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족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캠핑은 직장과 일터에서 지친 아빠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일등공신이다. ‘1박 2일’과 ‘아빠 어디가!’라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캠핑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아이들에겐 ‘정글의 법칙’에 출연하는 병만 족장처럼 든든하고 멋진 모습으로 변신하는 아빠의 모습을, 캠핑을 싫어하는 아내에겐 육아와 살림에서 벗어나 모처럼 자유로운 시간이 허락된다는 친구의 말에 솔깃해져서 처음 캠핑을 시작하게 되었다.캠핑장비 일체를 매장에서 구입한 친구와는 달리, 나는 캠퍼들이 많이 가입했다는 블로그와 카페를 뒤져가며 일단 필요한 장비들의 리스트를 만든 후 하나씩 구입해나가기로 했다.캠핑을 간다는 생각에 들떠서 지인들에게 캠핑장비들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더니, “아니 깨끗하고 시설 좋은 펜션이나 호텔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캠핑 장비를 사요?”, “캠핑가면 남자가 다 해야 하는데 남자만 생고생해요!”라며 다들 뜯어 말리는 분위기다.주말이 되어 아들과 함께 다양한 크기의 텐트가 전시돼있는 대형캠핑용품매장에 갔다. 발 디딜 틈이 없이 붐비는 매장 안에는 나처럼 캠핑을 막 시작하려고 텐트며 여러 장비
세월호 사태로 일손도 잡히지 않고 머리나 마음까지도 뒤숭숭하여 나라 전체가 집단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아이들부터 건져내야 할 것인데 구조에 애쓰고 있는 노고에도 불구하고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 걱정입니다. 아이들 부모님들의 마음이야 숯검정이 되어 어디 남아 있기나 하겠습니까?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9·11 사태만큼이나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할 말을 잊게 만드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느낀 것은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참담한 현 주소이며, 우리 사회의 현 주소라 여겨집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안에 있는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사는 형편은 좀 나아졌는지는 모르지만 경제적인 한 곳으로 너무 편향되는 경향이 있어 다른 모든 부분을 소홀하게 됨으로써 얽히고설킨 부조리 속에서 마땅히 터져야 할 것이 세월호 사태라는 괴물의 모습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내게 된 것입니다.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일이 생긴 것은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우리 모두가 챙겼어야 할 일들을 챙기지 않고 우리자신들의 일에 무관심하고 스스로 방기한 탓입니다. 잊어버리기 잘하는 우리 국민들은 한동안 어수선한
삼각산은 인수봉-백운대-만경대가 보이는 모양 그대로 여서 보기만 해도 그냥 알 수 있는 산이다. 세 봉우리가 세 개의 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동쪽과 서쪽에서 보면 그 모습과 이름은 꼭 들어맞는다. 미아리에서 소아시절을 보내고 돈암동과 안암동에서 청소년과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눈만 뜨면 보던 산이 삼각산이다.일제강점기에 어머니께서는 나를 업으신 채 삼각산 기슭에 올라 할당받은 송진을 채취하셨다. 등에 업혀 곤히 자다가 고개를 들다 나뭇가지에 걸려 떨어질 번 한 적도 있다. 그 송진은 일제가 전쟁에 쓰려고 모았다고 한다. 미아리 시장 앞, 비포장 신작로 8·15에 감격적인 태극깃발의 물결이 넘치던 때도 삼각산은 우뚝 솟아 있었다.이 삼각산이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북한산으로 바뀌어 불리게 됐다. 어인 이유에서인지 정부, 국립공원관리공단, 경기도, 서울특별시 등 모든 기관에서조차 북한산이라 하고 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런 현실에 늘 불만스러워 나는 ‘삼각산, 삼각산’하면서 지나고 있다. # ‘삼봉’은 도담삼봉이 아니다 원고청탁이 오면 우선해서 삼각산관련 글을 쓰고 있다. 한 문예지에 날짜를 맞추기 위해 제목을 ‘삼각산으로 가자’로 정해 놓고 끙끙거리고 있
작년 10월 크로아티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지금이야 ‘꽃보다 누나’라는 방송 덕에 크로아티아가 유명해졌지만 우리가 크로아티아를 가기로 결정한 것은 ‘선택의 불운(?)’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사실 처음 신혼 여행을 체코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큰 가스폭발이 일어났고, 어쩔 수 없이 터키로 결정했더니 벌룬투어 열기구가 떨어지고,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어쩔 수 없이, 또 무슨 일이 일어날 거 같아 조마조마 크로아티아로 결정.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크로아티아는 아무 일이 없었다. 지금에야 크로아티아와 관련된 많은 여행 서적이 출판되었지만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중간정착지로 잠시 머무는 여행객 정도이지 크로아티아만 다녀오는 여행객은 흔치 않아 여행 정보는 한정되어 있었다. 크로아티아에 다녀온 결혼 선배들의 블로그나 까페 등에서 어렵사리 정보를 수집해 우리는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와 플리트비체,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를 코스로 잡았다. 여행을 다녀온 뒤 ‘꽃누나’를 보고 우리가 제일 놀라고 어쩜 저럴까 했던 점은 배우들이 크로아티아의 음식을 먹지 않고 숙소에서 한식으로 해결했다는 점이다. 크로아티아의 음식들은 한국 음식과 꼭 닮았다. 소고기부터
