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저녁을/마당에서 먹는다./초저녁에도/환한 달빛./마당 위에는/멍석/멍석 위에는/환한 달빛./달빛을 깔고/저녁을 먹는다… 시인 오규원이 찬탄했던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부쩍 선선해진 날씨와 더불어 한번 뭉치자는 ‘번개’ 제안들이 들려온다. 다시 그리움의 시절인건가.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소년 정약용은 장원급제 후 정조대왕의 규장각 초계문신이 되었다. 정조대왕은 신하들의 사직상소 초고를 미리 보여 달라고도 하고, 좀처럼 우아한 문장을 못 만들어 내는 신하의 경우엔 아예 대신 써주기 까지 했으며, “경의 생각이라고 하면서 이 인물들에 관해 이조판서와 상의하는 것이 어떠한가?”라는 인사문제의 막후 지시를 비밀 서찰로 내리기도 했던 개혁적이면서도 몹시 깐깐한(소위 에고가 강했던) 왕이었다. 그런 임금이 업무상 실수로 충청도로 유배된 신하를 열흘 만에 다시 불러올릴 만큼 총애했을 정도의 탁월함이란 과연 어떤 경지였을까. 본래 10년 예상으로 시작한 수원화성 공사를 단 34개월에 끝낸 것만 보아도 (유형거니 거중기니 하는 기구들을 직접 만들어 사용한 멋진 점들은 별도로 하더라도!)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음은 분명하다. 한편으론 마당에 가득한 매화며 금잔화, 살구나
미술전을 보러가는 것이 소소한 취미인 나는 여러 전시회를 알아보던 중 엑스레이 아트라고 하는 독특한 예술 사조의 전시회에 대한 소개글을 읽었다. 그 전시회의 소개글을 처음 읽었을 때 대부분의 현대 미술전이 그랬던 것처럼 발상의 참신함 이상을 느끼진 못했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재밌게 즐기다 오고 엑스레이 사진도 찍을 수 있으면(?) 찍고 와야겠다고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회에 갔지만 이번 전시회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닉 베세이의 엑스레이 아트란 엑스레이로서 오브제를 촬영해 그 내면의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적 색채가 강한 현대미술의 신(新)사조이다. 이 전시회의 초반부에서, 그는 신발, 전화기 등 일상적인 사물들의 미학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엑스레이 아트로 드러냄으로써 엑스레이가 사물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수단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그는 외모나 이미지에 집착하는 현대의 사람들이 매우 천박하다고 말하며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예술 작품을 창조한다. 오른쪽은 닉 베세이의 ‘selfie’라고 하는 작품이다. 한껏 꾸민채로 셀카를 찍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 ‘역설적이게도 셀카를 찍는 누구든
피타고라스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유명한 경로는 ‘피타고라스 정리’일 것입니다로 표현되는 피타고라스 정리는 직각 삼각형을 이루는 세 변의 길이가 갖는 비례관계를 나타내는 수식이죠. 직각을 끼고 있는 각 변을 각각 a, b라고 하고, 직각을 마주보는 빗변을 c라고 했을 때,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a와 b의 길이가 달라지면 자연히 c의 길이도 달라집니다. 거꾸로 c의 길이를 고정해 놓고 a의 길이를 늘린다면 b는 길이가 줄 것이고 그 반대로 하면 반대의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런데 수메르인들은 피타고라스보다 이미 천년 전에 이 세 변의 길이들 사이에 일정한 비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증명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피타고라스 역시 이것을 증명했는지는 논란거리가 됩니다. 피타고라스가 발견했다고 알려진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서양의 온음계가 바로 그것이죠. 피타고라스 정리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피타고라스 당시에 이미 알려져 있던 것이라서 피타고라스의 발견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피타고라스 정리와 마찬가지로 수적 비례관계입니다. 바이올린이나 기타의 줄을 팽팽하게 걸고 그냥 퉁겨서 낸 소리와 그 줄 길이의 2/3가 되는 지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화여자대학교의과대학부속 목동병원에서 구강악안면외과 수련 중인 전공의 2년차 김헌영입니다. 이번 여름 찌는 듯한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는데, 저에게는 이런 여름에도 지치지 않고 열심히 달릴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추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도쿄에서 개최한 제27차 일본 악변형증학회였습니다. 일본 악변형증 학회는 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학회와 자매결연을 맺은 학회로, 저희 병원에서는 매년 악변형증학회에 전공의가 참석해왔으며, 올해에는 제가 참석하게 되어, 지난 6월 15일부터 16일까지 김선종 교수님과 함께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열리는 많은 학회들을 참석하는 것 또한 늘 새롭고 가슴 두근거리는 시간들이지만, 이번과 같이 해외 학회에 참석하는 것은 유명한 해외 연자들부터 같은 주제와 목표를 갖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많이 설레였습니다. 더군다나 이번 학회에서는 제출한 포스터 2편에 대한 발표가 있었기에 설렘도 있었지만, 걱정도 많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자투리 시간을 내고, 졸린 눈 비비며 탑승한 새벽 비행기 내에서도 제가 발표할 포스터에 대해서 한 번 더 내용을 숙지하고, 예상되는 질문에 대해서 생각
