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조정법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이기우 의원이 9개월 동안 준비해 개최한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공청회에서는 의료계와 시민단체, 보건복지부 모두가 서로의 입장만을 주장한 채 막을 내렸다.
이번 공청회에서 가장 논란이 되어왔던 사항은 의료사고에 대한 입증책임과 형사처벌 특례이다. 이기우 의원의 법률안과 복지부와 시민단체 모두는 의료인이 의료사고에 대한 입증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의료계는 의료사고에 대한 입증을 일방적으로 의료인에게 책임지게 할 경우의 역작용을 염려하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어느 한편으로는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듯이 의료정보 및 지식에 대한 절대 우위에 있는 의료인이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날 의사협회 및 병원협회 측에서도 밝혔듯이 무조건 의료인이 의료사고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라고 한다면 방어 진료와 소극적 진료가 만연해질 우려가 매우 크다. 최대한의 방어가 최상의 진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그렇지 않아도 의료사고 혐의가 빈번하게 제기되는 응급의학분야나 외상과 관련된 분야가 의료계의 3D 분야로 인식돼 지원자가 적어 고민하는 마당에 이러한 법이 통과된다면 위험성이 높은 과를 전공하겠다는 의료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진료의 왜곡현상은 누가 책임질 수 있겠는가.
치과분야에서도 구강악안면외과 등 환자치료를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치과 진료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료 부담이 많은 이 과를 어느 치과의사가 전공하려 할 것인지 걱정된다. 그렇지 않아도 의과분야와 미찬가지로 매년 전공자가 줄어들고 있어 고민하고 있는 이들 과 전공의들에게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률안의 내용이 매우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료사고는 미묘한 문제이다. 환자입장에서나 의료인 입장에서나 모두 억울한 심정이 저변에 깔려 있다. 따라서 법은 환자만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된다.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공평하고 공정한 보호막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의료인은 소신있는 진료를 환자에게 할 수 있다. 물론 경미한 과실일 경우 형사처벌특례조항을 마련 손해배상을 담보로 하는 조건으로 형사처벌을 면책하자는 안도 있기는 하지만 중과실일 경우에는 형사처벌하겠다는 규정안이 담겨있어 의료인의 심리적 위축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법률안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형사처벌조항 강화나 의료사고 입증책임을 무조건 의료인에게 책임지우게 하는 것보다 의료분쟁을 반드시 조정하는 과정을 가도록 하는 필요적 조정전치주의를 채택하는 일이다. 의료인에 대한 처벌보다 환자의 피해를 구제하는데 더 초점이 맞아야 한다고 본다. 그럴 경우 의료인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총망라하여 소신껏 환자를 진료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