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파워! 발차기~ 얍얍얍!” 이쯤이다. 이쯤에서 꼭 쓰러져줘야 ‘이겼다’하고 탄성이 나온다. 3살 딸아이는 유독 꼬마 영웅 놀이를 좋아한다. 본인이 꼬마 영웅이 되면 엄마나 아빠는 괴물이 되어 번개 파워나 발차기에 맞고 쓰러져줘야 놀이가 끝난다. 그런데 요즘에는 종종 엄마에게도 같이 꼬마 영웅이 되자고 제안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냉장고나 아빠 옷, 또는 회전의자가 괴물이 되고는 한다. 그렇게 같이 꼬마 영웅이 되어 괴물을 쓰러뜨리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좋아하다가, 어쩐 일인지 갑자기 엄마를 보며 진지하게, 그리고 다소 따끔하게 이렇게 얘기한다. “안돼, 괴물도 우리 친구잖아.” 저도 같이 괴물을 물리친 주제에 꼭 엄마만 나무란다. 괴물도 우리 친구니까 물리쳤다고 좋아하지 말고, 또 이제 괴물을 괴롭히지도 말란다. 아이의 친구에 대한 기준은 참 모호하지만 단호하다. 방에서 놀다 어둠이 지면 갖가지 사물이 만들어내는 괴물 그림자가 무서워 엄마에게 달려오다가도, “아, 맞다! 옷걸이 괴물도 우리 친구지?” 하고는 다시 쪼르르 달려가 어둠을 이겨내고 신나게 논다. 최근 곤충에 푹 빠진 아이는 어린이집이 끝나면, 아파트 앞 커다란 나무에 집을 지은 엄마 거미와
개념(槪念)하면 언뜻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1.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2. 사회과학 분야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사실들에서 귀납하여 일반화한 추상적인 사람들의 생각. 3. 철학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된 요소를 뽑아내어 종합하여 얻은 하나의 보편적인 관념, 언어로 표현되며, 일반적으로 판단에 따라 얻어지는 것이나 판단을 성립시키기도 한다. 사전에서도 풀이가 다양하고 내용도 무슨 뜻인지 더더욱 아리송하다. 그냥 무식하고 대충 때려잡아 재미로 개념을 말해 보자면 여러 사람이 수긍하고 함께 생각하는 일반 사람들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일직선의 줄(線)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갑자기 그 줄 가운데가 볼록 튀어나왔다고 하자. 처음 보는 일이다. 그러면 많은 사람은 볼록 튀어나온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생소하게 여길 것이다. 사람들은 그 볼록 튀어나온 부분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을 할 것이다. 누구는 이 이상한 사실에 대해 이름을 붙여주자고 하고 누구는 신의 섭리니 숭배를 하자고 할 것이고 누구는 악귀일는지 모르니 없애 버리자고 할 것이다. 하여간에 생전 처음 보는 사실에 대해 많은 설왕설래가 있을 것이다.
내 어머니! 올해가 탄신 100주년입니다. 돌아가신지도 벌써 38년. 1967년 1월 12살 촌스런 단발머리 제주 소녀는 제 몸만한 검은 가방을 등에 지고 제주부두를 떠납니다. 목포 가는 배 안성호에 소녀를 밀어 넣고 부둣가에 서서 당신 딸이 탄 배가 서서히 멀어져 가는 걸 손 흔들며 오래도록 지켜봅니다. 배를 타고 난생 처음 혼자 가는 서울 길의 어린 촌년도 눈물을 글썽이며 멀어지는 섬 위의 한라산이 안 보일 때까지 바라봅니다. 3등칸 배 밑창에 다닥다닥 붙어 누워 8시간을 지내고 어둑한 목포항에 도착. 줄지어 호객하는 식당 사람을 따라가서 저녁밥을 먹고 잠시 눈 붙이는 사이 그들이 서울행 완행 야간 열차표를 사다줍니다. 땅을 밟아 멀미의 느낌을 식히고 목포역에서 밤 10시경 출발한 꽉 찬 야간열차엔 입석표를 산 가난한 어린이가 엉덩이 댈 만한 공간도 안 보입니다. 돈을 아껴야 고단한 서울에서 살 수 있다는 제주 어머니의 조냥정신. 절약정신. 통로에 서서 졸며 깨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새벽녘 기적소리와 함께 추운 서울 공기가 얼굴로 훅하고 다가옵니다. 너무 추웠습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영하의 기온과 어머니를 떠났다는 시린 느낌으로 만난 하얀 증기 가득한
치위생학과를 졸업하고 막연하게 대학병원 입사를 꿈꿨다. 그곳에서 멋진 선생님들과 다양한 진료를 경험하며 나의 커리어를 쌓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바람을 하늘도 알아준 걸까. 운 좋게 졸업을 하자마자 대학병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계약직 치과위생사로서 총 3군데의 대학병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다닌 대학병원의 계약이 끝났을 때는 어느덧 31살이었다. 솔직히 나는 대학병원 ‘정규직’ 치과위생사를 꿈꿔왔다. 안정된 직장, 정년을 보장받는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모 대학병원 면접에서 떨어진 뒤 정규직 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더 이상 나질 않았다. 그때 난 ‘이제 어떡하지? 로컬로 가면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선생님이 걱정할 게 뭐가 있어?”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항상 내 삶이 불안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올해 6월부터 강남의 치과로 출근을 시작했다. 병원을 다니면서 크게 느낀 점은 ‘내가 아직 공부할 게 많구나.’, ‘더 열심히 본업에
