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만춘장군이 들어앉아 지키고 있는 鐵甕안시성이라도 되는 듯 도무지 뚫리지 않는 메탈 크라운을 간신히 제거 한 뒤에 양치하는 환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자니, 저 분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입속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던 기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과연 알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어둡고 좁은 동굴과도 같은 곳에서 조준과 포지션을 유지하려 숨도 멈춰가며 그 어떤 보호 장비도 없이 집중했던 작업이었다.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 쉴 this very moment를 내가 얼마나 고대했는지 그는 아마도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재료비는 낼께’라는 험하디 험한 말씀과 함께 아침부터 들이닥친 먼 친척뻘 되는 환자에게 결코 찌푸린 낯을 보이지는 말자는 克己였고, 또 어쩌면 안시성에서 敗退한 뒤 長安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病死한 당태종 꼴이 되진 않겠다는 각오였다. 龍도 아니고 왕은 더더욱 아니지만 작은 상처에도 사뭇 견디기 힘든 ‘거꾸로 솟은 비늘’ 같은 부분이 나라고 없을 리야! 천진난만인지 무신경인지 모를 저 난폭한 재료비 운운에도 결코 평정심을 잃지 않을 때에야 下山할 경지에 이른 거라던 모 선배 말씀이 생각나는 울적한 오전이다. 이런 날엔 진통제 삼아, 막내 동
이번에 소개할 책은 ‘미나토 가나에’ 작가의 데뷔작 “고백”이다. 이질적이고 기이한 일본 토속신앙이 주는 위화감 때문에 나는 이전까지 서점만 가면 일본 소설을 피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접하게 된 이 책은 나에게 일본 소설의 작품성에 대한 또다른, 어쩌면 매우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해 주었다. 비교적 잔잔한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여러 인물의 주관적인 시각을 통해 계속되는 반전을 보여준다. 사고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린 딸이 사실 자신이 맡고 있는 학급 내 학생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여교사의 고백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다섯 인물의 시선으로 사건 전후 상황을 바라보며 마지막은 여교사의 시선으로 소설이 마무리되는데, 피해자와 가해자 2명이 속한 세 가정은 빠른 전개 속에 참혹하게 망가진다. 개인의 심리묘사를 간결한 문체로 풀어내어 읽는 데 큰 무리는 없지만 중간중간 많은 생각이 들게 해주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도중 가해자의 심리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상태에서 저런 말을 들으면… 살인을 할 수도 있겠는데…?’ 비상식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말은 때때로 하는 쪽이 아니라 듣는 쪽의 감수성에 그 모든 것이 내맡겨진다고 했던가. 객관적 사실이 투영된 하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꼽히는 이는 단연 헬레네다. 스파르타의 공주로 태어났지만 실은 제우스의 딸이다. 제우스는 아름다운 여인 레다에게 반하여 백조로 변신하였고, 그녀가 거니는 호숫가로 날아들었다. 그 이후 레다는 두 개의 알을 낳았다. 헬레네는 그 알을 깨고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나자 세상은 눈부시게 빛났다. 그녀를 본 남자들은 매혹되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아테네 건국 영웅 테세우스였다. 그와 헤어진 이후에는 그리스의 영웅호걸들이 그녀와의 결혼을 꿈꾸며 스파르타로 모여들었고, 그녀가 메넬라오스와 결혼한 뒤에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가 그녀를 납치해가자 그녀를 되찾는 전쟁에 모두 참여할 정도였다. 트로이아인들은 대규모 연합군이 쳐들어 왔을 때, 헬레네를 지키기 위해 10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감수하였다. 트로이아 원로들의 말이다. “비난할 게 없소. 트로이아인들과 멋진 경갑을 찬 아카이아 인들이/ 저와 같은 여인을 두고 기나긴 시간 동안 고통을 겪었다 해도 말이오./ 놀랍잖소, 그녀는 눈으로 보기에도 죽음을 모르는 여신을 꼭 닮았소이다.”(3.156-8) 그녀는 아름다움의 화신이며, 그녀의
본지가 12월 15일 창간 51주년을 맞는다. 1966년 12월 15일 ‘칫과월보’라는 제하로 시작돼 반세기를 넘어 100년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본지는 ▲1997년 제915호부터 한글 ‘치의신보’로 제호를 변경하고 보건의료계 기관지 중 최초로 전면 가로쓰기 시행 ▲2003년 제1187호부터 치과계 언론 최초로 주2회 발간 시작 ▲2004년 12월 15일 창간 38주년을 맞아 ‘올해의 치과인상’ 제정 ▲2013년 11월 18일 인터넷 신문인 ‘데일리 덴탈’ 론칭 ▲2014년 2월 1일 데일리 덴탈 모바일 웹 및 어플리케이션 서비스 오픈 ▲2017년 1월 1일 치의신보 PDF판 서비스 등 새 지평을 열고자 노력해 왔다. 지난 역사를 반추하면서 치과계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본지의 이 같은 변화와 성과는 모두 회원들의 독려와 충고 덕분이다. 회원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면서 창간 51주년을 맞아 환자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를 던져본다. 특집 기획 Ⅰ편에서는 ‘다시, 환자를 생각한다’(제2567호)라는 제목으로 치과를, 치과의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철저히 환자의 입장에서 담아냄으로써 치과의사와 환자와의 간극을 좁히는 동시에 치과의사들이 환자
