌍방향 인터넷의 영향으로 Mega-trend시대에서 Mic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