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제일 맛있게, 그리고 질리게 먹었던 도시락 반찬은 장조림과 멸치였습니다. 한 품으로 안기도 힘들만큼 커다랗고 노란 자루봉투에는 마른 멸치가 꽉꽉 채워져 있었는데, 볶음용 멸치건 육수용 멸치건 쓴 맛을 없애기 위해서는 검은 내장을 일일이 잘 발라내야 되서, 바닥에 신문을 깔고 온 식구가 한나절 이상을 매달려야 했습니다. 빙 둘러 앉아 도란도란 시작했던 멸치 까기는 공부, 졸음, 귀찮음을 핑계로 한 형제들의 이탈로, 결국 엄마와 나 두 사람이 남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양반다리로 시작하여 엎드린 자세로 바꿔가면서 몇 시간씩 참을성 있게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이제 그만 들어가 쉬라는 말씀에도 끝까지 엄마와 함께 비릿한 멸치를 다듬었습니다. 10남매의 장녀로 태어난 엄마는 작지만 예쁘고, 사려 깊고, 총명하셨지요.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셨지만, 숫자 계산이 빠르고 정확하셨으며, 상황 판단이 합리적이고 활동력이 강해서 친척들 행사나 동네 대소사 모임을 우리 집에서 주관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여러 포대의 그 많은 멸치를 까는 동안 엄마와 나누었을 대화 내용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오랜 입원 생활, 정신을
‘다 내려놓고 미련 없이 떠나겠다.’ 유명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자주 외쳐대는 말이고, 저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잣말로 해보는 소리입니다. 무욕과 무소유는 샹그릴라(Shangri-La)로 가는 특실 티켓과 동급으로 생각을 하고, 실천 없는 허언만 가득한 사람들도 갈수 있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육신이 짊어진 짐은 벗어던질 수 있어도, 마음의 짐까지 벗어나기는 힘든 것이 인세(人世)입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이른 새벽 하롱베이 해변에서 조개를 주워 등짐을 지고 가는, 농라(베트남 전통모자)를 쓴 늙은 어부를 만났습니다. 저 멀리 하늘에서 내려온 용의 모습을 한 섬들이 절경을 이루는 이곳은 흔히 천국의 휴양지라고 말합니다. 늘 이곳에서 생을 위해 조개를 잡는 저 어부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천국에 살고 계신가요?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광주'라는 이정표가 보이는 도로를 달리다보면, 저 멀리 어깨처럼 너른 산 하나가 보인다. ‘등급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고귀함을 담은’이라고 설명되는 무등(無等)산이다. 무등은 ‘등급도 차별도 없다’는 뜻이기도 한데,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평 공정한 대접을 받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을 품은 산이기에,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리도 부른다, ‘민주지산 무등’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내가 바라보는 무등산은 아버지다. 걷기 싫다 떼쓰는 나를 일으켜 말없이 무등(목말)을 태워주시던 아버지다. ‘아픈 것은 내가 다 할께, 너는 웃음만 가져라’는 말씀은 없었어도 손길로 눈길로 등을 내어주시던. 오늘 문득 아버지의 너른 등이 그립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몇 해 전 보름달 사진을 찍어서 올렸더니, 댓글에 스타워즈의 데스스타가 연상된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너무 또렷한 사진 속에 나타난 음영이 괴기스럽게 생각되었겠다 싶더군요. 추석뿐만 아니라 설 같은 명절의 의미가 점점 밋밋함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삶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고, 잊혀지고 놓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아쉽기만 합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성능 좋은 초망원 렌즈로 또렷또렷 샅샅이 달 표면을 훑어보면서는 절대로 토끼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흐릿하고 막연하게 보이는 달을 바라보며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가 있다는 동요를 부르는 것이 더 빨리 토끼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마음의 눈을 더 크게 뜬다면 말입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갑작스레 내려준 소나기는 연인을 영화 속 주인공으로 변신시키기도 하고, 교과서 속 순수했던 한 장면을 떠올리게도 해줍니다. 사진은 '그 곳'에 '그 순간' 존재하는 것을 촬영해내는 작업입니다. 그러면 촬영자가 아닌 감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진은 어떠한가요? 사진의 힘은 촬영자와 감상자가 같은 시공간을 점유하지 않아도, 촬영자의 카메라 세팅 조건을 몰라도, 감정의 전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진폭을 가진 감정의 파고 속에서도 감상자는 찰라가 만들어준 한 장면에 담긴 촬영자의 마음이 전해주는 이야기 사이를 유영하게 됩니다. 그 순간 사진은 서사(敍事)가 되고, 감상자는 스스로에게 이야기꾼이 됩니다. 감상자의 감성의 깊이, 삶의 성향, 그 순간의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바르게 보이기도 하고, 물구나무를 선 듯 보이기도 하고, 눈감고도 보이는 그야말로 제멋대로의 세상이 창조되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그것대로 또 다른 사진의 매력이 될 것입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찍던 순간이 복제되듯 똑같은 마음으로 전이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내용이 어떻게 얽히고설키든, 그 감성의 무한 확장만 함께 하기를
