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인 1983년 1월 추운 어느 겨울날, 이제 본격적으로 고3이 되어서 입시 준비를 시작하느라 모교 고등학교 도서관에 친구들과 자리하고 있었다(그 당시는 사교육 금지 시기라서 학원이나 개인과외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방학 때에도 점심, 저녁 도시락을 2개씩 준비해서 학교 도서관에 아침 일찍 등교하듯이 가서 하루 종일 있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시기였음). 그날도 평소의 다른 날과 다름없이 점심 도시락을 까먹고 졸린 눈을 비비면서 버텨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친구가 다가오더니 갑자기 “생일 축하해” 하면서 포장된 자그마하고 네모 반듯한 박스선물을 전해주는 것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의아해 하면서도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좋기도 해서 열어보니 만년필! 그 당시에는 꽤 귀한 물건이었다. 친구 둘이서 푼돈을 오래 조금씩 모아서 마련한 돈으로 본인들의 이름 중 한 글자씩을 사용해서 ‘축 생일 충.기’라고 새겨서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고맙고 소중해서 아끼느라 차마 사용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책상 서랍 속에 곱게 모셔두고 이따금 꺼내서 만져보며 눈으로 감상만 하면서 간직했다. 그러기를 한 해 한 해 지나간 것이 어언 30년도
우리나라의 첫 서양식 치의학 교육기관은 경성치과의학교이다. 조선총독부의원 치과과장과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수였던 나기라 다쓰미[柳樂達見]가 진남포의 실업가 토미다 기사구(富田儀作)의 재정적 후원을 받아 1922년 4월 2년제 야간으로 설립한 것이다. 교사는 총독부의원 건물 일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사 일부를 빌려 사용하였다. 1년 후 주간 3년제로 바꾸었고, 6년 뒤인 1928년 9월 저경궁터에 학교건물을 신축낙성하고, 1929년 4월 병설로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를 개교하여 4년제 치의학사를 배출하게 되었다. 광복과 더불어 1945년 11월 경성치과대학으로 발족하고, 1946년 8월 국립서울대학교 설립과 더불어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및 부속병원으로 개편되었다. 1959년 1월에 2년제 치의예과가 문리과대학 이학부에 신설되어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뀌었다.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치의예과)이 1966년 12월,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치의예과)이 1967년 12월 인가되었다. 이어서, 경북대, 조선대, 전남대, 전북대, 원광대, 부산대에 치과대학이 발족한데 이어, 1992년 3월에 강릉대학교 치과대학(치의예과)이 인가되어 전국에 11개 치과대학 시대가 열렸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학회의 본업은 학술활동을 통한 해당 학문의 발전이다. 치과계에도 치의학회 산하에 30여 개 이상의 인준 학회가 있고, 인준을 준비 중인 학회도 있으며 학회로의 발전을 준비 중인 연구회도 다수 있다. 학회는 학술대회와 학회지 발간으로 대표되는 학술활동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며 해당 학문을 대표하는 플랫폼으로서 외부의 자문에 응하고 관련 산업과 소통하는 창구가 되며 관련 해외 학회와 교류의 통로가 된다. 즉, 학회는 이와 같은 학술 활동을 통해 이미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실천성을 강조한 의미의 “사회적 가치 혹은 사회 공헌”의 측면에서 학회의 역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사회는 시민단체만이 아닌 기업이나 대학도 그 본연의 역할을 넘어선 사회 공헌의 역할을 당연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을 홍보의 차원을 넘어선 본연의 역할을 확대, 발전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학에서 사회 공헌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통해 전공지식 구현과정을 교육할 뿐만 아니라 남을 섬기고 협력하는 리더십을 교육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령사회 및 초고령 사회의 대비를 위해 최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커뮤니티 케어 사업”에 학회와 지
