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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수필(776)>
환자들과 함께 시작하는 하루<상>
전영미(전북치대 교정학 교실 교수)

“여러환자을 대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의약분업 때문에 온통 세상이 난리다. 감기만 걸려도 당장 약국으로 가야할지 병원으로 가야할지.. 병원으로 가면 진료는 받을 수 있는 건지.. 일차 폐업사태 이후 다시 이어진 파업으로 인해 의사들에 대한 믿음은 예전 같지 않은 듯 하다. 현재와 같은 의약분업은 잘못된 점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막상 의사들을 "제 밥그릇 크기만 생각하는 나쁜 놈들"이라 몰아세우며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조목조목 따져가며 설명해주면 편견을 지적 받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분개할 것 같아, 언성 높이지 않고 맘 상하지 않게 차근차근 설명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이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것 같다. 의사에 대한 불신은 꼭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었던 듯 하다. 여러 환자를 대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몇 달 전의 일이었다. 저녁 늦은 시간에 환자 보호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뭔가 속상한 일이 있었던지 목소리에 원망이 들어 있는 듯 하다. “선생님, 그럴 수 있어요?” 대뜸 첫마디가 그랬다. 영문을 몰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애가 치과에 치료받으러 간지 몇 달이 되도록 연락 한번을 안 해줄 수 있느냐는 거다. 그럴 리가 없다 생각은 했지만 일단 보호자의 말을 들어 보기로 했다. 환자는 교정치료가 끝나고 장치를 제거하기로 한 중학생이었는데, 고교 진학을 좀 먼 곳으로 한 탓에 봄방학 일정에 맞추어 약속을 해 주었었다. 그런데, 그 환자는 병원에 오지 않았고 그 이후 환자와 직접 통화해서 몇 번이나 약속을 다시 잡아주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도 보호자는 자신이 직접 연락을 받은 적이 없으니 병원에서 연락을 안한 것이 틀림 없다며 나를 무책임한 의사라고 언성을 높였다. 아예 이전에 직접 환자와 통화 했던 것에 대해서는 들으려 하지를 않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전화를 받는 입장에서도 조금 화가 났다. 교정치료를 하루 이틀 받은 것도 아니고, 치료가 많이 남은 상황도 아니고, 장치를 제거하자는 약속이었는데, 설사 병원에서 연락이 없었다고 해도 그렇지 하루라도 빨리 장치를 제거하고 싶어서라도 환자측에서 연락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나도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보호자는 갑자기, 치료비를 완납하지 않으면 장치를 풀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치료비 때문에 병원에 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한꺼번에 그 많은 치료비를 어떻게 다 내느냐며 진작 치료비를 완납시키지 않은 것은 병원이 잘못 한 것이므로 자기는 치료비를 낼 수 없다며 화를 내었다. 사업이 어려워 치료비를 낼 처지도 못되고, 치료비를 수납 시키지 않은 것도 병원에서 잘못한 것이라 치료비를 내고 싶지도 않으니까 다른 치과에 가서 장치를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환자의 보호자는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주르륵 쏟아 붓고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은 채 멍하니 앉아 있어야만 했다.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언성을 높인 것이 후회되어 다시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집에서는 어머니의 연락처를 알 수도 없고 귀가시간이며 기타 모든 것을 ‘모른다’로 일관할 뿐이었다. 이후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끝내 그 보호자와는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한참 IMF,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그 때, 자존심이 유난히 강했던 그 보호자는 치료비를 낼 처지가 못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참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공공기관에 속하는 대학병원에서, 환자의 치료비를 의사 개인이 어떻게 해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번쯤만 상의를 했더라도, 나를 믿고 한번쯤만 미리 이야기를 했더라도 서로에 대한 오해가 없이 원만하게 해결 할 방법을 찾아 보았을텐데, 그 보호자는 아마 내가 치료비를 꼭 받아내야만 직성이 풀릴 사람으로 보였었나보다. 지금쯤 그 환자는 교정장치를 끌렀는지, 충치는 생기지 않았는지... 오랫동안 교정치료를 담당하며 미운정 고운정이 들게 마련인데, 그 한번의 전화 통화 이후 그 환자도 다시 병원에 오질 않고 있고 나도 마냥 그 환자의 소식을 궁금해 하고만 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