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모든 것을 관장하는 에너지 누구나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그러면서 누구나 그것은 나의 생각이고 나의 행동이라고 합니다. 내가 생각을 내고 내가 생각을 들이고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나의 것’ 이라고 규정짓는 그것은 진정한 나가 아닙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스스로 ‘나’ 라고 생각하는 그것 말고 참나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권합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라고 말입니다. 마음의 중심이 생각과 행동의 중심입니다. 그렇다고 무슨 중심점이 있다거나 말뚝 같은 무엇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마음의 중심을 깊이 음미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중심을 불교에서는 불성이라고 하고 대행큰스님께서는 더 쉽게 ‘한마음 주인공’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자기 뿌리, 자기 근본을 일컫는 말입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이러다가는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닐까 걱정을 한다고 합시다. 걱정한다고 바람이 불기를 그치겠습니까,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을 도리가 나오겠습니까? 나뭇잎은 무조건 뿌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 뿌리에 의
황|규|선|칼|럼| 박제상과 클린턴 황규선 <치과의사·철학박사>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의 평양방문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갑작스런 일이기도 하고 만 하루도 안 되는 시간에 정상급의 회동이 이뤄지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정치권에서 회자되는 쓸데없는 잡설(대통령의 메시지가 있느냐 없느냐 등등)에는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그 신선한 충격은 가히 뇌성벽력에 비길 만하다. 평양에 억류된 젊은 두 여기자들이 전세기에 오르는 장면을 보면 힘든 시집살이하는 딸을 맞이하는 친정아버지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141일간이나 불안에 떨던 엄마가 3살 난 딸을 안고 흐느끼는 장면을 보고는 人間愛의 극치를 가슴으로 느끼며 흐르는 눈물을 어이 참을 수가 있으랴.아마도 인간 양심 기저부에 있는 이 참사랑을 실천하는 시민의식이 복잡 다사한 미국을 이끄는 원동력일 것이다. 클린턴은 누구인가?전직 대통령이기도 하고 미국 정가의 제2인자인 힐러리 국무장관의 남편이 아닌가.반면 두 여기자는 미국시민권을 갖고는 있지만 로라 링(Loura Ling)은 중국계 2세이고 유나 이(Euna Lee)는 한국계 2세이다. 비록 흑인 2세가 대통령이 되기는 했어도 아직도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있는
배광식 <본지 집필위원> 다문화사회에 대한 인식의 전환 1902년 12월 22일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상투 틀고, 쪽찐 121명의 하와이 이민 희망자가 봇짐을 지니고 인천항을 떠나, 하와이 호놀룰루로 향한 것이 우리나라 공식 이민의 시초였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은 재외동포가 약 700만 명에 가깝다고 한다. 지금은 이민 후세대 재외동포들의 피나는 노력과 대한민국 국력의 신장으로 재외동포들의 지위도 많이 향상된 셈이지만, 초창기 이민자들의 생활은 중노동과 고통,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작년 6월 13일에 인천 월미공원에 한국이민사박물관이 개관되었으니 한 번씩 참관할 만 할 것이다. 국민소득의 증가와 편안한 것을 추구하는 사회분위기로 인력난을 겪는 3D(Difficult,Dirty,Dangerous) 업종에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면서, 우리나라는 인력의 해외진출이 주였던 나라에서, 외국인 국내진출 및 거주가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결혼이민자까지 가세하여 급격히 외국인 거주자가 증가하고 있다. 올 5월 1일 기준으로 국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110만명을 넘어서 한국 인구의 2.2%에 달하고, 작년(89만 여명)보다 무려 24.2%
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누구나 다 부처로 태어났다는데… 우리들은 누구나 다 부처로 태어났고, 부처 될 자격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부처로 되돌아가야 하고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우리에게 세상살이는 여전히 힘겨운 두려움으로 다가옴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마음에 휘말려서 살지 않으려면 먼저 자기가 부처임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믿는 마음이 강해야 합니다. 고향이 어디인 줄 알고, 갈 마음이 있다면 길은 이미 밝혀져 있으니 나서기만 하면 누구나 도달하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미물까지도, 저 바위와 같은 무정물까지도 마침내는 부처를 이룰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물며 인간임에야. 그러니 마음공부는 어려워서 나 같은 사람은 아예 못하겠다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또 남들은 잘되는 것 같은데 나는 늦는다, 시원치 않다 하는 염려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내 근본은 본래 부처이고, 결국은 나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부처 자리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으면 언젠가는 나도 부처가 됩니다.
