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론 이 무 건 <본지 집필위원> 사형제 찬반에 대한 소고(小考) 지난 3월 10일,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사건’의 범인 ‘김길태’가 체포된 것을 계기로 사형제 찬반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이런 논란은 흉악범들이 검거될 때마다 되풀이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이귀남 법무부장관이 최근 청송교도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사형집행을 염두에 둔 발언을 함에 따라 더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형제 폐지국은 102개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의 사형제는 아직 유효한 합법사항이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이 사형제에 대해 1996년 재판관 7대2 합헌에 이어 2010년 2월에도 5대4 의견으로 합헌으로 결정했다. 이런 사형제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실시하고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비록 이 사형제가 합헌이긴 하지만 1997년 12월 이후 13년 동안 한 건도 집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매년 사형선고는 계속되고 있지만,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우리나라는 현재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어 있는 실정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수감자는 현재 58명이라 알려져 있다. 1997년 이후 사형이 확정된
월요 시론배광식 <본지 집필위원> 의·치의학 교육제도의 나아갈 방향 의학 전문대학원은 1995년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에서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고 연구 논의되었으며, 2000년 10월 교육인적자원부(현재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의·법학 전문대학원 제도도입 추진계획안’을 발표하였고, 2001년 3월 14일 산하에 의학전문대학원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수차례의 회의와 두 차례의 공청회,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와의 간담회를 거쳐 8월 말에 ‘의학전문대학원 시행연구’보고서를 마련하였다. 이어서 2002년 1월 16일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도입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도입배경 네 가지를 요약하면, ‘지식기반사회의 전문성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인력 양성 체제 구축’,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받아 의학교육 발전 및 의학의 사회적 역할 다양화 촉진’,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의료교육체제 도입을 통한 의료개방 대비’, ‘뚜렷한 목적과 동기를 지닌 대학 졸업생의 의사가 될 수 있는 길 확대’ 등이었다. 2003년 41개 의대 중 4개 의대, 11개 치대 중 5개 치대가 전환 결정하고, 2005년부터 학사 출신의 전문대학원생을
월요 시론 오성진 <본지 집필위원> “권위” “이런 말을 하면 이런 능력을 가졌다고 알게 되고 그것을 개인들의 권위로 인정해 주듯이, 조직도 그 조직의 말이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연구와 고민의 결과로 나타나면 그것이 조직의 권위를 세우는 기본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 조직의 능력배양에 우선순위를 두고 노력을 하겠습니다.”한국은행의 새 총재로 내정된 김중수씨의 이야기이다. 흘려 읽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는 이야기이고,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우리 사회를 보면 이 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이 보인다.사회의 각 영역에서 합의된 권위가 없이 사회질서는 유지되기가 어렵다이런 점에서 권위는 질서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사회의 질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권위는 신뢰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생각이 된다고 말하는 이유는, 나 자신이 그러한 것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해 본 바도 없는, 치과의사로서 생각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저명한 사회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뢰가 깨어진 사회는 비용이 증가한다”고 그의 저서인 ‘트
