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은 먹이사슬 법칙에 따라 먹이를 구해 생명을 영위하지만, 반대로 순간의 실수로 자신 역시 먹잇감이 되어버리는 살벌한 삶의 현장이자 어떠한 연습도 허락하지 않는 냉정한 세계이다. 포식자는 먹잇감의 사지가 경련을 일으키다 경직이 되는 순간까지 목을 틀어 물어 숨통이 끊어진 후에야 본격적으로 만찬을 즐기게 되는데 어떠한 관용도 베풀지 않는다. 뻐꾸기 어미는 자기보다 몸집이 작은 딱새나 뱁새가 애써 지어놓은 둥지에 몰래 들어와 알을 바꿔치기하는 탁란 방식을 빌어 종족번식을 하게 된다. 주인집 자식을 밀어내어 죽이는 갓 태어난 뻐꾸기 새끼의 본능적인 행동이야말로 이기적인 유전자가 코딩되어 있지 않고는 존재하기 힘들지만, 이 역시 엄연한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야생의 법칙을 인간세상의 법칙에 도입하여 비유와 예제 삼아 인간적인 해석을 덧붙이는 것은 우리 인간에 내재된 동물적인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화자(話者)의 지나친 야생적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비유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위에 언급한 포식자와 뻐꾸기의 행동은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냉정한 동물의 세계이지만 이들이 동료나 동족을 그 대상으로 삼는 일은 드물다. 얼마 전 모 전문지에
2018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 여성폭력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영역에 침투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특히 그 시발점이 된 최초 발언자가 법조인이라는 사실은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여성뿐만 아니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여성이 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였다. 그 이후의 과정은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여성들의 용기와 열망이 얼마나 대단한지, 또 그들을 지지하는 성별을 초월한 인류의 요구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당시 매일같이 쏟아지던 미투 관련 뉴스에는 다양한 유형의 성폭행, 성추행 사건들이 온 국민에게 전달되었고 재판 과정 등을 통해 성폭력, 성추행, 성인지 감수성 등 우리에게 낯설었던 용어들의 정의가 인터넷 검색순위에 등장하였다. 대다수 국민들이 여성폭력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과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표현한 것이다. 미투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도 피해자 중심으로 변화되었고 사건 이후에도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이는 여성폭력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사회적인 요구를 반영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은 크
세상이 혼란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혼란스러움이 어제오늘의 일인가? 아니다, 몇 년 전부터도 아니고, 몇십 년 전부터도 아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혼란하지 않았던 날은 하루도 없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뇌는 우리 몸이 소비하고 있는 에너지의 70% 이상인가를 소비하고 있는 구조물이다. 그래서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제거하고 있는데, 과거가 지금보다 나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뇌가 과거 고통의 기억을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늘 혼란스러웠고, 절망적일 때가 많았지만,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마음 속에 늘 긍정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에게는 항상 발전된 미래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들이 유튜브 등의 매체에서 많이 거론되고 있는 지금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AI 예측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비대면의 비즈니스가 발전할 것이고, 혼밥, 혼술, 방콕을 겨냥한 비즈니스가 앞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인 ‘안전’+’게으름’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비즈니스의 대세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유년 시절, 여느 아이들처럼 어머니의 손을 잡고 우연히 피아노 학원을 방문한 것이 나의 피아노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와 80년대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클래식 음악, 특히 피아노 교육이 대중화되었다. 1980년대는 동네마다 피아노 학원이 생겨났던 시절이었다. 피아노는 클래식 악기 중 음량이 큰 편이고, 방음에 대한 개념이 약했던 시절이었기에 피아노 학원 근처는 피아노 선율이 크게 울려 퍼졌다. 특히, 오가다 들은 쇼팽의 피아노 선율은 참 아름다웠다. 은연중 피아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 나는 클래식 음악과 첫 조우를 했다. 집에서도 한 번씩 연습하라고 할아버지가 사 주신 흰색 업라이트 피아노는 나와 우리 가족의 구심점이었다. 거실 한 켠에 자리 잡은 피아노의 덩치가 크기도 했지만, 가족을 한자리에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동생과 옆에 나란히 앉아서 젓가락 행진곡을 신나게 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피아노곡의 변주도 시도해보았고, 작곡도 해 본 기억이 난다. 운 좋게도 학창시절 내내 학급의 반주자로 역할을 할 수 있었는데, 늘 음악시간 전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잘 반주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또, 피아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에서도 논쟁거리가 되었지만, 성소수자는 왜 그리 감염병과 관련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물론, 진료할 때 환자의 성적 지향을 물어보는 것은 아니니까 알 순 없지만, 혹시라도 우리 병원에 찾아올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고요. 성소수자가 보건에 위협이 되는 게 사실이라면, 진료에서도 주의해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차별이니