노아의 방주를 방불하는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탈 LA 차량 행렬들이 하이웨이를 가득 메웠고, 해병전우회를 중심으로 총기무장한 한인들은 집에서 각종 보급품과 무기들을 가지고 3대 대형한인 마트를 중심으로 집결하여, 군 복무시절의 계급을 형성하여 질서를 잡아가며 잘 대처를 했다. 한인들은 집집마다 구호품과 성금을 모으고 있었고, 한인타운 곳곳에 바리게이트를 치고, 옥상에 모래주머니를 쌓아 전시를 방불하는 기지를 제작하고, 어디어디에 흑인들이 쳐들어온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즉시 대기하고있던 차량들을 출동시켜 마구 총을 쏘아 조기 진압을 했다고 한다. 단결을 호소하며 LA시내로 모이자는 아나운서의 울부짖는 목소리를 연 이틀동안 숨 죽이며 커튼 안에서 듣던 나는 드디어 LA시내 탈출을 하기로 했다. LA북부 Valley 지역에 사는 사촌언니 집으로 피신을 하기로 하고, 새벽 3시 자는 아들을 들쳐업고 차를 몰았다. 학교부근을 지나 한인타운을 들어가볼 엄두조차 나지않아 최단거리로 하이웨이진입을 시도했다. 가는 길 곳곳마다 약탈당하고 불탄 상가들이 흉칙하게 널부러져있었고, 천사의 도시 LA가 죽음의 도시로 변해있었다. 언제 추가 폭발과 약탈이 있을지 모른다는 방송을 들으며
노아의 방주를 방불하는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탈 LA 차량 행렬들이 하이웨이를 가득 메웠고, 해병전우회를 중심으로 총기무장한 한인들은 집에서 각종 보급품과 무기들을 가지고 3대 대형한인 마트를 중심으로 집결하여, 군 복무시절의 계급을 형성하여 질서를 잡아가며 잘 대처를 했다. 한인들은 집집마다 구호품과 성금을 모으고 있었고, 한인타운 곳곳에 바리게이트를 치고, 옥상에 모래주머니를 쌓아 전시를 방불하는 기지를 제작하고, 어디어디에 흑인들이 쳐들어온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즉시 대기하고있던 차량들을 출동시켜 마구 총을 쏘아 조기 진압을 했다고 한다. 단결을 호소하며 LA시내로 모이자는 아나운서의 울부짖는 목소리를 연 이틀동안 숨 죽이며 커튼 안에서 듣던 나는 드디어 LA시내 탈출을 하기로 했다. LA북부 Valley 지역에 사는 사촌언니 집으로 피신을 하기로 하고, 새벽 3시 자는 아들을 들쳐업고 차를 몰았다. 학교부근을 지나 한인타운을 들어가볼 엄두조차 나지않아 최단거리로 하이웨이진입을 시도했다. 가는 길 곳곳마다 약탈당하고 불탄 상가들이 흉칙하게 널부러져있었고, 천사의 도시 LA가 죽음의 도시로 변해있었다. 언제 추가 폭발과 약탈이 있을지 모른다는 방송을 들으며
치과를 운영하다 보면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1년에 한번씩 성희롱 예방교육, 개인정보 보호교육도 해야 하고, 방사선 발생장치 사용대장, 본인부담금 수납대장 작성도 해야 하고, 명찰도 달아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귀찮은 것이 개인정보 보호법에서 요구하는 사항인 것 같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사이트나 회사에서는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않지만, 치과는 의료법 시행규칙 제14조에 의해 진료를 받는 사람의 주소, 성명, 연락처, 주민번호 등의 인적 사항을 수집하여 개인정보 처리 시스템(청구 프로그램 또는 전자차트)에 입력 하는, 주민등록번호를 취급하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보니,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높고, 얼마 전 치과에서도 개인정보 보호법에서 요구하는 조치(행정자치부 고시 2016-35호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 고시)를 이행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을 받은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정보 보호법 관련 고시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면 일반 치과에서는 도저히 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고, 사용하는 청구 프로그램에서 기능을 지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부분들도 있는데, 귀찮게 이런 걸 자꾸 하라고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긴