월요시론 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실종되는 치과의사들 한 단골환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 친구 아들이 교정치료를 받고 있는데 그 치과가 소식도 없이 문을 닫은지 오래고 전화도 불통이라고 대신 좀 봐줄 수 없느냐고 했다. 그 원장님이 다음에 오면 장치를 풀고 보정기를 끼기로 했다고, 그 학생이 유학생이라 시간도 없으니 대신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한다. 교정이야 당연히 주치의가 끝까지 보아야 하지만 딱한 생각이 들어 마무리만 해주면 되겠다 싶어 오라고 했다. 환자는 중국에 유학중인 남학생인데 더벅머리의 순진한 표정이었고 어머니는 약간 다리를 절었다. 형편도 그리 넉넉해 보이지는 않은데, 교정비에 유학비에 얼마나 살림이 빡빡할까 생각이 들었다. 어이없는 일을 당해 황당한 표정의 모자에게 걱정이 많았겠다고 하니 그래도 그전에 원장님이 잘해주어 다른 환자도 소개해드렸다며 적개심은 나타내지 않는 착한 심성이었다. 그런데 입안을 보니 교정이 아직 구만리였다. 정중선은 틀어지고 턱도 편위된 상태고 교합도 안맞았다. 유학으로 오랫동안 고아처럼 내봉처진 느낌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해당 구역의 구회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난처한 목소리로 우
종|교|칼|럼| 삶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마음 마음이란 깊고도 신묘합니다. 마음공부는 내가 죽는 공부입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마음의 때를 벗겨 내는 것은 ‘나’라는 상(相)이 죽는 길입니다. 그렇게 죽으면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니 마음공부는 참나를 발견하는 공부입니다. 마음의 보배 창고는 퍼내도 퍼내도 줄지 않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의 능력을 굳게 믿고 바르게 쓸 때에 그 힘을 느끼게 됩니다. 생활 속에서 이 점을 체험해야만 비로소 마음이 그대로 묘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보배 같은 마음을 바르게 쓰지 않고 독사처럼 쓰는 사람도 있으니 딱한 일입니다. 그 인과응보엔 한 치의 에누리도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마음이 밝으면 안으로도 금빛 태양이 찬란히 밝아 빛으로 충만케 되고 아주 원만해지지만 마음이 어두우면 마치 천년 동굴 속 같아서 어둠을 면치 못하고 도무지 여여(如如)하게 살 길이 막연해집니다. 그러면 내 몸속에서도 간 공장, 위 공장, 폐 공장, 심장 공장이라 할 수 있는 각 장기마다 전기가 끊겨 잘 돌아가질 않고 때로는 파업이 일어나서 전체가 위협을 받게 됩니다.지금 가난하
김 신 <본지 집필위원> 질병의 책임 우리는 환자의 심한 질병상태를 맞으면서 흔히 환자의 자기 관리 실패를 나무란다. 치과의 양대 질환으로 꼽는 치아우식증과 치주질환은 환자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질병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치과의사들은 환자의 잘못된 구강위생습관을 고쳐주고 아직 습성화되지 않은 올바른 구강위생 관리능력을 높이려 애쓴다. 이것은 비단 질병이 생기기 전 단계 뿐 아니라, 질병을 치료한 이후에도 치료결과의 예후를 좋게 하고 수명을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울이는 이러한 노력에 비례하여 환자의 관리 수준이 과연 높아지던가? 오랜 시간을 통하여 습득된 환자의 습관이 한 두 번의 위생교육을 통하여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이다. 사람을 바꾼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이들에게 강력하고 절박한 동기가 부여되지 않고서는 결코 비가역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목숨이 오가고 수명에 영향을 미칠 그럴 정황이 치과 질환에서는 좀체 찾기 힘들지 않은가? 질병 관리를 위해서는 환자 본인의 자기 관리가
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고정된 것은 본래 없으니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을 위대한 존재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항상 모자라고 미흡한 존재라고 생각하기가 오히려 쉬웠을 겁니다. 그런데 물질적으로는 허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이 위대하다고 하는 이유는 빛나는 영성, 즉 불성(佛性)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불성은 만물이 다 가지고 있지만 그것의 위대함을 알아차리고 드러내고 각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밖에는 없습니다. 태양의 힘이 아무리 위대하고 우주가 아무리 광대하더라도 조그마한 내 마음만은 못합니다. 내 마음의 빛은 어느 것으로도 가릴 수 없고 내 마음의 힘은 그 무엇으로도 꺾지 못합니다. 그래서 첫째도 마음, 둘째도 마음입니다. 부처님과 통하는 길, 신과 통하는 길은 내면의 한 구멍, 마음뿐입니다. 그러므로 밖에서 찾지 말고 안으로 마음을 찾아야 합니다. 팔만 사천 법문도 간추리면 ‘마음’ 한마디로 모아집니다. 그래서 이심전심으로 따로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不立文字) 하였습니다. 진리는 그런 것입니다. 복잡한 학설이나 이론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마
