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호 / 인천 푸른치과의원 원장
한숨 돌리고 돌아본 창밖은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벗꽃이 막을 내리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야산에는 몇몇의 사람들이 땅에서 무언가를 케고 있었다.쑥이었다.
대도시 얼마남지 않은 야산에 올라 쑥을 케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도 쑥이 피어 있었다.
꽃무늬 어지럽게 그려져 있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들고 오르던 산언덕에는 발 디딜틈도 없이 쑥이 나 있었다.
온동네 이야기꺼리 쑥과 함께 바구니에 담겨지고, 나는 아직 나오지도 않은 벌레들을 찾아 땅을 후비고 다녔다.
바구니 가득 찬 쑥은 떡이 되어 그날저녁 우리집을 즐겁게 했다.
쑥이 사그라 들면 온산을 하얗게 물들인 아카시아가 또 나의 구미를 당겼다.
옆집 항상 볼이 발그레한 여자아이와 바구니하나 끼고 산에 올라 주렁주렁 피어있는 아카시아 한줄기 따다 입에다 주루룩 넣어주면 입안에 감미롭게 퍼지는 아카시아. 달콤한 첫사랑의 맛이었다.
태양이 더 뜨거워지면 고만 고만한 동네아이들 막대기 하나들고 산으로 향했다.
산딸기 채취, 산딸기 하면 꼭 등장하는 꽃뱀이야기.
어느 동네 아이하나 산딸기 따러갔다가 뱀을 만났는데 큰돌로 머리를 쳐서 죽였다더라 근데 며칠후 그 뱀의 짝이 찾아와 아이를 물었다는 섬뜩한 이야기.
혹시 나타날지 모르는 꽃뱀을 두려워하며 재빨리 따서 입에 넣었던 산딸기.
졸졸흐르던 개울옆 제멋대로 자란 풀들사이에 거뭇거뭇하게 보이는 알맹이들 그이름 까마죽.
똑똑따다 입에 넣으면 포도 알맹이 처럼 톡 터지는 맛. 풀맛이다.
까마죽 옆엔 항상 옻나무가 있어 그날 온동네 아이들 까마죽 먹고 거멓게 된 입을 하고 온몸을 긁고 다녔다.
어린시절 그 많던 자연속의 간식거리들. 이젠 찾아볼 수도 없고 있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햄버거, 피자 좋아하는 우리 아들에게 지금 책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풀들을 먹으며 아빠는 행복했고 즐거웠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내 가슴속에 살아있는 자연을 우리 아들에게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