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일출을 보겠다고 혼자 무던히도 용을 썼더니 눈뜨자 시계가 2시 30분을 가리킨다. 좋은 음악을 좀 듣다가 옷 입고 나서면 되겠구나…. 미리 약속이 된 장소, Sheraton Four Points Hotel 앞에 당도하니 거의 5시 30분. 함께 여러사람이 오르기로 되어있어 조금씩 시간은 지체되었고, 뒤쳐져 오는 사람을 위하여 예능교회 앞에 몇 분이 남게 되었다. 평소에는 한 잠이 들어있을 이 시각, 춥기는 왜 이다지도 추운 것인지... 자꾸만 발가락이 아파와서 제자리 선 채로 뜀뛰기를 해 본다. 간밤 잠자리 들기 전에 손전등을 생각했었는데, 이런 낭패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천지간 칠흙 어둠속, 사람들 틈에 끼어 조심조심 잠자코 오를 일이다. 발 아래 뽀드득거리는 소리, 더러 마른 눈이 밟히지만 대부분은 튀어나온 돌들이다. 출발할 때 찢어질 듯 따갑던 양쪽 볼이 어느 사이에 화끈거리고, 점차 등줄기에 땀이 배인다. 산행은 좋은 운동이고, 오늘 역시 잘 결정을 한 것이야... 집에서 가져온 생수, 뚜껑을 열고 시원하게 거푸 몇 모금을 마셨다. 배낭에 담겨진 채 차가운 날씨에 반응하여 얼마간 얼었던지 구멍으로 작은 얼음덩어리가 함께 넘어가더라... 일선사 당도하여 불도를 잠시 생각하다가 훌륭하신 조상들과 조국의 역사를 기억하였다.
무량 무작의 경지가 원... 부처님의 진정한 이야기가 원교... 불교 팔만대장경... 법과 삼제, 즉 공 가 중 그리고 화법사교... 오시와 화의사교... 대웅전을 기웃거리며 약간의 시주라도 해 볼까 하였는데, 춥기도 하지만 졸라맨 등산화 벗기가 귀찮았다. 보현봉 2년 안식년이 오늘 끝이 난단다. 2중 3중으로 쳐진 철조망 등 바리케이트를 뚫고서 암릉에 매달렸다. 아, 올라가시면 안됩니다... 3년이 연장되어 2005년까지 안식년... 그만 내려오세요... 저 아래 아득히 고함소리가 들리고. 처음에는 꼭 손톱 끝처럼 생겼더니, 정철대감 말씀처럼 정말이지 소의 벌건 혀 모양 그대로더라... 첫날 새해를 맞는 합창소리가 아래로부터 들려왔다. 부디, 올 한해 현명함과 평화가 온누리에... 그래도 이곳 보현봉 정상에서 일출을 본 사람은, 홍선배님과 김선배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이었다. 청진옥에 당도하여 막걸리부터 서너 사발을 마시고, 서로 쳐다보고 웃다가 또 다시 빈잔에 술을 채웠다.
오늘 아침 이 집은 얼마나 분주하던지, 맹물에 밥을 말아주더라도 결코 항의할 생각을 못하겠더라. 어떤 김씨가 영화옥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하여 운영을 해 오다가 해방 이후로 약 60년간 술국, 바로 이 해장국 청진옥으로 유명하다. 위장에 술과 밥을 제대로 채워 넣었더니 한창 기분이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 왔고, 식구들 사이에서 점심으로 피자 한조각을 또 먹었다. 아무래도 한 겨울 큰 산 속 추위에 떨면서 애를 써 걸었더니 양쪽 무릎이 다 욱씬거리고 허리와 옆구리 결리고 아파서 소파와 안방을 오가며 온 종일 끊임없이 잠만 잤다. 해거름해서 눈떴고 어둑해져 성당에 갔더니 오늘은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신 지 8일째,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그리고 세계 평화의 날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