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나일강을 지배하는 포악하기 짝이 없는 악어도 사람을 잡아먹고 나서는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상은 입을 벌리면 눈물샘도 같은 신경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고, 눈물이 먹이를 삼키기 좋게 수분을 충분히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해준다고 합니다. 결코 애도를 표하기 위해 나오는 눈물이 아닙니다. 악어의 눈물은 흔히 거짓의 눈물, 위선자의 눈물을 비꼬기 위해 사용됩니다만, 본래의 의미를 모른 체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중 하나는 본인도 그 구성원인 모임의 이익에 반하는 치명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대의를 들먹이며 자기 합리화를 통해 만족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일정 지위에 있는 사람이 조직의 규범과 목적을 자의적으로 결정지으려고 했을 때는 그 조직이 맞닥뜨려야 하는 위험도는 상상 이상으로 커집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소위 알권리를 내세우면서 아니면 말고 식의 무차별적인 허위사실 유포와 익명 투서로 인한 내부 고발로 외부 조직을 끌어들이는 행위로 인해, 최근 몇 년간 그 폐해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잘못의 인정이나 사과도
지난 10월 마지막 주말의 밤은 매우 잔인했다. 이태원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고는 전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당시 매 시간마다 들려오는 뉴스는 고통이었고 칼로 가슴을 베이는듯한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300여명의 사상자. 무엇이 잘못된 걸까. 사고 직후 정부는 11월 5일까지 추모기간을 선정하고 정쟁을 자제하고 고인들의 명복을 빌자고 했다. 그러면서 한편에서는 사고의 원인부터 크라우드 매니지먼트(crowd management·군중 관리) 시스템의 부재문제, 수많은 신고전화에도 불구하고 방치했던 문제 등을 찾아가고 있다. 물론 사고의 원인과 재발방지책은 반드시 찾아가야 한다. 지휘체계의 문제가 있었다면 이 또한 책임여부를 철저히 따져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그렇다고 하늘로 간 이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8년 전에도 10대들이 대형참사를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되풀이 되는 이런 대형 사고는 분명히 정부와 정치인들의 잘못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또한 우리 같은 의료인들의 책임도 적지않게 있다고 본다. 정부나 정치권이 제대로 이러한 시스템을 마련했는지를 같이 검토해 보고 부족할 경우 적극적인 개입으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치과 진료지원(보조)인력이 많이 배출되었음에도 치과 구인난은 갈수록 악화 일로다. 약 8만명의 치과위생사 중에 3만5천명(43%)이, 의료기관에 근무 중인 28만명의 간호조무사 중에 1만8천명(6.4%)이 치과에 근무하고 있다. 여기서 치과의료기관의 90%를 차지하는 치과의원에 근무하는 치과위생사는 대략 2만명이기에 18,051개(2020년 기준) 개원 치과 당 치과위생사와 간호조무사는 대략 1명꼴로 근무함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치과위생사 없는 치과의원도 30%에 이른다는 점이다. 지나온 집행부마다 지속적인 해결노력을 해 왔지만, 홍수 속에 마실 물이 없듯이 지금까지의 어떤 해결책도 희망고문 이었을 뿐 백약이 무효한 상태였다. 이에 필자는 치과 진료보조인력의 양성과 수급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문제점을 짚어 보면서 그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 치과조무사 제도의 교육적 검토 치과위생사가 담당하는 주 업무는 구강위생 관리 및 교육이다. 하지만 정작 전체 진료 시간의 대부분을 치과의사의 진료지원(보조)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치과위생사 양성 취지에 맞지 않다. 이제는 치과진료의 특수성에 맞는 진료보조인력을 양성하여 치과위생사의 주 업무 시간을 60% 이상으
“와! 수술이 벌써 끝났나요? 마취한 느낌도 없이 안 아프네요. 역시 소문대로 신세계네요!” 환자의 칭찬 앞에 30년 차 치과의사는 어린아이가 된다. 어깨가 저절로 으쓱,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이다. 치과의사는 내게 천직이다. 나의 적성에 딱 맞는 밝고 희망이 넘치는 즐거운 진료실은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다. 24년 전 치과 원장으로 첫 출근하는 날, 나에게는 3가지의 꿈이 있었다. 첫 번째는 환자에게 좋은 진료를 베푸는 훌륭한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고, 둘째는 직원에게 최고의 직장을 만들어주는 좋은 경영자가 되는 것이고, 셋째는 학업에 매진하는 꿈나무들에게 형편이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도록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주는 것이었다. 이 꿈은 단 하루도 잊지 않고 실천해왔으며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그동안 내가 깨달은 좋은 치과의사의 시작은 환자가 무엇을 불편해하고 두려워하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역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안 아프고 안 힘든 진료로 환자가 용기내 스스로 찾아올 수 있는 치과를 만들 수 있을까? 최근에 25% 마취 용량만으로 수술과 발치가 가능한 마취법을 개발했다. 마취주입속도를 조절할 때 압력에 의해 생기는 무감각 현