말 많던 SIDEX 2020이 탈 없이 끝나고 몇 주간의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 지역사회감염이 퍼지는 와중에 치과의사가 대규모로 모이는 대형 행사 강행이 필요하냐? 마냐? 엄청난 논란 속에 말 많던 SIDEX 2020이 드디어 잊히고 있다. 방역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겠다던 호기로운 패기는 성공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네이버 블로그를 보면 많은 치과가 불참했다고 광고하고 있다. 대한치과의사협회와 더불어 나를 비롯한 다수의 치과의사들이 행사 강행에 반대했고, 서울시도 자제명명을 내렸었다. 다음과 네이버를 비롯한 검색 사이트와 공중파에 오르내리며 며칠간 온 국민에게 질타와 조롱을 받았다. 행사장엔 꼬투리 잡으러 온 기자들이 많았다고 하던데, 완벽했다던 행사 진행에 대해선 그 어디에서도 국민들은 뉴스를 접할 수 없다. 포탈과 공중파에서 대차게 까이며, 국민들의 기억엔 치과의사들은 코로나 지역사회감염을 무시하는 집단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연기나 취소될 줄 알았던 내 생각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코로나의 급속한 확산으로 연초부터 치산협(한국치과의료기기산업협회)이 행사 연기나 취소와 부스비 환불을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더니, 신흥과 더불어 임
■ 고해상도 파일은 아래 PDF 첨부파일 클릭하세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권기탁 전주 푸른치과의원 원장
치과를 비롯하여 이 땅에는 여러 종류의 병원이 존재한다. 내과, 성형외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피부과, 안과 등등... 이 중 유독 치과는 일반인들에게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 같다. 뭔가 미심쩍고 불신의 대상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러한 기조가 만연하다는 것은 놀랍게도 단어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 “양심치과”라는 말을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양심내과”, “양심성형외과”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단연코 없을 것이다. 그렇다. 일반인들 대부분은 치과 앞에 양심이라는 단어가 붙어야 소위 말하는 “눈탱이”라는 것을 맞지 않겠거니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곱씹어 생각해보면 “양심치과”라는 말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치과의사 입장에서 굉장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아니, 그러면 양심치과라고 내걸지 않으면 양심이 없는 치과라는 것인가? 양심치과라고 내걸지 않은 치과는 다 눈탱이를 씌운다는 말인가? 실제로 필자는 지인들로부터 종종 집 주변에 “양심적인” 치과 좀 소개시켜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럴 때면, 동료 치과의사들을 믿기에 “치과는 대부분 다 양심적이니까 가까운 곳으로 가면 돼”라고 자신있게
김혜성 이사장(서울치대 졸업, 동대학원 박사) 사과나무의료재단의 이사장이자, 재단 산하 의생명연구소의 미생물 연구자이다. 구강미생물에서 시작해 장내 미생물, 발효 음식의 미생물까지 폭넓게 공부하며 몇 권의 책을 냈고 논문을 발표했다. 『미생물과의 공존』 『입속에서 시작하는 미생물이야기』 『미생물과 공존하는 나는 통생명체다』등 3권이 과학기술부 선정 우수과학도서를 수상했다. 혹시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 드시나요. 최근 코로나와 함께 면역이 중요하다면서 프로바이오틱스 업계가 바빠졌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우리 몸의 유익균(Good bacteria)이란 이름으로 글로벌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은 연평균 8.3%의 속도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고 합니다. (https://www.transparencymarketresearch.com/probiotics-market.html) 광고를 보다가 가끔 건강한 저도 ‘한번 먹어볼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프로바이오틱스에 들어가는 균에 가장 많이 차지하는 속(屬genus)은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 계열입니다. 유산균, 정확하게는 유산간균(Lacto-Bar)으로 번역할 수 있겠네요.
동심은 어린아이의 마음, 순진한 마음을 뜻한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나쁜 뜻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순진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함’이라는 부정적인 뜻이 있다. 그렇다면, 세상 물정에 관심이 없는 아이의 마음이 동심인가? 이런 관념의 틀 안에서는 세상을 빨리 알아가는 요즘 세대의 아이들은 동심이 조기에 없어진다고 봐야 할까? 2016년 3월에 태어난 첫째 딸은 이제 제법 대화가 통하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피아제의 인지발달론의 단계로 보자면, 직관적·상징적 사고가 가능한 전조작기(preoperational stage)에 해당되어 언어를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이해하며 논리적 추론이 가능한 단계가 되었다. 행복, 무서움, 사랑, 죽음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말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고, 가정에 충실할 수 있는 군의관 시절의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느 초보 아빠처럼 다소 수동적으로 놀고 동화책 읽어 주기만 하다가, 아이와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의외의 것이었다. 신데렐라 놀이를 하다가 문득 “아빠 죽는 게 뭐야?”는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헤어져서 다시 볼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거야”라고
한국형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 돌봄)’ 모형 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대한노년치의학회(회장 이성근·이하 대노치)가 치협 치과의료정책연구원 발주 과제 수행의 일환으로 독일, 일본의 커뮤니티 케어 사례를 둘러보고 왔다. 대노치 소속 연구자들이 커뮤니티 케어의 필요성과 독일, 일본의 상황을 총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코로나19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국제적 통금이 생기기 조금 전인 작년 11월에 협회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일본 동경 스미다구의 지역포괄케어 현장을 다녀왔다. 같은 연구팀이 다녀온 독일이 사회복지를 탄생시킨 선구자이자 모범답안일 수 있다면, 일본은 법적이나 정치적, 문화적 여건이 상대적으로 우리와 닮았으면서도, 우리보다 수십 년 앞서 인구 고령화의 길을 가고 있어 여러 가지 소중한 간접 경험을 제공하고 있어 의미가 있다 할 수 있겠다.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의 사고방식은 일본에서 지역포괄케어가 논의되기 훨씬 이전에 독일, 영국, 호주, 북유럽 국가, 미국 등 서구 국가에서 경험적으로 발달해 왔다. ‘커뮤니티 케어’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통합 케어(Integrated Care)’나 ‘살던 곳에서 늙어가기(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