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순서 1. 30년, 한 세대가 바뀌었지만 여성치의의 현실은 변하지 않아 2. 젊은 여성치의가 살만한 치과계가 우리 모두 살만한 사회 3. 여성치의의 퇴근은 또 다른 출근 - 여성치의의 모성을 생각한다 4. 이제는 배려와 소통의 프레임으로 - 여성정책을 제도화하자 5. 3캠프의 여성치의 관련 공약 총정리 2017년 2월 24일, sbs 뉴스, 클로징멘트입니다. 올해 육사 졸업생 1, 2, 3 등이 모두 여성이라는 뉴스는 놀랍고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 소식이 혹시라도 우리 양성평등의 현실에 대해서 착시를 부르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세계 112위, 여성 경제활동지수는 OECD 33개 회원국 가운데 32위, 특히 남녀 간 임금 격차는 꼴찌입니다. 우리 여성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성차별의 장벽은 육사 1, 2, 3 등의 영예 정도로 뚫기에는 여전히 버거워 보입니다. =============================================================== 치과계에서는 위와 같은 현상이 이미 한세대 전인 1980년대 후반부터 있어 온 일입니다. 각 학교의 졸업생 중에서 1, 2, 3 등이 여성인 경우는 아주
치과의사가 된 지도 벌써 30여년이 되어간다. 짧지 않은 기간이다 보니 그동안 치과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왔다. 혹한에 수도가 얼어서 진료를 며칠 동안 못한 적도 있고, 반대로 화재가 났다가 초기진화 되어서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던 아찔한 적도 있었으며, 환자분이 쓰러져서 119 구급대를 부르는 일도 있었다. 진료 중에 보철물이 입안으로 떨어져서 아이가 삼켜서 급히 흉부 방사선사진 촬영의뢰를 한 일도 있었고, 진료 도중에 정전이 되어서 하던 진료 중단하고 내원한 환자분들 귀가시켜드리는 해프닝도 겪어 보았다. 물론 대부분의 하루하루는 귀여운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들도 많은 날들이었고,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사는데 가슴 뿌듯함의 보람이 있는 날들이 많음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제까지의 어떤 일들보다도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생겼다. 한 달쯤 전에 앞니를 다쳐 절반정도가 부러진 상태에서 여러 병원을 거쳐서 타 치과에서 발수를 하고 임시충전 상태로 내원한 아홉 살 남자아이가 있었다. 어머님께서 부러져나간 치아 조각을 소중히 가지고 오셨는데 다른 병원에서는 부러진 부분을 붙여주지 않고 크라운을 해야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해석하면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판틴은 자신의 딸 코제트의 치료를 위해 자신의 앞니 2개를 팔아 40프랑(현재 가치로 약 12만원)을 마련하여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보냈다. 오호 통재라! 이제 코제트가 나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던 판틴의 핏빛 미소가 보이는가?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26년이 지난 1815년부터 실패로 끝나는 1832년 6월 항쟁까지 프랑스의 혼란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1789년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이라는 구제도를 타파하려는 민초들에게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기쁨의 눈물과 승리의 미소를 안겨주었다. 마치 우연의 일치처럼 프랑스 혁명의 출발점에서 치과계에서도 미소혁명(Smile Revolution)이 시작되었다. 파리의 치과의사 니콜라스 뒤뷔아 드 슈망(Nicolas Dubois de Chemant, 1753~1824)은 도자기 틀니(mineral teeth paste denture 또는 porcelain denture)를 1789년 발명하였다. 변색, 악취 및 우식등 상아 틀니(ivory denture)의 단점들을 일거에 극
태어날 때 몇 킬로그램으로 태어나는지. 백일전에 뒤집기를 하는지. 몇 개월에 걸음마를 하는지. 두돌에는 몇 단어나 말을 할 수 있는지. 유치원에서는 달리기를 몇 등을 하는지. 한글은 몇 살에 읽고 쓸 수 있는지. 초등학교에 가서는 줄넘기를 몇 개나 할 수 있는지. 중학교에 가서는 반에서 몇 등이나 하는지 고등학교에 가서는 수능 점수를 몇 점이나 받는지. 대학교에서는 학점을 몇 점이나 받는지, 토익 점수는 몇 점이나 받는지. 결혼 적령기에는 배우자 조건으로 몇 점이나 되는지. 신혼집은 몇 평이나 얻는지. 연봉은 얼마나 받는지. 체지방은 얼마인지. 몇 살까지 살 것인지. 우리는 숫자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아니 적어도 저는 위와 같은 숫자 나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런 숫자들이 우리에게 도대체 얼마나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오랜만에 다녀온 산행 후 허기에 주유소에서 받은 건빵을 집어들었습니다. 보리 건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보리가루는 2%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이 “바나나 우유” 라고 알고 있는 어릴적 최고의 간식거리도 사실은 “바나나 맛 우유”일 뿐 아니라, 1%의 바나나 농축과즙만이 들어있습니다. 식품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지 평