화학공학을 전공하던 20살, 대학교 신문에서 만화를 연재하였다. 공대생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학교 일상을 유머로 풀어낸 4컷 만화였다. 한 달에 한 번 연재하는 만화였지만 한 달 내내 창작의 고통을 받고 지냈다. 하루는 뭘 그릴까 고민을 하다,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공대라 여자 비율이 너무 적어서 고통받는 우리가 생각났고, 멧돼지 철(?)이라 야생 멧돼지를 조심하라는 안내문이 기숙사 곳곳에 붙여져 있었기에 그 두 개를 합쳐보자는 생각을 하였다. 만화를 첨부할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불가능하여 글로 대체한다. (궁금하다면 구글에 “여기는 호그와트 2화”를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1컷. 사냥꾼이 멧돼지를 총으로 노리고 있다. 2컷. 갑자기 남학생 총 앞으로 뛰어들며 “안되욧!!” 3컷. 사냥꾼 놀라며 “아니 학생 왜 이러는 거야!!” 4컷. 갑자기 예뻐진 멧돼지. 속눈썹이 그려져 있고 리본이 달려있다. 남학생 왈 “학교에 여자 수 줄이지 마요.” 나는 학교에 여학생 수가 적으니, 암컷 멧돼지라 할지언정 여자라 소중하니까 숫자를 줄이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만화를 그렸다. 나름 학교에 여자 수가 적다는 포인트를 멧돼지와 잘 엮었다고 생각해서 뿌듯한 마음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막연하게 물어보면 나의 내면이 더 단단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외부 자극에 무덤덤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정신과학의 측면에서는 이런 내면의 단단함이 너무 강하면 오히려 사이코패스를 의심해 봐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타인의 말을 경청하기 어렵고 자신의 단단한 경직된 사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공감이 부족하고 유연함이 부족한 연장자는 ‘꼰대’로 불릴 수도 있지요. 모두 지나치게 단단한 내면 때문에 생깁니다. 오히려 우리가 존경할만하면서 내적 단련이 잘 된 사람들은 상처받고, 흔들리며 타인의 아픔에 쉽게 공감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빨리 회복하고, 혼란 상태에서 의식의 중심으로 빠르게 돌아오는 사람들입니다. 연세대 김주환 교수는 이런 사람들이 가진 특징을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했습니다. ‘리더의 용기’의 저자 브레네 브라
노란 낙엽이 가을 엽서처럼 켜켜이 쌓여가는 거리 달콤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간다고 슬퍼말아라. 붉게 화려했던 치장들이 조막손같이 쪼그라들어도 위축되고 망설일 것이 아니다. 눈 내리고 꽁꽁 어는 거칠고 혹독한 추위가 오기 전에 바람에 낡은 이파리들을 모두 떨궈내야만, 돌아오는 명년 봄 초록의 향긋함을 맛볼 수 있으리니…….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봄여름 내내 녹색을 보이던 나뭇잎은 가을이 되면서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붉고 노란 색소들을 드러냅니다. 떨켜를 만들어 이파리를 떨어뜨리면서 수분과 영양소의 손실을 차단하고, 벌레의 침입을 막습니다. 찬 겨울을 이겨낼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아름다운 낙엽이 실상은 생존을 위한 치열함의 산물입니다. 기온이 하락하면 녹색 엽록소는 파괴되고, 대신 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과 노란 색소인 크산토필이 밤낮의 온도차가 클수록 화학작용이 더 활발해지면서 나타나게 되어, 울긋불긋 단풍과 은행 나뭇잎이 더욱 아름다워진다고 합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타인이 저술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정신적 배설물 속에서 진주를 찾는 것이 아니라 배설물로 양질의 거름을 만들어 흙에 묻고 그 위에 씨를 뿌려 새로운 생명이 자라게 하는 것이다.(둥근돌의 생각). 2016년부터 10월부터 고전 글쓰기를 하고 있다. 논어 첫 문장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 不亦君子乎?” 를 시작으로 대학을 마치고 중용을 중간정도 쓰고 있다. 한문에 대해 전혀 문외한으로 고전을 읽다보니 약간의 욕심이 생겨 조선대학교 평생교육 강좌인 한문 한자 교육과정에 등록하여 공부를 하고 있다. 교육과정에 교수님께서 장자를 강의 하신다. 평소 장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중용을 접어두고 장자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고전 글쓰기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오전 9시 30분부터 진료를 하여도 진료를 하지 않는 시간이 태반이 넘는다. 하루에도 몇 번 같은 News를 뒤적인다. 진득하게 책을 읽기도 힘들다. 책을 읽다가 환자가 오면 읽던 책을 접어두고 진료를 하여야 한다. 독서는 리듬이 중요하다. 그럴 때 고전 읽기를 하며 나오는 한자를 써본다, 학(學)자는 臼(절구 구) 爻(효 효, 세상의 모든 일)
