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론 박인임 <본지 집필위원> 치과의사의 ‘아레테’ 현대는 철학이 부재한 시대라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상을 쫓아가기에도 버겁기만 하다. 공동체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함께’나 ‘우리’ 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보다는 ‘나’에게 어떤 가를 먼저 묻고 행동한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극히 편협하다. 주변을 둘러 볼 여유가 없다. 철학을 사랑하고 철학을 위하여 독배까지 마신 사람이 소크라테스이다. 그는 ‘철학자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몸과 관련된 즐거움보다는 진리에 이르고 지혜를 얻는데서 가장 큰 즐거움을 얻는다.’고 말한다. 사물의 이상적인 상태를 아레테(arete)라고 하여, 좋은 상태와 나쁜 상태로 구분하였다. 인간이 인간다운 좋은 상태는 영적인 것을 추구할 때이고, 나쁜 상태는 육적인 것에만 얽매여 있을 때라고 한다. 그는 아레테를 위하여 육신으로부터 벗어나서 생각하고, 경건한 것이 무엇이며, 선한 것이 무엇인가를 대화를 통해 깨닫게 하였다. 그는 전문 지식인으로서의 아레테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소크라테스의 시각으로 보면 어떻게 보일까? 전문인으로서의 아레테, 인간으로서의 아레
월요 시론 박상섭 <본지 집필위원> 진보냐 보수냐 해묵은 그러면서도 매번 얘기가 되는 토픽을 오늘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얼마 전에 필자가 속해 있는 지역에서 치과의사회 총회가 있었고 또 현재는 치과계 내부에서도 선거 분위기가 조금씩 무르익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광고를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지, 저수가 네트워크로 표출된 새로운 의료시장의 분위기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향후 영리법인과 시장 개방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가 우리 치과의료인들이 주로 고민하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은 지난 총회와 현 치과단체장 선거에서도 중요한 이슈들이다. 그런 이슈들에 대해 동료치과의사들과 얘기할 때 논쟁은 이내 뜨거워지는데, 어쩌면 우리도 정책과 사회현상을 놓고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서로의 주장을 이야기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당연한 것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른 편을 답답해 한다. 반면에 다른 한쪽에서는 게임의 룰이 변하는 것에 대한 위기감 속에 최소한의 속도조절을 말하며 변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저의를 의심하고 있다. 이 싯점에서 필자는 진보냐 보수
월요 시론 서은아 <본지 집필위원>엄마와 아이와의 관계심리학 (1) 졸업 28년…난 지금 다른 영역에 빠져있다. 미술 심리치료사. 서울에서 18년 동안 개원하고 강원도 춘천에서 10년동안 난 다른 영역에서 행복해하고 있다. 자녀들과의 관계도 철저하게 회복되면서 우리가 실패했던 자녀와 관계를 추적해보고 해결책을 내 자신에게서 찾아가는 길에 우리 후배들을 초청해본다. 가평 국제 페스티벌에서 가족치료, 홍천교육청에서 ‘초등 학부모들 위한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제목으로 강의하면서 아이들의 문제를 공유해본다. 어릴 때부터 관계가 힘들었던 아이와 화해하며, 건강한 청년으로, 의지가 분명한 모습으로 서있는 아들이 되기까지 난 19년을 ‘대상관계’에서 아이와 공유하지 못한 부분을 반성하며 이글을 쓴다. 전문가로서 성공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결국 아이를 잘 키워내는 일은 우리들의 가장 큰 몫일 것이다. 먼저 대상관계라는 생소한 개념을 알아보고 우리와 아이들이 부딪치는 문제들을 추적해 가 볼 것이다. 대상관계란 생후24~36개월 사이에 양육자나 그 환경에 의해서 아동의 심리적 발달과정에 입은 상처에 대하여 연구하여 그 영향
월요 시론 정원균 <본지 집필위원> 사이비 의료생협행정당국과 치과계 관리감독 절실 필자는 얼마 전 ‘개원가, 생협 치과에 피 흘리고’라는 제하의 치의신보 기사를 접하고, 어느 후배 치과의사의 선한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이 후배 치과의사는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 치과(이하 생협 치과)에서 어려운 여건을 감내하며 지역공동체의 건강증진사업에 오랫동안 헌신하고 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정의로웠고, 치과의사가 된 이후에도 의료인의 사회적 실천에 늘 앞장서서 고민하였다. 하여 나는 이 후배가 서 있는 지금의 자리가 역시 그다운 삶의 모습이라고 믿고 있었고, 이 시대에 이런 사명감을 지닌 치과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사이비 생협 치과가 창궐하면서 치과계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어 자칫 이로 인해 이 후배의 소신과 의료생협의 참뜻이 훼손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관련법에 따르면, 의료생협은 30인 이상의 발기인과 300인 이상의 설립동의자가 있어야 개설할 수 있고, 그 운영은 설립동의자(조합원)의 출자금 규모와 상관없이 1인 1표제라는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과정에 따른다. 또한 조합을 운영하면서 설립목적에 부합하
