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폐간 되었지만 한국치과공론사에서 발행한 ‘한국치과공론’ 제1권 제4호 1965년 9월호 p.39에는 ‘시멘트 금수 해제에 전력 경주’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국산 징크 시멘트 수입 금지의 건 ; 작년 11월 보사부로 부터 징크 시멘트외 5종목에 대하여 금수 가부 문의를 받은 대치협은 시멘트와 매몰재는 금수를 반대하고 파라핀 왁스는 일부 해제키로 하며 쏠다 메탈, 카랏트 메탈, 케스팅 아로이 등 종목은 금수를 찬성 한다고 답신한 바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전되어 1965년도 수입 계획에서 시멘트 수입이 금지 되었으니 대치협의 위신은 형편없이 된 셈이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쏠타 메탈외 2종목의 금수 가결을 했는지 모르지만 대보사부 절충이 미온적이었음은 부인하지 못할 것 같이 보인다. 더구나 대치협 기관지인 대한치의보에 국산 징크 시멘트의 FDI 불합격 기사를 게재하면서 그 광고란에서는 동시멘트는 미제와 동일하고 일제 보다는 우수하다는 과학적 결과가 판명되었다고 광고케 하였으니 이와 같은 이율배반적이며 무책임한 행위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작년도에 시멘트 금수 문제가 제기 되었을 때 당시의 시멘트 금수로 말미암아 전국 치과의사
아프리카 섬나라 마다카스카르에 강의와 오지진료를 다녀왔다. 마다카스카르 치과의사협회의 학술 행사에 공식 연자로 초정받아 방문하였다. 그리고 부시맨 닥터, 낭만 닥터로 이 나라에 오지 진료를 하고 있는 외과의사 이재훈 선교사와 함께 1주간 오지의료 봉사를 체험하였다. 마다카스카르는 인구 2600만명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나라이다. 우리에게는 할리우드 만화 영화로 알려져 있다. 의사 수는 3500명 정도이고 치과의사 수는 1200명 이라고 한다. 치과대학에서 1년에 졸업하는 치과의사는 25명이 배출된다고 한다. 의사는 대부분 공직을 선호하고 실제 개업하는 의사는 이보다 적다고 하였다. 치과의사 개업의는 수도 안타나나리보에 1000명정도다. 수도를 제외한 지역은 마다카스카르인들은 치과진료 자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2016년에 처음 마다카스카르의 치과의사협회의 공식초청으로 학술대회에 공식연자로 참석하고, 올해 두번째 연자로 강의를 하였다. 첫번째 학술대회의 연자는 두바이 대학교수가 참석하였으나, 불행이도 유방암으로 사망하여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외과의사 이재훈 선교사의 주선으로 제2회 학술대회부터 올해 제3회 학술대
몇 년전 “꽃보다…”시리즈 중에 가장 조용한 반응 이었지만 나에게는 가장 핫한 시리즈가 “꽃보다 누나”였다. 그 중 단연 마음을 잡아 끄는 것은 윤여정이라는 노배우의 저녁 인터뷰였다. 매번 여행이 끝난 저녁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삼아 그날의 여행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인터뷰는 노배우가 여행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 중 가장 마음을 사로 잡는 그녀의 인터뷰 내용은 인생을 바라보는 굴곡진 한 여배우의 인생에 대한 시원하고도 따뜻한 위로였다. “60이 되어도 인생을 몰라요,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그래서 아쉬울 수 밖에 없고 아플 수 밖에 없고 계획을 할 수가 없어… 하나씩 내려놓는 것 포기하는 것 나이 들면서 붙잡지 않는 것… 아쉽지…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딨어. 내 인생만 아쉬운 것 같고 내 인생만 아픈 것 같고… 다 아프고 다 아쉬워.” 그녀의 삶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가 남긴 이 한마디는 실수하고 넘어지고 우는 내 인생에 큰 위로가 되었다. 처음 치전원을 결심하고 학원을 상담하던 날 부터 내 인생 처음으로 뒤처진 인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 들어 시작하는 생활은 내 과거 10년
“이런 창살 없는 감옥에서 내 인생을 보내지 않게 되어 다행이다.” 이 말은 30년 전쯤 치료차 왔다가 나의 진료 모습을 보고 어느 지인이 한 말인데 그는 치과대학을 지원했다 낙방하고 2지망으로 생물학과 교수가 된 분이었다. 우리는 평생 그가 말하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아가야 한다. 일탈을 꿈꾸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이번 여름휴가는 주말을 이용해서는 갈 수 없었던 남한강 상류 고적답사 여행이었기에 정선을 베이스캠프로 영월, 태백, 단양, 제천 등지를 돌아 볼 생각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여행은 기대와는 달리 처음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드라이브를 즐기던 중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출발 전 경비 장치를 걸어 놓으라고 당부하여서 애써 걸어 놓았는데 그만 두 번 눌리는 바람에 걸렸다 풀렸다는 경비업체의 전화였다. 아내의 볼멘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한동안 입품을 팔아야 했다. 그것도 잠시, 휴게소에서 카드를 분실하는 사고를 또 친 것이다. 휴가 내내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데 호텔 룸 키를 가지고 내려오지 않아 새벽 다섯 시에 자는 아내를 전화로 불러내려야 했고, 주유소를 지나쳐 다음 주유소까지 마음 조이며 갔던 일 등… 나이 탓이려니 자위해 보지