처음 신문 기고를 부탁받았을 때, 나의 어떤 이야기가 치의신보를 구독하시는 분들께 읽을거리가 되고 귀감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영화, 여행 등 다양한 주제를 생각해보았지만 한 치과대학의 총대표로서 학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에 있는 만큼 이러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 것이 치과의사 선배님들께도, 아직 학생신분인 후배님들께도 읽을만한 글이 될 것 같아 ‘치과대학생을 마무리하며’ 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다. 나의 입학생 시절부터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의 평범하고, 평범하지 못했던 치과대학 학생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나는 예과출신으로 2016년도 전북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의료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적은 없지만, 그 당시에 많은 심정의 변화가 있어 치과대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 해에는 위 학년 선배들을 제외하고 치의학전문대학원(이하 치전원) 세대였기 때문에 선배들과 10살, 많게는 15살 이상 차이가 난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동아리에 가입하고 술자리를 가지며 연애, 과외도 하고 여행도 자주 갔다. 또, 지금 교수님들께서 보시면 분개하실 이야기이지만 F학점도 받으며 학사경고에 가까운 성적으로 예과를 마무리하였다. 본과에
1. 중국집에서 짬뽕 하나와 짜장 한 그릇을 시켰는데 짬뽕 두 그릇이 나왔다. 동석자가 짬뽕을 싫어하는지라 짜장 한 그릇을 추가로 시켰다. 종업원이 안절부절 미안해하면서 음료수를 서비스로 준다 하는데 개의치 말라 하였다. 짬뽕 면을 절반 정도만 먹고 해물 등 내용물을 건져 먹었다. 계산을 하는데 종업원이 고맙다고 복 받으시라 하였다. 주인은 한 그릇 더 팔아 이윤을 남겼고(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고) 나는 복 받으라는 소리 들었으니 서로 득본 셈이다. 배부르다. 2. 성당에서 600명 들어가는 규모이니 방역수칙에 의해 60명이 참여할 수 있는데 30명이 채 안 되는 신자들이 미사 드리러 오셨다. 복잡거리는 것보단 고요함과 적막감이 마음을 충만케 하는 뭔가가 있어 좀 더 미사에 집중할 수 있어 마음은 편안했지만, 이 코로나19가 언제나 잠잠해 지련지. 성가를 부를 수 없어 미사의 장엄함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영성체 후 묵상 시간에 홀연 피아노 반주가 울리고 젊은 남성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예상치 못한 소리에 긴장하여 귀 기울이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도 아름답고 청아해 난 감동으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미사가 끝났어도 난 그 여운을 좀 더 간직하고자 한참을
제가 페이할 때 치의신보에 글을 한번 적은 적이 있다. 한 12년 전의 일인데, 참으로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때 기고한 글의 제목도 아마 “선배님 어떻게 하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나요?” 였을거다. 인생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는데 선배들은 한결같이 소위 말하는 대박 치과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으셨다. 어떤 선배는 환자들한테 카리스마 있게 대해야 하고 말수를 줄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선배도 있었고, 어떤 선배는 친절하게 환자에게 사근사근 말을 많이 해야한다는 선배도 있었다. 또 직원들한테 잘해줄 필요는 없다는 선배와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어야 그 병원도 잘된다는 선배도 있었고 되게 다양했었다.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선배들이 인생의 성공 기준을 병원 매출로 생각하는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얼마나 버는 게 성공의 척도가 될수 있겠구나’, ‘선배들 입장선 내가 이렇게 하다보니 병원이 잘되니 너도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구나’ 즉 심리학적으로 내가 이렇게 해서 성공했으니 나와 같은 방식으로 해야지만 너도 성공할수 있어! 아니면 실패할거야! 이런 기본 전제가 깔린 마인드라고 분석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기도 하다. 그 말인