월요 시론강병철 <본지 집필위원> 치과의사의 행복지수 I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행복이 무엇인지, 도대체 행복은 무엇인지를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말해 왔지만, 그것은 대개 행복의 일부분을 말한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 심리학과의 마이클 아기릴과 필터 힐은 설문조사로써 개인의 행복한 정도를 알아보는 옥스퍼드 행복지수를 만들었고, 영국 경제 재단 (New Economic foundation)에서는 나라별로 행복한 정도를 알아보는 지구행복지수(Planet Happy Index)도 만들었다. 옥스퍼드 행복지수를 산출하기 위한 설문에는 과거 행복했던 기억이 얼마나 있는지,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는지, 내가하는 일이 남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지, 앞날에 대해 낙관적인지, 세상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는지,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지, 자주 웃는지, 환희와 기쁨을 느끼는지 등을 포함하여 행복지수를 구한다. 지구행복지수는 각 국가의 국내총생산, 평균수명, 에너지 소비, 생존에 필요한 면적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
월요 시론 허택 <본지 집필위원> G2시대의 역사적 고찰 2011년 신묘년 세계 각국 매스컴의 신년 화두는 미국 국빈으로서 후진타오 중국주석의 방미기사로 장식되었다. 2006년 후진타오 주석의 방미가 있었지만 국빈방문이 아닌, 한 단계 격이 낮은 공식방문이었다. 중국의 첫 미국 국빈방문은 1997년 10월 장쩌민 주석 때였다. 14년 만에 후진타오 중국주석은 국빈으로서 당당하게 레드카펫을 밟았다. 전 세계에 G2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팡파르를 울린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을 21세기 동반자로 공식 인정하였다. 물론 G2의 패권주의로서 애매모호한 관계는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던진 질문에 즉답 못한 태도에서 알 수 있다. 즉 클린턴 국무장관의 “중국이 친구인가, 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음… 그게…”라는 대답에서 공식적으로 G2시대이지만 동서양의 묵계된 대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패권주의적 G2시대의 도래는 세계사에 예견된 사실(史實)일 것이다. 세계사에서 동서양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18세기까지 동서양은 각각의 고유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19세기부터 산업혁명에 의한 서양의 물질문화가 동양의 문화와 역사를 함락, 몰
월요시론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포탄이 터져 전쟁기운이 돌때마다 1983년, 6월 강원도 현리의 102야전병원에 군의관 복무중 이었다. 오후 진료중 헬기소리가 요란하다 싶었는데 “수류탄 폭발로 대량 전상자가 발생했으니 전 군의관은 응급실로 모이라”는 연속 긴급방송이 나왔다. 헬기가 연병장에 내려와 있었고 고함과 뒤섞여 사병들이 들것으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응급 수술순위를 표시하는 빨강, 파랑, 노랑 인식표를 단 십여 명이 응급실 바닥과 베드에 널부러저 있었는데 안면부위 손상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런…” 처참하다 못해 섬뜩했다. 커다란 파편이 우측 안면 중심부를 강타한듯 했다. 화산이 폭발하듯 눈을 제외한 반쪽 안면이 뒤집혔는데, 광대뼈와 상악골 일부가 날라가고 상악동은 개통되어 훤히 드러나고 비골쪽은 덜렁거렸다. 다행히 안구하벽은 유지되었지만 뇌기저부의 노출과 손상이 염려되었고 어느 부위인지 가늠하기 힘든 공간과 조직이 엉클어저 그 와중에 그레이 아나토미 해부도를 대조해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호흡은 가쁘고 혈압이 90/50이라는 간호 김대위의 다급한 말에, 가슴에 박힌 다발성의 파편을 방사선 과장이 심각한 표