어떤 사업을 하던지 처음에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어느 정도의 매출액이 나와야 손해를 보지않는 지를 파악해보고 비용계획과 매출계획을 잡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손해를 보지 않는 점, 즉 매출과 비용이 일치되는 점을 BEP(Break Even Point)라고 한다. 이 BEP 이상으로 매출을 올리게 되면 점차 이익이 발생하고, 반면 BEP 이하의 매출이 나타나면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개념이 고정비(fixed cost)와 변동비(variable cost)의 개념이다. 고정비는 병원의 경비 중 병원의 매출과 관계없이 일정하게 지출되는 경비를 고정비로 분류한다. 즉, 건물임차료, 직원급여, 상여금, 전기세, 수도세, 복리후생비(식비, 4대 보험료 등), 우편통신비, 사무용품비, 광고선전비, 여비교통비, 감가상각비, 리스료, 대출이자, 협회비 등 대부분의 판매관리비가 고정비에 포함된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변동비는 병원의 경비 중 병원의 매출이 변동함에 따라 같이 증감하는 경비를 변동비로 분류하고 재료비(의약품,의료소모품), 기공료 등 매출원가에 해당하는 항목 및 판매 관리비의 일부가 포함된다. 그래서 손익분기점은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계산
선거전이 뜨겁다. 각 후보들이 다양한 공약을 중간 중간 발표하고 포럼이다 정책토론회다 하며 다양한 홍보성 행사를 개최하며 회원들에게 자신을 부각시키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직선제로 하다 보니 과거 대의원제 선거일 때는 대의원 211명만 잘 대접하면 될 일이었지만 지금은 회원 전체에게 잘 보여야 하니 언론을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다. 아마도 현 집행부 출신 후보를 공략하기 위한 전략인 것 같은데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어서 한 말 하고자 한다. 그 전에 먼저 필자는 어느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현 집행부에 대한 일방적인 편을 들고자 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단지 치과계에 언제부터인지 몰상식과 예의 없는 행위가 정당화 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심정으로 속에 담은 생각을 글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 후보들 가운데는 직전 집행부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는 후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후보를 비롯해 이른바 자칭 개혁세력이라고 하는 후보도 있는 것 같은데 이들이 입을 맞춘 듯 현 집행부 출신 후보에 대해 ‘잃어버린 3년’의
지난 2월 6일 협회회관내에서 토선 함석태(土禪 咸錫泰) 흉상 제막식이 있었다. 그날은 참으로 기쁜날이었다. 우리의 뿌리를 찾고 그분의 얼을 기리는 터전이 마련되었다. 그분의 흔적이 너무 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치과의사상을 모두 갖춘분이다. 생각할수록 애정이 가고 연구할수록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든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스승이시다. 한국 최초의 치과의사 함석태는 당시 치과의사라는 직업자체가 없던 시절 개척자 정신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최초의 치과의사가 되었다. 일본 치과의사들 틈에서 고군분투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인의 구강위생이 엉망인것을 안타까워하며 특히 일본 어린이들은 치약으로 이를 닦는데 우리 아이들은 소금으로 닦아 충치가 많이 생겼다고 탄식하며 동아일보 등에 구강위생 계몽에 관한 많은 글을 남겼다. 그러다 경성치과의학 전문학교에서 한국인 치과의사가 배출되자 한국인만으로 ‘한성치과의사회’를 조직하여 서로 격려하며 국민건강을 지켰다. 1925년의 일이다. 현 서울특별시치과의사회 연원이 된 것이다. 일본인들이 도굴하고 수집해 일본으로 가져가는 민족 문화재를 안타깝게 여겨 푼푼히 문화재를 수집했다. 도자기와 민속품을 주로 수집했고 서화 소장품도 상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토머스 롤런드슨(Thomas Rowlandson, 1756-1827)의 작품 ‘Transplantation of teeth(1787년)’은 아래와 같이 언급되어 있다(그림 1). <칸트 시대에 콩팥 시장은 성행하지 않았지만,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치아를 사서 자기 잇몸에 심었다. 18세기 영국 캐리커처 화가 토머스 롤런드슨이 치과 진료실 풍경을 그린 ‘치아 이식’에는 의사가 굴뚝 청소부에게서 이를 빼고 그 옆에서 돈 많은 여자들이 치아 이식을 기다리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칸트는 이를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로 보았다. 