요즘, 시국이 시국이라 실내운동보다는 실외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실외운동족 중 하나인데, 2년 전에 달리기를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얻기 시작해 요즘에는 등산을 즐기기 시작한 요즘 말로 ‘등린이’입니다. 평일에는 일하느라 등산을 못 하지만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는 주말을 이용해 산에 올라갑니다. 달리기도 그렇지만 등산 또한 고강도 운동이라는 건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등산을 한다고 하면 이런 말을 참 많이 듣습니다. “어차피 내려올거 고생을 왜 사서 하나요?” 땀을 뻘뻘 흘려 오른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의 짜릿함은 올라가 본 사람만 아는 즐거움입니다. 등산의 짜릿함을 알고 나면 계속 오르고 싶어지는 묘한 매력이 있어 올라갈 때 힘들다가도 또 올라가고 싶은 것이 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산이라고 모두 똑같지는 않습니다.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듯, 음식이 입안에서 저작과 함께 어우러지는 대향연이 쫙 퍼지듯 산이 품는 매력도 다양합니다. 어떤 산은 여성스러우면서도 당찬 느낌을 주기도하고, 어떤 산은 잔잔하면서도 기품 있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너무도 다양한 느낌을 주는 산의 매력, 산의 맛은 구강의 미각(맛)과도 비슷합니다. 미각
동네 어르신들 보면 가끔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도 난다. 국민학교 6학년 내일이 개학날, 8월 24일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우리 가족과 함께 살던. 엄마가 불과 몇 달 전까지 병 수발을 하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6월 15일로 기억하고 있는데, 우리 가족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다가 쫓겨난 날이. 나는 4년 전 큰엄마, 큰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하루아침에 버리고 나갔던 날을 기억한다. 12월 24일 큰엄마, 큰아빠가 이사 나간 날이다. 그 시절 구경도 한번 못해 본 아파트란다. 이삿짐 나르는데 엄마를 졸래졸래 따라가서 아직 온기가 돌지 않은 추운 방에 빨간 이불 짐을 내리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엄마가 혼잣말로 ‘뭐가 급하다고 이 추운 겨울에’라고 한숨 쉬던 모습도. 근방에 살고 있었던 나와 오빠를 매일 밤마다 데리러 오던 할아버지를, 매일 데리고 자던 사촌오빠들의 따뜻한 온기를 그리워했겠지. 엄마는 가기 싫은 나와 오빠의 손을 잡으며, 오늘만 자고 오라고. 그건 매일이었다. 그러기를 한 3, 4개월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기로 했다고,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기로 했다고. 어린 마음에 큰 집으로 이사 가
오늘도 출근하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가 탄 버스는 항상 앞으로만 간다. 후진, 즉 뒤로가지 않는다. 그렇듯 나도 내 인생에서 앞으로 가기만 했다. 다시 말해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부끄럽고 창피한 세월일지 몰라도 비로소 한번 치과의사로서의 지난날을 돌아다 보았다. 치과의사가 된지 얼마나 되었을까. 벌써 39년. 까마득한 옛날이었구나 생각이 든다. 경사가 심하지는 않으나 끝없이 이어지는 산등성이의 제일 높은 곳에 올라 돌아다보면 지나온 길이 끝없이 보이는 것처럼 치과의사로서 지내온 길이 벌써 한참이었구나 생각이 들자 마자 얼마나 남았을까 하는 잡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다. 치과의사가 될 재주도 없는 내가 지인의 지나가는 한마디에 현혹되어 치과대학에 진학했고 손재주가 유난히도 없어 예과, 본과를 거치면서 실습시간마다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검사 받는게 일상사였던 내가, 실습시간의 잔혹함을 못이기고 그만둔 여러 명의 동기들처럼 결단력도 없고 용기도 없어 끝까지 어찌어찌하여 치과의사가 되었고 지금껏 지내온건 무슨 조화이고 과연 누구의 도움이었을까 하며 돌아다 본다. 구강외과 수련기간 무모하기도 하고, 어설펐던 젊은 치과의사 시절의 치
사람은 선천적, 도덕적으로 자신이 가지는 본성이 있다. 미움은 인간의 본성이 외부 사물과 접해서 형성되는 일종의 성질이다. 형성된 성질에는 일곱 가지 정(情)인 칠정(七情)이 있단다. 즉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즐거움(樂), 사랑(愛), 미움(惡), 욕심(慾)이 있단다. 불교에서는 기쁨(喜), 성냄(怒), 근심(憂), 두려움(懼), 사랑(愛), 미움(憎), 욕심(慾)이 있단다. 미움은 남이 나보다 잘 되거나 낫게 되는 것을 공연히 시기하고 샘내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거다. 나쁜 성질이다. 나쁜 성질이라 해도 이런 성질은 있게 마련이다. 살아가는 동안의 미움이 어떠한지 알아보자. “아홉 살 일곱 살 먹을 때까진 아홉 동이네에서 미움을 받는다”라는 말이 있다. 즉 아이들이 아홉 살까지는 장난이 심하고 말을 잘 안 들어 이웃으로부터 말을 듣고 미움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런 미움은 그냥 생기는 거다. 사물이나 모상을 만나 생기는 게 아니다. 이쁜 미움이다. 아홉 살이 미움을 받자고 스스로 말을 안 듣고 장난을 심하게 하는 게 아니다. 단지 천성으로 내려오는 거다. 아홉 살짜리는 어른들로부터 야단을 맞고 미움을 사나 자기네끼리는 미움이 없다. 다만 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