월요 시론 오성진 <본지 집필위원> “법규가 없다” 얼마 전, 주택가에 까지 파고든 외설전단지에 관한 보도가 있었다. 아이들의 교육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뿐더러, 오랫동안 비워 놓은 집 앞에 쌓이는 광고전단지는 빈 집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치안에도 좋지 않은 것이라는 보도를 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 해당관청은 ‘단속할 적당한 법규가 없어서"라는 답변을 하였다고 한다.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수 많은 법령들을 익히기 위해서 머리를 싸맨다. 그리고 법령이 얼마나 많은지 법을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전문분야 밖에는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리도 많은 법령이 있건만, 단속할 법규가 없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불량 전단지를 막을 수 없는 것이 법규가 없어서일까?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용기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부지런함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주일 아침에 교회를 향하다 보면, 골목길에 차들이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골목길이라서 한쪽에 주차를 하게 되면, 양쪽으로 차량이 통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그래서 구청에서는 때때로 불법주
월요 시론 김 신 <본지 집필위원> 생각의 차이 요즈음 매스컴을 보자면, 동 시대에 같은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저렇게 생각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근한 예로는 여야의 정치인들이 그렇고, 토론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쩌면 저렇게도 공통된 부분을 찾기가 힘든 것일까? 그러나 생각의 차이는 사회의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는 건강한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하겠고 그래야 살맛도 날 것 같다. 심지어 갓 살림난 신혼부부 사이에도 생각의 차이는 비일비재하지만, 문제는 부부 사이는 나빠지지 않으면서 이것을 어떻게 잘 조율하여 단단하고 통일된 생각을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 그 과정의 건강성에 달려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생각의 차이로 인한 피해들을 너무도 많이 당하고 있다. 우리는 작년에 북한으로부터 어처구니없는 도발을 두 번씩이나 당했다. 그러고도 그들은 모든 원인적 책임을 우리에게 덮어씌운다. 평양 광장을 행진하는 군인들과 시민의 얼굴에는 광기어린 확신과 호전성이 가득 차 있어 저들이 우리 민족 맞나 의심이 들 정도이다. 하기야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정신문화를 낳은 독일이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일으키고 전범 국가가 된
월요 시론 신순희 <본지 집필위원> ‘평화’는 비둘기가 아니다 2011년 새해에도 한반도는 여전히, 전통적 국제법상으로 전시상태이다.정전이 아닌 휴전상태로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조금씩 잊혀져갔던 이 사실은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각성되었다. 불타오르는 연평도의 민가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해방 후 5년이 지난 어느 초여름에 이 땅의 민초들에게 닥쳤던 그 불행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했고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 1차 분노의 대상은 당연히 사건을 일으킨 북한의 정신 나간 군부와 지도자들이겠으나 2차적인 분노는 사태를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들고도 이후 아무런 대안을 갖지 못한 정부였다. 연평도 사태 이후 정부는 엄중한 경고와 강력한 대응을 천명했으나 실제 우리 국민들이 본 것은 북한과 그 어떤 외교라인도 갖고 있지 못해 중국과 미국에만 사태해결을 매달리는 무능한 외교력, 중국과 러시아에게 연평도 한미 군사훈련을 중지하라는 내정간섭용 발언까지 들어야하는 굴욕적인 외교상황뿐이었다. 적어도 한 나라를 책임진 정부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능력과 자존심 그 어느
월요시론이 무 건 <본지 집필위원> 대한민국 생존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지난 3월 26일의 천안함 폭침에 이은 해안 장사포를 사용한 북의 연평도 포격이 11월 23일 또 다시 발생했다. 나의 경우 천안함 폭침 때는 처음부터 북의 소행인지가 명확치 않아 정부의 방침을 지켜보는 입장이었지만 이번의 연평도 사태 때는 정부의 미지근한 대처를 보며 속을 끓였다. 사실 나는 이번 북의 연평도 포격 당시 캄보디아를 여행 중이었다. 현지시간으로 2시경(한국시간 4시) 톤레삽 호수 위의 수상카페에서 가이드로부터 처음 이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접한 순간 맨 먼저 군에 있는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북에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궁금한 마음에 휴대전화로 국내 상황을 알아보았더니 우리도 응사를 했으며 지금은 상호포격이 멎은 상태라 했다. 다음날 귀국해보니 예상대로 국내정세가 어수선했다. 도하 각 신문에 이번 도발로 인해 해병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병사와 민간인이 중경상을 입어 후방으로 이송되고, 군막사와 민가 수십 동이 대파된 사실이 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