弔崩御岩 (조붕어암) 삼가 명복을 빕니다.2009년 5월 23일은 서글픈 날 이었습니다.초여름 가랑비가 산야를 적시는 가운데 비보가 전해졌습니다.가신님의 영혼을 애도하는 눈물 같은 보슬비가 내렸지요.63세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님이 가신 날 이었습니다. 서민정치인으로 일관했던 대통령! 아쉬운 생애를 권위에 연연하지 않고 서민과 함께 정치무대를 만들어 보였던 수승한 평민대통령이셨지요. 참으로 애절하고 아쉽습니다.지나치게 순박한 탓 이었을까요. 아니면 治世의 술수를 외면한 탓 이었을까요.역사의 흐름과 정치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암수가 있음을 짐짓 무시해 버렸기 때문이겠지요.왜 하필이면 생애의 공과를 공개적으로 평가받아야 될 즈음에 침묵으로 대항하려 하십니까.大人다운 풍모로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다시는 국정이 변칙적으로 자행되지 않을 방도를 천명하셨어야지요. 숨긴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 답답하기만 합니다.허물은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님의 그 깊은 뜻을 어이 헤아려야 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불행이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어이해야 하겠습니까. 남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주셨군요. 우선 의식수준을 한층 높여야 하겠지요. 도덕적 양심이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이 세상에 괜히 태어났다, 어쩌다가 잘못 태어났다고 한탄하는 사람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개구리 한 마리, 저 날짐승 하나, 풀벌레 하나도 괜히 태어난 게 아닙니다. 태어날 만하니까 태어난 것입니다. 수십억 년 전으로 돌아가서 본다면 인간은 물에서 살다가 겨우 물 밖으로 나왔고 갖은 우여곡절 끝에 돌고 돌아서 지금 인간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생명에 대한 갖가지 교육을 받은 셈입니다. 그 과정의 시련과 고난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찰나찰나 죽고 사는 생사의 고비를 넘겼고 때로는 새나 짐승의 몸으로 쫓고 쫓기는 천차만별의 시련도 겪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이 되었는데 그런 반복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차원의 높낮이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인간의 몸을 받아 나와서 나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차원의 승화를 도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과거 미생물에서부터 수없는 나날들을 거치면서 스스로 애쓰고 노력한 끝에 진화하고 또 진화해서 인간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어찌 잘못 태어났다든가, 원치 않는 인
박 용 호 <본지 집필위원> 왜, 이리 항상 골프가 문제인가 일전에 국방부에서 군의관들이 평일 근무시간 중에 골프를 쳤다고 대대적으로 구속을 하고 난리법석을 친 사건이 있었다. 급기야는 형평성이 문제되자 장성을 포함한 모든 장교 및 군무원까지 파급되어 언론에서도 무슨 큰일 일어난 듯 연일 떠들다가 북한이 미사일 발사하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그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참, 아직도 별것을 다 뉴스 감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국방부가 그랬든 언론이 그랬든 우선 호칭부터가 군인 보다는 ‘군의관’이라고 함으로써 의사들이 군대에서 또 일을 저질렀다는 선입견을 준 것이다. 일반장교와 똑같은 대우와 월급을 주면서 왜 하필 이럴 때는 별칭을 써야 하는가. 이것은 은연중에 학생 때 자기들보다 공부 잘 했던 의사들에 대한 반감과 시기심과 열등감을 표출한 것에 다름 아니다. 평일 골프라고 하지만 아마도 수요일 전투체력의 날 오전 근무 일찍 끝내고 모처럼 기분을 낸 행사였을 것이다. 그 이외 다른 날 골프를 칠 간 큰 군의관은 없었을 것이다. 필자가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25년 전에도 이미 발 빠른 군의관들은 그걸 했는데 지금까지도 위수지역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은 철칙입니다. 금생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은 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의 결과입니다. 내 살아온 모습이 금이면 금방에 태어날 것이고 무쇠 차원이면 무쇠전으로 가서 탄생이 될 것이고 넝마 같았다면 넝마전에 나앉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출현하는 모습은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악업·선업으로 지은 인연들이 내 속에 모두 주둔해 있다가 그 양상대로 표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을 어떻게 사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 생활이 이만하면 됐다, 나만큼 잘 하고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사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인간이면 누구나 자기 나름의 차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바로 마음공부를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음공부야말로 지금 이 순간의 이 상태, 이 처지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상태로 진화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받은 인생의 배역에 따라서 다음 순간의 삶으로 연결됩니다. 따라서 인생 배역을 지금 이렇게 받은 이상 소임을 충실히 하면서 선하게