늘 하던 대로 생각에 빠져서 늘 하던 같은 속도로 걷다가 삐끗, 발목이 시큰거릴 때에야 비로소 지루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평안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만들어 내는, 우연(偶然). 평범함이 가장 편하고 귀한 것임을 일깨워주는 우연은 늘 환영합니다. 고착되어버린 치열함으로 무거워진 '요즘'을 잠시 외면하고 나선 길. 준비 못한 우산으로 홀딱 젖은 8월의 아침. 홍련(紅蓮)이 만들어준 우연, 미소 한 줌.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깨끗하고 고귀한 꽃으로 많은 수의 종자를 품고 있어서 다산과 생명의 창조를 상징하는 꽃입니다. 힘과 건강과 장수, 풍요 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불교 문화권에서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그리스 등 에서도 신성시 되었고, 동양에서는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꽃이라 칭송 받았습니다. 잎과 꽃이 물 표면에 떠서 사는 수련(睡蓮)과 구별됩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부자 되는 골드 해바라기, 재물운, 금전운, 풍수그림”이라는 광고를 웹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황금색 꽃잎이 재물을 상징하여 걸어놓으면 집안 풍수에 좋다고 하는....... 해를 마주보며 따라 도는 꽃이라는 의미로 그 이름을 얻었습니다.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에 다른 대륙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태양신을 숭배했던 옛 잉카제국의 후예인 페루의 국화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소피아 로렌의 얼굴이 먼저 연상되기도 하는데, [해바라기]라는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열정과 카리스마 넘치던 강렬한 기억 때문일 것입니다. 해바라기씨유 채취를 위해 러시아, 중국, 유럽 등지에서 대규모로 키우는데, 고전이 되어버린 영화 [해바라기]의 배경도 구소련의 영토였던, 우크라이나의 광활한 해바라기 밭입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식량 위기, 에너지 위기를 전 세계인이 체감하게 되었고, 그 누구도 독자노선을 걸으면서 폐쇄적으로 살아갈 수 없이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경제와 문화 공동체가 된 이 지구별에서의 인류 생존을 위해, 다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또다시 각성하는 계기가
그 순간, 그 곳에 있어야만 가능한 작업이 사진입니다. 주말에야 겨우 여유로운 출사가 가능한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마음에 드는 장면을 마주하여 사진으로 담아내기는 참으로 힘듭니다. 특별한 소품을 마련하거나 좋은 조명을 갖춘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해보는 경우는 일 년에 고작 몇 번의 기회밖에 없습니다. 전문 작가들의 경우 몇 해 전부터 미리 천문을 읽고, 일기를 예측하여 최적의 촬영시간에 맞추어 그 장소에 대기합니다. 촬영 결과물에 대한 확인이 한참 후에야 가능했던 필름카메라가 디지털 카메라의 개발과 고성능화로 대체되면서, 촬영 즉시 결과물을 확인하고 필요시 곧바로 재촬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노련한 기술과 복잡한 시설 장비가 필요했던 현상과 인화의 과정 또한 생략하고, 본인이 직접 컴퓨터로 보정하고 프린트 작업까지 마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아마추어 사진가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 축복입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남들 다 찍어본다는 유명 출사지를 찾아 헤매던 입문 시절을 뒤로하고, 가까운 곳에서 피사체를 찾는 즐거움을 느껴보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모습을 담아보자.’ 오늘 사진은 3년마다 열리는 2016
