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잘 해둬라. 나중에 커서 당신이 말 한 번 걸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미인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어느 외국 서적에서 보았던 글귀이다. 매우 점잖고 긍정적인 문체의 책이었다. 진취적이고 밝은 내용이 담긴 책이었다. 그런 책 속에 있던 재미있는 문장이어서 더 기억에 남은 것 같다. 영화 배우, 모델 같은 여자들에게도 어린 시절은 있었을 테고, 그 시절에 조금 잘 해줬던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인 것 같다. 흰 머리가 수북한 지금, 내가 우리 직원들한테나 말을 걸지, 감히 어떤 여자에게 가서 말을 걸겠는가. 미인에게는 말을 걸 일이 없기도 하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 나에게 교정 치료를 받은 여자 아이가 미인이 되어 치과에 찾아온 일이 있었다. 일반 진료 환자의 이름은 기억 못 하는 경우가 있지만, 교정 환자의 이름과 얼굴은 매치를 잘 하는 편이다. 이름을 보고, 얼굴을 보았는데 매치가 안 되었다. 이름과 얼굴을 한참 번갈아 본 후에야 내가 교정치료를 해 준 여자 환자였던 것이 인지되었다. 아이였을 때 돌출입을 주소로 내원한 여자 환자였는데 대학원생이 되어서 이전 개원한 나를 찾아왔다. 반가움과 보람, 기쁨 등 여러 가지 긍정적
“왜 이 일을 하세요?” 정말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치과의사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일차진료로서의 구강건강의 중요성을 외치는 일은 진료가 주된 치과의사와는 확연히 다른 삶이긴 합니다. “사회의 주류로서 어떻게 사회공헌을 하시고 싶으신가요?” 어제 특강후 나온 질문입니다. 주류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미국에서 여느 이민 1세대와 같이 가족이 모두 함께 일해야 하는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저는 등록금이 없어 휴학계를 내야 했던 날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모아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막막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은 빛나는 순간들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간절했던 공부는 정말 달고, 재밌어서 밤새도록 교과서를 읽으며 지식을 갈망했던 열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제게 치과대학에 도전해보라고 말했습니다. 가난과 질병은 절대 공존하면 안된다고 곱씹은 20대로 인해 일수도 있고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의사의 길은 너무나 멋지게 보일 수도 있었겠습니다. 미국에서 치대로 들어가 공부하던 중 Paul Farmer 교수님을 만나, 사회의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었습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오늘날 우리는 핸드폰만 켜면 전 세계의 예술작품을 바로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손가락을 몇 번만 움직이면 루브르 박물관의 그림도, 대영박물관의 조각도 순식간에 펼쳐지지요. 물론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화면 속에서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예술작품은 깊이 있는 경험을 남기기 어렵습니다. 핸드폰은 빠르게 보여주지만, 우리에게 ‘멈추어 생각하는 시간’을 주진 않으니까요. 반면 책은 다른 차원의 미술관을 열어줍니다. 한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작가가 담아낸 해석과 사연을 읽는 동안 우리는 작품과 더 오래 머무르게 됩니다. 작품에 담긴 시대적 배경이나 창작자의 의도, 그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이 글을 통해 자세히 풀어져 나옵니다. 예술이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 이해하고 느끼는 경험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책 속의 미술관은 핸드폰 화면처럼 휘리릭 넘
