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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 만나는 철학이야기
루이 알튀세 : 맑시즘, 구조주의, 인식론<3>

과학(양자역학, 생화학, 사적 유물론, … 등등)과 이데올로기의 구분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런 구분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준은 무엇인가? 알튀세는 이 지점에서 ‘大理論(The Theory)", ‘이론 일반", ‘실천 일반"의 개념을 제시한다. 즉 다른 이론들(과학들 및 이데올로기들)에 비해 메타차원에 존재하는 대이론을 제시한다. 이 대이론은 곧 변증법적 유물론(= 유물변증법)이다. 그렇다면 대이론은 어떤 기준에서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하는가? 대이론은 경험주의, 인간주의, 경제주의를 전과학들로써 비판한다. 1) 알튀세는 바슐라르를 따라 경험주의 및 실증주의를 통박한다. 경험론은 한 개인의 ‘의식"에 생겨난 ‘감각자료(sense-data)"를 출발점으로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원자적 개인의 존재, 개인을 ‘의식"으로 추상하는 태도, 감각자료의 이론중립성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을 내포한다. 이 지점에서 알튀세는 인식론적 맥락과 정치적 맥락이 사실상 밀접하게 묶여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이다. 다시 말해, 인식론에 있어 추상적 개인의 의식에서 출발하는 사유는 정치에 있어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 개념을 함축한다는 것이다. 알튀세는 인식의 원질료는 감각자료가 아니라 ‘일반성 I(generality I)"이라 본다. 일반성 I은 감각자료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적(복합적)관계의 산물"이다. 즉 그것은 한 개인이 ‘추상적으로" 경험하는 인식질료가 아니라 ‘집단표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거기에는 이미 무수한 사회적 현실이 묻어 있다. 인식이란 추상화된 개인의 감각자료가 아니라 일반성 I에서 출발한다. 과학은 인식은 이 일반성 I을 비판함으로써 출발한다. 그 비판은 인식론적 비판인 동시에 정치적 비판이기도 하다. 과학적 인식은 일반성 I과의 인식론적 단절을 통해서 일반성 III에 이른다. 즉 이데올로기에서 과학으로 변모된다. 여기에서 알튀세는 바슐라르를 넘어 일반성 I과 일반성 III 사이에 일반성 II를 삽입시킨다. 이것은 깡길렘의 인식론에 기반한 사유이다. 깡길렘은 바슐라르가 인식론적 단절을 강조한 바슐라르와 달리 이전 이론과 이후 이론 사이에 일종의 완충 지대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 완충 지대는 ‘과학적 이데올로기"의 지대로서 한 이론의 한계가 드러났으나 새로운 이론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진화론의 예). 알튀세와 푸코는 깡길렘의 이런 입장을 각자의 맥락으로 변형시켜 받아들인다. 이로부터 알튀세의 ‘일반성 II" 개념과 푸코의 ‘지식(savoir)" 개념이 등장한다. 일반성 II는 일상성 I을 가공한다. 여기에서 가공한다는 것은 일반성 I에 섞여 있는 인식론적 장애물들을 떨어버리는 과정을 말한다. 일반성 II는 이 과정을 뜻한다. 그것은 ‘재구성(reconstruction)"의 과정이다. 이 점에서 일반성 II는 과학사적 개념이기도 하고 인식론적 개념이기도 하다. 경제학적으로 말한다면, 일반성 I은 이론적 실천의 원질료이고, II는 생산수단이고, III은 생산품이다. <다음호에 계속> 철학아카데미 02)722-2871 www.acaphil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