달콤함과 쌉싸래함을 동시에 품은 듯, 질투와 관용 사이에서 줄을 타는 듯, 불같은 열정과 차가운 이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 가려는 듯, 꽃잎의 보이는 표면은 붉은색인데, 그 이면은 흰색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 육종된 'Love'라는 이름을 가진 장미입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디지털 카메라는 사람과 동일한 방식으로 컬러를 보지 못합니다. 이미지 센서의 각 셀 앞에 빨강(R), 초록(G), 파랑(B) 중 한 가지 색상의 빛만 통과할 수 있는 필터를 배치하여, 각 셀마다 통과하는 빛의 세기만을 기록합니다. '18%의 반사율을 가진 중성회색'이라는 노출기준점을 가지고 어두운지 밝은지를 감지하여, 적정한 노출을 맞추려고 CPU는 바쁘게 노출 증감을 계산합니다. 짙은 붉은색은 노출기준점 보다 어두운 색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조리개와 노출시간을 조절하여 밝게 촬영하라고 지침을 주고, 흰색은 밝게 인식되기 때문에 기준점에 맞추기 위해 어둡게 조절을 하라고 합니다. 어둡게 인식되는 붉은색과 밝게 인식되는 흰색 사이의 노출차이로 인해서, 특히 햇살이 강렬한 날에는 둘 사이에 적정한 노출을 설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보통 붉은색 한 가지를 가진 꽃도 제대
언제였을까? 처음 자전거를 타보았을 때가? 작은 냇가 얕은 물속을 잠행하며 그 밑바닥에 놓인 돌 하나를 들어내듯, 오랜 기간 잠들어 있던 기억 하나가 깨어난다. 일깨워진 기억의 편린은 묶여있던 순간들을 연쇄적으로 감작시킨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이야깃거리에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순간이다. 현실은 소설 속 이야기꾼처럼 치열하지도, 그렇다고 안온하지도 못하다. 바램이 어떠할지라도 무의식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소망한다. 가끔은 어제 무엇을 했었는지도 기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슴 속에 각인되어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아갈만한 것도 실상은 거의 없다. 소소함에서 찾아내는 즐거움들. 밤새 설렘으로 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소풍처럼, 사진은 무료한 나의 일상을 두근거리는 아름다운 추억 속으로 이끌어 준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물이 저 멀리 빠져나가 검게 드러난 해안가에 놓여 있던 그의 자전거는, 무료함으로 나른해 하는 나를 서둘러 일깨우고는 널찍한 등을 가진 둘째 삼촌의 자전거 짐받이에 태워버린다. 머릿결 사이를 헤집는 바람에 눈이 감긴다. 논들 사이로 둔덕처럼 쌓아올린 신작로 길을 따라 달려가면, 그 끝에는 작은 항구가 있었다. 한진규 치
꼭두각시놀음은 남사당패의 주요 레퍼토리였다고 합니다. 사, 오십대 이상인분들은 6시 땡~ 하면 TV에서 방영되던 인형극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인형은 아주 간단히 양말에 단추로 눈을 달아서 만들기도 하고, 목각으로 정교하게 제작하여 철사와 줄을 매달아 조종을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만들든 그 인형을 어떻게 조종하느냐가 재미와 즐거움을 주기에 중요해집니다.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사람을 인형술사라고 합니다. 흔히 줏대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꼭두각시 혹은 괴뢰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만,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가스라이팅은 목각인형이 아닌, 사람이 그 대상이라는 것에 충격이 큽니다. 1944년에 개봉한 흑백영화 [가스등]에서 인용하여, 분석심리치료사인 로빈 스턴이라는 사람이 [가스라이팅(Gaslight Effect)]이란 용어를 도입했습니다. 흔히 친밀한 관계를 이용하여, 수평적인 관계의 의사결정이 아닌, 비대칭적인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할 때 나타나는 효과를 일컫습니다. 문제는 ‘관심과 간섭의 경계’라 법적처벌 여부를 가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자신이 처한 처지가 어렵고, 진로가
“강호에서는 무조건 가진 능력의 서푼을 숨겨야 한다. 모든 것을 드러내면 빨리 죽기 십상이다. 상대가 알고 대비책을 세우기 때문이다.”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최고의 능력치를 가진 주인공을 보통 [먼치킨] 이라고 부릅니다. 복잡한 사건도 단순 명료하며 통쾌하게 해결해버리는 소위 사기캐릭터이죠. 그러나 아무리 약한 상대를 만난 먼치킨들도 서푼의 실력을 숨기면서 싸움에 임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먼치킨의 유래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등장인물로, 동쪽나라의 어리석은 짓을 하는 난쟁이 종족 ‘먼치킨(munchkin)’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서로 협력하지 않고 혼자서 모든 것을 진행하려는 어리석은 플레이어’의 의미로 TRPG 게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처음 칭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만, ‘여러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 남들을 압도할 정도의 성과를 내는 사람’ 이라는 정반대의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실제로는 서푼의 능력도 없으면서, 그 보잘 것 없는 능력을 일만배로 과대 선전하며 클랜 게임에서 서로 협력하지 않고, 혼자 헤매다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인물을 ‘민폐 캐릭터’라 한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