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론 오성진 <본지 집필위원> 인생은 마음 먹는 대로 인생은 마음 먹은 대로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옛 선인들의 말씀이다. 그런데 잘 믿어지지 않아서 시도도 해 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서점에 넘쳐나는 서적 가운데 가장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는 서적들은 거의가 자기개발도서이다. 긍정의 마인드, 성공하는 법, 마음먹은 대로 된다 등등, 사람들의 눈을 끄는 제목들이다. 워낙 복잡한 세상이라서 단순한 논리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수천 년 인류의 역사 가운데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지금도 인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이미 인류는 이 우주에서 사라져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확대해석하고 과장되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은 거의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아마 사람들은 “나도 그런 말을 많이 들어 왔고, 시도도 많이 해 보았다. 그런데 말짱 헛것이더라”고 푸념 섞인 말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이유를 정리해서 이야기하자면 두 가지라고 생각이 된다. 하나는 방법이
월요시론박인임 <본지 집필위원> 공정위는 공정했나? 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른 것을 의미한다. 공평은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올바름은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관적으로 공평하고 바른 것이 과연 객관적으로 공평하고 바른 것이 될 수 있는가가 주요한 과제가 된다. 이것을 제대로 이끌어 내는 민족이 바로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나라가 되는 것이다. ‘로마인이야기’를 쓴 시오노나나미는 유대인은 종교로서 다스리려 했지만 다른 종교의 사람을 다스릴 수 없었고, 그리스인은 철학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려 했지만, 모든 사람이 그 정도의 성찰과 역량을 가지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로마는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법을 만들어서 이 법으로 세계를 다스릴 수 있었다. 카이사르에 의해 통일된 달력과 화폐를 만들었고, 도로를 내어서 이탈리아 반도는 물론, 갈리아 지역까지 소통을 하게 한 것도 역할을 했다. 이와 더불어 로마의 친구이자 동맹이라고 하는 협약과 이를 신실하게 지키는 법의 정신, 그리고 법의 실천을 담보한 로마의 군사력이 보편적인 다스림을 가능하게 하였고, 다양한 부족과 민족들이 로마의 통치(팍스 로마나)에 동조하였던 것이다. 로마인이 세계제국을
월요 시론박상섭 <본지 집필위원> 언론 유감 잊고 지낼만하면 다시 어김없이 언론에 보도되는 치과관련 뉴스로 인해 치과계는 당혹스러움과 짜증, 안타까움 그리고 때로는 분노로 들끓곤 한다. 지난 한달 여간 유디치과 관련 뉴스로 우리는 또 한바탕 홍역을 치른 셈이다. 지난달 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유디치과그룹에 대한 사업자단체금지행위 위반 혐의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5억 원을 대한치과의사협회에 부과했다. 공정위의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의 여부는 이후 진행될 행정소송에서 가려질 문제이겠지만, 해당 사안을 보도하는 언론의 모습이 과연 바람직한 언론인의 자세인지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공정위의 결정이 보도된 당일 저녁 공중파방송과 이후 일간지 신문들은 상당수가 ‘반값이 이겼다’는 류의 자극적인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우며 해당 내용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런 보도를 접하는 대다수 국민들이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충분한 고려없이 시청자와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데에만 급급한 천박한 보도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반값이라는 문구에 혹하지 않을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유디치과그룹은 MBC PD수첩, S
