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면 항상 시비가 붙게 되고 옳고 그름을 따지다 보면 내 편, 네 편이 생겨나게 됩니다.그러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개인간이나 사회, 국가간의 다툼과 분쟁이 일어납니다.아마도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없어지기 어려울 것 입니다.부부간이나 지역사회간이나 국가끼리의 문제도 옆에서 살펴보면 사실 일방적으로 한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습니다.싸우고 있는 부부에게 다가가서 남편의 말을 들어보면 부인이 세상에서 인간성이 제일 나쁜 여자 같고, 부인의 말을 들어보면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남자 같습니다.이러한 모습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개인이건 단체이건 국가간이든지 모두 자기의 위치와 입장이 있습니다.그 위치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서울의 남산 타워를 강북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강남에서 보는 모습은 다릅니다.제 각각의 위치에서 보면 그 모습이 맞습니다.맞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목숨까지 불사하면서 다투게 됩니다. 강북 사람이 강남에 가서, 강남 사람이 강북에 가서 바라보지 않으면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정신의학에서도 그렇게 자기를 떠나서 상대방의 입장으로 되돌아가서 역할 바꾸기를 시도함으
fault line(단층선 또는 충돌선)은 지형학에서 단층면(斷層面)이 지표면과 만나는 선을 말한다. 기복이 많더라도 단층면이 수직이거나, 단층면은 경사를 이루었으나 기복이 없으면 단층선은 직선상으로 나타나고, 이에 반하여 지형면에 기복이 있거나 경사진 단층면의 기복과 경사가 클수록 단층선은 심한 굴곡을 그리면서 나타난다. 지표면이 직선상으로 만나는 경우 지형도나 지질도 상 안정된 지형으로 나타나나, 단층선의 심한 경사와 굴곡이 불규칙하게 그리면서 만나는 경우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 예기치 않은 자연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또한 다른 의미의 fault line은 테니스나 베드민튼의 라켓 관련 용어로 쇼트라인에서 뒷벽으로 연장된 코트에 쇼트라인과 수직으로 그어진 라인이며, 두 곳의 서비스 라인으로 코트의 뒤를 나눈 라인이다. 이 라인 안에 볼이 떨어지면 게임은 진행되나 라인밖에 떨어지는 경우 점수를 잃게 된다. 보이는 의미상으로는 그저 하나의 선에 불과하나 그 선 하나의 차이로 부조화가 일어날 경우 원하지 않는 결과가 오류와 충돌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도 이와 같은 많은 충돌선이 존재한다. 관념적 구조에 의해 표현되는 사고 및 행
11월은 치과의사에게는 세금을 중간 예납하는 달이다. 한꺼번에 많은 세금을 납부할 수 없기 때문에 분납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으며 카드 할부도 된다. 월말과 연말이 다가오면서 사회분위기는 더욱 더 어수선하기만 하다. 세금을 결정하고 심사하며 국정을 이끌어 가야할 여당은 독주하고, 견제해야할 야당은 무기력하니 정치에 대한 불신은 깊어가고 국회는 외면당하고 있다. 우리들이 피 땀 흘려낸 세금이 정치인들에 의해서 집행되기 때문에 정치를 포기해서도 안 되고 관심의 끈을 놓아서도 안 된다. 정치가 나서서 민생을 살피고 신음하는 국민들을 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모인자리에서 정치와 종교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자리분위기를 위해서도 좋고, 공중파 뉴스들도 정치보도는 비중이 없는 뉴스로 다룸으로써 애써 모른 척 하는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일상화 되어 지금은 정치얘기를 꺼낸 사람들을 왠지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보는 사회가 되어간다. 정치라는 것이 원래 지지층을 빼앗아 오는 게임이라고들 하는데 생각자체를 하지 않는 무관심한 이들을 설득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니 이길 재간이 없다.초등학교 때 암기를 강요당했던 국민교육헌장에 우리는 민족중흥의
‘子不語怪力亂神.’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의 가르침 중, 공자(孔子)는 괴이(怪異), 폭력(暴力), 문란(紊亂),귀신(鬼神)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시대의 미디어가 미디어로서 계속 인정받고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곱씹어봐야할 화두를 던진다. TV뉴스의 기사들과 뉴스의 아류격인 프로그램들의 화제들은 물론, 인터넷 포털들의 관심순위로 대변되는 검색어 순위도 거의 怪力亂神에 관한 것들이 점령했다. 우리가 몸담고 아이들을 키우는 이 사회에 정말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하는 호기심에 채널을 고정하고 시청해보거나, 검색어에 마우스를 끌어다가 클릭하여 차분히 보다보면, ‘이 내용들이 모두 확인된 사실에 근거하고, 구체적인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인정하며 전하는 이야기들일까?’ 하는 고리타분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또 만일 그것들이 사실이고, 필연성은 그만두고라도 일말의 개연성이라도 있어 기사가 되고 화제가 되었다면, 이러한 怪力亂神의 이야기들을 이토록 우리에게 열정적(?)으로 전해주는 것은, 정녕 ‘알 권리’라는 그 흔한 시민의 권리를 구현해주려고 소중한 가치가 담긴 정보를 전달해주는 노력인가에 대한 질문도 하고 싶어진다.‘道聽