막내아들이 결혼식 청첩장을 준비하면서 반드시 초청해야 할 하객들의 수를 알려 달라고 했다. 일단 친척들과 친한 친구들을 염두에 두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일로 인연이 맺어진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고 나조차도 놀라웠다.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전화번호를 입력해 두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누구인지 연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여서 이번 기회에 삭제해 버렸다. 지금까지 불필요한 일과 소중하지 않은 상대에게 많은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과 내 가족을 먼저 챙기며 살아야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를 옭아매어온 쓰잘 데 없어 보이는 인간관계를 없애버려야 여생 짊어지고 가야 할 인생의 무게도 줄어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장단에 놀아나지 말아야겠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북치고, 장구치고, 꽹과리 치고, 추임새도 넣어가며 신명나게 놀다보면 내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알아서 내가 만들어 놓은 마당에 들어와 함께 놀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 만족스럽지 못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
김혜성 이사장(서울치대 졸업, 동대학원 박사) 사과나무의료재단의 이사장이자, 재단 산하 의생명연구소의 미생물 연구자이다. 구강미생물에서 시작해 장내 미생물, 발효 음식의 미생물까지 폭넓게 공부하며 몇 권의 책을 냈고 논문을 발표했다. 『미생물과의 공존』 『입속에서 시작하는 미생물이야기』 『미생물과 공존하는 나는 통생명체다』등 3권이 과학기술부 선정 우수과학도서를 수상했다. 혹 항 고지혈증 약을 드시나요? 건강검진 항목에 늘 있는 혈중 지질농도가 일정 수준을 벗어나면, 내과에서는 혈중 지질을 낮추자고 항고지혈증 약을 권합니다. 성분명이 스타틴(statin)인 이 약은 혈중 지방을 낮추기 위해 간에서 정상적으로 콜레스테롤을 차단하는 과정을 아예 차단해 버리지요. 그래서, 혈중 지방은 낮아질지는 몰라도, 세포막을 포함해 몸 곳곳에 꼭 필요한 생화학 재료인 콜레스테롤이 모자라게 됩니다. 근육통이 생기고 없던 당뇨가 생기고 기억이 깜박깜박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게 대표적인 부작용입니다. 스타틴을 먹는 사람들이 대개는 나이가 든 사람들이라, 이런 증상을 그냥 나이 먹는 현상이라고 스스로 받아들이지만, 스타틴을 끊고 나면 그 증상이 감쪽같이 좋아진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
■ 고해상도 파일은 아래 PDF 첨부파일 클릭하세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권기탁 전주 푸른치과의원 원장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제 일터의 내원객도 무척 줄었습니다. 예방치과 진료 특성상 에어로졸 발생의 위험이 큰 초음파 스케일러나 에어플로우를 사용하다 보니 대부분의 약속이 취소되는 것입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각종 진료 프로토콜을 정리하고 재료를 정비하는 데에 시간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년차 봉직의로 근무하고 있는 대부분의 제 지인들도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부족하나마 각자 새로 알게 된 내용을 SNS 대화방에 공유하며 함께 스터디를 하기도 합니다. 각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보면 이제 어느 정도 자신만의 술기가 익숙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마치 학예회를 하듯 누가 누가 잘하나 뽐내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서로의 술기를 이해하고 장단점을 분석하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다만, 아직 대부분이 혀를 내두르는 술기 외적인 분야도 있습니다. 바로 환자를 대하는 방법입니다. 한번은 매서운 환자로부터 된통 당한 동기가 단체 대화방에 울분을 토한 일이 있었는데, 물꼬가 트였는지 너도나도 유사한 경험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과잉진료를 당했다며 따지고 드는 환자부터 의료분쟁으로 신고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보호자까지, 마치 ‘진상 콘테스트’를 보는 것 같
COVID-19 팬데믹의 영향으로 미국치과협회 (American Dental Association)와 캐나다 대부분의 주 치과협회에서는 3월 15일부터 응급치료가 아닌 비필수적 치과 진료(non-essential dental care)를 전면 보류하라고 권고하였다. 응급치료가 허용되는 증상으로는 진통제로 가라앉지 않는 급성 통증, 급성 감염, 치아안면 외상, 출혈, 조직검사가 필요한 구강암 의심 부위, 신속한 수술(특히 심장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치과치료가 있다. 그러나 응급치료도 모든 치과의원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KF94에 상응하는 N95마스크, 고글, 가운 등 COVID-19 예방에 적합한 개인보호장비(Personal Protective Equipment, PPE)를 가지고 있는 의원에 한해서만 허락된 상태이다. 현재 개인병원이 위의 PPE를 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니 미국, 캐나다에 있는 대부분의 치과는 휴업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이 한 달 이상 장기화되자 치과시장이 감당해야 하는 그 충격이 커지고 있다. 환자들이 필요한 치료를 원활히 받지 못하고 있어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은 물론, 최근 미국치과의사협회 의료정책사무소가 1만9000명의
