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이란 이야기들을 심심찮게 한다. 인구절벽이란 소비, 노동, 투자하는 사람들이 사라진 세상이다.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그 시대에 들어선다고들 한다. 그래서 통계청의 자료를 통해 인구절벽의 심각함을 알아봤다. 대한민국의 연도별 출생아 수는 1971년 102만 4773명(최대 출생년도), 1974년 92만 2823명(마지막 90만명대 출생), 1982년 84만 8312명(마지막 80만명대 출생), 2000년 63만 4501명(마지막 60만명대 출생), 2001년 55만 4895명(50만명대 출생), 2002년 49만 2111명으로 40만명대로 내려갔다. 이후 출생아 수는 2007년 황금돼지해를 제외하곤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5년 43만 8420명이 태어났다. 필자는 고3때 학력고사를 준비하는 수험생수가 재수생을 포함해서 100만명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에 태어난 사람이 43만명대란 것은 매우 심각해 보인다. 82년 이후로 80만명 이상 태어난 적은 없고, 2002년 부터는 40만명 대로 출생아 수가 줄었다.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인 2005년생이 부모세대인 1970년생의 부모를 봉양한다면 2.5배나 큰 짐을 짊어지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상이변이라고 할 정도로 길었던 더위와 열대야 때문에 조금 있으면 쌀쌀해진다는 기상청의 예보는 언제부터인가 양치기 소년의 ‘늑대가 나타났다’가 되어버린 탓에 이번 예보 역시 오보일 거라고 무시하고 넘겼던 참인데, 비가 오고 찬바람이 불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20도 아래로 기온이 뚝하고 떨어졌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별생각 없이 반팔차림을 하고 아침 출근 길에 올랐던 저는 추위에 떨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저처럼 여름 옷을 입고 비바람을 피해 웅크린 사람들 사이에 가을 옷을 챙겨 입은 준비성 좋은 분들도 보였습니다. 여름이 가면 날이 추워지는 이런 당연한 것 조차 제 때에 준비를 하지 못하는 제가 멍청하게 느껴졌습니다. 주식, 부동산, 입시, 경제 등 관심사는 다르지만 저희는 항상 앞날을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려고 애씁니다. 그래야 오늘 아침처럼 반팔차림으로 떨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보고 정보에 밝은 주변사람들 얘기도 듣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준비된 미래를 맞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몇 달 뒤에 제 치과 옆에 대형 치과가 들어올지 어쩔지 알 수 없고 다음주에는 직원들이 다
사람들에게 ‘착하다’라는 단어는 어떤 느낌일까?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는 본래의 의미와 함께 자신의 권리를 잘 챙기지 못한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으려면 자기 몫은 자기 스스로 챙겨야 한다고 배운 사람들은 나누고, 베풀고, 타인의 이익을 생각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양보와 배려는 어떻게 성과로 이어질까? 와튼스쿨 역대 최연소 종신교수이자 세계적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주는 사람이 성공한다‘GIVE AND TAKE(기브 앤 테이크)’의 저서에서 성공의 숨은 동력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주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 ‘받는 만큼 주는 사람’보다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또한 자기분야에서 최고에 오른 기버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자기 것만 챙기다가 처절한 실패를 맛본 테이커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과소평가 해온 ‘기버’의 성공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삶에서 특히 일터에서 권력을 차지하고, 경쟁에서 승리해 마침내 성공 사다리의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이익보다 내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얼마전 폐막된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남자 펜싱 에페부문에서 14-10의 열세를 딪고 15-14의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박상영 선수가 올림픽은 개개인의 축제의 장이라 거기에 걸맞게 즐겼다고 당당하게 인터뷰 하는 모습이라던지 태권도 68kg급 이대훈 선수가 승자인 상대방의 손을 치켜드는 모습이라던지, 과거 금메달리스트들의 인터뷰에서 늘상 들어 왔던 국가와 민족을 위해, 조국, 국민 등의 단어로 비장함까지 느꼈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쿨해질수 있나 신기하기만 하다. 필자도 386세대라 70년대나 80년도에 국가간에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세상에 둘도 없는 애국자로 변신되어 있었다. 어릴적 워낙 스포츠를 광적으로 좋아했던 탓도 있었지만, 당시에 복싱세계타이틀 매치나, 월드컵 아시아 대양주 지역예선이 벌어지는 기간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멘트 하나에도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혹여 승리라도 하는 날에는 이성도 마비되어 흥분상태에서 한동안 빠져 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새롭다. 1894년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창시된 근대 올림픽의 목적은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데 있는 것