출근길 라디오에서, 백로까지 패지 않은 벼이삭은 잘 영글기가 힘들고 쭉정이가 된다고 하네요. 심어만 놓는다고 끝이 아니란 것쯤이야 짐작했지만 알곡이 되기 위해서는 이삭 패는 시점까지 맞춰야 한다니 그만 좀 뭉클해져 버렸습니다. 그 때 왜 선배님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이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옛 생각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남산의 긴 터널을 지나니’ 병원이었습니다. 아직 백로이니 눈이 왔을 리는 없구요(하하). 여기까지가 이 편지를 올리게 된 내막입니다 라고 말씀 드려봤자 어리둥절해 하시긴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만. 그해 여름, 제가 선배님 병원에서 일인지 걸리적거리기인지를 하게 된 것은 실로 여러 가지 우연들이 교차된 결과였습니다. 뭐든 멋있지 않을 바에야 그냥 안 해 버리고 말겠다는 뒤늦은 사춘기를 겪는 중이던 저는 여름방학 동안만이라도 일손이 되어달라는 선배님 말씀을 차마 거역할 수 없어 출근은 했지만 마음은 완전히 콩밭-철들고는 결코 해 본 적이 없는 무위도식을 제대로 한 번 해 보고 싶다는-에 가 있었습니다. 그 날 사랑니 발치를 할 선배님 환자 한 명이 약속을 취소 한 걸 미처 모르고 어시스트가 소위 ‘밥상’을 차려놓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
Horseshoe appliance는 혼합치열기 기능성 3급 부정교합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옵션중 하나다. 교정 장치의 모양이 Horseshoe와 비슷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Horseshoe는 한자로 편자(鞭字)이고, 말발굽 바닥에 붙이는 U자 모양의 쇳조각을 말한다. 이러한 편자를 만들거나 말굽에 편자를 박아 넣는 사람이 Farrier(편자공, 鞭字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편자공과 같은 직업을 장제사(裝蹄師)라고 한다. 한자 편자공에는 ‘장인 공’이, 장제사에는 ‘스승 사’가 사용된 것이 이채롭다. 편자공은 말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여 편자의 장착과 교체를 결정한다. 발톱이 자라는 속도는 교체에 영향을 주므로 말에 대한 해부학적 및 생리학적 지식도 필수적이다. 편자공은 빠른 손놀림으로 정밀한 작업을 신속하게 끝내야 하고, 갑작스런 말의 움직임에도 대처를 해야 하는 숙련성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말이 출혈이 야기될 정도로 다치면 이 또한 편자공의 몫이었기에 horse-doctor(말전문 수의사)였다. 이러한 직업의 역사적 배경이 편자공으로 하여금 발치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주었고 18세기 발치사로서 한 축을 담당하였다. 17세기 조선시대 마의(馬
탈레스는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느라 그만 우물에 빠져 어느 하녀로부터 “밤하늘의 별은 보면서, 어찌 발밑의 우물은 못 보십니까?”라고 비웃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 탈레스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에서 최초로 철학을 시작한 철학자라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아르케)은 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전을 읽다보면 우리가 보기에 너무 뻔하거나 허무맹랑한 말을 읽게 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고전적 상상력’입니다. 그 때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들처럼 생각하는 것이죠. 그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하던 시절은 신화적 사고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입니다. 지상에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는 대략 인간의 경험과 기술로 해결하지만, 천재지변과 같이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던 시절에 인류는 기우제를 지내고 천벌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지상의 삶을 설명하는 말과 초자연적 세계를 설명하는 말이 달랐고, 후자의 언어와 사고가 신화이고 신화적 사고입니다. 탈레스의 저 한심한 말은 두 개로 갈라진 세계를 하나로 묶으려는 대담한 기획이었습니다. 지상의 언어인 ‘물’로 초차연적 세계를 포함한 모든 세계를 통일적으로 설명하려던 것이었죠. 다음
역마살과 더불어 김찬삼 여행기가 감명이 깊었는지 어릴 때부터 여행과 이민이 꿈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나라 가운데 영국으로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인기 이민국으로 생각되는 나라들을 방문도 해보고 치과 현황을 분석후 여의치 않다고 판단 된차에(한인 치과는 이미 포화상태였다). 마침 영국에 와있던 지인의 권유가 있었다. 미지의 환경에 대한 호기심도 일어나고 유럽 각국을 용이하게 여행 다닐 수 있다는 잇점도 있어서 더 늦기전에- 당시 39세- 한번 도전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치과를 후배에게 인계하듯 정리하고 짐을 꾸려 2002년 월드컵 결승 다음날 부랴부랴 영국행 비행기에 가족들과 몸을 실었다. 다음날 히드로공항에 내려 불법이민이 아닌가 하는 의심속에 10시간 가까이 억류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우선 월세집을 구한 후 한국에서 대강 준비한 정보에 의하면 우선 영어시험(IELTS)의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각각의 영역을 7.0(8.0만점)을 얻어야 면허 본시험을 치를수 있었다. 딱 한 항목씩 번번히 떨어지기가 5~6차례, 거의 2년의 세월(옥스포드에서 6개월 하숙을 하며 용하다는 IELTS 전문 학원도 다녔다.)을 영어 공부로 보낸후에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