병원으로 의사를 찾아오는 환자는 어딘가 아프거나 어딘가 불편하거나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내원 당시 경험하고 있는 통증이 있는 경우, 과거에 경험했던 통증에 대하여 알고 싶은 경우, 통증이라고까지 말 하기는 애매하지만 뭔가 불편함이 있는 경우 등 환자가 병원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병원에서 진단과 검사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나 그 해답을 환자가 납득할 수 없거나 환자의 기대와 다른 경우도 있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만족스럽지 못하다거나, 다른 문제가 생겼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환자도 있다. 진료실에서 수 많은 환자들을 만나는 의사들은 만족스러운 진료와 치료를 받은 많은 환자들뿐만 아니라 불만족을 드러내는 환자들도 만나게 된다. 그 불만족의 시작이 어디부터인지 추적하려면 기억과 환자기록들을 되짚어가며 고민하게 된다. ‘어디부터 잘못 된 것인가?’, ‘잘못 된 것이 맞나?’, ‘내 진단이 잘못 되었나? 치료가 잘못 되었나? 그럴 리가 없다.’ 등 많은 생각이 잔뜩 찌푸린 환자의 얼굴을 배경으로 흘러 갈 지도 모른다. ‘통증(Pain)’에 대하여 국제통증학회(ISAP: I
중국여행이 처음은 아니지만 중국의 남방도시를 처음 방문한다는 사실만으로 내내 마음이 설레었다. 더군다나 계림(桂林)은 특유의 카르스트지형으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유명 관광지라고 하니 더욱 더 그러하였다. 지난 11월 23일, 9명으로 구성된 대한치주과학회 대표단은 제3회 한중 젊은치주연구자 교류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하여 늦은 밤 출발하는 계림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이 행사는 (재)대한치주연구소(신형식 이사장)와 ㈜나이벡이 후원하는 한중간 치주학회의 학술행사로 올해가 세 번째다. 대한치주과학회 최성호 회장과 구 영 차기회장, 이재목 총무이사 및 고영경 국제이사가 학회를 대표하여 참석하였으며, 신형식 이사장님도 함께해주셨다. 발표연자로 초청된 이들은 부산대 주지영 교수, 원광대 장희영 교수, 서울대 조영단 전임의, 그리고 필자였다. 자정이 지난 계림은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시내로 향하는 길은 매우 잘 정비되어 있었고, 관광지답게 환하게 불을 밝힌 “주점(호텔)’들이 즐비하였다. 대회 전날의 자유시간은 이강(離江) 유람선 관광으로 준비하였다. 십 여 척의 유람선들이 일제히 열을 지어 하류로 향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장관이었다. 이 지역은 석회암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첫 기억은 이렇다. 5살 때 쯤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혼자 나와 아파트 앞에서 뒤돌아 봤던 기억. 사실 이 기억이 왜 이렇게 강렬하게 남아있던건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렇게 뒤돌아봤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막 20대 중반에서 후반에 접어든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내 기억 속에는 대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보다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기억들이 더 많이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추억할 만한 일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교과서와 공책을 따로 구분하지 못해 울었던 기억, 공부 보다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여기 저기 놀러다녔던 기억이 어릴 때 기억이라면 고등학교 때 나에게 남아있는 건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생활, 공부, 잠 이정도 수준이였고 매일 매일 똑같은 삶의 반복이였다. 이러한 차이는 아마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유가 없어지고 바쁜 삶에 행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병원에 들어오고 나