월요 시론서은아 <본지 집필위원> 정신분석적 미술치료 정신분석적미술치료의 목표는 무의식을 의식화함으로써 개인의 성격구조를 수정하는 것과 행동이 더욱 현실적으로 되고 본능충동의 욕구에 따르지 않도록 자아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정신분석치료의 초점은 무의식의 자료를 철저히 분석하는 치료방법을 사용한다. 치료의 목표는 문제해결이나 새로운 행동을 학습하는데 있지않고 오히려 자기 이해를 위해 과거속으로 깊이 탐색해 가는 것인데 이것은 성격변화에 필수적인 것이다. 정신분석치료는 통찰을 얻기 위한 목적에서 실시되지만 그런 지적 이해만을 얻기위해 실시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이해와 관련되는 감정과 기억들은 경험돼야 할 필수적인것이다. 정신분석치료기법은 내담자의 자각을 증진시키고 행동에 대한 지적통찰을 얻게하며 증상의 의미를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치료과정은 내담자와 대화에서 정화(catharsis)로, 정화에서 통찰로, 그리고 통찰에서 무의식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성격변화로 이끄는 일련의 지적, 정서적인 이해와 재교육의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다. 정신분석치료의 기본 기법은 자유연상법, 해석, 꿈의 해석, 저항의 분석,
월요 시론정원균<본지 집필위원> 치대와 치과위생사 양성교육 우리나라 최초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치과학교실에서 치과위생사 양성프로그램을 시작한 때가 1965년이니 오는 2015년이면 그 역사가 어느덧 50주년을 맞는다. 치위생계가 태동하던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치과대학이 전국을 통틀어 5곳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몇몇 치과대학 및 부속치과병원(연세치대, 경희치대)에서 어려운 여건에서도 치과위생사 교육과정을 선도적으로 운영하였고, 이들 기관의 역할은 치과위생사의 신분과 업무 및 면허제도를 법제화해 치과위생사 직종이 우리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 등 초창기 치위생계의 기틀을 쌓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치과대학의 이러한 선구자적인 노력은 오늘날 치위생(학)계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에 든든한 밑받침이 되었을 뿐 아니라 치계 전체의 저변과 역량을 확충하는 데에도 큰 몫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 일부 치과대학에서 치위생학과를 설립하려는 노력이 안팎의 어려움으로 무산됨으로써 이러한 전통과 교육기반이 계승되지 못한 채 안타깝게도 2000년을 끝으로 모두 소실이 되고 말았다. 2012년 현재까지 전국의 치위생학 교육기관은 모두 79곳이다. 하지
월요 시론강병철<본지 집필위원> 내 환자는 재수 좋은 사람입니다 앓던 이 빠진 것 같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자성어 약발통치(若拔痛齒) 또는 여발통치(如拔痛齒)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은 아주 괴로운 일에서 벗어나 이제는 시원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으니 옛 사람들이 얼마나 이가 아파서 괴로움을 겪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사자성어처럼 인간의 대표적 고통인 치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우리 치과의사는 정말로 보람된 일을 하는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많은 치과의사들이 때때로 처지가 어려운 사람에게 치료비를 깎아주거나 무료로 해준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료보험 규정 때문에 방사선 촬영 중 일부, 재료 중 일부, 시술 중 일부는 보험 청구를 못하고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치과의사가 보람된 일을 하고 있으니 항상 많은 부분을 헌신하고 공짜로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퇴비를 충분히 주어 땅이 기름져서 작물이 튼튼하게 자라 병충해에 강하게 키운 좋은 농작물을 유기농 농산물로 판매하면서 농약과 화학비료를 준 농산물보다 조금 비싸게 받는 것도 국민건강에 이바지 하는 좋은 일이다. 또한 농약을 써서 재배하되 농약의
월요시론허 택 <본지 집필위원> 가정의 달을 되새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왜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총칭할까? 유독 5월에 가정과 연관된 기념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1일 입양의 날, 15일 스승의 날과 가정의 날, 21일 성년의 날 및 부부의 날이 기념일로 지정됐다. 왜 하필 5월일까? 그리고 굳이 가정과 밀접한 기념일을 지정해야 할까? 봄의 5월은 신록의 생기가 천지만물에 만연하고 온화한 기후로 열두 달 중 자연세계가 가장 훈훈하다고 할 수 있다. 고로 봄의 생태와 섭리를 가정이 닮아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은 인간사회의 핵이요, 자연생태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예부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즉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는 진리불변의 고사성어를 인간의 가슴에 품어왔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가정이 소름끼칠 정도로 급속하게 파괴되고 소멸돼가고 있다. 그래서 삼라만상이 소생하는 봄에 가정의 중요성을 각인하고자 하기 때문 아닐까? 18~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과학문명은 세계사에 경천동지할 만큼 발전했다. 과학문명의 발전은 산업, 사회 등 인간생활 전반에 상상을 초월할 만큼 혁명적인 변화를 유발했다.
