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 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아무리 힘들어도 극단적 행동은 말아야 올해로 치의가 된지, 또 대학을 졸업한지 30주년이 되었다. 기념행사로 부산에서 1박2일의 여행을 하기로 계획 중이고, 때맞추어 개설한 홈피에는 안보이던 동기들의 소식도 들린다. 졸업 후 한 번도 못 본이도 있고 병사한 동기도 있는데, 유독 그리운 동기 중에 스산하게도 자살한 동기가 있다. 고인에게는 미안하고 부담되지만 막역지간(莫逆之間)이었대서, 후배들은 이런 불운한 일이 없기를 바라며 용기를 내어 이글을 쓴다. 그와는 예과 시절 동해안 여행을 떠났다. 범생 체질이었던 나에 비해 그는 ‘놀 줄’ 아는 친구라 그에게서 유흥을 배웠다. 그는 여행 중 여대생도 잘 불러오고, 가게 평상에서 누구든 죽이 맞으면 바둑을 두는 낙천적인 성향이고 나는 기차시간에 늦을까 염려했다. 개원 초기에 환자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술친구고 대화친구였다. 어느 날 학술대회 기간이라 그의 치과에 들렀더니 그는 옆의 기원에 있었다. 간호원이 환자 왔다고 연락이 오더니 갔다가 오 분도 안 되어 돌아왔다. 부러진 치아 파편만 제거하고 금방 왔단다. 첫 부인과는 애가 안생기고 이혼을 했는데,
월요 시론 김 신 <본지 집필위원> 치과의사와 오랄 해저드 매스컴을 통해 우리는 모랄 해저드(moral hazard)라는 용어를 간혹 접한다. 이것은 도덕적 해이 또는 위기라고 번역되며,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상식 수준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할 때 듣게 되는 사회학적 용어이다. 고임금 집단이 임금투쟁을 벌이거나 적자를 본 정부투자기업 구성원들이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경우, 저임금 노동자를 대변할 노조 간부들이 본분을 잃고 제 밥상 차리기 바쁠 때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전문직종 사람들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쥬(Noblesse oblige)라는 말을 통하여 묵시적인 사회적 책임이 지속적으로 부과되며, 이것이 해이되었을 때에도 이 말을 듣는다. 이 글에서는 이 용어에서 파생된 오랄 해저드(oral hazard)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깊은 사려없이 한 발언으로 인하여 사회에 혼란과 불안을 가져오는 일을 뜻하며 굳이 번역하자면 구설수(口舌數) 또는 설화(舌禍)라 할 "수 있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인기도 누렸지만 자주 구설수에 올랐던 어느 대통령의 화법에 대하여 모럴 해저드에
월요 시론 신순희 <본지 집필위원> 아름다운 마흔 다섯, 그녀 아무리 피곤해도 하룻밤 푹~ 자고 나면 몸이 거뜬해지던 기억은 20대가 끝나면서 이미 가물가물해졌고,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더더욱 늘 어딘가가 아프다. 허리가 삐끗하거나 등이 뻣뻣하거나 그도 아니면 어느 날은 손목 발목이 시큰거린다. “40대가 되니 노안이 찾아와 보철물 마진도 흐릿해지더라.”던 선배의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었음을, 30대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느낀다. 이제 내 몸은 고장 날 일만 남은건가 싶어 살짝 슬프기까지 하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의 나이는 66년 말띠, 45살이다. 히말라야의 8000m급 14개 봉우리를 완등한 세계최초의 여성인 오은선 대장은, 나보다 6살 많은 친언니와 동갑이다. 20대에 했던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지리산 종주가 인생에서 가장 높았던 기억인 내게, 오대장의 14좌 완등이 어떤 것인지는 상상만으로도 벅차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해수면에 비해 산소가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두세 발짝만 걸어도 100m 전력질주를 한 것만큼 숨이 차고, 춥고, 자외선 과잉으로 눈까지 멀게 한다는 8000m 이상의 히말
월요시론 김재성 <본지 집필위원> “또 다시 미수에 그칠 봄바람” 유난히도 춥고 또 봄이 진작 왔어야 할 때인데도 몇 차례나 폭설이 내리고 한파가 오더니만 이제는 주위가 온통 하얗고 붉고 노란 꽃으로 물들이는 완연한 봄이 되었고, 이에 맞춰 주위의 모든 것들이 새로운 채비를 시작하니 나 또한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서둘고 미진한 것들에 대한 초조감으로 허둥대다 보면 한 달이 하루인 것처럼 지나가 버린다. 슬기로운 조상들은 우리에게 급하면 돌아가라고 가르치면서 바쁠수록 여유로움 속에서 결정하고, 한번쯤은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며 생활하라는 말을 남겨두었지만 현실에서의 나는 형체를 모르고 잡히지도 않는 조급함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매사에 바쁜 몸짓으로 살아가는데 이는 짜여진 틀 속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마음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루 하루의 일정과 약속에 묻혀 여유를 가질 진정한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 “복잡한 현실 속의 나를 잊고 단 하루라도 푹 쉬면서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지만 이를 실행해 본적이
