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 문화를 우러러보던 시절이 있었다. 문화가 갖는 무형의 힘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던 시절에 할리우드에서 쏟아져 나오는 영화를 통해 수많은 대중들은 자연스럽게 악한 것과 정의로운 것에 대한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세뇌당했었다. 팝의 영향도 대단했다. 필자는 그리 해박한 문화해설가가 아니기에 단지 그냥 즐겼던 평범한 젊은 시절을 그린다면 당시에는 가요보다 팝에 열광했었고 그 노랫말의 저항성을 젊음의 상징인 양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렇듯이 문화가 갖는 힘은 대단하다. 국가나 정권이 요구하는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사회를 이루고 있는 기존 가치체계를 뒤엎고 새로운 가치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기도 한다. 21세기 들어 문화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미국 유럽만이 문화 강국이던 시대가 서서히 아주 천천히 동양권으로 이동되고 있었다. 1990년대 말부터 일어났던 동양 문화의 바람을 이끈 나라는 바로 우리나라였다. 처음에는 아이돌 댄스그룹들이 열광을 시켰고 이어 드라마에 담긴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가 한류로 불리우며 동남아권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제 한류는 K-팝의 이름으로 전
50대 후반의 나이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입니다. 좋은 꼴 싫은 꼴을 많이 보기도 하고, 또 보여주기도 했을 텐데도 지금껏 잘 참아낸 당신의 인내에 경의를 표합니다. 지금 당신은 더 이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받지 못한다는 체념으로 가득 차, 힘없이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가련한 처지가 아닙니다. 세월이 만들어준 순화된 감성은 다른 이들의 원함을 더 잘 받아들이고 보듬어줄 준비가 된 것이고, 은은한 미소가 만들어낸 주름은 넉넉하고 너그러운 사람으로 인정받게 해주었고, 느릿한 음성은 굳이 힘껏 내지르지 않아도 저 멀리까지 당신 마음의 소리를 퍼지게 해주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차귀도는 죽도, 지실이섬, 와도의 세 섬과 작은 부속 섬을 거느린, 제주에 있는 무인도중 가장 큰 섬이라고 합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아름답고 다양하게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근처의 수월봉 높은 정자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평안한 느낌과, 지금처럼 약간 북쪽의 해안 둘레길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또 다르게 다가옵니다. 평안히 누워있는 망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힘차게 대양을 향하는 고래이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무엇일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우리가 조는 것은 피곤이 쌓인 일상의 흔한 반영이다. 월요병이란 주말에 주중의 피로를 풀고 더 쉬고 더 자고 나도 월요일에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현대사회에서 월요병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겪지만, 출근을 하는 직장인과 등교를 하는 학생에서 두드러진다. ‘병’이라고는 명명되었으나, 보통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은 아니다. 주말 동안의 달콤한 휴식과 잠에 대한 미련, 반대로 다시 한 주를 시작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과 긴장감으로 흐트러진 생체리듬으로 우울감이나 스트레스성 두통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는 월요일뿐만 아니라 즐거운 휴가 기간 후에도 비슷한 현상을 겪는다.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을 가진 경우에는 낮시간의 졸음이나 피로, 수면의 질 저하, 흐트러진 생체리듬으로 인한 개운하지 못한 상태는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건강한 수면은 우리 인체의 기능을 유지·회복하는데 필수적이다. 잠을 잔다는 것은 동물계 전체가 공유하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수면 구조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은 특별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인간과 계통학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하는 원숭이, 침팬지, 고릴라,