버스 한 번에 지하철 2번을 타면 도착하는 제 직장은 ‘정원치과’입니다. 2017년 3월 정원치과에 경력자로 입사하여 3일째 근무하던 날, 원장님께서 진료 팀장 자리를 제안하셨습니다. ‘팀장’이라는 직책을 보고 배운 적 없었던 저에게 그 제안은 낯설기도 흥미롭기도 한 정원치과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많지 않았던 임상 경험, 입사 후 맞춰가는 원장님과의 호흡, 나보다 먼저 입사한 진료팀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일들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때 팀장이라는 자리에 나만의 색을 입혀 가는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바로 업무일지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손이 기억해서 따라가는 습관들, 원장님과 진료적인 오해가 생겼던 부분,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 등에 대한 마음을 업무 일지에 고스란히 담아서 원장님께 들려드렸고, 그런 저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원장님께서는 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을 읽어보시고, 항상 가슴 따뜻한 피드백을 전해주셨습니다. 일지를 쓰는 초반에는 힘들고 지친 업무에 일지까지 더해져 컴퓨터 앞에서 잠이 든 적이 많았습니다. 언제부터 업무일지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당연한 습관이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일지를 쓸수록 팀장으로서 달라지는 제
가정주부로는 안방 드라마로 사극은 별로인 시절 MBC 드라마 ‘선덕여왕’은 시청률 1위로 특히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여성들이 주인공이며 특히 ‘선덕여왕’과 ‘미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에 법조계도 여성의 진출이 눈에 띄게 높아졌지만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서울대에서는 여학생들의 입학률을 높이고자 가산점을 준 해도 있었습니다. 일본은 지난 8년간 도쿄의대가 신입생을 선발할때 여성 수험생들의 점수를 일률적으로 감점 했다는데 이는 결혼, 출산으로 이직이 잦아 병원인력 수급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조선일보 08. 8.3 일자. 제 30342 호 이하원 특파원) 그런데 치대가 6년제로 되면서 여학생의 수는 눈에 띄게 감소하여 어떤 학년은 여학생이 한 사람 뿐인 때도 있었습니다. 70년대 초 해외에 나갔을때 치대의 여학생 수가 많은 것을 보고 놀란 적도 있었는데 그 만큼 남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분야(특히 육체적인)가 다양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대학에서 여학생 수는 1980년 4명, 1981년 6명, 1982년 3명 이던 것이 1983년 12명, 1984년은 30명, 19
금덩이를 묻어 놓은 것도 아니고 제발 가라고 등을 떠미는 이 하나 없지만 나는 쉬는 날엔 어김없이 등산화를 신는다. 등산이란 취미는 나에게 있어서 ‘독고다이’다. 물론 국어사전 그대로 풀어보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필자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에서의 ‘독고다이’다. 다른 취미생활과는 다르게 등산은 철저하게 ‘독고다이’ 그 자체다. "회비 얼마씩 걷을까?" "언제 갈래?" "사람들 많이 온대?" "몇 대 몇으로 할까?" 등등 다른 취미생활에서는 사람들 간에 매번 오갈법한 피곤한 질문들과 아쉬운 소리들은 등산에서 만큼은 예외다. 왜냐면, 나 혼자 등산화를 신고 날아가면 되니깐. 시간, 약속, 계절 등등. 다른 취미생활에서는 신경써야 하는 부분들은 혼자 등산화를 신고 나선다면 ‘아웃 오브 안중’이다. 혼자 씩씩하게 산을 탈 때 나는 땀방울은 상쾌하기 그지없고 산에서 들이마시는 공기와 물은 꿀맛 그 자체다. 산속 곳곳에 숨겨져 있는 유적지와 각종 설화들과 사찰들은 알면 알수록 새롭고 등산 중간 중간 보이는 명소들과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세상은 매번 새롭기 그지없다. 아침에 시작되는 출근길 지옥철 부터, 회사생활, 사회생활에서 겪는 스트레스는 오늘
