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론강병철 <본지 집필위원> 치과의사의 행복지수 I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행복이 무엇인지, 도대체 행복은 무엇인지를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말해 왔지만, 그것은 대개 행복의 일부분을 말한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 심리학과의 마이클 아기릴과 필터 힐은 설문조사로써 개인의 행복한 정도를 알아보는 옥스퍼드 행복지수를 만들었고, 영국 경제 재단 (New Economic foundation)에서는 나라별로 행복한 정도를 알아보는 지구행복지수(Planet Happy Index)도 만들었다. 옥스퍼드 행복지수를 산출하기 위한 설문에는 과거 행복했던 기억이 얼마나 있는지,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는지, 내가하는 일이 남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지, 앞날에 대해 낙관적인지, 세상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는지,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지, 자주 웃는지, 환희와 기쁨을 느끼는지 등을 포함하여 행복지수를 구한다. 지구행복지수는 각 국가의 국내총생산, 평균수명, 에너지 소비, 생존에 필요한 면적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
월요 시론 허택 <본지 집필위원> G2시대의 역사적 고찰 2011년 신묘년 세계 각국 매스컴의 신년 화두는 미국 국빈으로서 후진타오 중국주석의 방미기사로 장식되었다. 2006년 후진타오 주석의 방미가 있었지만 국빈방문이 아닌, 한 단계 격이 낮은 공식방문이었다. 중국의 첫 미국 국빈방문은 1997년 10월 장쩌민 주석 때였다. 14년 만에 후진타오 중국주석은 국빈으로서 당당하게 레드카펫을 밟았다. 전 세계에 G2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팡파르를 울린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을 21세기 동반자로 공식 인정하였다. 물론 G2의 패권주의로서 애매모호한 관계는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던진 질문에 즉답 못한 태도에서 알 수 있다. 즉 클린턴 국무장관의 “중국이 친구인가, 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음… 그게…”라는 대답에서 공식적으로 G2시대이지만 동서양의 묵계된 대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패권주의적 G2시대의 도래는 세계사에 예견된 사실(史實)일 것이다. 세계사에서 동서양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18세기까지 동서양은 각각의 고유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19세기부터 산업혁명에 의한 서양의 물질문화가 동양의 문화와 역사를 함락, 몰
월요시론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포탄이 터져 전쟁기운이 돌때마다 1983년, 6월 강원도 현리의 102야전병원에 군의관 복무중 이었다. 오후 진료중 헬기소리가 요란하다 싶었는데 “수류탄 폭발로 대량 전상자가 발생했으니 전 군의관은 응급실로 모이라”는 연속 긴급방송이 나왔다. 헬기가 연병장에 내려와 있었고 고함과 뒤섞여 사병들이 들것으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응급 수술순위를 표시하는 빨강, 파랑, 노랑 인식표를 단 십여 명이 응급실 바닥과 베드에 널부러저 있었는데 안면부위 손상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런…” 처참하다 못해 섬뜩했다. 커다란 파편이 우측 안면 중심부를 강타한듯 했다. 화산이 폭발하듯 눈을 제외한 반쪽 안면이 뒤집혔는데, 광대뼈와 상악골 일부가 날라가고 상악동은 개통되어 훤히 드러나고 비골쪽은 덜렁거렸다. 다행히 안구하벽은 유지되었지만 뇌기저부의 노출과 손상이 염려되었고 어느 부위인지 가늠하기 힘든 공간과 조직이 엉클어저 그 와중에 그레이 아나토미 해부도를 대조해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호흡은 가쁘고 혈압이 90/50이라는 간호 김대위의 다급한 말에, 가슴에 박힌 다발성의 파편을 방사선 과장이 심각한 표
월요 시론 오성진 <본지 집필위원> “법규가 없다” 얼마 전, 주택가에 까지 파고든 외설전단지에 관한 보도가 있었다. 아이들의 교육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뿐더러, 오랫동안 비워 놓은 집 앞에 쌓이는 광고전단지는 빈 집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치안에도 좋지 않은 것이라는 보도를 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 해당관청은 ‘단속할 적당한 법규가 없어서"라는 답변을 하였다고 한다.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수 많은 법령들을 익히기 위해서 머리를 싸맨다. 그리고 법령이 얼마나 많은지 법을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전문분야 밖에는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리도 많은 법령이 있건만, 단속할 법규가 없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불량 전단지를 막을 수 없는 것이 법규가 없어서일까?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용기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부지런함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주일 아침에 교회를 향하다 보면, 골목길에 차들이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골목길이라서 한쪽에 주차를 하게 되면, 양쪽으로 차량이 통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그래서 구청에서는 때때로 불법주
