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각자가 볼 수 있는 만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만큼 들을 수 있습니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초등생이 보는 것이 다르고 중고생이 보는 것이 다르고 대학생이 보는 것이 다릅니다. 또한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릅니다. 비슷하고 공통적인 것이 있을 수 있어도 똑같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인정해야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소통과 화합이 가능해집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본 것만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반드시 갈등과 비난과 싸움이 찾아옵니다. 대학생이 초등학생이 본 것을 다르게 보인다고 하지 않고 틀리게 본다고 한다면 초등학생의 의견은 무시되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존재합니다. 그 대학생 역시 다른 사람이 보면 똑같은 논리로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르게 보인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없으면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 하거나 참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화합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화합(和合)과 화합(化合)입니다. 和合은 자기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을 말합니다. 음악으로 치면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자기의 소리를 내면서
꼬꼬마 초등학생이던 시절, 학교 갔다 돌아오는 하굣길에 알록달록 보도블록을 만나면 ‘빨간 블록은 밟아도 되고 하얀 블록은 밟으면 안 되는 거야’ 라며 친구들과 보도블록 밟기 놀이를 하던 기억이 납니다. 빨간 보도블록을 따라 외줄타기 하듯 조심조심 걸어도 보고, 길이 끊기는 곳에서는 절벽을 뛰어 넘듯 있는 힘껏 점프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장난을 하며 오느라 10분 거리의 하굣길이 30분도 되고 한시간도 걸렸습니다. 덕분에 어머니 애도 많이 태웠습니다. 작은 데서 가지는 큰 행복은 순수한 어린이들이 누리는 특권이 아닌가 합니다.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어른이 되고 나서는 만나기 어려운 웃음 터지는 즐거움을 이런 별 것 아닌 놀이에서도 느끼곤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삶을 살아가면서 보도블록 밟기를 합니다. 그동안 보고 배웠던 것들, 경험해온 것들로 형성된 가치관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구별하고, 옳은 것은 지키고 그른 것은 삼가하려 애씁니다. 이처럼 우리는 인생을 보도블록 밟기 놀이하듯 조심하며 걸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빨간 블록이 밟아도 되는 블록인데, 누군가에게는 밟으면 안되는 블록일 때도 있습니다. 또 어느 누군가는 빨갛고 하얀 블록이
가끔 퇴근길이나 출근길에 지인이나 가까운 환자분들 한테 진료에 대한 상담이나 문의전화가 오는 경우가 있다. 특히 여러 부위를 상담했던 지인환자분이 본인의 특정부위의 상태에 대해서 문의할때면 확실하지 않은 경우 섣불리 답변하다가 틀린 답변을 애기 할까 봐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잘 모르는 듯 하면 그래도 지인인데 성의가 없어보이고, 난처한 상황이 아닐수 없다. 그래도 확실한게 아니면, 잘못 답변해서 신뢰를 잃는 것 보다는 차트나 엑스레이를 보고 나중에 전화드린다고 하는게 맞는것 같다. 백번 잘해도 한번 잘못하면 나중에 주워 담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어쩔수 없는 세월의 결과물일까? 아님 끊임없이 쏟아내는 정보의 홍수속에 과부하가 걸려서일까? 아니면 환자에 대한 나의 관심도의 부족 때문일까? 날이 갈수록 건망증도 늘어 가고, 주변에서 비서 한명 두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농담섞인 핀잔을 들을때면 나름대로 통화할 때 녹음을 한다든지, 메모도 하고, 한편으로는 로봇비서도 생각난다. 친구 전화번호도 거의 외우다싶이했던 20대의 총기를 다시는 얻지 못하는 것인가? 굳이 이유를 들자면 디지털의 발달로 인한 암기에 대한 부담이 적어 지면서 굳이 외울 필요가 없는 상황과, 다른
한 마을에 죽을 파는 두 개의 가게가 있었다. 두 죽 가게는 맛도 가격도, 손님도 비슷했지만 늘 한 가게의 매출이 높았다. 그래서 식당의 컨설턴트가 두 가게를 지켜보면서 고객과의 대화를 분석했다. 오른쪽 가게의 종업원은 죽을 내오면서 “계란을 넣을까요? 말까요?”라고 손님에게 물었고, 왼쪽 가게의 종업원은 이렇게 물었다. “신선한 계란을 하나 넣을까요? 두 개 넣을까요?” 질문의 차이가 계란 판매 매출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결국 “어떻게 하면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을까?”라는 작은 질문이 큰 결과를 만들어냈다. 긍정적 질문의 차이가 좋은 관계와 긍정적 결과를 초래하고 삶의 질을 높이므로 때로는 좋은 대답보다는 좋은 질문이 중요하다.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말이란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지만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파악되는 의미는 담고 있는 말의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을 바꿈으로 전혀 다른 양상으로 파악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게 되는 수많은 질문들은 듣는 사람의 대답, 즉 판단과 결정에 당연히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세계 평화정책에 이슈가 되고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의