치과의사로 풍운의 꿈을 안고 사회에 나온 지도 벌써 27년이 흘렀다. 개인적으로 대학입시에 4년을 계속 실패를 하여 군 입대문제로 야간 공대에 학적을 두고 낮에는 입시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대학에 맨 뒷자리에서 힘들게 공부하여 24살에 치과대학 예과 1학년에 입학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고교성적은 나름대로 좋았지만 운이 없어(?) 계속 대학에 떨어지고도 어린 내가 포기하지 않고 결국에는 치과대학에 들어간 또 다른 내가 인생에서 제일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생각된다.늦게 대학에 들어가니 2~3년 후배님들이 형님으로 잘 대해 주고 너무 재미있게 공부를 하였던 생각이 난다. 우리 때는 졸업정원제가 있어 30%의 학생이 예과 2학년 때까지 성적에 의하여 제적되는 군사정권의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예과 1학년 때 재시험 걸린 친구들을 위해 방학 때 과외를 해 주고 예상 문제도 풀어 주었던 추억이 있다.늦게 대학에서 공부를 하니 모든 것이 너무 뜻 있고 재미가 있어 대부분 시험 볼 때는 전부 다 눈 감고 강의 노트를 외울 정도로 열심히 즐겁게 하였다. 그 때 부터 나는 전화위복을 가슴에 품고 인생을 살게 되었다. 이십대 초반의 어려웠던 시기가 나에게는 지
“딴 딴. 딴 따다단…딴 딴. 딴 따다 단. 딴 딴. 딴 딴 따다 단. 따 다다 따 딴 따다단.” 브람스의 주제와 변주곡 D 단조.지난 9월 5일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6층 강당에서 서울치대 클래식기타반(클기) 창립 40주년기념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먼저 정기연주회를 진심으로 축하한다.클래식 기타 정기연주회는 학생들이 주축이 되는 연주회지만, 이번에는 40주념을 기념하여 ‘세대공감’이라는 목표하에 졸업회원들과 학생회원들이 같이 연주회를 했다. 클래식기타반 창립 멤버이신 조영환 선생님을 비롯하여 서울시향과도 협연하셨던 최병택 선생님, 멀리 춘천에서 먼길 마다 않고 여름방학내내 연습에 참여하신 한우석 선생님 등등 많은 졸업회원들이 솔로, 듀엣, 트리오, 합주에 참여해 주셨다. 재학생들도 힘든 치의학대학원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닦았던 기량을 맘껏 발휘했다. 그래서 그런지 연주회 수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차원이었다. 이번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 몇 가지 생각들을 해보았다. 어떤 한가지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기란 무지 어렵다. 만약에 20년을 넘게 한 곳에서 음식점을 한다면 맛집으로 유명해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40년이 넘게 지속된 연주회라면, 그것도
이야기 하나, 끝이 보이지 않는 초록색으로 덮힌 목초지가 개방되었다. 여기서는 누구나 소를 방목해서 키워도 된다고 한다. 목동들은 서로 서로 눈치를 보며 ‘내가 소를 한 마리 늘리면 이익이 얼마나 생기는 걸까?’ 를 계산한다. 방목장에 송아지를 한 마리라도 더 넣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가 자랄 것이고 내다팔 때에는 나에게 이익이 생긴다. 한편으로 소가 늘어날수록 뜯어먹을 수 있는 풀의 양이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소가 자라는데 문제가 생겨 모든 사람에게 피해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기는 손해는 모두가 나눠가지기에 1/n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송아지를 한 마리 늘리면 나에게는 +1의 이익이 생긴다. 다들 그렇게 방목지 안으로 자기 송아지를 여러 마리 밀어 넣는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목초지에는 풀이 없어지고 소들의 배설물로 가득 차 더 이상 소를 키울 수 없게 된다. 모두가 함께 하는 목초지를 걱정하며 우리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를 생각하고, 적지만 건강한 소를 키워내려는 사람보다는 한 마리라도 자신의 소를 더 풀어놓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종국에는 모두의 공유지가 파괴된다는 이 이론은, 1968년 ‘사이언스’에 실렸던 생물학