아침 햇살에 따듯함을 기대하면서 빼꼼히 창문을 열면 포근한 느낌보다는 제법 쌀쌀한 기운이 바람결에 성큼 들어옵니다. 일교차가 꽤 나서 몸이 웅크려질 지경입니다. 어느덧 올해가 9월도 마지막 주로 접어들어 바야흐로 가을의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30도를 훨씬 넘는 날들이 이어져서 꽤 무더웠고, 하늘이 찢어진 듯이 퍼부어대어 많은 침수 피해를 내었던 폭우, 그리고 연이어서 찾아온 태풍은 대비한다고는 했어도 많은 분들을 힘들게 했지만 그런 여러 가지로 힘겨웠던 여름이 그래도 시간이 지나가니 어느덧 멀리 가버리고, 절기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도록 하는, 아침, 저녁으로 결실의 계절 기운을 느끼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가을에는 가까운 교외에서 코스모스의 여린 모습을 볼 수 있고, 산에라도 가면 오르내리는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겹겹이 낙옆이 쌓여서 걸을 때마다 나는 바스락 소리에 절로 시인의 감성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단풍은 곱게 물들어 우리 모두의 마음을 때론 붉게, 때론 노랗게 바꾸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찾아오는 봄이 앞으로에 대해서 생명의 시작과 설래임이 있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왠지 만남, 그리고 그 이후에 느껴질 그리
지난 5월, ‘구강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아동 치과주치의 사업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아동 치과주치의 사업은 앞서 시행한 여러 나라의 사례가 있고, 우리나라 또한 서울과 경기, 부산 등 여러 지자체 중심의 사업 시행을 통해 그 효과를 입증한 바 있다. 아동 치과주치의 사업의 목적은 치과의료 이용의 접근성, 특히 예방서비스 수혜율 향상과 사회 경제적 수준에 의한 구강건강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다. 2012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0년을 맞이하게 되는 아동 치과주치의 사업은 지금까지의 시행경험을 바탕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줘야 할 때가 됐다. 이에 실제 사업에 참여했던 치과위생사와 아동 치과주치의 사업을 맡았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인터뷰를 통해, 성공적인 아동 치과주치의 사업을 위한 의견을 모아봤다. 첫째, 아동 치과주치의 사업은 체계화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팀워크에 의해 움직여야 하므로, 공유된 정보와 각 직종별 활동에 대한 구체적 업무 지침서나 매뉴얼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치과위생사들은 아동 치과주치의 사업에 참여할 때, 우선 참여 여부에 대해 해당 기관장에게 통보받고, 그 뒤 관할 보건소로부터 안내 절차가 담긴 방대한 양
알프스 산맥의 많은 산 중에서도 가장 높다는 몽블랑(Mont Blanc, 해발 4,807m)은 ‘흰 산’ 이란 뜻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계에 위치하여 국경분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실제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닌, 자존심 싸움에 가까운 것입니다. 관람을 위해 방문한 에귀뒤미디(Aiguille du Midi, 해발 3,842m, 한낮의 바늘) 봉 정상에 설치된 전망대는, 프랑스의 샤모니 마을에서부터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는데, 정상부근을 빠른 속도로 오르내릴 때는 놀이기구를 타듯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늘 함께하면서도 특별한 느낌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것, 그것은 바로 ‘공기’입니다. 실제로 공기에도 무게가 제법 있어서, 1기압에서는 1세제곱미터 당 1.2kg이나 됩니다. 단시간에 고지에 빠르게 오르면서 산소부족으로 나타나는 증세가 고산병인데,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구토 증세와 호흡 곤란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늘 곁에서 지켜 주고 있었으나,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감사함도 표하지 못하여, 떠난 뒤에야 비로소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은 못난이들의 숙명입니다. 휘청거리게 취했을
지난 8월 22일 치의신보 평론에 통합치과학회의 성찰과 역할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의도치 않게 어떤 한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오해와 반발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의도와 상관없이 아니면 본질에서 빗나간 기사가 문제가 될수 있음을 인지합니다. 제 자신이 학회의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학회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그동안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고자 하는 충정이었으나 학회에서 받아들이는 시각은 다르게 본 결과로 생각하고 정정보도를 요구한 바, 이를 수용하고 한 달간 나에게 쏟아진 비난을 감수하며 다시 펜을 잡았습니다. 저의 지난 평론에 대해 먼저 학회와 학회 모 이사의 첫 번째 질문은 “본인의 직함은 무엇입니까?” 라고 질의를 하였습니다. 내부고발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당당히 학회 부회장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내부총질 이라는 표현으로, 왜 학회를 바로 잡아보려고 하지 않았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학회의 부회장겸 치과의사문인회장으로 직함을 갖고 있으나 협회에서 평론을 의뢰받고 글을 쓰면서 어느 학회를 대표하는 직함보다 일반적으로 글을 쓰는 일과 관련이 있는 치문회장이라는