치과의사 과잉 배출로 인한 치열한 경쟁과 경제성장률 둔화로 인한 내수소비 부진 그에 따른 불황으로 인해 치과 개원가 경영에 적색등이 켜졌다. 한국의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 진입은 치과계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치과는 경기 사이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개원가 원장들은 비수기인 가을이 되면 속이 가랑잎처럼 바짝 바짝 타들어 간다. 치과대학 졸업 후 일정기간 수련을 거친 치과의사들의 대다수가 개원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초기투자 비용이 적지 않은 개원에서 치과경영에 대한 지식은 치과 생존에 필수가 되었다. 개업 연수가 적거나 성장을 도모하는 치과, 예비 원장들은 임상 실력향상 뿐만 아니라 경영에 대한 지식을 단단하게 갖춰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즉 일인 치과의사 병원이라도 경영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존속할 수 없는 시대다. 환자에게 양질의 진료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고 환자 유치, 직원관리, 재정 관리, 마케팅 관리(소셜 미디어) 등이 경영의 중요 요소들이다. 근래에 과도한 온라인 마케팅이 디비 마케팅, 허위 과장 마케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입소문이나 지역사회 모임을 통한 소극적 마케팅이 주류였다면 최근에는 주로 소셜
어느덧 연말이 멀지 않았다.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것 중에 ‘나홀로 집에’가 있다. 명절에 집에 홀로 남겨진 어린 소년이 집에 쳐들어온 악당을 재치있게 물리친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집에 홀로 남은 두려움을 느껴봤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케빈의 무용담에 후련하고 용기백배 했으니 그토록 인기있는 영화가 되었으리라. 나 역시 어려서 종종 홀로 집을 지켰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아기돼지 삼형제’를 먼저 읽었다. 우리집은 풀집도 나무집도 아니었지만, 동화책 삽화에 그려진 붉은 벽돌집도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 집이 무너질까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벽돌집이 튼튼하다는 건축자재 홍보보다는 아기돼지 삼형제가 ‘함께’ 모여 우리 집을 지어냈기에 늑대를 막아낼 수 있었다는 데 있다고 본다. 언젠가 지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사춘기때 아버지를 따라 LA에 살았는데, 그때가 하필 1992년이었다. 폭도들은 후환이 두려워 무력을 중심으로 뭉친 일본인이나 중국인 사회는 못 건드리면서, 구심점이 없어 만만한 한인사회만 공격하더라는 것이다. 참상을 겪고 애국 갱스터를 꿈꾸던 치기어린 중학교 2학년 소년은 결국 커서는
▶▶▶이용권 원장(청주 서울좋은치과병원 임플란트센터장)이 본지 3036호부터 치과의사의 희로애락을 담은 ‘털보의사의 치과 엿보기!’ 만화를 연재한다. 이 원장은 서울치대를 나온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로 앞서 본지에 ‘만화로 보는 항생제’를 연재한 바 있다.
이번 추석명절 전후 8박 10일 여정으로 미국 서부 4개주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유타, 네바다를 다녀왔다. 그곳의 운석공, 캐년, 빙하 지형 등을 새로운 관점으로 살펴보는 여정이었다. 문제는 시차(jet lag)에도 불구하고 도착 즉시 진행된 3600km의 장거리 버스 투어와 여러 숙소를 옮겨 다녀야 했기에 여정 기간 내내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평소 숙면하는 필자로서는 밤에 잠들지 못하고 뜬 눈으로 지샌 이번 여정의 밤이 마치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처럼 느껴졌고, 그로기(groggy) 전신상태로 인해 새삼 ‘잠이 보약’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노인의 구강질환 문제를 영양과 근력 관점 외에 불면(insomnia)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나름대로 고심해 보는 시간이었다. 이에 노인의 불면과 구강질환의 상관관계 그리고 악순환으로 인한 전신질환 위험 가중 문제에 대해 약술해 보고자 한다. 노인 불면: 구강질환 악화 요인 사람은 평균 7~9 시간 잔다. 하지만 국내 노인의 반 이상이 수면시간 감소는 물론 수면의 질이 나쁜 불면을 호소하고 있다. 불면이란 3개월 이상 1주일에 3회 이상 쉽게 잠들지 못해(37%) 아예 뜬눈으로