‘백수의 꿈’은 과거에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기억들을 접목해 현실과 혼돈할 수 있는 필자의 지어낸 짤막한 얘기꺼리임을 밝혀둔다.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아서인지 장날 약장수가 등에 북을 메고 발로 탕탕 굴리면 북이 쾅쾅 울리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신명나는 장단에 구경꾼들이 모여 함께 즐기며 약도 사고하는 풍경을 많이 봤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생소하겠지만 동동구리모라 하며 화장품을 팔기도 하며 시골장터의 운치를 회상해 보기도 한다. 명절날이나 정월대보름 그리고 각종 마을행사에 사물놀이패들이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가리며 징을 칠 때 신나서 덩실덩실 따라 춤추던 기억이 뇌리에 남아 늘 신명나는 분위기에 빠져들었고 흥이 기질적으로 타고난 것 같다. (지금도 지신밟기 하면서 꽹가리 징을 치면서 귀신을 쫓아주기도 한다.) 이후로 오락부장이 되어 분위기를 이끌어가며 걸어가면서도 끄덕거리는 게 생활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악대부 선배들이 음악에 관심 있냐며 함께 연주하면서 재미난 서클활동을 하자고 제의했다. 온갖 미사여구를 써가며 꼬드기길래 예전에 몸집이 작을 때 이유 없이 큰 애들이 놀리거나 맞은 아픈 기억 때문에 보호해 줄 선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하겠
결핵예방법과 결핵예방법 시행규칙에 저희 같은 의료기관 종사자는 결핵검사와 잠복결핵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지난 7월 개정된 결핵예방법 시행규칙에 의하면 결핵검사의 경우 매년 받아야 하고 잠복결핵검사는 근무하는 기관에 소속된 기간 중에 1회 받아서 결과를 제출해야 합니다. 저는 일을 시작하고 아직 이 검사를 시행하지 않아서 검사를 받으러 금쪽 같은 오프날을 쪼개어 검진기관을 방문하고 검진을 받았습니다. 검진기관에 확인하였더니 오전에 와야 검진이 가능하고 요즘 국가건강검진환자들이 연말로 다가오며 많이 오고 있어서 복잡하고 오래 기다려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침 일찍 검진기관으로 갔습니다. 쌀쌀해진 날씨에 차가운 아침공기를 맞으며 병원으로 향하는데 참 쉬는 날까지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싶었습니다. 검진기관인 병원에 도착하니 안내 받은 것처럼 검진환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기다리며 보니 국가검진환자 뿐 아니라 코로나 검진환자, 저와 같이 직장에서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으러 온 검진환자, 이 뿐만 아니라 건강을 생각해서 예방차원에서 이런저런 검진을 받으러 온 환자 등 지금 아파서 진료를 보러 온 환자가 아닌 검진과 예방을 위해서 온 환자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봉사해 오신 선배님들과 지금도 묵묵히 봉사하고 계신 동료 치과의사분들께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제가 장애인 이동 치과 진료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아주 즉흥적이었습니다. 군 복무 중에 같이 교정 세미나를 하던 동료와 선생님의 권유가 시작이었지만 실은 진료 후 돌아와서 먹는 저녁과 소주 한 잔이 즐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 중증 장애인들이 기거하는 소규모의 비인가시설을 방문해서 진료한다는 자부심도 컸던 것 같습니다. 대기업 재단의 후원을 받았던 그 단체는 치과의사, 치과위생사, 치과기공사, 자원봉사자, 사회복지사가 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없어진 지방의 30~40명 내외의 장애인 비인가 시설을 정하여 시설 내 치과 진료실을 설치한 후에 2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모든 원생의 진료를 마칠 때까지 진료를 진행하였습니다. 대략 시설당 준비기간 포함 1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 같습니다. 20년도 더 전인 것 같습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버스가 시설까지 올라가지 못해 큰길에서 장비를 들고 한참을 올라가서 진료를 해야 했던 곳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비장애인들에 밀려서 장애인 복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