월요 시론 김 신 <본지 집필위원> 생각의 차이 요즈음 매스컴을 보자면, 동 시대에 같은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저렇게 생각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근한 예로는 여야의 정치인들이 그렇고, 토론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쩌면 저렇게도 공통된 부분을 찾기가 힘든 것일까? 그러나 생각의 차이는 사회의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는 건강한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하겠고 그래야 살맛도 날 것 같다. 심지어 갓 살림난 신혼부부 사이에도 생각의 차이는 비일비재하지만, 문제는 부부 사이는 나빠지지 않으면서 이것을 어떻게 잘 조율하여 단단하고 통일된 생각을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 그 과정의 건강성에 달려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생각의 차이로 인한 피해들을 너무도 많이 당하고 있다. 우리는 작년에 북한으로부터 어처구니없는 도발을 두 번씩이나 당했다. 그러고도 그들은 모든 원인적 책임을 우리에게 덮어씌운다. 평양 광장을 행진하는 군인들과 시민의 얼굴에는 광기어린 확신과 호전성이 가득 차 있어 저들이 우리 민족 맞나 의심이 들 정도이다. 하기야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정신문화를 낳은 독일이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일으키고 전범 국가가 된
월요 시론 신순희 <본지 집필위원> ‘평화’는 비둘기가 아니다 2011년 새해에도 한반도는 여전히, 전통적 국제법상으로 전시상태이다.정전이 아닌 휴전상태로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조금씩 잊혀져갔던 이 사실은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각성되었다. 불타오르는 연평도의 민가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해방 후 5년이 지난 어느 초여름에 이 땅의 민초들에게 닥쳤던 그 불행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했고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 1차 분노의 대상은 당연히 사건을 일으킨 북한의 정신 나간 군부와 지도자들이겠으나 2차적인 분노는 사태를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들고도 이후 아무런 대안을 갖지 못한 정부였다. 연평도 사태 이후 정부는 엄중한 경고와 강력한 대응을 천명했으나 실제 우리 국민들이 본 것은 북한과 그 어떤 외교라인도 갖고 있지 못해 중국과 미국에만 사태해결을 매달리는 무능한 외교력, 중국과 러시아에게 연평도 한미 군사훈련을 중지하라는 내정간섭용 발언까지 들어야하는 굴욕적인 외교상황뿐이었다. 적어도 한 나라를 책임진 정부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능력과 자존심 그 어느
월요시론이 무 건 <본지 집필위원> 대한민국 생존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지난 3월 26일의 천안함 폭침에 이은 해안 장사포를 사용한 북의 연평도 포격이 11월 23일 또 다시 발생했다. 나의 경우 천안함 폭침 때는 처음부터 북의 소행인지가 명확치 않아 정부의 방침을 지켜보는 입장이었지만 이번의 연평도 사태 때는 정부의 미지근한 대처를 보며 속을 끓였다. 사실 나는 이번 북의 연평도 포격 당시 캄보디아를 여행 중이었다. 현지시간으로 2시경(한국시간 4시) 톤레삽 호수 위의 수상카페에서 가이드로부터 처음 이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접한 순간 맨 먼저 군에 있는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북에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궁금한 마음에 휴대전화로 국내 상황을 알아보았더니 우리도 응사를 했으며 지금은 상호포격이 멎은 상태라 했다. 다음날 귀국해보니 예상대로 국내정세가 어수선했다. 도하 각 신문에 이번 도발로 인해 해병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병사와 민간인이 중경상을 입어 후방으로 이송되고, 군막사와 민가 수십 동이 대파된 사실이 대서