황|규|선|칼|럼| 황규선 <치과의사·철학박사> 北海賓館(북해빈관) 천하명산 하면 우리는 금강산을 일컫는 말이다.한반도에는 빼어난 명산이 수없이 많지만 보편적으로 인간의 발길이 잘 닿는 곳이라야 경관도 구경하고 마음도 수련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기 때문에 아기자기한 기암괴석과 각종초목(草木)이 묘하게 어우러진 금강산을 천하명산이라 하는 것 일게다.금강산은 해발 천 미터를 전후한 통칭 일만 이천 봉이 예술적인 집합을 했음에 묘미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나 동해방면으로 산세가 이어지면서 푸른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해금강에 이르면 어찌 감탄이 없을 것인가. 한문 문화권(漢文 文化圈)에서는 유려한 명문시가로 中國의 오악(五嶽)을 묘사한 대문호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있다.그러나 그 수많은 시인문객들도 黃山(황산)을 보고나서는 다시 오악을 찬탄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황산이 왜 유명한가.황산은 해발 1,700m가 넘는 주봉을 위시해서 평균고도 1,500m나 웃도는 고원으로 되어 있고 그 방대한 고원을 깃점으로 2~300m의 육산(肉山)이 무수히 점재한 가운데 아열대성 기후로
.VBN_42585 {WORD-BREAK: break-all; font-family:굴림;font-size:9pt;line-height:normal;color:#000000;padding-left:10;padding-right:10;padding-bottom:15;padding-top:15;}.VBN_42585 p, .VBN_42585 td, .VBN_42585 li{font-family:굴림;font-size:9pt;color:#000000;TEXT-DECORATION:none;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42585 font{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97131{font-family:굴림; font-size:9pt;}월요 시론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여우는 혀로 새 이를 핥아 보았습니다. “햐 정말 기분 좋은데!" 그러고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난 이 생쥐들을 잡아먹어서는 안돼. 하지만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 직업이 치과의사이다보니 어딜 가더라도 본분을 잊지않고 치과와 관련이 있는 기념품을 찾고 서점에서도 이에 관련된 책에
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누구나 부처될 자격이 있으니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깨달아서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99%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생각이 중생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나를 앞세우는 삼독(三毒)의 마음이 꽉 들어찼으니 부처이면서 부처 생각을 못하는 것입니다. 삼독이란 가장 근본적인 세 가지 번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인 탐진치(貪瞋癡)를 이르는 말입니다.우리들 누구나 불성(佛性)을 지니고 태어났고 불성을 지녔으므로 본래부터 성불(成佛)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닦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고(苦)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본래부터 부처라서 근본 이치로 보자면 닦을 것도 없지만 그것을 믿지 않고 모르기에 본래의 자부처가 발현되기까지 닦아야 합니다. 나무를 쪼개 보아도 그 속에서 꽃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꽃을 피우는 잠재된 힘은 그 속에 있습니다. 그렇듯이 깨달음에 이르러 성불할 수 있는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인간은 더 말할 나위 없이 면면이 다 부처입니다. 우리들 누구나 본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