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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꽁트>

명옥이 새해 들어서 단단히 결심한 게 하나 있다. 만년대리에 만족해 하는 비전없는 남편 태수에게 더 이상 기대지 말고 직접 직업전선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직업전선! 그게 어디 맘처럼 쉬운 일인가. 유학파 석박사 실업자들이 판판히 놀구 먹는 세상에 무에 그리 급했던지 다니던 재수학원도 마치지 못하고 과속으로 사고부터 쳐 곧바로 솥뚜껑 운전수로 근무해온 팔년차 아줌마에게 누가 일자리를 주랴. 그러나 명옥은 해냈다. 그 누가 말했던가 노동은 신성하고 직업은 귀천없고 개같이 번돈으로 정승같이 산다고! 엄마 나 강남가면 일등할 것 같아 그래 까짓 것 죽은 사람 원도 풀어준다는데 두 눈 시퍼런 금쪽같은 내새끼 소원 하나 못 들어주랴. 강남으로 이사는 못갈망정 강남유치원에라두 등록시켜줘야지! 그래서 잘난 남편 짝지워서 졸같은 남편만나 졸같이 살아야만 하는 이 여자의 한맺힌 절규를 절대로 대물림하지 말아야지! 애끓는 모성애로 명옥은 굳은 결심 끝에 첫 출근을 한 것이다. 장은 우아하게 한 평 땅값이 천오백이 넘는다는 강남의 모 주상복합아파트에 위치해 있었다. 딩동! 긴장된 손끝으로 벨을 누르자 아가씬지 아줌만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싱싱하면서도 어딘지 섹시한 귀티가 좌르르 흐르는 안주인이 문을 열었다. 어서와요, 소개소에서 오셨죠? 어딘지 차분하면서도 말씨에 위엄과 교양이 넘쳐흘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던가. 역시 강남사모들은 말투부터가 다루구만... 명옥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가 숙여지며 예 사모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뭣부터 할까요? 우리집은 식구가 단촐해서 별로 힘든 일 없을 거에요. 다만 우리 그이가 점심을 꼭 집에서 드시니까 점심식사에 신경 좀 써주세요! (옴마 무슨 남자가 집에서 점심을 든다야? 혹시 마누라 외출두 못하게 발목 잡는 의부증? 아니면... 일찌감치 직장에서 떨궈져 마누라 돈만 축내는 업자?) 그녀의 속내를 듣기라도 한 듯 수화기를 든 사모님은 명옥에게 사뭇 명령조로 말하던 때와는 달리 코가 꽉 막히다 못해 질식사 일보직전의 목소리로 당신 환자 많어? 피곤하겠다. 점심 뭐해 드릴까? 당신 요즘 너무 기운없어 보이던데 격려차원에서 장어구이 좀 해드릴까? 오호호. 귀찮기인? 당신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내 삶에 기쁨이지... 그럼 빨리와용! (옴마 다른 남자라면 모를까? 어떻게 남편한테 저런 목소리가 나올까? 태수가 술마신 다음날 속쓰리다며 라면이라도 챙겨달랄 때마다 코까지 골아가며 깊이 잠든 척 돌아눕던 자신을 돌아볼 때 이건 기적에 가까웠다) 그러나 기적은 와인과 장어구이를 앞에 두고 마주앉은 사모님부부에게 다시 한번 일어났다. "나 보구 싶었어?" "그러엄 보구싶다마다!" "치잇. 고짓말!" "증말이야 환자보면서 내내 자기만 생각했는데." "증말?" "그러엄! 오죽하면 내가 잠시두 당신하구 떨어져 있기 싫어서 병원하구 같은 빌딩에 집을 얻었겠어? 병원하구 집 오가는 시간두 아깝다구 난!" "흐응. 고짓말이라두 기분은 좋다!" "고짓말 아니야. 자 이거 먹어봐. 요즘 기운없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아" (옴마. 닭살이 하늘을 찌르는구먼. 아니 물린 고기에 떡밥주는거 봤어? 아무리 반반해두 그렇지 볼장 다본 와이프가 뭐가 이쁘다고 밥까지 떠먹여준다냐? 밥먹을 때 여자가 남자 챙기면 부부사이구 남자가 여자 챙기면 부적절한 관계라던데. 암튼 별꼴이 반쪽나다못해 아주 콩가루가 되는구만?) "아줌마? " "네? 네 사모님!" "뒷정리 나중에 하고 장 좀 봐오세요. 요 앞 백화점에 가서 여기 적힌대로요." (그래 내가 장어 먹을때부터 알아봤다.) 욕실의 열린 문틈으로 열심히 양치질을 해대는 주인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명옥은 될 수 있는 데로 장을 천천히 보는 게 주인부부에 대한 예의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출근을 끝내고 한강다리를 가로지르는 버스 안에서 명옥은 새삼 비애를 느꼈다. 누구는 서방 잘 만나서 오십평 아파트에 손에 물 한방울 안튀기며 잘난 남편이 발라주는 장어구이나 납죽납죽 받아먹구 훤한 대낮에 숙제검사까지 받는데 나는 뼈빠지게 일해도 남편 손잡기두 힘드니... 그래. 이게 다 그 잘난 정태수 때문이야. 그 작자가 날 꼬시지만 않았어두 대학 잘 가서 잘 나가는 남편 만나 물 안 튕기며 살 수 있었는데... 순진한 내 신세 요모양 요꼴로 만들다니 정태수 넌 내인생에 실수구... 오점이야! 정태수우...! "이제와? 춥지?" (그래도 걱정은 됐나? 안하던 마중을 다나오구?) 잔뜩 이를 갈며 내리는 명옥을 맞이하는 태수의 얼굴이 꽁꽁언채 눈치없이 벙글댄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입이 째지셔?" (마누라 일보내니까 면목없겠지.) "얼굴펴! 굳 뉴스야!" "뭔 놈에 굳 뉴스?" (혹시 승진?) "소개소에서 찾는 전화 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