월요시론 김 재 성 <본지 집필위원> 내 子息은 이렇게 기르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살아 온 나날이 반백년은 넘었고 이 세월을 돌이켜 볼때 마음에 남는 것은 대부분이 자식에 관한 일들이다.그리고도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걱정과 바람도 나 보다는 자식들에게 있으니 이런 다정(多情)은 집착이 아닌가 싶다. 많은 서양인들은 성년이 될 때까지 보살피고 교육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면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으로 보는데, 우리의 사고방식은 낳아서 기르고 가르치고 능력이 허락한다면 경제적인 힘까지 보태어 사회로 나가는 첫발도 남보다 더 앞서 나아가게 해주어야만 부모로서 할 일을 다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미가 자식을 보살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종족보존과 유지라는 큰 의미를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것으로 모든 어미는 자식을 돌보지만 그 어느 무리나 개체보다도 자식 사랑에 모든 힘을 다하는 종족을 찾는다면 한국의 부모가 으뜸이다. 이런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금까지의 효심과 우애로 뭉쳐지는 한국적 가정문화를 이루는 근본은 되었지만 그와 더불어 “자식의 삶이 내 삶이요, 자식의 실패는 내 책임”이라는 지나친 사랑으로 이어져 자식
김 신 <본지 집필위원> 아날로그적 발상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디지털은 너무나 익숙한 물건이다. 아무데나 널려 있다. 처자를 떠나보낸 기러기 치과의사의 눈물을 쥐어짜게 만드는 인터넷 화상통화, 어디건 데려다주는 네비게이터, 바지주머니 속에서 세상을 연결해 주는 휴대폰… 그리고 치과 진료에 이제 디지털 X-ray는 필수장비가 되어가고 있다. 숨쉬는 공기 중에도 디지털은 섞여 있을 것 같다. 디지털이 현대생활에 필수적인 도구가 되어가면서부터 아날로그는 디지털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디지털은 최첨단 신기술을 등에 업은 편리함의 대명사로 이해되는 반면, 아날로그는 과거의 느리고 불편했던 낙후한 기술이자 골동품으로 파악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간혹 가지게 된다. 지도를 들고 초행길을 운전하다가 길을 잃어 차창을 내리고 촌노에게 길을 물었을 때 물씬 풍겼던 고향 냄새는 이제 네비게이터가 빼앗아 갔다. 이메일이 아닌 육필로 쓴 편지를 받아본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의 체취와 마음이 묻어나는 글씨와 편지지, 봉투가 그리울 때가 있다. 디지털
황|규|선|칼|럼| 황규선 <치과의사·철학박사> 대의원 총회 단상 1996년 힐튼호텔에서 개최되었던 대의원총회 이후 13년 만에 참석하게 된 제 58차 대의원총회는 가히 격세지감을 자아내게 하는 큰 충격이었다.우선 치협 자신의 건물이라는 자부심에 흐뭇했고 경향 각지에서 운립한 회장단 및 대의원들의 인상과 거동에서 자신감과 의연함을 보면서는 더욱 고무 되였다. 협회장 상근제 일년간의 중간 평가이기도 한 이번 총회는 치과계의 위상을 가늠해보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구강보건전담부서의 부활이라든가 의료관련 각종 법안에 대응하는 신속한 대처는 명실공히 치협이 의료분야에 중심이 된 듯한 인상마저 느끼게 한다.공교롭게도 내빈으로 오신 국회의원이 모두 미모의 여성의원들만 이어서 양성평등 사회에 오히려 평형성이 깨지는가하는 의아심이 들기도 하였다. 또한 각종 현안 심의과정에서 지루한 난상토론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인데 이를 예방이라도 하듯 남성합창단의 출현은 가히 분위기 메이커로서 훌륭한 처방이었다.이수구 회장이 치과계의 현안을 간단명료하게 언급함으로써 치과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마음, 무한한 능력의 보배 창고 한때 시크릿이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걸 기억합니다. 아마 지금도 베스트셀러 계열에 올라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책은 당신이 원하는 걸 무조건 열심히 생각하기만 하면 그대로 되어지이다 하는 것을 주문처럼 이야기했으며 그 말은 큰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활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분명히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본질, 그 생명의 에너지에 대해서는 조금만 언급해 놓고 활용에만 너무 주안점을 두는 바람에 어떤 초등학생 아이가 ‘내가 게임만 하고 있어도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만을 열심히 생각하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어른인들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걸 성취한다는 건 참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 사는 뜻을 거스르지 않아야 하며 나만을 위한 것이 되지 않아야 할 터인데 그런 성숙한 마음을 알기 이전에, 쓰는 사람의 용도가 이기적이고 제한적이라 오직 내 것만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위대한 마음의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르느니만 못한