입시 학원가의 수능성적 배치표에서 치과대학은 의과대학에 비해 해 마다 좀 더 큰 폭의 차를 나타낸다. 한해 800명이 넘는 치과의사의 배출로 인한 과다 경쟁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고, 정부의 보장성 강화로 인한 저수가 급여항목의 확대, 임대료를 비롯한 경상비의 가파른 인상에 더해 치과의사에 대한 미디어의 부정적 보도가 겹쳐지면서 피부로 느껴질 정도의 치과의사에 대한 사회적 평판 하락 등 진료 여건은 날로 열악해지고 있다. 시민단체와 환자들의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이와 비례해서 의료인과의 갈등과 분쟁도 증가한다. 의료분쟁강제개시법은 사소한 ‘의료불만’을 ‘의료사고’로 비약시키고, 의료인으로 하여금 중증 또는 합병증의 우려가 큰 진료를 기피하게 하는 결과를 잉태하고 있다. 치과의사 주위에는 서로 타협할 수 없는 관계를 가진 이해집단 즉, 정부와 시민집단 및 제3지불기구, 심지어는 의사단체와의 사이에서 전혀 우리에 대해 우호적 배경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불리한 여건에 더하여 치과의사에 대하여 사회는 기득권층으로 인식되며, 환자에 대한 희생과 고도의 도덕적 수준과 윤리를 요구받고 있다. 의료현장에서의 윤리는 기본적으로 윤리 주체가 어떤 방식으로 개인 생활을 하고
구글코리아는 지난 11월 29일 인공지능(AI) 기반으로 더욱 진화한 ‘구글 번역(Google Translate)’의 새로운 기능을 소개했다. 올해로 출시 10년째를 맞고 있는 구글 번역은 현재 전 세계 5억 명 이상이 매일 1천억 회 이상 사용하며 총 103개 언어를 지원한다고 한다. 사실 그 동안의 구글 번역은 대략적인 단어를 조합하여 나열하는 방식에 그쳐 상용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문장 내 구문 단위(Phrase-Based Machine Translation, PBMT)로 번역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눈부신 진화를 거듭한 모양이다. 현재, 인간의 언어 구사 방식과 유사하게 전체 문장을 하나의 번역 단위로 간주해 한 번에 번역하는 ‘구글 신경망 기계번역(Google Neural Machine Translation, GNMT)’ 기술은 기대이상의 결과를 보여준다. Informed Consent(수술, 치료에 대한 동의)는 환자 스스로가 해당 치료를 받을지 말지를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의료진이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환자가 자신의 신체에 일어날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는 법적 그리고 윤리적인 권리에서 출발하며 환
창간 50주년을 맞는 치의신보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치과의사의 친구! 친구는 닮는다… 그것도 50년을 함께 했다면 그 세월의 무늬와 결 대부분이 두 친구 안에 닮은 모습으로 투영되어 있으리란 점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문득 ‘우리들, 대한민국 치과의사들의 자화상이랄까, 우리들의 정체성은 어떤 모습이며, 또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라는 새삼스런 질문을 해 본다. ‘국민구강보건향상을 위하여 그 소임을 다하며…’라는 구절이 떠오르지만 이것은 궁극적인 해답으로 이끌기엔 다소 모호하다는 느낌이라, 좀 더 심층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하는 일에서는 단칼에 베는 시원스런 스피드만큼이나 증례마다 나타나는 unpredictability에 대한 유연성이, 첨단의 테크닉인가 여부보다는 재현성 있게 나타나는 신뢰도가 더욱 중요하다. 그 어떤 직업군보다 열정적으로 최신지견과 뉴테크놀로지를 배우고 익히지만, 직접 자기 환자에게 적용할 때는 예외 없이 시간을 두고 예전의 것으로부터 느리고 신중한 전이를 시도한다. 즉 ‘그것이 유형이던 무형이던 시스템의 느린 교체’가 우리들의 전형적인 거동(behavior)패턴인 듯하다. 왜일까? 최신지견에 열광하는 우리들이므로 새
아빠! 왜? 아빠는 자신이 53살이 될 거라고 생각해 봤어요? 아니. 지금도 대학생 시절 같은데. 내 나이 53세가 되어있고, 옆에는 배우자가 있고, 딸이 대학생이고 아들은 수능을 보았더라. 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자하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 일이 있을 때는 아랫사람이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이나 음식이 있을 때는 윗사람이 먼저 드시게 하는 것을 가지고 효도라고 할 수 있겠느냐?” 엄하고 카리스마 넘치셨던 아버님이 어느덧 90을 바라보는 87세가 되셨다. 아버님께서는 당신이 61세 환갑이 되기 전에 큰 아들인 내가 결혼하기를 바라셨다. 어머님은 건강이 좋지 않아 큰아들이 장가가는 것을 보고 생을 마감하시는 것이 소원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성화로 본과 3학년 겨울 방학부터 선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러한 선이 개업 2년차 까지 햇수로는 6년동안 선을 보았다. 