월요 시론 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베이비 붐 세대 치의, 주눅 들지 마라 기다려지는 모임 중에 고교 동창들과 토요일 오후에 하는 테니스가 있다. 실력이야 군의관때 하던 가락으로 하는 것이지만 즐기다보면 삼십대로 돌아간 듯하다. 그런데 질펀한 저녁식사 후 그전에는 이차로 이어지던 것이 이제는 첫 월급 탄 아들이 맥주를 쏜다고, 대학생 딸이 피자를 사오랬다고 집들을 일찍 들어간다. 그리고 하나 둘 친구의 직업을 모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다만 막연히 이들이 과거에는 천여 명의 병사를 호령하던 연대장이었고, 온갖 그릇을 팔러 미국을 휘돌아다니던 비즈니스맨이었으며, 공기업의 유능한 부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딱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기가 미안한 시점이 된 것이다. 동창들은 소위 베이비붐 세대(전쟁 후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사람)의 첫 주자로 은퇴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콩나물 교실에서 2부제 수업을 했으며 치열한 입시전쟁을 뚫고 중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대학 때는 유신 반대, 신군부 반대 데모로 휴교도 경험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버지 세대의 권위에는 못 미치고, 다음 세대인 386세대의 말빨에는 못 당하
월요 시론 김신 <본지 집필위원> 의료시장의 유연성 국제학회에서 우연히 만나 안부 교환 수준으로 알고 있는 유럽의 치과대학 교수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이 재직해 왔던 치과대학이 폐쇄되는 바람에 옮겨갈 다른 치과대학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유럽에서는 상당수 치과대학과 병원이 학부교육 과정은 폐쇄하고 진료, 연구, 또는 advanced course의 교육기관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네 생각으로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날벼락 같은 일일 터인데, 그는 오히려 담담하였다. 더구나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다.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에게서 대학 폐쇄의 불공정성에 대한 저항의식이나 억울함의 기색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매스컴을 통하여 우리들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Labor flexibility)이라는 용어를 익히 들어왔다. 이것은 외부 환경변화에 인적 자원이 신속하고도 효율적으로 배분 또는 재배분 되는 노동시장의 잠재력 또는 그 가능성을 의미하는 경제용어이다. 기업주는 원하면 언제든지 기업의 몸집을 키웠다 줄였다 할 수 있어야 경제적 상황의 변화, 특히 위기에
월요 시론 신순희 <본지 집필위원> 꿈꾸는 소녀-김연아와의 동거를 추억함 한 소녀를 보았다. 하얗고 가냘프고 사뿐사뿐 걸어다니는, 그러나 강단있는 눈빛의 소녀를. 처음에는 발레리나인 줄 알았고 운동을 한다 길래 체조선수인가 했었다. 2006년 여름, 남편의 배려로 잠시 병원을 접고 친정식구들과 캐나다를 일주여행을 한 적이 있다. 서부 끝 빅토리아에서 시작한 여행이 밴쿠버를 지나 록키를 넘어 토론토에 이르렀을 때쯤 우리 가족은 숙박비를 절약하기 위해 토론토 변두리의 저렴한 한인 민박집에 머물기로 했었다. 그 집에는 정말 다양한 한국 사람들이 있었는데 우리 같은 여행자는 물론이요 아이들 조기유학을 위해 잠시 다니러 온 부모, 막 이민을 와서 미처 집을 구하지 못한 초보 이민자들, 이민 후 사업실패로 집을 날리게 된 사업가까지 사연은 다양할망정 하나같이 저렴한 주거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잠시의 동거를 하는 소박한 공간이었다. 그곳에 소녀가 엄마와 단 둘이 머물고 있었다. 민박집 주인은 “한국에서는 그래도 전국체전에서 1등 하는 실력”이라 평했고, 옆방 사람은 “2층 넓은 방에 있다가 경제사정 때문인지 1층 문간방으로 옮겼다”고 귀
월요 시론 김재성 <본지 집필위원> 梅一生寒不賣香 이제 3월, 새로운 봄이 시작되려는 것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갑작스레 닥친 꽃샘추위는 몸과 마음을 움츠려들게도 하지만 이런 날씨가 지난 겨울의 미진한 것들을 돌이켜 보게도 하고, 더구나 때 아닌 춘설이 내려 눈발 날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니 불현듯 매화의 내음을 떠오르게 한다. 매화는 사군자의 하나로 그 중에서도 으뜸의 자리에 있으며, 만 가지 꽃을 거느리는 꽃의 제왕으로 칭송되는데 그 매화에 관한 글로 梅一生寒 不賣香 (매일생한 불매향)이라는 구절이 있다. “매화는 평생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아니한다.”는 뜻이 담긴 글로 조선의 학자 신흠(申欽)이 쓴 “野言”에 나오는 칠언절구의 한 대목인데 이는 선조의 사돈이었고 인조반정의 중심에 있었던 그가 진정 그렇게 살았다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살고 싶었다는 것인지는 정확하게 확인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청빈한 삶을 살았던 그의 글귀가 지금의 나에게도 가슴에 와 닿는다. 사군자와 세한삼우, 즉 매화, 난초, 국화, 그리고 대나무와 소나무를 일컫는 말로 이들이 생긴 모양이나 생활 습성이 고상하고 고결하며 절개가 있어 선비들이 가까이 하
