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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가 구강용품을 판매하는 것은 윤리적일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26)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환자에게 구강용품을 권하는 것이 잇속을 챙기는 것으로, 심지어 강매로 비칠까 선뜻 손이 나가지 않습니다. 치과에서 구강위생 관리는 구강 건강 유지를 위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고 제대로 된 관리를 위해선 상당한 노력이 듦에도, 이런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치과의사가 구강용품을 판매하는 것은 윤리적인지 궁금합니다. 익명

 

모든 영역에서 건강관리는 중요합니다. 체중이나 혈압, 당 수치 같은 부분은 개인의 관리가 건강에 있어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알려줍니다. 사실, 구강 영역은 이런 만성 질환 관리의 방법이 확립되기 전부터 위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영역이었으나, 우리는 이를 강조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을 위해 환자에게 처치나 위생 재료를 처방하면 수익을 위한 일로 취급받는 문화가 있기 때문인데요, 이는 국가 제도의 문제에 기인한 것입니다.


국가 건강보험이 자리 잡기 위해선 보험 항목을 무엇으로 잡을 것인지가 중요했고, 여기에서 필수 항목들이 우선 선택되었음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의과에선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이, 치과에선 아말감 충전, 근관치료, 지치 발치가 대표적으로 보험 항목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방적 접근은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보험 항목으로 뽑히지 못했지요.


보험, 비보험의 이원화는 안타깝게도, 비보험 항목이 필요 없거나 비싼 치료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비보험 항목으로 들어갔던 예방 영역은 도매금으로 넘어가 필요 없는 치료로 인식되었고, 그것은 개인이 알아서 하는 영역이지 병원에서 처치나 처방을 할 부분은 아니라는 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한국 사회의 다른 많은 영역, 예컨대 돌봄 노동처럼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환자에게 구강용품을 쓰라고 권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저만해도 얼마 전까지 소아치과에서 진료하면서 환자 부모님에게 양치를 잘해야 한다고 숱하게 말했지만, 어떤 재료를 권하거나 하는 일은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구강 위생용품 처방은 물건 판매가 아님에도 나서지 못했던 것은 일단 제가 제품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하고 (칫솔의 특징이나 치약의 차이를 하나하나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텐데, 제가 소아 용품을 직접 써볼 일이 없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환자의 특성에 따라 어떤 재료를 권하는 게 좋은지에 관한 앎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 부족함에 더해졌던 것은 전문가적 책무에 대한 고민이었지요. 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하다면, 의료인이 심지어 관리 용품을 직접 판다고 해도 그것은 좋은 일일 겁니다.


건강 증진을 위한 노력이 윤리적으로 타당한 게 당연하지 않냐고 생각하시겠지만, 이 부분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2012년 카터 등의 논문에 의하면 건강 증진은 사회적 이상의 추구와 실천의 두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측면에서 건강 증진이란 사회 전체의 건강을 추구하는 일, 즉 건강 불평등 해소와 맞닿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실천에선 복잡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건강 증진을 위해 개인에게 어떤 방법이나 접근법을 강제해도 될까요? 강제할 수 없다면, 환자의 이득과 사회 전체의 이득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할까요? 건강 증진이라는 이름의 접근이 오히려 환자를 비난하는 도구로 (“당신이 건강을 챙기지 않았으므로, 현재의 결과는 당연합니다.”) 쓰일 여지는 없을까요? 등등의 질문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따라서 “건강 증진은 윤리적이다”라고 덮어놓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구강용품 처방은 잘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치과의료인으로서 우리는 환자에게 적절한 구강용품을 처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적절성과 자율성의 두 차원입니다. 하나씩 살펴보지요. 적절성이란 말 그대로, 환자에게 적절한 구강 위생용품을 처방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틀에 박힌 처방이 지지받기는 어렵습니다. 치과의료인은 환자의 구강 상태를 평가하고, 이에 맞는 구강용품을 처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따라서 상태 평가 방법과 수준에 맞는 구강용품의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자율성이란 환자가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림을 의미합니다. 이후 제도가 변경될 소지는 있으나 처방료는 현재 진찰료와 통합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처방을 내린 다음 해당 구강용품을 약국에서, 또는 치과에서 구매할 것인지는 최종적으로 환자에게 달려 있고, 구매하지 않는다고 하여 환자에게 비용 손실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치과의료인이 환자에게 적절한 제품을 권한다면 이를 거리낄 이유는 사실 어디에도 없는 것이고, 최종적으로 판매하는 약사나 치과 종사자는 환자에게 제품의 특성을 충분히 설명하여 환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구매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개원가는 진료에 바빠 이런 부분까지 챙기는 것은 어렵습니다. 더하여, 제도적인 변화로 접근해야 할 부분도 분명 있지요. 예방적 접근이 계속 비보험 영역으로 묶여 있다면 사회적 인식이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까요.


사실, 이런 예방 부분은 오히려 보험에서 더 강화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예컨대 독일이나 북유럽은 정기적으로 치과를 내원하여 검사를 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보험의 수가 산정을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구강 관리를 (예방을 포함하여) 받은 환자의 전체적인 치과 의료 필요가 낮아지며, 따라서 전체 보험 재정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이 이런 결정의 배경에 있습니다. 즉, 환자의 구강 건강 증진을 유도하는 행동경제학적 접근을 취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당연해 보이지만, 현실에 접목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스케일링 보험급여화에 든 노고를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이처럼 예방을 위해 많은 선배님, 선생님들께서 노력해 오셨지만, 치과는 중요도 면에서 밀려온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21세기, 의학의 틀이 맞춤·예방·예측·참여의 4P 의료로 변화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치의학 또한 이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임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환자에게 적절한 구강 위생용품을 권하고, 그 필요성을 설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식 변화는 의외로 작은 곳부터 시작되니까요.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