영화 ‘어바웃 슈미트’를 보면, 볼품없이 나이 들어가는 은퇴한 노신사의 절망과 우울이 등장한다. 자신의 쓸모없음을 한탄하고 점점 밉상이 되어가는 그. 그런 노년을 변화시킨 건 먼 나라 아이들에게 기부하고 받은 아이들의 편지다. 영화는 거기서 끝이 나지만, 그가 그를 행복하게 하는 ‘나누는 삶’을 살아가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인정받는 것, 쓰임이 되는 것 모두 중요한 행복의 조건일지 모른다. 그래서 ‘봉사’, ‘기부’, ‘나눔’같은 단어들을 실천하는 이들은 나눔의 기쁨을 알고 계속 하게 된다.나도 열아홉 살에 처음 봉사동호회에 나가서 나눔의 행복을 맛본 뒤 틈틈이 봉사활동과 작은 기부들을 했었다. 꼭 드러내고 싶지도 않을 만큼 너무도 미약했던 활동들이어서 티가 나지도 않았지만, 여유가 생기면 승냥이처럼 나를 ‘봉사자’, ‘기부자’로 만드는 기회를 찾았다. 얼마 전 250km 요르단 사막 마라톤에 참가하면서도 그랬다. 내가 좋아서, 내가 행복하려고 떠나는 길에 ‘나만 행복할 수는 없지, 좀 더 의미 있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스마일재단의 많은 사업들 중 하나에 지원하는 캠페인을 벌인 거다. 1만km를 달려 1km당 만원
추웠던 꽃샘추위를 지나 바야흐로 신부의 계절이 다가왔다. 한동안 결혼 소식들이 뜸하다 싶더니 5월에 잡힌 결혼식만 매주 일요일마다 해서 총 4건이다. 그 중 서울에서 하는 결혼식이 2건이니, “나의 주말 돌리도~” 하는 생각이 벌써부터 머릿속을 맴돈다. 며칠 전에 고등학교 친구한테 정말 오랜만에 메시지가 왔다. 대학교 졸업하고는 처음이니까 거의 5년 만인가? “중희야~ 결혼생활은 재밌냐?”, “응~ 정말 좋아. 너도 만나는 사람 있으면, 빨리 해~”, “그래서 말인데, 나도 곧 결혼할 것 같아서”, “오~ 진짜? 축하한다 야~”, “네 결혼식에 못갔는데, 이런 말 전하니까 민망하네; 그래도 청첩장 보내도 되지?”, “당연하지! 경남 양산시 ○○○로 보내면 돼~ 축하한다!”이렇게 반가우면서도 왠지 어색한 메시지를 주고 받고 나니, 예전 나의 모습이 떠올라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그때 나는 결혼 막바지 준비로 한껏 들떠 있었다. 예비 신부가 많은 부분을 도맡아 해 주었기에 결혼 준비는 차질없이 진행되었지만, 나에게는 청첩장 돌리기 및 지인들에게 연락 돌리기라는 큰 산(?)이 남아 있었다.본인 뿐만 아니라 결혼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이 느껴봤던 것처럼, 결혼
저희 동작구치과의사회에서 3월말 주최했던 원로 치과의사와 새내기 치과의사와의 만남 행사에서 오고 갔던 원로선생님과 새내기 치과의사 간의 의미 있는 대화를 치의신보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합니다. 이준기 고문님 : 과거 학교에 8년간 있다가 개원가에 나오려고 할 때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그동안 학교와 병원에서 쌓아놓은 것을 뒤로한 채 나오기가 선뜻 어려웠습니다. 인생이란 쉬운 것이 없고 쉬운 시절이 없습니다. 누구나 사람이 결단을 내려야할 때는 갈등하고, 고민하는 법입니다. 고심 끝에 개원가에 나오기로 결심한 후에는 주위 사람들 모두가 나의 환자요, 내가 그 지역사회의 일원이라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개원하고 나서 항상 지역 사회 일에 앞장섰습니다.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동작구의 각종 감투를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만, 이런 결과가 번거롭고, 귀찮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개원한 동작구라는 지역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스며든다는 의미가 공식적인 감투와 대외 활동 같은 것만이 아닙니다. 점심 식사를 할 때도 치과 주변의 음식점을 이용했습니다. 어느 특정 음식점만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모든 음식점, 한집씩 가가호호 다 가서 식사를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대부분 반복된 일상을 거듭하며 살아간다. 하루를 새로이 맞고 또 하루를 마감한다. 누구나 일관된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지루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때로는 신선한 변화가 필요하다. 무더운 여름에 한줄기 시원한 바람처럼, 갈증을 느끼는 메마른 생활 속에서 시원한 생명수 한잔처럼, 우리의 삶에 탄력을 주는 청량제가 필요하다. 지루한 삶의 연속은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우리들의 영혼이 갈증을 느끼게 되고 그것은 바로 스트레스가 되어 우리들의 건강을 해치며 혼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나는 수시로 변화를 갖고 살려고 노력한다. 재미있는, 그래서 행복한 삶은 얼마든지 있다. 등산, 낚시, 그림, 음악, 술, 여인… 그 중에서도 제일 우리를 즐겁게 하고 가슴에 기운이 쌓이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주말에 좀 쉬겠다고 해서 집에서 종일 TV나 보며 뭉개면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무엇인가 잃어버린 듯 허전함을 금할 수 없다. 피로가 더 쌓이는 듯하다. 나만 그런 것일까?서울에서 한 시간쯤 달려가면 바다가 보이는 곳이 있다. 서해안 영종도다. 을왕리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장관, 장봉도, 신도에서 보는 광활한 바다, 그리고 갯내음, 이런 것들을