누구도 “자기 팔다리를, 심지어는 치아 하나라도 팔 자격이 없다” 이는 자신을 대상으로, 단순한 수단으로, 이익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행위이다.> 그는 정의롭지 못한 사례로 돈만 있으면 타인의 치아를 사서 이식받을 수 있었던 동종이식(Homo transplantation)을 손꼽았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진료이지만 18세기 한때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하였다.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리다. 치과에서 임상을 하다 보면 치료를 잘할 수도 있고 때론 못할 수도 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어느날 카톡에 정체불명의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 작년부터 병원 카카오스토리와 카톡으로 매일 문자 보내고, 사진 캡쳐해서 올리고 하는 온라인 스토킹을 당하고 있었던지라 초긴장, 짜증 등의 복잡한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응답을 했다. 내가 몇년간 정성을 들여서 치료해 주고 있는 장애인 환자임을 확인하고 난 다음에야 안심을 했는데 안심 보다는 놀라웠다. 어떻게 주환이가 카톡을 하다니! 주환이는 언어와 사지신체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휠체어생활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더 놀라웠다. 말을 못하니까 패드에 왼손으로 구불구불한 글씨를 써서 의사소통을 한다. 주환이는 패드로 이 세상의 모든 경험을 하면서 지적욕구를 채우는 것이다. 몇년 전 내가 6년째 주치의로 있는 주한 파라과이 Ceferino Valdez 대사님 사진을 주환이가 온라인을 통해서 보고, 직접 만나고 싶다고 주환이 아버지를 통해 부탁이 들어왔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부탁을 하는 것도 우리가 통상적으로 장애인이 하기가 쉽지는 않은 행동이라 고민을 했다. 어떤 식으로 만나게 하는 이벤트를 만들어 주고 싶은 내 마음도 덩달아 가슴이 뛰었다. 며칠을 고민을 하다가 Valdez 대사님에게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저자 유명한 화가들 중에는 자화상을 남긴 경우가 많습니다. 자화상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합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대해 리쾨르가 해석한 것을 저는 좋아합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거울 속의 자신의 이미지를 화폭 속에서 재창조하고 해석한 것이다. 이미지를 기억하고 불러내 화폭 속에 재현하는 것은 왜곡이 아니라 자기 점검이다. 그래서 자화상은 성찰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화가는 아니지만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재창조하고 있습니다.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모습, 되고 싶은 미래의 모습 등이 각자의 머릿속에 자화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셀프카메라로 찍어서 SNS에 올리는 것을 아주 흔하게 봅니다. 대부분 한 번에 찍어서 올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보통 만족한 결과물을 얻을 때까지 계속 찍어서 그중 제일이다 싶은 걸 올립니다.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모습과 사진 속 이미지가 최대한 같아 보였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의 이미지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
얼마 전 친정어머니의 우측 대퇴골 경부 골절로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우선 응급 의학과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나서 정형외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정형외과 레지던트는 머리에는 까치집을 짓고 한 3일은 못 잔 듯 매우 창백하고 피곤한 얼굴로 나타났다. CT결과 대퇴부 경부 골절이라며 수술을 해야 하겠지만 수술을 하려면 2~3주 후에나 수술이 가능하며 그동안은 응급실에서 버텨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너무 고생이 되니까 한 3개월 정도 누워있으면 간혹 뼈가 붙는 수도 있으니 그냥 귀가하는 것이 어떠냐고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응급실과 종합병원 사정을 그래도 좀 아는 나였기에 위 이야기에서 오류를 몇 가지 찾아낼 수 있었다. 첫째, 아무리 붐비는 병동이라도 매일 퇴원환자가 생기기에 검사나 항암치료보다는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먼저 입원이 되므로 2~3주간 응급실에서 불편하게 기다릴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둘째, 3개월 정도 누워있으면 간혹 뼈가 붙는 수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뼈는 고정을 해야 뼈로 붙지 누워있더라도 약간씩이라도 움직이는 경우 결체조직 덩어리가 생길 수 있기에 간혹 뼈가 붙는 수가 있다는 이야기 자체가 수술을 해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