깊고 간절한 마음의 등(燈)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부처님 오신날이 되기 한 주 전에는 불교계 전 종단을 아우르는 대규모의 봉축행사가 항상 펼쳐집니다. 연등축제에 참가하는 축제의 행렬이 이어지고 대동한마당이 펼쳐지며 온갖 문화체험들을 할 수 있는 장(場)들이 열립니다. 그 향연에 불자들은 길게는 일년 짧게는 몇 달동안 준비한 장엄등과 손수 만든 갖가지 모양의 등을 들고 동참하게 됩니다. 저희 선원에서도 수많은 불자들이 지난 12월부터 꼬박 5개월동안 장엄등 제작에 참여하고 연희단을 구성하여 공연 연습을 하였으며, 공부만 해도 늘 바쁜 학생회 법우들까지 종로에서 펼쳐질 시민들을 위한 포교 한마당을 준비했습니다. 왜 그렇게들 열심히 하는 것일까요?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 겨우 붙어 있는 직장도 오늘 내일이 불안하다는 요즈음에 무엇을 위해 이 분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절에 나와서 장엄등을 만드느라 밤을 새울까요? 등(燈)이라는 것은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물건입니다. 자신을 태운다는 것은 자신을 죽여서, 자신을 낮춤으로 그 빛이 세상을 밝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부처님 재세 당시 가난한 여인
“돌아가신 아버지 지갑 속에서 우연히 복권 세 장을 발견했지요. 이 복권을 보고 한국 남성들에 대한 연민이 밀려왔어요.”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의 ‘남자 VS 남자’(개마고원)라는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젊은 나이에 아내를 잃어 홀로 아이들을 키웠고, 어느 날 갑자기 길에서 쓰러져 돌아가셨다는 그의 아버지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서서히 죽어간 전형적인 한국 남성으로 정박사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지갑 속 복권 세장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도 이상하게 지금껏 잊혀지지 않는다. 어딘가에 강렬한 공감을 느꼈던 것 같은데, 그걸 보고 한국남성들의 소통능력 부재에 연민을 품은 정혜신 박사에게도 공감을 느끼긴 했지만, 복권 판매소에서 산 복권 세장을 죽는 순간까지 지갑 속에 고이 간직했던 그 아버지에게 더 큰 공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내 생각에 아마도 그 아버지는 지갑 속에 꿈 세 조각을 간직했었을 것이다.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은 소망, 뭔가 다른 삶에 대한 상상, 혹시 당첨될지도 모른다는 설렘 따위의 꿈을 말이다. 누구나 마음의 지갑 속에 각기 복권 세장쯤은 지니고 살지 않을까. 돌아오는 연
불교에서의 연기법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세상 모든 것이 하나의 개별적인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이라는 관계에 의해 원인과 결과로서 연기(緣起)하여 일어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연기법을 화엄경에서는 인드라망이라는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드라는 한역(漢譯)하면 하늘의 신 중에 하나인 제석천(帝釋天)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 제석천의 궁전에는 많은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 즉, 인드라망이 있는데 그 그물은 한없이 넓고 이음새마다 구슬이 있으며, 그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비추어 주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또 그 구슬들은 서로를 비출 뿐만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져 있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만물이 서로 그물처럼 얽혀있다고 하는 인드라망의 비유가 불교에 있다면 현대 물리학에서는 그걸 이렇게 말하고 있더군요. ‘어떤 사건이나 어떤 존재도 홀로 일어날 수 없다. 다만 겉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다.’ 라고요.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세계의 실상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를 비추고 비추는 밀접한 관계 속에서 큰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서로가 서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