얼마 전 지구 위에 편만한 인종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평생 노력하셨던 넬슨 만델라 前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기회를 박탈하고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악으로서 불평등은 민주 시민인 우리 모두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과제입니다.지금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남녀가 평등하게 일 할 수 있는 사회처럼 보입니다만 사실은 남자와 여자에게 요구되는 규범이 다르기에 결코 평등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즉 평균적으로 남자 치과의사들은 가사 일에서 비교적 자유로우며 좋은 곳에 개원하여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전공을 살려 공직의사가 된 경우에도 일에만 집중한다면 경력의 단절이 없는 평탄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결혼한 여자 치과의사들은 한창 실력을 키워 동료들과 경쟁해야 할 때 우선 가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특히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이후에는 거의 전적으로 양육 및 교육의 책임을 집니다. 그러면서 또 일에서도 성공을 요구받는 사회 구조입니다. 사회활동을 할 때 이렇게 분산된 에너지로 일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일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지만 이런 조건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동료 여자 치
지난 1월 실습을 마치자마자 바로 여행을 떠났다. 온전히 자신만으로 고립된 곳에서 있고 싶었다. 언어도 환경도 달라서 믿을 것이라곤 자신 밖에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2013년을-비록 25년 밖에 안 살았지만-25년의 인생 중 가장 바쁜 해로 보냈기에, 여유도 찾을 겸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지는 지난 여행들과는 달리 딱히 가보고 싶은 곳이라곤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지은 SF MOMA(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s) 하나뿐인 샌프란시스코로 정했고, 정한 이유도 역시 그 동안 관심이 없었지만, 친동생의 적극 추천으로 단순하고 게으르게 결정하였다.비행기 안에서 시차적응을 마치고, 내린 샌프란시스코의 공항은 전형적인 미국 같았다. 무엇보다 햇살이 따스해서 기분 좋게 공항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지역 전철인 BART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 있어서 나에게 진정한 여행의 맛을 알게 한 숙소이기도 했다. 여자 혼자 ‘총기소지’가 자유인 국가로 떠나는 여행이라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한인민박으로 숙소를 정했는데(부모님께서 나의 행방을 찾기 쉽고, 연락도 쉬운 곳이라는 판단 하에), 이 곳에서 나는 생각은커
어제의 일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일상이 변하기를 바라며 진료하는데 밖에서 번잡거리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마음도 웅성거려 곁눈질로 보니 남자 세명이 들어오는게 보였습니다. 팔짱을 낀 세남자들이 이상하기는 하지요. 아무튼 좀 이상한 분위기였습니다. 성인 남자 치료 받는데 보호자가 두명이나 따라 오는 일은 드문 일이기도 하고요. 저희 직원이 굳은 표정으로 예진하고 제게 문의후 x-ray를 찍는데 방사선실로 보호자들이 따라들어가는 눈치였습니다. ‘뭔가 사단이 있구나’생각하면서도 진료중인 환자를 중단할 수 없어서 그냥 두었습니다. 이때 이미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남자 셋이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친한 사람들 같구요. 형과 동생같은 느낌.순간 떠오른건 환자를 가장한 강도단…그럼 떼강도. 어째 보안업체에서 비상벨 설치하라고 할때 하지 않았던고 하는 생각…. 또는 동네 양아치들이 우리 치과에 예쁜 위생사있다는 소리를 듣고 놀러왔을까 하는 생각… 그래 우리 OO씨가 이쁘긴 예뻐…. 이윽고, 마침내 그들에게 제가 다가가야 하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후자(예쁜 직원)쪽에 바람을 두고 다가가는데, 저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던 두 남자가 돌아서더군요. 그냥 그런 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