치과 문인회 회원 10명과 함께 대마도(쓰시마)문학 기행을 다녀왔다. 말이 문학 기행이지 실제 역사 기행이었다. 볼거리 많은 유명 관광지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와 관계있는 유서 깊은 곳을 찾아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도 의미 있다 싶어 언젠가는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여행은 떠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고 설렘이다. 자유업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도 있겠지만 시간에 얽매여 어찌 쉽게 그리되던가. 현충일 끼고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었다. 현충일이라 6·25 당시 학도병으로 전사하신 큰 형님을 생각하면 개운치 않은 마음이었다. 서울역 출발 새벽 5시, KTX 부산행 열차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렀다. 새벽 시간이 부담스럽긴 했으나 다행히 큰 딸의 배려로 서울역에 편히 도착했다. 딸의 배웅에 따뜻함을 느끼며 기차에 올랐다. 부산항 여객 터미널에서 대마도행 오션플라워 호에 승선해 2시간 10분 후 대마도 이즈하라항에 도착했다. 이즈하라항은 남쪽에 있고 북쪽에 히타카츠항이 또 있다는 사실도 대마도에서 알게 되었다. 대마도에 관한 사전 지식이라곤 노략질하는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세종대왕 시절 이종무가 대마도 정벌을 했다는 것, 조선 통신
음빠 음빠 음빠빠 ~ 어여뻐라 그처녀. 스페인 바로셀로나 인근 깔레아에서 고향의 봄이 아카펠라로 울려퍼졌다. 어렵사리 섭외한 끝에 호텔식당 한쪽에서 연습을 마쳤는데 단원 몇분이 눈가를 손으로 닦는 것이었다. 알 수 없이 밀려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노라 했다. 그랬을 것이다. 1년여 전에 깔레아에서의 코스타 바르셀로나 참석을 결정한 후로 그 흥분도 잠시, 한국을 표현할 수 있는 곡을 선정하고 출발 할 때까지 긴 여정 동안의 노력과 무대에 설 긴장감이 더 해졌을 것이다. 단원 20여명과 지휘자, 반주자, 합주를 하는 명창, 단원들의 가족과 게스트 원장님들이 함께 한 합창제 여행을 시작했다. 토요일 늦은 밤에 출발해서 거의 20 여 시간만에 마드리드에 도착했을때의 첫 느낌은 맑은 공기를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스페인의 옛 수도인 톨레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식당에 도착해서 첫 점심을 하며 스페인스러움을 만끽했다. 톨레도 대성당 가는 길 양옆의 건물위로 긴 천을 걸어 길을 안내하는 친절함과 그것 마저도 예술 작품으로 만든 그들의 감각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음날엔 아베(스페인 고속열차)를 타고 세비야로 이동했다. 버스로 7시간 30분 거
<2621호에 이어>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Bainbridge Dental Museum에서도 낙담, 간절과 환희가 있었다. 아침 일찍 클리브랜드 클리닉(Cleveland)을 살짝 구경한 후, 클리브랜드에서 3시간 30분 동안 차로 달려와서 박물관 폐관 1시간 전인 3시쯤에 도착하였다. 분명 치과박물관은 토, 일요일에는 오후 4시까지인데 박물관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내 속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포기는 없다. 아직 1시간이나 남아있으니까. 4년 전에 방문했을 때 박물관에서 자원봉사하신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났고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비를 맞으며 치과 박물관의 옆집과 동네 슈퍼에서 박물관 담당자 연락처를 아느냐고 물어봤지만 허사였다. 마침 세월의 포스가 느껴지는 레스토랑이 눈에 띄어 무작정 들어가서 주인처럼 보이는 할머니에게 문의하였다. 한국에서 치과 박물관을 구경하러 왔다하니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로 물어보겠다고 하였다. 20여분이 흐르니 담당자와 연락이 되었고 15분후에 치과 박물관 문을 열어준다고 하였다. 할머니께 감사한 마음을 수없이 표시하였고 인증샷도 찍었다. Angje와 Connie 고맙습니다. 건강
<2619호에 이어> 천신만고 끝에 방문한 볼티모어의 Dr. Samuel Harris National Museum of Dentistry에서 머문 두어 시간은 어제의 정신적 및 금전적 충격을 치유하고도 남을 정도로 가치 있는 공간이었다. 이 박물관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면, 먼저 박물관 명칭에 치과의사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그 이유는 소아치과 분야에서 꽤 유명한 Samuel Harris(1903-2003)가 기증한 백만 달러를 기반으로 하여 1996년 치의학 박물관이 개관되었고, 현재는 스미소니언(Smith- sonian) 재단이 관리하는 박물관에 포함되어 있다. 세계 최초의 치과대학인 메릴랜드 치과대학(구 볼티모어 치과대학) 본관 건물 1층과 2층에 꾸며진 치의학 박물관은 아마도 세계 최고의 치의학 박물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신 스승이신 이상호 교수님과 10년 전에 치과 박물관에 눈을 뜨게 해준 Samuel Harris의 초상화 앞에서 찍은 사진이 나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현재의 메릴랜드 치과대학은 치의학 박물관 말고도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있다. 메릴랜드 치과대학의 전신인 볼티모어 치과대학(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