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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께 여쭤보고 오세요!

최치원 칼럼

몇 년 전, 한 여학생이 치아우식증을 주소(主訴, Chief complaint)로 필자의 치과의원에 혼자서 내원한 적이 있었다.

 

기본적인 구강검진을 하고 치료계획을 세운 다음 진료비 총액까지 산정해 주었다.


하지만 어린 학생이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 아무런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이렇게 얘기를 해 주었다가 필자는 순간적으로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 마냥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ㅇㅇ야! 진료비가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엄마한테 여쭤보고 결정한 다음에 와서 치료받자~~”라고 얘기를 해 주었는데, 대뜸 이 여학생은 고개를 떨구면서 “저 엄마 없는데요!”라고 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학생에게 내가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누구나 엄마 없이 이 세상에 오는 사람이 없으니…


이 학생의 나이에 나는 엄마가 계셔서 엄마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랐었던 경험을 그 여학생에게 그대로 요구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면목이 없다.

 

하지만, ‘엄마에게 여쭤보라’는 의미는 통상적인 최종결정권에 대한 위임의 의미로 이미 한국사회에서는 널리 통용되는 단어이지만, 무심코 던지는 나의 언어습관이 어떤 이에게는 커다란 상처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2019년 현재 이혼이나 배우자의 사별, 별거, 미혼모 등의 사유로 ‘한부모가족’의 비율이 전체 가구의 11%인 약 50만 가구에 이를 정도로 이제는 새로운 가족 형태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던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치과의사가 과연 필자뿐일까?

 

지금까지 우리는 ‘한부모가정’을 ‘결손가정’이라고 스스럼없이 표현하는데 익숙해져 있고 큰 거부감이 없이 사용하고 있었지만, ‘결손’이라는 의미는 정상에서 뭔가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의미로의 사회적 편견이 내포된 단어이다.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면서도 가치중립적인 표현을 구사하려는 노력들이 우리 치과의사들에게도 꼭 필요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환자들에 대한 배려이자 예의일 것이다.

 

변화가 주도하고 있는 현 사회적인 현상에 걸맞게 사소하지만 지나쳐서는 안 될 자신만의 언어적습관을 독자들께서도 한번쯤 뒤돌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번 칼럼의 소재로 삼아보았다.


그 날 이후 필자는 자기결정이 힘든 환자분들에게는 ‘엄마께 여쭤보세요’ 대신 ‘보호자와 상의하고 오세요”라는 다소 딱딱하고 사무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데 때로는 사무적인 표현이 애정어린 표현보다 앞설 수 있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던 사건으로 기억된다.

 

나의 언어습관 하나를 고쳐 딱 한 사람이라도 위안을 받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고쳐 불러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직원에 대한 호칭(○○ 선생님, ○ 양, 미스 ○), 환자에 대한 호칭(아버님, 어머님, 어르신 등)에 대해 직원들과 연말 송년회 때 소재로 삼아보시기를 권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