월요 시론 이 무 건 <본지 집필위원> 사형제 찬반에 대한 소고(小考) 지난 3월 10일,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사건’의 범인 ‘김길태’가 체포된 것을 계기로 사형제 찬반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이런 논란은 흉악범들이 검거될 때마다 되풀이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이귀남 법무부장관이 최근 청송교도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사형집행을 염두에 둔 발언을 함에 따라 더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형제 폐지국은 102개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의 사형제는 아직 유효한 합법사항이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이 사형제에 대해 1996년 재판관 7대2 합헌에 이어 2010년 2월에도 5대4 의견으로 합헌으로 결정했다. 이런 사형제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실시하고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비록 이 사형제가 합헌이긴 하지만 1997년 12월 이후 13년 동안 한 건도 집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매년 사형선고는 계속되고 있지만,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우리나라는 현재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어 있는 실정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수감자는 현재 58명이라 알려져 있다. 1997년 이후 사형이 확정된
월요 시론배광식 <본지 집필위원> 의·치의학 교육제도의 나아갈 방향 의학 전문대학원은 1995년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에서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고 연구 논의되었으며, 2000년 10월 교육인적자원부(현재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의·법학 전문대학원 제도도입 추진계획안’을 발표하였고, 2001년 3월 14일 산하에 의학전문대학원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수차례의 회의와 두 차례의 공청회,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와의 간담회를 거쳐 8월 말에 ‘의학전문대학원 시행연구’보고서를 마련하였다. 이어서 2002년 1월 16일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도입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도입배경 네 가지를 요약하면, ‘지식기반사회의 전문성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인력 양성 체제 구축’,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받아 의학교육 발전 및 의학의 사회적 역할 다양화 촉진’,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의료교육체제 도입을 통한 의료개방 대비’, ‘뚜렷한 목적과 동기를 지닌 대학 졸업생의 의사가 될 수 있는 길 확대’ 등이었다. 2003년 41개 의대 중 4개 의대, 11개 치대 중 5개 치대가 전환 결정하고, 2005년부터 학사 출신의 전문대학원생을
월요 시론 오성진 <본지 집필위원> “권위” “이런 말을 하면 이런 능력을 가졌다고 알게 되고 그것을 개인들의 권위로 인정해 주듯이, 조직도 그 조직의 말이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연구와 고민의 결과로 나타나면 그것이 조직의 권위를 세우는 기본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 조직의 능력배양에 우선순위를 두고 노력을 하겠습니다.”한국은행의 새 총재로 내정된 김중수씨의 이야기이다. 흘려 읽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는 이야기이고,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우리 사회를 보면 이 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이 보인다.사회의 각 영역에서 합의된 권위가 없이 사회질서는 유지되기가 어렵다이런 점에서 권위는 질서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사회의 질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권위는 신뢰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생각이 된다고 말하는 이유는, 나 자신이 그러한 것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해 본 바도 없는, 치과의사로서 생각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저명한 사회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뢰가 깨어진 사회는 비용이 증가한다”고 그의 저서인 ‘트