人能弘道 非道弘人. 사람이 도(스스로 깨우친 경영)를 알고 깨우쳐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지, 도(타인에게 배운 경영)를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라는 의미로 의역해 본다. 논어 한 귀절씩 매일 쓰고 그 뜻을 음미하기를 한지 벌써 7개월 총 100귀절 중 70귀절에 대해 익히고 그 의미를 생각하고 삶에 응용하고 있다. 올 초 처음 시작할 때는 1년이고 2년이고 기간을 정하지 않고 시간이 되면 한 귀절씩 하고자 했던 것이 벌써 70귀절, 2016년 안에 100귀절을 마치고 되새김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IMF 때 보다 힘들다고들 한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자신만 살고자 하는 치과계의 몇몇 원장들을 본다. 어렵다고들 말을 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려는 자신의 경영 원칙들은 만들려 하지 않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찾으려 하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속을 헤매는 원장들을 보며 치과의사의 행복한 삶에 대해 고민해 본다. 人能弘道 非道弘人 경영에 관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경에 대한 길을 따라하면 처음에는 힘들이지 않고 편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
치과의사의 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고도의 윤리적 전문직업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전문의를 양성하기 위한 체계적 전공의 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전공의 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해당 과목의 임상적 전문성 외의, 전문인으로서 자질을 담보하기 위한 공통역량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서구의 경우 이미 1990년대부터 영국의 “미래 의사상(Tomorrow’s Doctor)”에 대한 정의를 시작으로 1996년 세계보건기구(WHO)의 “미래의 일선 의사상(Frontline doctors of tomorrwo)”, 1998년 미국의 의학교육목표프로젝트(MSOP; Medical School Objectives Project)는 공히 인문학적 소양, 의사-환자-사회 관계, 평생학습능력, 헌신, 지식, 기술, 태도에 걸친 각 영역의 균형 있는 자질을 중요한 공통역량으로 정의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역량중심의 성과바탕 학습을 제시하고 전공의 교육환경을 꾸준히 개선하였다(이선우 2015). 생물학적 진료 역량을 넘어 인문 사회적 역량 즉 환자, 사회, 동료와 잘 소통하며 높은 윤리 수준의 전문직업성을 갖춘 환자 중심의
우리는 어떤 상황과 관련하여 종종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대개는 이미 대화와 소통이 심각히 불가능하고 갈등이 극한에 이르러 충돌이 불가피한 때에 선전포고의 용도로 사용되거나, 단순한 으름장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온 용어였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요즘은 이 용어가 너무나 자주, 그리고 상황의 초반에 쉽게 등장한다. 본래 ‘특단(特段)’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인 것과 아주 다름’으로 되어있고, ‘조치(措置)’의 그것은 ‘어떤 문제나 사태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이라 되어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21세기 대한민국이 ‘일반적인 것과 아주 다른 문제나 사태’가 그토록 자주 생기는가라는 질문을 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구태한 정치에 경직된 제도와 방황을 견지하는 문화는 특별히 ‘아주 다른’ 역동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 매사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콧김을 내쉬는 경우가 점점 잦아지는 것은, 필시 우리들이 모든 일들을 대할 때마다 우리안에서 언제부터인가 고갈되고 망각된 인내심과 자기반성이 없는 시각과 자세로 임하는 까닭이리라 생각해 본다. 개인이나 집단이 행하는