참으로 우리나라는 놀라운 나라다. IMF 사태가 일어났을 때도, 놀라운 속도로 문제를 해결했고, 이번과 같은 범세계적인 위기 속에서도 세계가 놀라게 할 정도로 신속하게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아마 이것은 우리를 특징짓고 있는 몇 개의 키워드 중의 하나인 “빨리빨리”라는 성격 덕분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서두른다는 것은 부족함을 감수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어려움에 봉착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멋지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차피 어려운 상황이므로 현재의 상황보다는 나아질 수 있다는 바람 덕분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움에 대한 강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성취를 위한 조급함 덕분이었다. “빨리빨리”라는 우리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의 하나가 사람들의 조급함을 해소하는데 제격인 인터넷과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경제는 순환이 빠를수록 그 성장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욕구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곳에 연결 시키기만 하면 경제의 규모는 커진다. 그런 점에서 IT 강국이라는 사실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키워줄 것이 분명
나는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대 의학부 출신인 외과의사 조부님과 역시 서울대 의대 출신인 이비인후과 아버지를 이어 서울대 3대 의료인으로서 내 나이 4세 전후부터 의료인은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런데 피를 보면 현기증이 생기는 선천적인 이유 때문에 어머니의 권유로 피를 보지 않는 유일한 의료인인 교정과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외동딸이 존스홉킨스 대학 보건학과를 거쳐 뉴욕대 치대를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어 4대째 의료인으로서 100년 의료가업을 잇고 있다. 나는 거의 40년 가까이 의료인으로서 살아오면서 의료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지냈던 적도 있었고 의료인의 한계를 깨닫고 절망하기도 했다. 지금은 의료인으로서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의료계 동료이자 후배들에게 나의 의료 인생을 통해 깨달은 것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나누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한국의 근현대 역사를 볼 때 조부님은 빈민국에서 자라셨고 아버지는 후진국에서 자라셨으며 나는 개발도상국에서 자랐고 나의 외동딸은 선진국에서 자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의료 현장에 계실 때는 의료인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다른 직업군에 비해 비교적 여유로웠다. 한편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유행성 질환인 폐렴이 2019년 12월 발병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야생동물을 먹고 위생 생활이 열악한 사람들의 국한된 얘기인 줄 알았다. 2020년 1월 20일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이 최초의 감염자로 확진된 이후, 1월 27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 위기 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 수준으로 격상하고,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했다. 이후 2월 17일까지 확진 환자는 30명 수준으로 소강상태를 보여 사스나 메르스 때처럼 조만간 종식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2월 20일 대구·경북 지방을 중심으로 특정 종교 집단을 통해 #31 감염자가 나타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WHO에서는 코로나19가 전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하자 1월 30일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3월 11일에는 감염병 세계 유행(팬데믹)을 선언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감염방지를 위해 많은 나라가 외국인들의 입국을 금지하고 도시 봉쇄 등 강력한 조치를 하고 있지만 넘쳐나는 확진자와 사망자로 인해 환자를 제대로 진단이나 치료를 못 해주는 의료 붕괴가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5월 4일 기준으로 확진 환자 1만801명 사망자 252명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