의료계의 이목이 헌법재판소로 향하고 있다. 이진성 헌재 소장 취임과 9인 재판관 체제 완성에 따라 1인 1개소 법의 운명이 또 한 번 갈림길에 섰다. 특히 이진성 신임 헌재소장은 “우선 가장 오래된 사건을 비롯한 주요 사건의 균형 잡힌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취임 일성을 밝혔다. 헌법재판관 및 소장의 공백으로 그동안 적체됐던 사건 심리에 대한 해결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헌재 안팎에서 9인 재판관 체제에서 결론지을 수 있는 사건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면서 1인 1개소 법 위헌 여부에도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헌재의 장고가 계속되면서 불필요한 논란과 억측들이 나돌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위헌 여부를 가릴 시점이 다가오면서 의료 정의와 상식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이진성 소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 24일 ‘의료인 1인1개소법 수호를 위한 토론회’가 국회의원 회관에서 진행됐다.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 주최하고 치협과 (사)소비자시민모임이 공동주관한 이 행사의 지향점은 간단명료하다. 1인 1개소 법 존치의 당위성은 물론 이를 위반하는 의료인의 실효적 처벌을 위한
2000년 5월, ‘전혀 준비가 안 된 개원의’는 하루하루를 악전고투 중이었다. 당시 점심시간에는 잠이 안 오더라도 누워 있었다. 환자가 많아도 피곤, 없어도 피곤. 그러던 어느 날 모 선배님이 전화를 해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다. 약간 의외였지만, 무척 반가웠고 감사했다. 당시 갈치정식을 먹었다. 기억에 임팩트 있는 말씀은 없으셨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해라’ 정도의 덕담으로 기억한다. 사실, 그 선배님과는 친분이 두텁지 않았기에 깊은 얘기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에 자상하신 성격의 선배님으로 확실히 각인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이 시나브로 떠오르면서 나에게 의미와 영향을 주었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선배님의 마음 씀을 조금은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분은 작년부터 전주시치과의사회를 이끌고 있는 승수종 회장님이다. 필자에게 총무이사직을 제안했을 때 그 오래 전에 느꼈던 따뜻함과 자상함을 떠올리며 망설임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전주시치과의사회는 오래전부터 신입회원 오리엔테이션 행사가 잘 진행되었다. 개원하는 데 필요한 여러 정보를
아침잠을 깨우는 알람이 울리면, 가장 먼저 라디오를 켠다. 그 안에는 나보다 훨씬 먼저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사연들로 가득하다. 아침 일찍 도매 시장에서 싱싱한 야채와 생선을 사 오는 식당 주인, 고소한 향이 솔솔 나는 빵을 구워내는 제빵사,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들뜬 마음으로 출근을 하는 신입사원. 오늘 하루도 잘 지내보자는 각자의 희망과 작은 다짐들로 아침이 시작된다. 나는 거의 10년 간 텔레비전 없이 지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텔레비전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것이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 당연하게 되었다. 그 대신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선생님 눈을 피해 몰래 듣기 시작하던 라디오가 그 빈자리를 채워준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진행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같은 반 친한 친구가 사연을 보냈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수능 파이팅 이런 내용이지 않았을까. 그 때 친한 친구들의 별명을 쭉 써서 보냈는데, 어쩌다보니 별명이 죄다 동물 이름이었다. 그걸 읽은 DJ가 ‘여긴 동물의 왕국이네요’라고 한 말을 두고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내내 키득키득하며 즐거워
성수역 2번 출구에서 도보 11분. 처음 가보는 치협 회관이라 가는 길을 검색하고 또 확인하며 내린 성수역. 여느 역과는 다르게 지상에 위치한 역사로 올라가는 출구가 아닌 내려가는 계단에 잠시 당황도 했지만, 앞서가는 치과의사의 익숙한 뒷모습에 안도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낯선 건물에 쭈뼛쭈뼛 들어서니 5층으로 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집들이하는 새집 구경하듯 여기저기 둘러본다. 1912년 일본치과대학을 졸업한 조선인 최초의 치과의사(면허번호 1)인 함석태 한성치과의사회 초대회장님과 FDI 상임회장을 역임하신 윤흥렬 회장님의 흉상도 보고 역대 협회장님의 사진 또 다른 방의 대의원총회 의장님 사진까지 보고 나니, 아무 생각 없는 철부지가 뿌리 깊은 가문의 종손인 걸 알게 된 것처럼, 일개 개원의이긴 하지만 치과계의 조상과 역사를 듣게 되니 잠시 경건함마저 든다.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 낯선 곳까지 선뜻 오겠다고 한 것은 인문학강의 때문이었다. 쏟아지는 치과계 세미나를 따라다니기에도 벅찬 내게 ‘인문학’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으나 요즘엔 인문학이 ‘대세’라니 궁금하기도 하고 ‘이번 기회에 유식한 사람으로 거듭나 볼까’하는 무모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