각 과마다 자기의 영역을 지키고 확대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최근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치과의사가 보톡스·필러를 미용 목적으로 안면 부위에 시술하는 치료에 대한 합법성의 문제를 다룰 때 법정에서 최선을 다하여 수고하신 구강외과 교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치과의사만이 할 수 있고 알아야 할 것들을 작년 18회 세계보철학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전신건강의 5가지 조건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5가지 조건 중 첫째, 바른 척추자세가 무엇보다 제일 중요하다. 인체는 Gerald. H. Smith가 발표하였듯이 두개골, 악관절, 골반, 영양, 근육, 장기, 정신적인 문제가 상호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질병이 유발된다. 모든 장기들은 척추에 연결되어 있고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모든 기능이 20~30% 저하된다. 뼈는 근육을 이길 수 없다. ‘허세가펴’ 허리는 세우고 가슴을 펴자. 또한 바르게 걷는 것이 허리를 바르게 하는 데 중요하다. 둘째, 치아의 교합이다. 교합이 맞지 않고 틀어지면 저작근들이 이상적일 때보다 5배에서 10배 정도 왜곡이 일어나면서 인체의 keystone인 측두골에 하루에도 2400번, 특히 저녁에 수
얼마전 비행기안에서 영화 ‘아이 인더 스카이(eye in the sky)’를 보았다. 영국에 있는 작전지휘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미국의 드론조종사와 함께 케냐에 있는 테러조직에게 드론 폭격을 하는 영화이다. 미사일 폭격을 하기 위해서 미국 및 영국의 수뇌부와의 공격개시를 결정하는 장면들, 드론공격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벌이는 심사숙고를 하는 장면들이 특징이다. 아직 미개봉작이라 내용을 알면 영화가 재미 없지나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영화의 재미는 디시즌 메이킹이다. 우리는 항상 수많은 결정의 순간에 직면해 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직업군을 정한 치과대학에 들어온 뒤에도 얼마나 많은 결정을 내리는가? 그 수를 세보면 놀랄 만큼 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험때의 고민, 졸업에 대한 결정, 전공선택에 대한 결정, 그런일 말고도 연애시절의 선택, 배우자 및 결혼의 선택, 개업이나 공직으로의 선택, 개업지를 결정할 때, 직원을 뽑을 때, 하물며 집을 고를 때나 주식을 사고 팔 때 등등…. 이런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를 생각해 볼 때, 과연 얼마나 선택 후의 생길 수 있는 상황을
요사이 신문들을 보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발휘하다가 문제가 된 사건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누구든지 힘이 생기면 그것을 쓰고 싶은 욕구가 올라옵니다. 힘이 있으면서 적절하게 조절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인간 삶의 자체가 욕구를 발사하는 것이기에 여건이 허락되는 범위 내에서 가지고 있는 힘을 사용합니다. 가정에서도 부모가 자식에게, 경제권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힘을 사용합니다. 직장에서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본인의 생각대로 해주길 원합니다. 사회적으로도 권력이나 재력이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힘을 휘두르고 싶어 합니다. 힘이 있으면 본인의 잠재적인 욕구를 발휘하기가 쉬워집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것이 힘의 발산이 아니라 옳기 때문에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위치에서만 보기 때문에 본인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힘이 있으면 그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자식으로 살았어도 부모가 되면 자식을 이해하기 어려워집니다. 직원으로 살다가 사장이 되면 직원의 입장이 되기 어렵습니다. 피지배자였던 사람이 지배자가 되면 피지배자의 심정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위치가 변한 것입니다.
패왕별희(覇王別姬)는 1993년 개봉된 유명한 영화의 제목입니다. 이 영화는 제목대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초나라의 항우가 한나라의 유방에게 ‘해하’에서 포위되어 우희가 자결하는 상황을 묘사한 말이 바로 패왕별희 입니다. 역발산 기개세(力拔山氣蓋世)로 유명한 항우의 ‘해하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한데 시운이 불리하니 나의 명마도 나아가지 않는구나. 나의 말조차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나? 우희여, 내 그대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우희는 다음과 같이 답가를 하고 자결을 합니다. ‘한나라 군사들이 이미 땅을 차지하여 사방에 초(楚)나라 노랫소리 가득하고, 대왕(大王)의 의기(義氣) 다했으니 천첩인들 어찌 편안히 살겠습니까?’ 사면초가(四面楚歌).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는 유명한 사자성어입니다.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리는 완전히 포위된 어려운 형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원전 203년, 유방이 대군을 이끌고 항우를 추격하고 한신, 팽월 등이 측면 지원에 나서자 항우의 군대는 해하에서 완전히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 사방에서 초나라의 구슬픈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구월 깊은 가을 사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