혁신이 병원계의 화두로 등장한 때는 십 수년 전이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전 군사독재의 유물인 졸업정원제도로 인한 의사의 과잉공급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치과계도 병원간의 경쟁이 심화되어 병원전문 컨설팅업체도 생겨났고, 유,석,룡으로 대표되는 대형 체인점치과 및 덤핑치과의 임플란트 저수가를 이용한 과잉치료는 많은 국민들과 의사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계속되는 아류치과들 뿐만 아니라 사무장 치과들이 범람하면서 새내기 의사들에게는 경제여건과 더불어 더욱 어려운 개원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총의를 모아 1인 1개소법을 제정하도록 온 힘을 기울인 결과 조금씩 자정작용도 일어나고 있다. 헌데 이 시각에도 1인 1개소법을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생겨나고 있으니 우리사회 정의는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우리의 광복 70주년을 유난히 강조했던 여름이 지나니 이웃 일본에서는 2015년 9월 19일 비상식적인 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에게 36년의 고통의 역사를 주었던 나라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돌아왔다고 외치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한 ‘안보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일본 군국주의가 부활한 날로 기록될지도 모르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아는 것이 능력이고 힘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은 깊이 있는 지식을 원하지 않는다. 더 이상 예전의 백과사전이나 참고서는 필요 없다. 대신 빠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이나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보거나 확인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스마트폰 강박증에 빠져 있기도 하다. 스마트폰은 남녀노소에게 편하고 즐길 수 있는 주요 문화가 되고 있다. TV 정규 드라마도 방송시간을 맞춰 기다렸다 볼 필요가 없고 원하는 긴 콘텐츠를 다 보는 일도 드물다. 필요한 것만 골라보고 짧게 요약한 핵심 장면만 골라 본다.‘Snack culture’란 간편하게 과자를 먹듯 짧은 시간 동안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뜻하는 것으로 해외에서는 패션, 음식, 방송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이러한 스낵컬쳐는 사회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는 이러한 스낵컬쳐를 만나 한국의 주 문화 트렌드가 되고 있다. 전통문화 기법을 지키기 위한 장인정신은 소비자의 트렌드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하여 예전의 전통을 찾기 힘든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곤 한다. 스낵컬쳐에 익숙한 소
메르스 사태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의사(MD)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위기관리에 성공적이지 못했던 정부의 무능이 부각됨으로써, 향후 보건의료정책 수립에서 국민적 지지라는 유리한 입장을 정부보다 우위에서 선점한 것으로 평가된다. 언론도 역할과 소명부재, 사회 갈등 조정 능력 없는 경쟁적 전달자(김연종, 2015)로서의 이미지를 스스로 노출시킴으로써 의사 집단을 일방적으로 집단 이기주의자로 호도하던 과거의 선정적 전달방식에 대한 국민적 회의를 이끌어 낸 꼴이 되었다. 지난 수 개월 동안의 메르스 사태는 우리 치의학의 현재 문제에 대한 해법과 미래 발전의 역동성을 끌어낼 수 있는 실마리는 구강건강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라는 가장 본질적 치의학의 역할과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중심가치’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웅변한다.서구에서 의료인들의 전문직 직업성은 13세기 외과의사들이 길드 형태의 ‘꼴레지아(collegia)’ 라는 공동체를 구성하여 집단적 직업 윤리를 발전시켜 온 일로부터 유래한다. 이들은 의료 집단의 이익과 사회적 책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집단적 윤리를 정착시켰다. 즉 공공의 이익을 지향하는 직업윤
앞으로 다가올 일이 걱정이다.돌아보니 살아온 날들이 후회스럽다.온통 걱정과 후회의 시간들로 오늘이 즐겁지 않다.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고민이다.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에서 키팅선생역의 명배우 로빈 윌리암스는 이렇게 말했다.“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소년들이여. 삶을 비상하게 만들어라.”젊은 시절, 당시 어른들이 생각하는 성공한 미래라는 목적하에 늘 초조하고 하루하루를 힘겨운 공부와 진료에 시달린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난 후 충격을 받았다.오늘을 즐기라고? 어떻게?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기원전 로마시대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한 구절로부터 유래한 말이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이 노래는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