월요 시론 배광식 <본지 집필위원> 치의학제 조망법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잃으면 능선으로 올라가 길을 살피게 된다. 전체를 조망하지 않고는 내가 있는 위치와 앞으로 가야할 길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치의학제가 변환기이면서 소용돌이 속에 있다. 갈 길을 찾으려면 역시 한 발 물러서서 조망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시간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고, 공간적으로 우리가 발 디딘 현사회와 세계조류를 조망한다면 종횡으로 현재의 좌표가 잡히고, 갈 길이 보일 수 있다. 우선 근세 한국치의학교육은 1922년 경성치과의학교(2년제)가 설립되어 3년제로 바뀌며 첫 졸업생을 낸 것에서 비롯된다. 7년 뒤인 1929년에 4년제인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이하 경치전)로 승격되었다. 해방 후 1946년 8월 22일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군정법령 102호)의 공포로 경치전 등 9개 단과대학을 통합하여 10월에 서울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이 계획이 발표될 때부터 시작한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이하 국대안) 반대운동’이 격렬해져 동맹휴학(이하 맹휴)이 일어나고, 한편으로는 국대안 지지운동도 일어나 맹휴 유지 측과 맹휴 중
월요 시론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치과계 두 사건의 사회적 의미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최근의 두 사건, 가수 MC몽의 고의발치로 인한 병역기피 건과 협회장이 국정감사장에 불려나가 임플랜트 문제점 질의에 답변한 사건은 우리사회의 시대정서가 바뀌었음을 절감하게 한다. 치과 시술이 어떤 사회적 파장을 가져 오고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 주었고, 시간이 지나면 국민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겠지만 치과의사의 이미지는 상당한 손상을 받았다. 우선 임플랜트건은 다른 사건에 묻혀 TV에는 조명이 안되었기에 망정이지 결국 올 것이 온 것이고 우리가 판 무덤이고 자업자득이다. 국방, 외교, 정치의 거창한 문제들만 다루던 국정감사장에서 그전 같으면 의사의 고유권한으로 언급될 이유조차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만것이다. 그만큼 의사의 권위는 하락되고 환자의 목소리가 커졌음을 대변한다. 누차 지적돼 왔지만 치과의사 숫자의 팽창과 경쟁은 한도에 도달했다. 국민들 모두 사돈에 팔촌까지 치과의사 없는 집이 없으며, 이제는 웬만한 사람들의 입안에서 쉽사리 임플랜트를 발견 할 수 있다. 어리고 어렵게 보이는 필리핀 며느리가 압구정동에
월요 시론 김 신 <본지 집필위원> 몽니를 다시 한번 씹어보자 필자는 지난 10월 25일자 칼럼에서 어느 연예인의 고의 발치 문제를 가지고 우리 치과계의 각성을 촉구한 바 있다.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씹어보기로 작정하고 이후의 진행과정에 주목해 보았다. 지난 10월 위계로 인한 공무집행방해(입영 연기)와 병역법 위반(치아 고의 발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 연예인의 첫 공판이 지난 11월 11일 열렸다. 검찰은 그를 지금까지 발치한 11개의 치아 중 35번 치아 1개에 대해서 병역법 위반 혐의로 공소를 제기한 상태이다. 검찰이 특히 고의적이라고 지목한 3개 치아 중 2004년 발치한 치아 2개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나 2006년에 발치한 35번 치아만 공소 대상이 되었다. 1979년 9월생인 그의 지금까지의 발치 기록을 살펴보자. 검찰의 수사기록에 의하면 만 20세가 되기 이전인 1998년에 이미 치아 4개가 발거되어 현역 1급 판정을 받았다. 이후 2000년 10월에 1개, 2003년 5월에 2개, 이후 1개 파절 (시기 불분명), 2004년 8월에 2개를 뽑았다. 그리고 관심
월요시론오성진 <본지 집필위원> 틀 우리들은 어떠한 모습이든지, 어떠한 규범 속에서 살고 있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소위 ‘틀’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틀 등등, 그 이름도 다양하다. 학생은 학교의 틀 안에 있고, 우리들 치과의사는 우리의 직업의 틀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을 느끼며 살지는 않는다. 아마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을 내어 멀리 떨어진 산골에 가서 색다른 맛을 느끼며 모처럼의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것은 지금까지와 다른 환경에 맞닥뜨리면서 얻어지는 일종의 긴장감이 몸의 활력을 일으켜주는 덕분이 아닐까. 그래서 때로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을 일부러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틀을 벗어난다는 것이 생활의 활력을 불러 일으키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까지와 다른 환경에 부딪히면 긴장이 되고,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상황에 들어가게 되면, 비로소 자신이 속해 있는 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익숙했던 환경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편안함을 주기는 하지만, 지루해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