월요 시론오성진 <본지 집필위원> 홍 수 요즈음 신문의 머리를 채우는 기사들은,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무겁게 한다. 어떤 것은 공포를 주고, 어떤 것들은 불안을 주고, 어떤 것들은 사회에 대한 절망감을 준다. 과거는 어떠했는데 하는 이야기는 현재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한 점들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지만, 현재의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과거가 완전한 모습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지식이 쌓여 왔고, 해법들도 셀 수 없이 쌓여 왔건만, 오히려 문제들은 더욱 복잡해져 온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과 같은 매스미디어는 알고 싶은 지식을 전달하고 공유하는데 크게 기여해 왔다. 사람들간의 교류만큼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없고, 인터넷만큼 사람들간의 교류를 원활하게 해 주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터넷에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터넷이 보급이 되지 않았고, 국제간의 교류가 지금처럼 원활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오랫동안의 관습을 기반으로, 단순한 생각으로 세상을 운영할 수 있었다. 생각이 단순하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도 처리하는 법이 어렵지 않았다. 오랜 전통 속에서 익숙해 온 방법으로 판단을 하
월요 시론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불법 네트워크, 광고는 이제 그만 최근 불법 네트워크의 몇 차례 돌출성 일간지 광고 후에 치과계는 일견 잠잠하다. 협회는 소송은 할지언정 겉으로 드러나는 맞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막대한 광고비도 문제려니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일개 치과와 맞붙는다는 것이 협회의 체신도 있고, 국민들 입장에선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고민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총선으로 전국이 들썩했던 마당에 본질에서 비껴난 문제를 가지고 일 년여 공방을 한다면, 따가운 국민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의료법 개정 후 개원가의 과열 공방은 사라졌지만 과연 7월 법시행이 제대로 적용될지는 미심쩍은 분위기다. 불법 네트워크의 광고를 보면 초지일관 한결같다. 자기들은 정의의 사도로 협회의 박해를 무릅쓰고 국민을 위해 싸게 봉사한 죄밖에 없는 의인이라는 것이다. 초기에는 그래도 품격 노인 광고 시리즈로 상승된 치과계 역량의 효시로 보였고, 카르텔 운운하고 양심선언 한다고 나대어 용감한 젊은 진보다운 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광고를 대하면 개원의들은 “이제 또 시작이구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보철시술 비용 중에서 재료비를 따지는
월요시론박인임 <본지 집필위원> 의료가 상품인가? 겨우내 기지개를 펴고자 준비했던 꽃들이 만개했다.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신비스럽다. 우리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우린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정말 복된 나라에 살고 있다. 감사함과 행복감이 넘쳐야 할 때 사람들의 마음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가끔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을 보면서 웃기도 한다. 하지만 씁쓸하기도 하다. 스스로 결정하면 책임을 져야 하므로 책임지기 싫고 생각하기 싫어 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이다. 자기의 의견이 없고, 누군가 얘기하면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믿어버린다. 그로 인해 상처받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고도 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도 감각적이 되어간다. ‘언젠가는 알아 주겠지, 나의 진심을’ 하면서 참고 인내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치과경영이 힘들다.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동네 치과들도 힘겹다. 특히 젊은 치의들은 더욱 어렵다.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도 친근함과 감사함보다는 무언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따지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며 사는 모습
월요시론박상섭 <본지 집필위원> 99% 대 1%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끌어내는 방법은 다수의 사람들의 이해와 직결된 이슈를 먼저 찾아내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이슈는 단순하고 선정적인 구호로 효과적으로 대변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 9월경 미국의 반(反) 월가 시위대가 외쳤던 “우리는 99%다”라는 문구는 그런 원칙에 매우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나빠진 미국의 경제상황과 이로 인해 그들이 느끼는 좌절감, 그리고 부유한 1%를 위해 나머지 99%의 서민들이 이용당한다는 젊은이들의 피해의식이 “99%다”라는 한마디 말로 강하게 표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든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또 분명히 미래에도 “99% 대 1%”는 소위 먹히는 구호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서민들을 현혹하기 딱 좋은 수단으로 이용되곤 한다. “당신은 1%의 가진 자이고, 나는 99%에 속하는 서민이다.” “99%의 서민을 위한 것이다.” 이런 말 자체에서 이미 당위성은 확보되어 버린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따져봐야 한다는데 있다. 얼마 전 필자는 일간지를 보다가 어느 네트워크치과라는 곳의 전면광고들을 지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