필자의 담당 교과목인 공중구강보건학 실습의 경우, 코로나 이전에는 보건소, 노인요양원, 초등학교, 수불사업 정수장 등 지역사회 현장 참여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실습은 전면 중단되었고, 궁여지책으로 TBL(팀기반학습) 교육 방식을 도입하여 토론과 발표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2022년 2학기를 맞이하면서, 코로나19 정부 방역기준이 완화되었고, 드디어 이번 2학기 부산대학교 학생 교육은 전면 대면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보건소 구강보건사업 견학과 노인요양원 구강보건교육 및 전문가구강관리 실습은 해당 기관의 협조를 구하지 못해, 새로운 실습 현장을 물색해야만 했다. 특히 진료실 안이 아닌 밖에서의 대상자 구강보건교육 및 구강관리 실습은 공중구강보건학 실습의 중요 교육과정으로, 필자에겐 이번에 2년 만에 다시 맞이한 대면 실습에서 학생들에게 꼭 교육시키고픈 의지가 컸다. 한편, 코로나19가 완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올해 초, 부산지역 이주민 대상 무료 의과·치과 진료소가 다시 재개되었고, 충치치료와 발치, 스케일링 중심의 치료뿐만 아니라, 이들의 구강건강관리능력 향상을 위한 칫솔질 교육과 전문가칫솔질을 도입해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이
얼마 전, 우리 치과 옆에 있던 백화점이 문을 닫았다. 단일 점포 백화점으로서는 서울에서 유일한 백화점이었다. 27년 동안 성업했던, 이 동네의 랜드마크 백화점이었는데 코로나19라는 악재를 견디지 못 하고 결국 폐업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명품 백화점은 아니었지만 나름 인지도 있고, 나름 가성비 좋은 물건들이 많은 백화점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없어지고 나니 자주 가서 사 입고 사 먹고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치과 주변에 있던 치과 두 개가 1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요즘 떠오르고 있는 상권으로 떠난 것 같다. 우리 치과가 입지한 동네는 지하철 4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4호선 출구 주변은 오래된 상권이고 7호선 출구 주변은 새 상권이라 할 수 있다. 재래시장을 앞세운 오래된 상권의 세력은 막강했었다. 새 상권이 생긴 후로도 오래된 상권의 세력은 좀처럼 쇠하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한 백화점도 오래된 상권에 있었다. 그런데 멀리 떨어진 곳에 터널이 하나 뚫리더니 흐름이 바뀌었다. 그 터널로 통하는 긴 대로가 새 상권과 만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새로 지어지는 건물은 모두 새 상권에 자리하고 있다. 새 상권 주변의 주거지역이 마
우즈베키스탄에는 130가지가 넘는 민족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 중 공식 통계상으로는 80% 이상이 우즈벡인이며 인구는 약 3,400만 명으로 구 소련의 구성국이던 중앙아시아 5개국 중 인구가 가장 많다. 우즈벡인은 동서양이 조화된 느낌이 있어 미인의 나라로 알려져 왔다. 한가인이 밭을 갈고 김태희가 소를 몬다고 하는 농담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인터넷에 떠도는 대부분의 사진들은 우즈벡인이 아니며 러시아계 혼혈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인구 중에 1% 이상이 고려인이란 사실이다. 타슈켄트 국립치과대학내에서도 심심치 않게 한국계 교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이곳에서 뿌리를 내린 3세들이었다. 외모와 풍속은 같았으나 점점 우리말과 문화를 잃어버려 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최근 타슈켄트 대학내에 불고 있는 퇴보의 바람은 그간의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나라를 진정으로 생각하며 일어났던 애국 민족주의자들이 권력 앞에 허무하게 죽어갔던 슬픈 우즈벡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았다. 약 10여년전 필자의 학교를 찾아와서 의욕을 가지고 자신들의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공부해서 남 주냐’라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만큼 공부하면 공부한 자신한테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맞는 말이죠. 하지만 살다 보니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것이 공부이고 그 공부를 통해 남에게 많이 줄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학생 때 입시를 위한 공부와는 또 다른 공부의 세계는 늘 있었습니다. 대학에서의 공부, 직업을 유지하기 위한 공부, 새로운 영역의 확장을 위한 또 다른 공부, 취미를 제대로 즐기기 위할 공부, 부모가 되기 위한 공부, 자녀를 제대로 키우기 위한 공부 등 쉴 틈 없이 우리는 공부를 해 왔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은 이 사회를 이해하고 또 사회 구성원을 사랑하고 살아가기 위한 밑거름이 됩니다. 최재천 교수님은 이런 공부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분입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알아가려는 노력이 축적될수록 이해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