뜨는 해를 먼저 만날 수 있는 동해안 작은 도시에 살고 있다 보니 가끔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면 새해 첫날이 아니더라도 집 근처 바다에 가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곤 한다. 특별한 결심을 하거나 꿈을 품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그 행위만으로도 가슴 뭉클한 무엇인가가 있다. 사람마다 해가 떠오름을 보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지만 대개 희망이나 시작에 관한 것일 것이다. 지난 주말 대학 동기들과 졸업 35년과 환갑을 기념하는 1박 2일의 짧은 가을 여행을 다녀왔다. 가을이 내린 식물원을 걷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실없는 이야기를 하며 떠들었다. 숲속의 작은 음악회에서 들은 사철가의 가사는 가슴을 후벼 팠고 들을 만큼 익어야 들린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학창 시절 MT에서처럼 스물다섯 명 동기들이 좁은 숙소 방에 모여 간단한 다과를 앞에 두고 자신의 일상을 잔잔하게 이야기하던 밤에는 서로 살아온 과정이 달랐음에도 같은 지점, 비슷한 현실에 있음에 공감하기도 했다. 새벽 숲속 공기가 상쾌한 아침, 강원도의 투박한 아침을 들고 손영순 까리타스 수녀의 ‘죽음 앞에 선 인간’이라는 주제로 두 시간의 강연이 있었다. 잔잔한 우리 동기들의 성정을 믿고 한 번쯤은 멈춰 서서 죽음
바야흐로 치과의사 국가고시 준비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제가 국가고시를 준비하던 2018년 가을을 기억해보면, 공부할 양은 많은데 머리에 든 것은 없으니 책상 앞에 앉더라도 휴대폰만 붙잡고서 웹툰부터 뉴스까지 온갖 잡념에 시달렸던 것 같습니다. 잡념에 길 잃은 누군가 치의신보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 이번에는 강릉에서의 인턴생활을 고민하는 누군가에 혹여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조금 적어보고자 합니다. 저는 임상분야의 예방치과 수련이라는 특수한 목표가 있었기에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강릉에서의 수련을 결정했지만, 막상 인턴 생활을 시작해 보니 통상적으로 알고 있던 인턴의 근무환경과 많은 차이가 있어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선 퇴근시간부터 이야기하자면 과별 차이가 존재하지만 야간까지 이어지는 잡무가 거의 없었고, 오히려 인턴이 준비하여 발표하는 세미나가 모든 턴마다 존재하여 이를 충실히 준비하는 데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금요일이면 칼퇴근 후 18시40분 KTX를 탈 수 있었고, 주말을 서울 본가에서 잘 지내고 돌아가는 일정이 가능했습니다. 앞서 말한 세미나 준비를 비롯한 교육환경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마뜩잖게도 나쁘지 않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최근 치과대학을 졸업한 김 원장은 이 원장이 운영하는 강남 한복판의 치과에 봉직의로 일하게 되었다. 치과의 현대적인 인테리어와 적절한 환자층에 만족한 김 원장. 어느 날, 김 원장은 치과가 새로운 광고를 홈페이지에 실으면서 자기 사진 밑에 “미국에서 공부한 교정 전문의”라는 문구를 추가한 것을 확인하였다. 물론, 자신이 미국에서 잠깐 공부한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지만 의료에서는 사회주의적 의료제도와 자유시장적 의료가 혼합된 형태로 지속되어 왔다. 건강보험은 사회보장제도의 하나인 의료보장으로 한국이 채택하고 있는 사회의료보험 즉 국가의료보험(National Health insurance, NHI)이 의료를 제공한다. 공립병원이든 민간병원이든 간에 당연지정되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 요양기관이며 공공병원으로 분류되지만 일반인과 의료인들에게는 그렇게 인식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제도는 정치적 이유로 기본권의료(필수의료)의 제공범위를 계속 확대해 왔고 여기에 드는 재정은 뒷받침되지 못해서 보장률이 떨어졌다. 의료보장의 4대 원칙 중 최소수준의 서비스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기본권의료정책이 지켜지지 않는 건강보험제도 때문에 기형적으로 상품의료가 탈출구가 되는 현상이 지속되어 소위 필수의료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법적 리스크를 국가가 책임져 주지 않는 환경에서 의료 인력이 충원되지 않아 응급실 뺑뺑이가 현실화 된 것이다. 저수가와 의료이용이 관리되지 않고 급여·비급여 진료가 혼합 허용되는 상황에서는 의사유인 수요 및 환자의 도덕적 해이, 즉 의료쇼핑이 일반화되어 결국 해마다 국민의 경상의료비는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