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된다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로 엄습해 온다
외로운 기러기가 되지 않으리…
기러기의 추억혼자 산다는 것은 참 재미없는 일이다. 노총각 노처녀를 보면서 어른들이 잔소리를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만 같다. 방해받지 않는 혼자됨을 좋아할 때도 있었다. 혼자였을 때에는 몰랐었는데 둘이 됐다가 넷이 된 다음에 혼자 돼 보니 그 공허함과 재미없음에 삶의 재미와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비행기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 혹시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까봐 자명종을 두 개씩 맞춰놓고 예행연습을 한다. 지난 번에는 자명종을 맞춰놓고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로 잠들어 늦은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를 한다.
두 달을 기다려 온 만남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늦게 잠이 들었다.
따르르릉 빠빠빠-빠, 형아 형아 일어나. 안 일어나면 엉덩이 꼬집는다! 각각의 알람시계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여느 때 같으면 일어나기 싫어서 뒹굴면서 미적거릴텐데 벌떡 일어나서 곧바로 공항으로 차를 몰고 간다. 공항에 세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모든 수속을 마치고 탑승만을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기쁘다. 14시간을 비행해 도착한 이국 땅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과 감격은 피곤한 여독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두 달 만에 만난 가족과의 재회는 어느 꿀맛보다도 더 달콤하고 어떠한 기쁨보다도 더 큰 것이었다. 아들 딸과 눈이 마주치고 양팔 벌려 끌어안을 살이 닿는 순간 느낄 수 있는 그 전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행복감 그 자체이다.
유학시절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출국해야 했고 처자식과 6년을 헤어져 살아야만 했던 기억이 아련한 추억으로 느껴지며 겨우 두 달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인데도 너무나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정이 쌓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의 면역기능이 떨어진 것일까.
아마 신혼 초에는 혼자 살던 관성과 면역기능 때문에 덜 힘들었던 것 같고 이제는 그러한 능력이 많이 쇠퇴해 가족이라는 거대한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된 것 같다.
요즈음 기러기 아빠들이 많다고 한다. 공항에는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줄지어 해외로 연수를 가거나 유학을 가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대부분 가족과 헤어져 생활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다.
우리의 인생이 많으면 백수를 한다. 천수, 만수를 할 것도 아닌데 이 짧은 인생에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은 비극이다.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 또는 보다 좋은 교육환경을 주기 위한 이유로 아이들을 내보내지만 그 아이들이 장래에 사회적으로 탁월한 사람이 된다고 한들 가족의 따뜻함과 가족끼리 나누는 정을 모르고 자란다면 그것은 속 빈 강정, 아니 자기밖에 모르는 냉혈한 인간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어린 자식을 미국에 유학 보낸 한 학부모는 정성을 다해서 자식공부 뒷바라지를 했는데 아들은 일류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부모의 기쁨이 됐지만 미국에서 자란 탓에 미국식으로 생각하고 부모의 동의도 없이 미국여성과 결혼 한 뒤로 한국에 사는 부모와는 거의 남남처럼 지낸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서로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애틋한 정도 없다고 한다. 결국 이 부모는 평생 자식에게 돈만 보내고 채인 꼴이 된 셈이다. 말년을 자식의 효도도 받아보지 못하고 홀로 지내야 하는 처지가 너무 불쌍할 따름이다. 이때에 혼자 산다는 것은 독약보다도 쓴 생존이 아닐까.
혼자 된다는 것은 이제 고독과 무미건조함을 넘어 두려움과 공포로 엄습해 온다. 삶의 질서를 파괴하고 삶의 의미를 상실케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헤어짐과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외로움은 참기 힘들다.
까만 밤의 적막과 눈이 시리게 화창한 일요일 오후의 무료함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함께 있는 기쁨과 행복을 알게 된