최근 어머님은 고관절 수술을 받으시고 중간에 수술 부작용이 생겨 다시 입원하셨다. 아버님께서는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넓은 집에 혼자 밥을 해 드시며 생활하고 계신다. 집에서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만 그 행복을 모두가 갖지는 못한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행복이 다르고 추구하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상적이면서도 적극적인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에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얻고자하는 마음과 의욕일 터, 그것이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자신의 등을 밀어 주듯이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다”고 했다. 이렇듯이 행복을 위해서는 마음과 의욕, 즉 열정과 욕망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마음의 태도가 중요하다. William James가 “우리 세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은 자신의 마음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한 것처럼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도 달라진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정서적 지능을 키워서 태도를 바꿀 것인가’를 위해서 명상전문가 차드맹탄은 3단계의 과정을 말하였다. 제 1단계는 명상을 통한 주의력 조절 훈련이다. 마음 챙김(mindfulness)이라고 하는데 의식적으로 복식호흡을 하면서 현재에만 집중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집중하다 잡생각, 즉 과거와 미래가 생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항상 목표를 세우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결과에 따라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그 결과에 대한 애착이 강할수록 결과에 대해서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내가 강력히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가 이루어질 조건이 성숙되야 이뤄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 노력해서 조건을 성숙시키는 일 뿐입니다. 보통은 눈에 보이는 것에 익숙해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하나의 결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수많은 조건들이 작용합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내가 원하는대로 되질 않습니다. 그러니 그 결과에 집착하는 마음이 강할수록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고 짜증이 늘어나고 화도 많이 올라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무관심으로 살 수도 없습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할 일을 다하고 난 그 결과는 나의 몫이 아닙니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결과에 연연할수록 괴로움만 더해갑니다.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알고 그 결과에 순하게 받아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상황의 많은 일에 직면하게 되고 그 일들은 잘 해결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힘든 시간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행복을 결정하는가?’라는 누구나 한번 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을 하게 하게 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로버드 월딩어는 75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의 ‘행복’에 대한 추적 연구 끝에 ‘행복’과 ‘만족감’에 관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관계(Relationship)가 인생에서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만약 우리가 인생 전체를 한꺼번에 파노라마처럼 펼쳐볼 수 있다면, 사람들의 10대 시절부터 노년까지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하는지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로버트 월딩어 교수의 연구에서는 1938년부터 75년간 다양한 직업군의 724명의 인생을 추적, 해마다 그들의 직업과 가정생활, 건강 상태에 관해 설문했고, 최초의 연구대상 724명 중 60여 명이 생존해 있으며 지금도 그들은 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모든 연구 대상자에 대한 자료와 설문조사, 의료검진, 인터뷰 등의 자료 축적 후 연구 시작 후에는 매 2년마다 방문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