월요 시론 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베이비 붐 세대 치의, 주눅 들지 마라 기다려지는 모임 중에 고교 동창들과 토요일 오후에 하는 테니스가 있다. 실력이야 군의관때 하던 가락으로 하는 것이지만 즐기다보면 삼십대로 돌아간 듯하다. 그런데 질펀한 저녁식사 후 그전에는 이차로 이어지던 것이 이제는 첫 월급 탄 아들이 맥주를 쏜다고, 대학생 딸이 피자를 사오랬다고 집들을 일찍 들어간다. 그리고 하나 둘 친구의 직업을 모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다만 막연히 이들이 과거에는 천여 명의 병사를 호령하던 연대장이었고, 온갖 그릇을 팔러 미국을 휘돌아다니던 비즈니스맨이었으며, 공기업의 유능한 부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딱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기가 미안한 시점이 된 것이다. 동창들은 소위 베이비붐 세대(전쟁 후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사람)의 첫 주자로 은퇴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콩나물 교실에서 2부제 수업을 했으며 치열한 입시전쟁을 뚫고 중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대학 때는 유신 반대, 신군부 반대 데모로 휴교도 경험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버지 세대의 권위에는 못 미치고, 다음 세대인 386세대의 말빨에는 못 당하
월요 시론 김신 <본지 집필위원> 의료시장의 유연성 국제학회에서 우연히 만나 안부 교환 수준으로 알고 있는 유럽의 치과대학 교수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이 재직해 왔던 치과대학이 폐쇄되는 바람에 옮겨갈 다른 치과대학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유럽에서는 상당수 치과대학과 병원이 학부교육 과정은 폐쇄하고 진료, 연구, 또는 advanced course의 교육기관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네 생각으로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날벼락 같은 일일 터인데, 그는 오히려 담담하였다. 더구나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다.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에게서 대학 폐쇄의 불공정성에 대한 저항의식이나 억울함의 기색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매스컴을 통하여 우리들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Labor flexibility)이라는 용어를 익히 들어왔다. 이것은 외부 환경변화에 인적 자원이 신속하고도 효율적으로 배분 또는 재배분 되는 노동시장의 잠재력 또는 그 가능성을 의미하는 경제용어이다. 기업주는 원하면 언제든지 기업의 몸집을 키웠다 줄였다 할 수 있어야 경제적 상황의 변화, 특히 위기에
월요 시론 신순희 <본지 집필위원> 꿈꾸는 소녀-김연아와의 동거를 추억함 한 소녀를 보았다. 하얗고 가냘프고 사뿐사뿐 걸어다니는, 그러나 강단있는 눈빛의 소녀를. 처음에는 발레리나인 줄 알았고 운동을 한다 길래 체조선수인가 했었다. 2006년 여름, 남편의 배려로 잠시 병원을 접고 친정식구들과 캐나다를 일주여행을 한 적이 있다. 서부 끝 빅토리아에서 시작한 여행이 밴쿠버를 지나 록키를 넘어 토론토에 이르렀을 때쯤 우리 가족은 숙박비를 절약하기 위해 토론토 변두리의 저렴한 한인 민박집에 머물기로 했었다. 그 집에는 정말 다양한 한국 사람들이 있었는데 우리 같은 여행자는 물론이요 아이들 조기유학을 위해 잠시 다니러 온 부모, 막 이민을 와서 미처 집을 구하지 못한 초보 이민자들, 이민 후 사업실패로 집을 날리게 된 사업가까지 사연은 다양할망정 하나같이 저렴한 주거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잠시의 동거를 하는 소박한 공간이었다. 그곳에 소녀가 엄마와 단 둘이 머물고 있었다. 민박집 주인은 “한국에서는 그래도 전국체전에서 1등 하는 실력”이라 평했고, 옆방 사람은 “2층 넓은 방에 있다가 경제사정 때문인지 1층 문간방으로 옮겼다”고 귀
월요 시론 김재성 <본지 집필위원> 梅一生寒不賣香 이제 3월, 새로운 봄이 시작되려는 것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갑작스레 닥친 꽃샘추위는 몸과 마음을 움츠려들게도 하지만 이런 날씨가 지난 겨울의 미진한 것들을 돌이켜 보게도 하고, 더구나 때 아닌 춘설이 내려 눈발 날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니 불현듯 매화의 내음을 떠오르게 한다. 매화는 사군자의 하나로 그 중에서도 으뜸의 자리에 있으며, 만 가지 꽃을 거느리는 꽃의 제왕으로 칭송되는데 그 매화에 관한 글로 梅一生寒 不賣香 (매일생한 불매향)이라는 구절이 있다. “매화는 평생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아니한다.”는 뜻이 담긴 글로 조선의 학자 신흠(申欽)이 쓴 “野言”에 나오는 칠언절구의 한 대목인데 이는 선조의 사돈이었고 인조반정의 중심에 있었던 그가 진정 그렇게 살았다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살고 싶었다는 것인지는 정확하게 확인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청빈한 삶을 살았던 그의 글귀가 지금의 나에게도 가슴에 와 닿는다. 사군자와 세한삼우, 즉 매화, 난초, 국화, 그리고 대나무와 소나무를 일컫는 말로 이들이 생긴 모양이나 생활 습성이 고상하고 고결하며 절개가 있어 선비들이 가까이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