월요 시론/이무건 <본지 집필위원> 비급여 진료비용 고지 의무화 유감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비용 고지 의무화를 담은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이 2010년 2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애초 복지부가 만든 시행령에 따르면 의료기관 개설자는 비급여 대상의 항목과 그 가격을 적은 수가표를 식당의 메뉴판처럼 만들어 환자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장소에 비치토록 했다. 여기에 더해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는 비급여 진료비용을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공지해야 하며 진료기록부 사본, 진단서 등 제증명수수료 비용도 접수창구 등 환자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장소에 게시하게 했다. 만일 개정안에 명시된 의무사항을 위반할 경우에는 시정명령과 함께 벌금 300만원 및 영업정지 15일의 행정처분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제도의 시행을 며칠 앞둔 1월 하순경, 의료인들의 강력한 반발과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의·의결에 따라 복지부에서는 이 시행령 중 상당 부분을 개선했다. 그 개선안은 비급여 진료비용을 고지할 때 매체를 책자 등으로 다양화시켰으며, 인터넷 초기화면에 가격을 공지하지 않아도 되게 했다. 비급여 대상의 항목과 가격을 기재한 책자의 경우 환
월요 시론 배광식 <본지 집필위원>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기념일에 관해 현 대한치과의사협회는 광복 직후 조선치과의사회가 창립(1945.12.9)하여, 대한치과의사회로 명칭을 변경(1949.5.29)하였고, 1952년 3월 16일 국민의료법 제 53조에 의거해 법정단체인 대한치과의사협회가 되었다. 이후 30여 년이 지난 1981년 4월 25일 경주보문단지에서 개최된 제 30차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에서 서울지부 및 군진지부가 공동으로 ‘치협 창립기념일 제정안(일반안건 제 16호)’을 상정하여 창립기념일을 1921년 10월 2일 조선치과의사회(상기와 동명이나 해방전 단체) 창립총회일로 할 것인지, 6월 9일로 할 것인지 등을 논의하여 10월 2일로 제정한 바 있다. 그동안 별 이의 없이 지내오다가 2004년 8월 협회사 편찬위원회에서 창립기념일에 대한 재검토 의견이 나왔고, 이듬해 대의원 총회에서 언급된 바 있으며, 2008년 말 협회사 편찬위원회에서 변경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 되어 2009년 제 58차 대의원 총회에 변경안이 상정된 바 있다. 미래에의 정확한 방향설정과 굳건한 발걸음은, 역사의 진실에 충분히 맞닿아 있을 때
월요 시론 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아무리 엣지있게 교정 잘하더라도 “ 아저씨… 저, OO인데요…”진료 중 받은 오촌 조카의 급작스러운 전화에 아무리 오래간만이라도 어려서부터 각인된 혈육의 음색이 친숙하다. 쌍둥이로 태어나서 예쁜이로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고,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어려서 이대입구에 있던 조카의 집에는 미제과자가 끊이지 않았고 그 당시는 귀하던 크리넥스 화장지를 물 쓰듯 했으며 나에겐 방의 침대가 생소하기만 했다. 그런데 뒤늦게 교정치료를 받고 여러 문제가 생겼단다. “ 아니, 네가 교정을 할 정도가 아닌데. 미리 의논이나 하지~” 증상을 줄줄이 이야기 하는데 아무래도 너무 황당하고 장황되어 직접 한번 오라고 했다. 조카를 본 것이 이년 전인가. 집안 경사에도 참석 못할 정도로 몸이 안좋다기에 일요일 오후 잠깐 들렀었다. 어둠침침한 좁은 저층 아파트. 늦더위가 한창이었는데도 발이 시리다고 털양말을 신고 화장기 없는 하얀 얼굴로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류마티즘으로 여기저기 관절마다 아팠는데 그래도 이젠 많이 나았다고. 말 없이 주스를 내온 딸이 오랜 병간호에 성숙해진 듯 오히려 더 듬직하게
월요 시론 오성진 <본지 집필위원> 올해도 사랑으로 임하자 요즈음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열광하는 공연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 시절엔 그런 모습이었나를 생각해 본다. 지금의 젊은이들만큼 온 몸으로 열광하지는 않았지만, 속 마음은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당시의 좋아했던 가수의 음반들을 지금도 가지고 있고, 때때로 듣고 있는데, 그 시절의 추억이 은은하게 마음 속을 울리곤 한다. 음악이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큰 것 같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클래식음악은 작곡된 지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며, 여러 연주자들에 의해서 연주되고 있다. 그런데 요새의 젊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노래들의 수명은 너무도 짧은 것 같다. 과거에 비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기법들도 발달되어 있고, 전달수단도 훨씬 발전되었는데, 작품의 수명은 오히려 줄어 들었다. 더욱이 어떤 음악은 한번 연주되고서는 영원히 들을 기회가 없어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내 생각에는 진실성에 있는 것 같다. 오랜 생명을 가지고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 클래식 음악들은 작곡가의 마음이 오로지 그 자체에 심취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